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54권, 선조 27년 8월 27일 임신 4/4 기사 /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경기 어사 황극중이 도적의 폐해를 아뢰다
국역
경기 어사 황극중(黃克中)이 아뢰었다.
"신이 앞서 연천현(漣川縣)으로부터 영평(永平)으로 향하는데, 대낮에 노상에서 말을 타거나 걷던 도적들이 활과 칼을 가지고 있다가 신의 행차를 보고는 숲 속으로 달아나 들어갔으며 길가는 사람을 베어 죽이고 머리를 달아 매기도 하였습니다. 또 이천(利川) 땅에서는 도보하던 도적 10여 명이 길가에 둘러앉아서 막 도적질한 물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신이 공행(公行)인 줄을 알고 감히 와서 대항하지는 못하였으나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신이 또 가평군(嘉平郡)에 이르니 군청에서 거리가 30리쯤 되는 곳에서 도적 수십여 명이 말을 타거나 걸어서 나타나 활을 쏘기도 하고 칼을 휘두르며 갑자기 갑사(甲士) 고유신(高有信)의 집에 들어가서 즉시 베어죽이고 온 마을을 수색하여 가축과 재물을 남김없이 빼앗아 갔습니다. 근일에는 그 형세가 점점 성해져서 관군이 포위하면 화살과 돌로 겨루며 사람을 만나면 꼭 죽이고 마니 이러한 도적의 소행을 심상하게 보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신이 방어사 변응성(邊應星)을 보니 응성이 ‘광주(廣州) 소속 경안역(景安驛) 근처, 용인(龍仁)·양지(陽智)의 사이, 죽산(竹山)·음죽(陰竹)의 경계에 강원도로 통하는 큰 길, 가평·양근(楊根)의 경계의 요해처에는 용진(龍津)을 파수(把守)하는 것과 같이 각각 1백여 명의 삼수(三手)를 벌여 진치고 방어하게 하여 그 성세를 도우면 이 도적들이 필시 전과 같이 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신이 이미 문견하였으므로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5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36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원문
○京畿御史黃克中啓曰: "臣前此自連川縣, 向永平時, 白晝路間, 騎步賊徒, 佩持弓、劍, 見臣之行, 走入林谷, 斬殺行人而梟首。 又於利川地, 步賊十餘, 環坐路傍, 方分所偸之物, 旣知臣爲公行, 故雖不敢來抗, 而略無忌憚之狀。 臣又到嘉平郡, 則距郡三十里許, 劇賊數十餘名, 或騎、或步, 鳴弓、揮劍, 突入甲士高有信家, 卽時斬殺, 搜探一里, 牛畜財物, 無遺掠去。 近日則其勢漸熾, 官軍圍抱, 則以矢石相抗, 與人相値, 必斬殺而後已, 此賊所爲, 不可視爲尋常。 臣見防禦使邊應星, 則應星曰: "如廣州屬景安驛近處, 龍仁、陽智之間, 竹山、陰竹之境, 江原道通行大路, 加平、楊根之界, 要害等處, 依龍津把守, 各以百餘三手, 列屯遮截, 助其聲勢, 則此賊必不如前恣行’ 云矣。 臣, 旣有聞見, 不敢不達。"
- 【태백산사고본】 32책 5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36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선조실록54권, 선조 27년 8월 27일 임신 4/4 기사 / 1594년 명 만력(萬曆) 22년
경기 어사 황극중이 도적의 폐해를 아뢰다
국역
경기 어사 황극중(黃克中)이 아뢰었다.
"신이 앞서 연천현(漣川縣)으로부터 영평(永平)으로 향하는데, 대낮에 노상에서 말을 타거나 걷던 도적들이 활과 칼을 가지고 있다가 신의 행차를 보고는 숲 속으로 달아나 들어갔으며 길가는 사람을 베어 죽이고 머리를 달아 매기도 하였습니다. 또 이천(利川) 땅에서는 도보하던 도적 10여 명이 길가에 둘러앉아서 막 도적질한 물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신이 공행(公行)인 줄을 알고 감히 와서 대항하지는 못하였으나 조금도 두려워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신이 또 가평군(嘉平郡)에 이르니 군청에서 거리가 30리쯤 되는 곳에서 도적 수십여 명이 말을 타거나 걸어서 나타나 활을 쏘기도 하고 칼을 휘두르며 갑자기 갑사(甲士) 고유신(高有信)의 집에 들어가서 즉시 베어죽이고 온 마을을 수색하여 가축과 재물을 남김없이 빼앗아 갔습니다. 근일에는 그 형세가 점점 성해져서 관군이 포위하면 화살과 돌로 겨루며 사람을 만나면 꼭 죽이고 마니 이러한 도적의 소행을 심상하게 보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신이 방어사 변응성(邊應星)을 보니 응성이 ‘광주(廣州) 소속 경안역(景安驛) 근처, 용인(龍仁)·양지(陽智)의 사이, 죽산(竹山)·음죽(陰竹)의 경계에 강원도로 통하는 큰 길, 가평·양근(楊根)의 경계의 요해처에는 용진(龍津)을 파수(把守)하는 것과 같이 각각 1백여 명의 삼수(三手)를 벌여 진치고 방어하게 하여 그 성세를 도우면 이 도적들이 필시 전과 같이 자행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신이 이미 문견하였으므로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5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36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원문
○京畿御史黃克中啓曰: "臣前此自連川縣, 向永平時, 白晝路間, 騎步賊徒, 佩持弓、劍, 見臣之行, 走入林谷, 斬殺行人而梟首。 又於利川地, 步賊十餘, 環坐路傍, 方分所偸之物, 旣知臣爲公行, 故雖不敢來抗, 而略無忌憚之狀。 臣又到嘉平郡, 則距郡三十里許, 劇賊數十餘名, 或騎、或步, 鳴弓、揮劍, 突入甲士高有信家, 卽時斬殺, 搜探一里, 牛畜財物, 無遺掠去。 近日則其勢漸熾, 官軍圍抱, 則以矢石相抗, 與人相値, 必斬殺而後已, 此賊所爲, 不可視爲尋常。 臣見防禦使邊應星, 則應星曰: "如廣州屬景安驛近處, 龍仁、陽智之間, 竹山、陰竹之境, 江原道通行大路, 加平、楊根之界, 要害等處, 依龍津把守, 各以百餘三手, 列屯遮截, 助其聲勢, 則此賊必不如前恣行’ 云矣。 臣, 旣有聞見, 不敢不達。"
- 【태백산사고본】 32책 54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2책 336면
- 【분류】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