선조실록61권, 선조 28년 3월 18일 신묘 4/5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영의정 유성룡이 시무 대책을 건의하다
국역
영의정 유성룡이 비변사 낭청을 시켜 아뢰기를,
"근자에 중외의 인심을 보니, 날로 더욱 해이해지고 기율이 없어져 언뜻 적의 기별만 들어도 도망치는 것으로 상책(上策)을 삼습니다. 장수로부터 수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런 생각을 먼저 품기 때문에 군민의 마음도 모두가 이러하여 서로 의지해 함께 지켜내려는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인심이 이렇게까지 나빠져서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된 것은 임진년 변란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난리가 창졸간에 일어나 비록 진지를 버리고 도망친 장수나 성을 비우고 달아난 수령들이 있어도 복죄(伏罪)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이 상습(常習)이 되어서 앞으로 나아가면 위태롭고 도망치면 몸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심이 한번 변하자 다시 위중한 법률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되었기 때문에 그 병통이 이와 같은 데 이른 것입니다. 이제 마땅히 기강의 법을 신명(申明)하여 전진(戰陣)에 임했던 장수가 도망치거나 성을 지키지 않고 달아난 수령은 도원수(都元帥)에게 선참 후문(先斬後聞)113) 하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군법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미리 알게 하여 전쟁에 피하지 않고 힘써 싸우게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뒤에야 만에 하나라도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논자(論者)들이 모두 적이 군량 운송이 어려우므로 깊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생각이 짧은 것입니다. 이 적들은 풍우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가니 교계(狡計)와 변환(變幻)을 예측할 수가 없는데 만일 깊이 들어오려 한다면 한 사람이 3, 4일의 식량만 가져도 굶게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한창 보리가 익는 철이라 도처에 양식이 널려 있는데 어찌 먹을 것이 없음을 걱정하겠습니까. 만일 좌·우도의 왜적이 두 갈래로 나뉘어 우리 군사를 견철(牽掣)하면서 중로를 따라 바로 뚫고 나온다면 며칠이 안 되어 영(嶺) 밑에 다다를 것입니다. 이곳은 모두 비어 있으니, 적의 동태에 대하여 조정에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조령(鳥嶺)의 직로(直路)에는 신충원(辛忠元)이 있기는 하나 믿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인이 미천하고 변통할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평시에 소모(召募)한 병사들이 있지만 농사철을 맞아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는데 어떻게 불러 모으겠습니까. 일이 매우 우려됩니다. 감사에게 한두 달 기한으로 충주에 머물러 있게 하여 도로와 소식을 통하게 하고, 그 나머지 옆으로 뻗은 소로로서 요성(聊城)이나 이화현(伊火峴) 같은 곳에도 반드시 용장을 별도로 정하여 사전에 복병을 설치하여 적을 막을 계책을 분부해야 됩니다. 대개 지세가 험하고 좁으면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제압할 수 있으니, 이른바 ‘두 마리의 쥐가 굴속에서 싸우면 힘 있는 놈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초목이 무성할 때이니 깊은 산곡(山谷)의 숲이 무성한 곳을 택해 사수(射手) 의병(疑兵)을 많이 설치하면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장수된 자가 이런 꾀를 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주 목사 정기룡(鄭起龍)에게 적의 소식을 들어 미리 막을 계획을 세우게 하고 다른 고을의 수천 병사를 증원하여 주면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먹을 것이 없어 오래 버티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죽령(竹嶺)은 바로 좌도의 요충(要衝)에 해당되는데, 지세가 험하기 때문에 지난 해에도 적병이 경유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하도(下道)가 무너진다면 좌도의 군사를 합하여 역시 이곳에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청주는 바로 추풍(秋風)·황간(黃澗)·영동(永同)으로 이어지는 길로 병사(兵使)가 주둔해야 하는데 원균(元均)이 부임했는지의 여부를 아직 알 수가 없어 역시 염려가 됩니다. 이 역시 급히 재촉하여 미리 대비하여야 합니다.
청안 현감 전유형(全有亨)이 신에게 서장(書狀)을 보냈는데, 청주에 속한 고을은 모두 난리에 불타버린 고을이라 뽑은 군사가 겨우 1천 5백 명이며 장정은 3백 명에 불과한데 또다시 제장들에게 분속(分屬)하고 나면 나머지는 1백여 명에 불과하니 모두 자신에게 전속시켜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해 달라고 했고, 또 군기와 화약을 달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그의 소청대로 분속하지 말아서 책임지고 일로를 방수하도록 하며 활과 화살·화약도 많이 내려보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전관 한 사람을 가려 보내 그곳으로 가서 조치한 일들을 물어보고 오게 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응서(金應瑞)는 왜적의 달콤한 말을 깊이 믿고 있어 적의 술수에 빠질 우려가 없지 않은 듯하니, 고언백(高彦伯)의 계장(啓狀)의 내용과 같이 역시 선전관을 보내어 급히 전유(傳諭)하여 군병을 정칙(整飭)하고 새로운 각오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되 적의 동태를 상세히 정탐하고 한편으로는 급속히 치계하라는 것도 하서(下書)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전라도의 인심은 더욱 흩어져 방수하는 일을 할 수 없지만 남원(南原) 등지에는 이미 산성을 쌓았으니 적병이 만약 그 지역을 침범하면 그곳을 굳게 지키면서 막을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나주(羅州)나 장성(長城) 같은 곳은 산성이 있기는 하나 지세가 서해쪽으로 치우쳐 있어 가까스로 그곳 백성들을 보호할 수는 있어도 그곳의 요충을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이일(李鎰)이 지금 도내(道內)에 있지만 포치(布置)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뜻을 급히 치유(馳諭)하여 남원성을 지킬 수 있는 모든 기구(器具)와 양곡을 아울러 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주(全州)는 바로 한 도의 근본이 되는 지역입니다. 지난번에 조정에서 포루(砲樓)를 세우게 한 것은 범연한 계획이 아니었는데, 끝내 준공되지 않았습니다. 근일에 또 비변사의 행이(行移)로 인해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나, 본 사람들이 모두 부실하다고 말하니 이번에도 반드시 형식적으로만 하여 책임이나 면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루를 건설하면 반드시 화포(火砲)와 기계(器械)가 있고 화약과 철환(鐵丸)도 모두 갖추어진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포루가 비록 백 길[丈]이라 한들 무슨 도음이 되겠습니까. 이것만으로도 그 지방을 지키는 신하가 죽음으로써 성을 지키려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역시 일을 잘 아는 무신 한 사람을 내려보내어 그런 대로 모양이 갖추어져 변에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도내 여러 곳의 크고 작은 포를 모두 옮겨다 놓고 또 서울에서 화약 및 화포장(火砲匠) 몇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평상시에 그 구멍을 통하여 포를 쏘면서 위급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게 하고 백성들에게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한다면, 역시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어 궤산(潰散)하게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공주(公州)는 호남의 직로(直路)에 있고 수축한 성안에 창곡(倉穀)도 있으니, 지켜야만 합니다. 이경준(李慶濬)이 이미 내려갔는데, 전일의 계사대로 도내의 포수를 그곳으로 모아들여 날마다 연습을 일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활을 잘쏘는 각고을의 출신 금군(出身禁軍)으로서 전장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들을 운(運)을 나누어 초출(抄出)하여 모두 병사(兵使)나 진관(鎭管)이 있는 곳에 예속시켜 정해진 장수에게 나누어 배속하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세히 약속을 정하여 만일 왜적이 어느 어느 곳에 나타나면 어느 곳에서 막고 어느 곳에 잠복하며, 혹은 합세하고 혹은 분병(分兵)하는 등의 일을 대강 미리 약속하고 때를 기다려 책응하되, 잘못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으면 한결같이 군율로써 효시하라고 순찰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수군[舟師]의 형편도 매우 염려됩니다. 전일 적선(賊船)이 화호(和好)를 핑계로 몰래 와서 엿보고 갔다는데, 왜적이 하루라도 복수할 생각을 잊지 못하는 것은 실로 이순신(李舜臣)의 장계 내용과 같습니다. 왜적이 수륙(水陸)으로 한꺼번에 나올 경우 수군이 막지 못한다면 일은 더욱 위태롭습니다. 대체로 왜적이 해전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의 배가 멀리서 왔고 선제(船制)가 견고하고 장대(壯大)하지 못하여 그 위에 대포를 안치할 수 없어서 우리 나라 배에 제압된 것입니다. 지금 왜적이 오랫동안 재목이 많은 거제(巨濟)에 있으니, 만일 우리 나라의 선제를 따라 판옥선(板屋船)을 많이 만들어 포를 싣고 나온다면 대적하기 역시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일이 급한 때에 수군이 전날보다 더 약하고, 순찰사 등은 또한 장래의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여, 제장은 전부 차사원(差使員)이 되었고, 군량도 많이 감소되었는데다, 불행히도 충청도의 배가 바다에 침몰하여 제때에 가기가 어려우니, 걱정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순신이 청한 제장을 금명간에 급속히 떠나보내고 또한 이러한 뜻을 이순신 등에게 밀유(密諭)하여 각오를 새롭게 하여 조치해서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신은 병중이라 정신이 매우 혼미하여 정밀하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기(事機)가 위급하여 감히 민박한 생각을 아뢰는 것이니 비변사에 내려 급속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항왜(降倭)의 말이 비록 모두 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조치에 있어 허술한 곳을 충분히 조치하여 대비하는 것이 뭐가 나쁘겠는가. 비변사의 회계가 헐후(歇後)하여 마침 매우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 서계(書啓)를 보니 자별(自別)한 생각에 감동됨이 깊다. 비변사에 내려 신속히 거행해야겠다. 다만 근래 인심을 보니 더욱 게을러졌는데, 이것이 가장 걱정이다."
하고, 이어 정원에 전교하기를,
"이 서계를 비변사에 내려 속히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註 113] 선참 후문(先斬後聞) : 먼저 벌한 뒤에 보고함.
원문
○領議政柳成龍, 令備邊司郞廳啓曰: "近觀中外人心, 解弛日甚, 紀律蕩然, 少聞賊報, 只以逃竄爲上策, 自將帥以下, 以及守令, 皆先懷此意, 故軍民之心, 亦皆如此, 略無持循遮蔽之意。 人心不善, 至於如此, 事無可爲者。 良由壬辰之變, 事起倉卒, 雖有棄陣之將, 空城之守, 無一伏罪者, 故習以爲常, 以爲進前則事危, 退走則身便, 人心一變, 不復知有法律之爲重, 故其患至於如此。 今宜申明紀法, 凡將帥之臨陣退走者, 守令之有城不守者, 令都元帥, 先斬後聞, 使人人預知軍法之難逃, 而稍爲力戰不避之計, 然後庶可有望於萬一矣。 今之論者皆以爲: ‘賊以運糧爲難, 不能深入。’ 此其不思之甚也。 此賊來如風雨, 去如激電, 狡計變幻, 不可測度。 若欲長驅, 人持三四日糧, 不至無食。 況今正當麥熟之節, 到處餘糧(捿)〔棲〕 畝, 何患於無食哉? 萬一左右道之賊, 以兩頭牽掣我軍, 而從中路直衝, 則不數日當至嶺下。 此處則一皆空虛, 賊之來去, 朝廷雖欲聞知, 不可得矣。 鳥嶺直路, 雖有辛忠元, 不可倚仗。 何者, 人微而無權, 雖有平時召募之兵, 當此農月, 分散諸處, 何以呼召? 事極可憂。 宜令監司, 限一二月留駐于忠州, 以通道路聲息, 而鳥嶺大路, 雖略已設關, 亦須有兵守之。 其餘小路之旁出者, 如聊城及伊火峴等地, 亦須別定勇將, 預爲分付, 爲設伏把截之計可也。 蓋地勢險狹, 可以寡制衆, 所謂兩鼠鬪於穴中, 有力者勝也。 況草長之時, 山谷之間, 擇其(䕺)〔叢〕 薄深密之處, 多設射手疑兵, 可以制之, 只患爲將者不知出此耳。 又令尙州牧使鄭起龍, 聞賊聲息, 預爲把截之計, 益以他縣數千之兵, 猶可守禦, 只恐無食難久耳。 至於竹嶺, 則正當左道之衝。 往年賊兵, 以其地勢險絶, 不能經由, 然亦不可預料。 萬一下道蹉跌, 則合左道之軍, 亦可把截於此處也。 淸州正當秋風、黃澗、永同之路, 兵使當爲留住, 而元均赴任與否, 時未得知, 亦爲可慮。 此亦急須催促, 使之先事而圖可也。 淸安縣監全有亨, 通書于臣曰: ‘淸州所鎭之官, 皆是焚燬之邑, 所抄之兵, 僅一千五百, 丁壯不過三百, 而又爲分屬諸將, 其餘不過百餘。 願專屬于有亨, 使不至僨事’, 且求軍器、火藥。 此亦似當依其所請, 勿令分屬, 責以防守一路, 而弓箭、火藥, 亦多數下送, 別遣宣傳官一人, 往問措置等事以來爲當。 且金應瑞, 似爲深信倭賊甘言, 不無墮於賊術之憂。 以高彦伯啓狀之辭, 亦遣宣傳官, 急急傳諭, 使之整飭軍兵, 刻心待變, 而賊中形止, 詳細偵探, 一邊急速馳報事, 亦下書爲當。 全羅道人心, 尤爲渙散, 防守之事, 益無可爲, 然南原等地, 旣築山城, 賊兵若犯其境, 則堅守其處, 以爲把截之計, 不可已也。 至如羅州、長城, 則雖有山城, 地勢偏於西海, 僅可自保其境土之民, 不可控制其要衝也。 李鎰時在道中, 未知布置如何, 然以此意, 急急馳諭, 南原守城諸具及糧穀, 竝爲措置而待變可也。 全州, 正當一道根本之地。 往時, 朝廷使之建設砲樓, 計非偶然, 而竟未克就。 近日又因備邊司行移, 又爲始役云, 而見者皆言其齟齬。 此亦必爲文具塞責而止耳。 且若設砲樓, 則又必有火砲、器械與火藥、鐵丸, 一齊準備, 然後可以爲用。 不然則砲樓雖百丈, 何益哉? 以此知守土之臣, 無意於以死守城也。 然旣云始役, 亦令事知武臣一人, 馳去見之, 若稍爲成形, 猶可應變, 則道內諸處大、小砲, 量數移置, 且自京中, 分送火藥及火砲匠數人, 使於平日, 從其孔穴放砲, 以習臨急之用, 且令民心, 曉然知其可守, 則亦可以鎭定人心, 不至潰散。 公州在湖南直路, 而修築城內, 又有倉穀, 不可不守。 李慶濬已爲下去, 依前日啓辭, 道內砲手, 聚會其處, 日事鍊習, 且各官出身、禁軍能射人, 未赴戰所者, 亦分運抄出, 竝隷於兵使及鎭管所在處, 分付定將, 詳定約束, 如賊從某某處以動, 則把截於某處, 設伏於某處, 或合勢或分兵等事, 以其大槪, 預爲相約, 待時策應, 如有失誤及後期者, 一以軍律梟示, 下諭于巡察使、兵使宜當。 舟師之勢, 亦甚可憂。 頃日賊船, 托以和好, 潛來窺覘而去。 賊之不能一日忘其報怨之計者, 實有如李舜臣狀啓之辭。 賊若水、陸俱進, 而舟師不能遮截, 則事益危矣。 大抵倭賊, 非不慣水戰也, 只以其船遠來, 其制不能堅厚壯大, 故無以安大砲於其上, 而爲我國船所制耳。 今賊久在巨濟多材之處。 若依我國船制, 多造板屋船, 載砲而出, 則敵之亦難。 當此事急之際, 舟師孤弱, 甚於前日, 巡察使等, 又不能深惟遠慮, 諸將則盡爲差使員, 軍糧則亦多減數。 且不幸而忠淸道之船, 敗於海中, 又難登時進去, 事之可憂, 種種非一。 李舜臣所請諸將, 今、明日內, 急速發遣。 且密諭此意于李舜臣等, 使之刻期措置, 勿令蹉跌爲當。 臣病中精神甚昏, 未能精思, 但事機危急, 敢陳悶迫之意。 請下備邊司, 急速議處何如?" 答曰: "降倭之言, 雖未必皆實, 在我措置, 備盡(果虛)〔防禦〕 何害? 備邊司回啓歇後, 方切憂虞, 今觀書啓, 深感意思自別。 當下備邊司, 疾速擧行, 但近觀人心益懈, 此最可慮。" 仍傳于政院曰: "此書啓, 下于備邊司, 斯速施行。"
선조 28년 (1595) 3월 18일
선조실록61권, 선조 28년 3월 18일 신묘 4/5 기사 / 1595년 명 만력(萬曆) 23년
영의정 유성룡이 시무 대책을 건의하다
국역
영의정 유성룡이 비변사 낭청을 시켜 아뢰기를,
"근자에 중외의 인심을 보니, 날로 더욱 해이해지고 기율이 없어져 언뜻 적의 기별만 들어도 도망치는 것으로 상책(上策)을 삼습니다. 장수로부터 수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런 생각을 먼저 품기 때문에 군민의 마음도 모두가 이러하여 서로 의지해 함께 지켜내려는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인심이 이렇게까지 나빠져서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없게 된 것은 임진년 변란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난리가 창졸간에 일어나 비록 진지를 버리고 도망친 장수나 성을 비우고 달아난 수령들이 있어도 복죄(伏罪)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것이 상습(常習)이 되어서 앞으로 나아가면 위태롭고 도망치면 몸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심이 한번 변하자 다시 위중한 법률이 있다는 것을 모르게 되었기 때문에 그 병통이 이와 같은 데 이른 것입니다. 이제 마땅히 기강의 법을 신명(申明)하여 전진(戰陣)에 임했던 장수가 도망치거나 성을 지키지 않고 달아난 수령은 도원수(都元帥)에게 선참 후문(先斬後聞)113) 하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군법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미리 알게 하여 전쟁에 피하지 않고 힘써 싸우게끔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 뒤에야 만에 하나라도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논자(論者)들이 모두 적이 군량 운송이 어려우므로 깊이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생각이 짧은 것입니다. 이 적들은 풍우처럼 왔다가 번개처럼 가니 교계(狡計)와 변환(變幻)을 예측할 수가 없는데 만일 깊이 들어오려 한다면 한 사람이 3, 4일의 식량만 가져도 굶게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한창 보리가 익는 철이라 도처에 양식이 널려 있는데 어찌 먹을 것이 없음을 걱정하겠습니까. 만일 좌·우도의 왜적이 두 갈래로 나뉘어 우리 군사를 견철(牽掣)하면서 중로를 따라 바로 뚫고 나온다면 며칠이 안 되어 영(嶺) 밑에 다다를 것입니다. 이곳은 모두 비어 있으니, 적의 동태에 대하여 조정에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조령(鳥嶺)의 직로(直路)에는 신충원(辛忠元)이 있기는 하나 믿고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인이 미천하고 변통할 줄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평시에 소모(召募)한 병사들이 있지만 농사철을 맞아 여러 곳으로 분산되었는데 어떻게 불러 모으겠습니까. 일이 매우 우려됩니다. 감사에게 한두 달 기한으로 충주에 머물러 있게 하여 도로와 소식을 통하게 하고, 그 나머지 옆으로 뻗은 소로로서 요성(聊城)이나 이화현(伊火峴) 같은 곳에도 반드시 용장을 별도로 정하여 사전에 복병을 설치하여 적을 막을 계책을 분부해야 됩니다. 대개 지세가 험하고 좁으면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제압할 수 있으니, 이른바 ‘두 마리의 쥐가 굴속에서 싸우면 힘 있는 놈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초목이 무성할 때이니 깊은 산곡(山谷)의 숲이 무성한 곳을 택해 사수(射手) 의병(疑兵)을 많이 설치하면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장수된 자가 이런 꾀를 낼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주 목사 정기룡(鄭起龍)에게 적의 소식을 들어 미리 막을 계획을 세우게 하고 다른 고을의 수천 병사를 증원하여 주면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만 먹을 것이 없어 오래 버티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죽령(竹嶺)은 바로 좌도의 요충(要衝)에 해당되는데, 지세가 험하기 때문에 지난 해에도 적병이 경유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에 하나라도 하도(下道)가 무너진다면 좌도의 군사를 합하여 역시 이곳에서 제지하여야 합니다.
청주는 바로 추풍(秋風)·황간(黃澗)·영동(永同)으로 이어지는 길로 병사(兵使)가 주둔해야 하는데 원균(元均)이 부임했는지의 여부를 아직 알 수가 없어 역시 염려가 됩니다. 이 역시 급히 재촉하여 미리 대비하여야 합니다.
청안 현감 전유형(全有亨)이 신에게 서장(書狀)을 보냈는데, 청주에 속한 고을은 모두 난리에 불타버린 고을이라 뽑은 군사가 겨우 1천 5백 명이며 장정은 3백 명에 불과한데 또다시 제장들에게 분속(分屬)하고 나면 나머지는 1백여 명에 불과하니 모두 자신에게 전속시켜 일을 그르치지 않게 해 달라고 했고, 또 군기와 화약을 달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그의 소청대로 분속하지 말아서 책임지고 일로를 방수하도록 하며 활과 화살·화약도 많이 내려보내는 것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전관 한 사람을 가려 보내 그곳으로 가서 조치한 일들을 물어보고 오게 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그리고 김응서(金應瑞)는 왜적의 달콤한 말을 깊이 믿고 있어 적의 술수에 빠질 우려가 없지 않은 듯하니, 고언백(高彦伯)의 계장(啓狀)의 내용과 같이 역시 선전관을 보내어 급히 전유(傳諭)하여 군병을 정칙(整飭)하고 새로운 각오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되 적의 동태를 상세히 정탐하고 한편으로는 급속히 치계하라는 것도 하서(下書)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전라도의 인심은 더욱 흩어져 방수하는 일을 할 수 없지만 남원(南原) 등지에는 이미 산성을 쌓았으니 적병이 만약 그 지역을 침범하면 그곳을 굳게 지키면서 막을 계책을 세워야 합니다. 나주(羅州)나 장성(長城) 같은 곳은 산성이 있기는 하나 지세가 서해쪽으로 치우쳐 있어 가까스로 그곳 백성들을 보호할 수는 있어도 그곳의 요충을 제어할 수는 없습니다. 이일(李鎰)이 지금 도내(道內)에 있지만 포치(布置)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뜻을 급히 치유(馳諭)하여 남원성을 지킬 수 있는 모든 기구(器具)와 양곡을 아울러 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해야 합니다.
전주(全州)는 바로 한 도의 근본이 되는 지역입니다. 지난번에 조정에서 포루(砲樓)를 세우게 한 것은 범연한 계획이 아니었는데, 끝내 준공되지 않았습니다. 근일에 또 비변사의 행이(行移)로 인해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나, 본 사람들이 모두 부실하다고 말하니 이번에도 반드시 형식적으로만 하여 책임이나 면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루를 건설하면 반드시 화포(火砲)와 기계(器械)가 있고 화약과 철환(鐵丸)도 모두 갖추어진 뒤에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포루가 비록 백 길[丈]이라 한들 무슨 도음이 되겠습니까. 이것만으로도 그 지방을 지키는 신하가 죽음으로써 성을 지키려는 뜻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공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역시 일을 잘 아는 무신 한 사람을 내려보내어 그런 대로 모양이 갖추어져 변에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도내 여러 곳의 크고 작은 포를 모두 옮겨다 놓고 또 서울에서 화약 및 화포장(火砲匠) 몇 사람을 나누어 보내어, 평상시에 그 구멍을 통하여 포를 쏘면서 위급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게 하고 백성들에게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한다면, 역시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어 궤산(潰散)하게까지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공주(公州)는 호남의 직로(直路)에 있고 수축한 성안에 창곡(倉穀)도 있으니, 지켜야만 합니다. 이경준(李慶濬)이 이미 내려갔는데, 전일의 계사대로 도내의 포수를 그곳으로 모아들여 날마다 연습을 일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활을 잘쏘는 각고을의 출신 금군(出身禁軍)으로서 전장에 나아가지 않은 사람들을 운(運)을 나누어 초출(抄出)하여 모두 병사(兵使)나 진관(鎭管)이 있는 곳에 예속시켜 정해진 장수에게 나누어 배속하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세히 약속을 정하여 만일 왜적이 어느 어느 곳에 나타나면 어느 곳에서 막고 어느 곳에 잠복하며, 혹은 합세하고 혹은 분병(分兵)하는 등의 일을 대강 미리 약속하고 때를 기다려 책응하되, 잘못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가 있으면 한결같이 군율로써 효시하라고 순찰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수군[舟師]의 형편도 매우 염려됩니다. 전일 적선(賊船)이 화호(和好)를 핑계로 몰래 와서 엿보고 갔다는데, 왜적이 하루라도 복수할 생각을 잊지 못하는 것은 실로 이순신(李舜臣)의 장계 내용과 같습니다. 왜적이 수륙(水陸)으로 한꺼번에 나올 경우 수군이 막지 못한다면 일은 더욱 위태롭습니다. 대체로 왜적이 해전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의 배가 멀리서 왔고 선제(船制)가 견고하고 장대(壯大)하지 못하여 그 위에 대포를 안치할 수 없어서 우리 나라 배에 제압된 것입니다. 지금 왜적이 오랫동안 재목이 많은 거제(巨濟)에 있으니, 만일 우리 나라의 선제를 따라 판옥선(板屋船)을 많이 만들어 포를 싣고 나온다면 대적하기 역시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일이 급한 때에 수군이 전날보다 더 약하고, 순찰사 등은 또한 장래의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여, 제장은 전부 차사원(差使員)이 되었고, 군량도 많이 감소되었는데다, 불행히도 충청도의 배가 바다에 침몰하여 제때에 가기가 어려우니, 걱정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순신이 청한 제장을 금명간에 급속히 떠나보내고 또한 이러한 뜻을 이순신 등에게 밀유(密諭)하여 각오를 새롭게 하여 조치해서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겠습니다.
신은 병중이라 정신이 매우 혼미하여 정밀하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기(事機)가 위급하여 감히 민박한 생각을 아뢰는 것이니 비변사에 내려 급속히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항왜(降倭)의 말이 비록 모두 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조치에 있어 허술한 곳을 충분히 조치하여 대비하는 것이 뭐가 나쁘겠는가. 비변사의 회계가 헐후(歇後)하여 마침 매우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 서계(書啓)를 보니 자별(自別)한 생각에 감동됨이 깊다. 비변사에 내려 신속히 거행해야겠다. 다만 근래 인심을 보니 더욱 게을러졌는데, 이것이 가장 걱정이다."
하고, 이어 정원에 전교하기를,
"이 서계를 비변사에 내려 속히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註 113] 선참 후문(先斬後聞) : 먼저 벌한 뒤에 보고함.
원문
○領議政柳成龍, 令備邊司郞廳啓曰: "近觀中外人心, 解弛日甚, 紀律蕩然, 少聞賊報, 只以逃竄爲上策, 自將帥以下, 以及守令, 皆先懷此意, 故軍民之心, 亦皆如此, 略無持循遮蔽之意。 人心不善, 至於如此, 事無可爲者。 良由壬辰之變, 事起倉卒, 雖有棄陣之將, 空城之守, 無一伏罪者, 故習以爲常, 以爲進前則事危, 退走則身便, 人心一變, 不復知有法律之爲重, 故其患至於如此。 今宜申明紀法, 凡將帥之臨陣退走者, 守令之有城不守者, 令都元帥, 先斬後聞, 使人人預知軍法之難逃, 而稍爲力戰不避之計, 然後庶可有望於萬一矣。 今之論者皆以爲: ‘賊以運糧爲難, 不能深入。’ 此其不思之甚也。 此賊來如風雨, 去如激電, 狡計變幻, 不可測度。 若欲長驅, 人持三四日糧, 不至無食。 況今正當麥熟之節, 到處餘糧(捿)〔棲〕 畝, 何患於無食哉? 萬一左右道之賊, 以兩頭牽掣我軍, 而從中路直衝, 則不數日當至嶺下。 此處則一皆空虛, 賊之來去, 朝廷雖欲聞知, 不可得矣。 鳥嶺直路, 雖有辛忠元, 不可倚仗。 何者, 人微而無權, 雖有平時召募之兵, 當此農月, 分散諸處, 何以呼召? 事極可憂。 宜令監司, 限一二月留駐于忠州, 以通道路聲息, 而鳥嶺大路, 雖略已設關, 亦須有兵守之。 其餘小路之旁出者, 如聊城及伊火峴等地, 亦須別定勇將, 預爲分付, 爲設伏把截之計可也。 蓋地勢險狹, 可以寡制衆, 所謂兩鼠鬪於穴中, 有力者勝也。 況草長之時, 山谷之間, 擇其(䕺)〔叢〕 薄深密之處, 多設射手疑兵, 可以制之, 只患爲將者不知出此耳。 又令尙州牧使鄭起龍, 聞賊聲息, 預爲把截之計, 益以他縣數千之兵, 猶可守禦, 只恐無食難久耳。 至於竹嶺, 則正當左道之衝。 往年賊兵, 以其地勢險絶, 不能經由, 然亦不可預料。 萬一下道蹉跌, 則合左道之軍, 亦可把截於此處也。 淸州正當秋風、黃澗、永同之路, 兵使當爲留住, 而元均赴任與否, 時未得知, 亦爲可慮。 此亦急須催促, 使之先事而圖可也。 淸安縣監全有亨, 通書于臣曰: ‘淸州所鎭之官, 皆是焚燬之邑, 所抄之兵, 僅一千五百, 丁壯不過三百, 而又爲分屬諸將, 其餘不過百餘。 願專屬于有亨, 使不至僨事’, 且求軍器、火藥。 此亦似當依其所請, 勿令分屬, 責以防守一路, 而弓箭、火藥, 亦多數下送, 別遣宣傳官一人, 往問措置等事以來爲當。 且金應瑞, 似爲深信倭賊甘言, 不無墮於賊術之憂。 以高彦伯啓狀之辭, 亦遣宣傳官, 急急傳諭, 使之整飭軍兵, 刻心待變, 而賊中形止, 詳細偵探, 一邊急速馳報事, 亦下書爲當。 全羅道人心, 尤爲渙散, 防守之事, 益無可爲, 然南原等地, 旣築山城, 賊兵若犯其境, 則堅守其處, 以爲把截之計, 不可已也。 至如羅州、長城, 則雖有山城, 地勢偏於西海, 僅可自保其境土之民, 不可控制其要衝也。 李鎰時在道中, 未知布置如何, 然以此意, 急急馳諭, 南原守城諸具及糧穀, 竝爲措置而待變可也。 全州, 正當一道根本之地。 往時, 朝廷使之建設砲樓, 計非偶然, 而竟未克就。 近日又因備邊司行移, 又爲始役云, 而見者皆言其齟齬。 此亦必爲文具塞責而止耳。 且若設砲樓, 則又必有火砲、器械與火藥、鐵丸, 一齊準備, 然後可以爲用。 不然則砲樓雖百丈, 何益哉? 以此知守土之臣, 無意於以死守城也。 然旣云始役, 亦令事知武臣一人, 馳去見之, 若稍爲成形, 猶可應變, 則道內諸處大、小砲, 量數移置, 且自京中, 分送火藥及火砲匠數人, 使於平日, 從其孔穴放砲, 以習臨急之用, 且令民心, 曉然知其可守, 則亦可以鎭定人心, 不至潰散。 公州在湖南直路, 而修築城內, 又有倉穀, 不可不守。 李慶濬已爲下去, 依前日啓辭, 道內砲手, 聚會其處, 日事鍊習, 且各官出身、禁軍能射人, 未赴戰所者, 亦分運抄出, 竝隷於兵使及鎭管所在處, 分付定將, 詳定約束, 如賊從某某處以動, 則把截於某處, 設伏於某處, 或合勢或分兵等事, 以其大槪, 預爲相約, 待時策應, 如有失誤及後期者, 一以軍律梟示, 下諭于巡察使、兵使宜當。 舟師之勢, 亦甚可憂。 頃日賊船, 托以和好, 潛來窺覘而去。 賊之不能一日忘其報怨之計者, 實有如李舜臣狀啓之辭。 賊若水、陸俱進, 而舟師不能遮截, 則事益危矣。 大抵倭賊, 非不慣水戰也, 只以其船遠來, 其制不能堅厚壯大, 故無以安大砲於其上, 而爲我國船所制耳。 今賊久在巨濟多材之處。 若依我國船制, 多造板屋船, 載砲而出, 則敵之亦難。 當此事急之際, 舟師孤弱, 甚於前日, 巡察使等, 又不能深惟遠慮, 諸將則盡爲差使員, 軍糧則亦多減數。 且不幸而忠淸道之船, 敗於海中, 又難登時進去, 事之可憂, 種種非一。 李舜臣所請諸將, 今、明日內, 急速發遣。 且密諭此意于李舜臣等, 使之刻期措置, 勿令蹉跌爲當。 臣病中精神甚昏, 未能精思, 但事機危急, 敢陳悶迫之意。 請下備邊司, 急速議處何如?" 答曰: "降倭之言, 雖未必皆實, 在我措置, 備盡(果虛)〔防禦〕 何害? 備邊司回啓歇後, 方切憂虞, 今觀書啓, 深感意思自別。 當下備邊司, 疾速擧行, 但近觀人心益懈, 此最可慮。" 仍傳于政院曰: "此書啓, 下于備邊司, 斯速施行。"
원본
선조 28년 (1595)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