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43권, 선조 26년 10월 29일 기유 1/8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영의정 유성룡이 사직을 청하다
국역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오늘날 국가가 어렵고도 위태로운 것은 진실로 이미 신의 말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우선 신의 사정을 말한다면 매우 어리석고 무사(無似)하여 자리만 채우고 있는 하나의 구신(具臣)에 불과합니다. 지난날 외람되이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창졸간에 사변이 발생하자 한 가지 계책도 조처하지 못했으니 국사를 그르친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성상께서 관대하신 은덕으로 주척(誅斥)하지 않은 탓으로 지금까지 구차하게 조단(朝端)에 용납되고 있으니, 신으로서는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 다시 은총(恩寵)을 잘못 내리시어 재차 정승자리를 더럽히게 될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신이 우완(愚頑)하기는 하지만 진실로 무슨 마음으로 다시 외람되이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으며 또 무슨 낯으로 백관(百官)들을 보겠습니까.
신이 옛 역사를 살펴보건대 중흥(中興)의 어려움이 창업(創業)보다 더하고 성패(成敗)와 존망(存亡)은 어떤 사람을 정승으로 두느냐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국가의 위태로움을 붙잡아 세울 수 있는 재주와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는 기국이 정말 신처럼 못난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지난날 수레가 전복되었던 전철(前轍)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수레를 메워 그 길로 가는 것이니 어찌 위태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야(朝野)의 인정이 이런 거조(擧措)를 보고 누군들 해체(解體)되지 않겠습니까. 신으로서는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럽고 두렵기만 하여 천지 사이에 몸둘 바를 모름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신은 젊어서부터 심기에 병이 생긴 지 이미 오래인데 해를 넘기는 난리통에 쌓인 손상이 더욱 심해져 죽을 뻔한 경우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정신이 흐려지고 정기가 모자라 근력이 다 없어졌으므로 심상히 응수할 일이나 기억할 것에 있어서도 전도되고 잊는 것을 면하지 못하고 밤이면 벽에 기대어 날을 세우고 낮에는 소용없는 근심만 하다 날을 넘기기 때문에 일이 눈앞에 닥쳐도 전연 갈피를 모릅니다. 이런 썩은 나무 같은 몸과 기진맥진한 심력(心力)을 가지고 군국(軍國)의 일을 제대로 다스려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미 스스로 상심하고 위로 국사를 위해서도 한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도 사람인데 이런 위급한 즈음에 당하여 구차하게 자신만 편할 생각을 하여 위로 성청(聖聽)을 번독하면서 헛된 사양을 함으로써 죄과를 거듭 지으려 하겠습니까. 신은 마음이 막히고 말이 위축되어 제대로 호소할 수가 없습니다. 천만 바라건대 성상께서 밝게 살피고 쾌히 결단하시어 속히 성명(成命)을 환수하여 국사가 잘 되게 하소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지극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다해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4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1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원문
○己酉/領議政柳成龍啓曰: "今日國事艱危, 固已不待臣言。 姑以臣之事言之, 至愚無似, 倥倥一具臣耳。 前者忝竊相位, 倉卒事變, 一策不措, 誤國之罪, 不可勝贖。 聖恩寬不誅斥, 至今苟容朝端, 於臣已幸矣。 豈意更辱謬眷, 再玷具瞻之地? 臣雖愚頑, 固將何必更爲叨竊; 又將何顔以見百僚? 臣觀於古史, 中興之難, 甚於創業。 成敗存亡, 決於置相之如何。 扶顚持危之才, 撥亂經濟之器, 正無有如臣者, 是猶知前日覆車之轍, 而再駕而隨之, 豈不殆哉! 朝野人情, 見此擧措, 孰不解體, 而臣之俯仰愧慄, 無所逃於天地之間者, 又如何哉! 且臣自少, 於心氣上受病已久, 經年亂離, 積敗益甚, 幾死者數矣。 神昏精乏, 筋力都盡, 至於尋常應酬記憶, 亦未免顚倒遺忘。 夜以倚壁達曙, 晝以昧惙終日, 事到眼前, 全未了了。 以如此朽木形骸, 澌盡心力, 能料理軍國事, 其可近似乎? 此臣之旣自傷悼, 而仰爲國事, 未免寒心者也。 不然, 臣亦人耳, 當此危急之際, 豈以苟免自便爲心, 而仰煩聖聽, 以虛讓之說, 以重罪戾也哉? 臣情阨辭蹙, 籲呼無從。 萬冀聖慈, 离燭夬決, 亟收成命, 以濟國事。 不勝涕泣祈懇之至。" 答曰: "勿辭。 更加盡心。"
- 【태백산사고본】 25책 4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1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선조실록43권, 선조 26년 10월 29일 기유 1/8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영의정 유성룡이 사직을 청하다
국역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오늘날 국가가 어렵고도 위태로운 것은 진실로 이미 신의 말을 기다릴 것이 없습니다. 우선 신의 사정을 말한다면 매우 어리석고 무사(無似)하여 자리만 채우고 있는 하나의 구신(具臣)에 불과합니다. 지난날 외람되이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창졸간에 사변이 발생하자 한 가지 계책도 조처하지 못했으니 국사를 그르친 죄를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성상께서 관대하신 은덕으로 주척(誅斥)하지 않은 탓으로 지금까지 구차하게 조단(朝端)에 용납되고 있으니, 신으로서는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 다시 은총(恩寵)을 잘못 내리시어 재차 정승자리를 더럽히게 될 줄을 생각했겠습니까. 신이 우완(愚頑)하기는 하지만 진실로 무슨 마음으로 다시 외람되이 정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으며 또 무슨 낯으로 백관(百官)들을 보겠습니까.
신이 옛 역사를 살펴보건대 중흥(中興)의 어려움이 창업(創業)보다 더하고 성패(成敗)와 존망(存亡)은 어떤 사람을 정승으로 두느냐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국가의 위태로움을 붙잡아 세울 수 있는 재주와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는 기국이 정말 신처럼 못난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지난날 수레가 전복되었던 전철(前轍)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수레를 메워 그 길로 가는 것이니 어찌 위태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야(朝野)의 인정이 이런 거조(擧措)를 보고 누군들 해체(解體)되지 않겠습니까. 신으로서는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부끄럽고 두렵기만 하여 천지 사이에 몸둘 바를 모름이 또한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신은 젊어서부터 심기에 병이 생긴 지 이미 오래인데 해를 넘기는 난리통에 쌓인 손상이 더욱 심해져 죽을 뻔한 경우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정신이 흐려지고 정기가 모자라 근력이 다 없어졌으므로 심상히 응수할 일이나 기억할 것에 있어서도 전도되고 잊는 것을 면하지 못하고 밤이면 벽에 기대어 날을 세우고 낮에는 소용없는 근심만 하다 날을 넘기기 때문에 일이 눈앞에 닥쳐도 전연 갈피를 모릅니다. 이런 썩은 나무 같은 몸과 기진맥진한 심력(心力)을 가지고 군국(軍國)의 일을 제대로 다스려 나갈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이미 스스로 상심하고 위로 국사를 위해서도 한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도 사람인데 이런 위급한 즈음에 당하여 구차하게 자신만 편할 생각을 하여 위로 성청(聖聽)을 번독하면서 헛된 사양을 함으로써 죄과를 거듭 지으려 하겠습니까. 신은 마음이 막히고 말이 위축되어 제대로 호소할 수가 없습니다. 천만 바라건대 성상께서 밝게 살피고 쾌히 결단하시어 속히 성명(成命)을 환수하여 국사가 잘 되게 하소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지극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사직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다해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4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1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원문
○己酉/領議政柳成龍啓曰: "今日國事艱危, 固已不待臣言。 姑以臣之事言之, 至愚無似, 倥倥一具臣耳。 前者忝竊相位, 倉卒事變, 一策不措, 誤國之罪, 不可勝贖。 聖恩寬不誅斥, 至今苟容朝端, 於臣已幸矣。 豈意更辱謬眷, 再玷具瞻之地? 臣雖愚頑, 固將何必更爲叨竊; 又將何顔以見百僚? 臣觀於古史, 中興之難, 甚於創業。 成敗存亡, 決於置相之如何。 扶顚持危之才, 撥亂經濟之器, 正無有如臣者, 是猶知前日覆車之轍, 而再駕而隨之, 豈不殆哉! 朝野人情, 見此擧措, 孰不解體, 而臣之俯仰愧慄, 無所逃於天地之間者, 又如何哉! 且臣自少, 於心氣上受病已久, 經年亂離, 積敗益甚, 幾死者數矣。 神昏精乏, 筋力都盡, 至於尋常應酬記憶, 亦未免顚倒遺忘。 夜以倚壁達曙, 晝以昧惙終日, 事到眼前, 全未了了。 以如此朽木形骸, 澌盡心力, 能料理軍國事, 其可近似乎? 此臣之旣自傷悼, 而仰爲國事, 未免寒心者也。 不然, 臣亦人耳, 當此危急之際, 豈以苟免自便爲心, 而仰煩聖聽, 以虛讓之說, 以重罪戾也哉? 臣情阨辭蹙, 籲呼無從。 萬冀聖慈, 离燭夬決, 亟收成命, 以濟國事。 不勝涕泣祈懇之至。" 答曰: "勿辭。 更加盡心。"
- 【태백산사고본】 25책 4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2책 11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