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40권, 선조 26년 7월 20일 임신 9/14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전라 관찰사 이정암이 해안 지역 상황을 아뢰며 구원군의 파견을 청하다
국역
전라 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지난 6월 27일 좌도 수군 절도사(左道水軍節度使) 이순신(李舜臣)의 치보(馳報)에 ‘부산(釜山)·김해(金海)의 적선(賊船)이 웅천(熊川)으로 옮겨 모였는데 그 수가 7∼8백 척(隻)은 족히 된다.’고 했던 것을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웅천 등지에 옮겨와서 정박해 있던 그 적선들이 금년 6월 23일 야음(夜陰)을 틈타 몰래 도해(渡海)하여 거제(巨濟) 경계에서부터 영등포(永登浦)·송진포(松珍浦)·하청가이(河淸加耳)까지 가득 정박하고 있는데 선박의 수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염(閭閻)을 분탕(焚蕩)하는 것은 전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이들 적세(賊勢)를 보건대, 수륙(水陸)이 함께 공격하여 호남을 침범할 뜻이 분명하므로 적로(賊路)의 요충(要衝)인 거제(巨濟)의 경계와 한산도(閑山島)·견내량(見乃梁) 등처에서 삼도(三道)의 주사(舟師)가 합세하여 죽을 각오로 막기로 작정하였으나 행재소(行在所)가 멀리 있어 미처 치보(馳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금년 7월 4일에 구례(求禮)의 지경(地境) 석주(石柱)에 복병(伏兵)하고 있는 복병장(伏兵將) 고부 군수(古阜郡守) 왕경조(王景祚)의 치보에 ‘흉적 2만여 기(騎)가 진주(晉州)로부터 곧바로 악양창(岳陽倉)으로 와서 분탕한 다음 점점 우리 군사가 매복해 있는 곳으로 나오고 있다.’ 하였습니다. 4일에 보낸 왕경조의 치보에 또 ‘흉적이 우리 군사가 매복하고 있는 10여 리 밖에서 분탕질을 친 뒤에 진(陣)을 치자, 파수(把守)하는 군사들이 모두 도망하였으므로 파수할 방법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적세가 가까와지자 매복한 군사들이 풍문만 듣고 모두 도산(逃散)하니 본도(本道)가 와해(瓦解)되는 화(禍)는 시간 문제입니다. 그러니 조정에서 급히 처치하여 정예(精銳)한 군사 다수를 보내주소서."
원문
○全羅道觀察使李廷馣馳啓曰: "去六月二十七日, 左道水軍節度使李舜臣馳報: ‘釜山、金海賊船, 移聚熊川之數, 多至七八百餘隻。’ 緣由已爲馳啓。 其熊川等地移泊之船, 今六月二十三日夜間, 乘暗潛渡, 自巨濟境至永登浦、松珎浦、河淸加耳, 彌滿列泊, 船數則不得詳計, 焚蕩閭閻, 比前尤甚。 觀此賊勢, 水陸俱擧, 移犯湖南之意, 顯然無疑。 賊路要衝, 巨濟境閑山島、見乃梁等處, 三道舟師合勢, 要截決死, 而行在隔遠, 趁未馳報矣。 今七月初四日, 求禮地境石柱伏兵將古阜郡守王景祚馳報: ‘兇賊二萬餘騎, 自晋州出來, 直到岳陽倉, 焚蕩後, 漸進伏處’ 云。 初四日, 王景祚馳報: ‘兇賊自伏兵處十里許, 焚蕩後結陣。 把守軍人等, 竝皆逃亡, 把守無策, 罔知所爲,’ 云。 賊勢已迫, 伏兵軍人望風逃散, 本道瓦解之禍, 不朝卽夕。 朝廷急速處置, 精銳之士, 多數下送。"
선조 26년 (1593) 7월 20일
- 이항복이 경략을 만나 관방 설치, 유정 철수, 심유경의 문제를 의논하다
- 이항복이 분열되어 있는 중국군 장수들을 두루 방문 설득하겠다 아뢰다
- 비변사가 이항복을 보내지 말고 왕의 친서를 보내자고 아뢰다
- 괴산 유생 전유형이 왜적을 막는 일 등 10여 조에 대한 상소를 올리다
- 충청도 감사에게 전유형을 올려보내라 하유하다
- 정곤수 등이 병들고 분열되어 진격을 꺼리는 명군의 상황을 보고하다
- 독포사 박진이 초계 지역에서 적병을 만나 후퇴했다고 보고하다
- 혜성이 작아지고 객성과 유성이 있다
- 전라 관찰사 이정암이 해안 지역 상황을 아뢰며 구원군의 파견을 청하다
- 정곤수 등이 전라도의 구원 요청과 이여송의 미온적인 반응을 보고하다
- 게첩에도 어보를 찍도록 전교하다
- 수령과 변장의 부임 기한을 조정하고 어긴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다
- 선종과 교종의 판사 차출, 선과 지급 등을 통해 승군을 모으다
- 이유중·이상의·김의원·이기빈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선조실록40권, 선조 26년 7월 20일 임신 9/14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전라 관찰사 이정암이 해안 지역 상황을 아뢰며 구원군의 파견을 청하다
국역
전라 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지난 6월 27일 좌도 수군 절도사(左道水軍節度使) 이순신(李舜臣)의 치보(馳報)에 ‘부산(釜山)·김해(金海)의 적선(賊船)이 웅천(熊川)으로 옮겨 모였는데 그 수가 7∼8백 척(隻)은 족히 된다.’고 했던 것을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웅천 등지에 옮겨와서 정박해 있던 그 적선들이 금년 6월 23일 야음(夜陰)을 틈타 몰래 도해(渡海)하여 거제(巨濟) 경계에서부터 영등포(永登浦)·송진포(松珍浦)·하청가이(河淸加耳)까지 가득 정박하고 있는데 선박의 수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염(閭閻)을 분탕(焚蕩)하는 것은 전년에 비해 더욱 심합니다.
이들 적세(賊勢)를 보건대, 수륙(水陸)이 함께 공격하여 호남을 침범할 뜻이 분명하므로 적로(賊路)의 요충(要衝)인 거제(巨濟)의 경계와 한산도(閑山島)·견내량(見乃梁) 등처에서 삼도(三道)의 주사(舟師)가 합세하여 죽을 각오로 막기로 작정하였으나 행재소(行在所)가 멀리 있어 미처 치보(馳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금년 7월 4일에 구례(求禮)의 지경(地境) 석주(石柱)에 복병(伏兵)하고 있는 복병장(伏兵將) 고부 군수(古阜郡守) 왕경조(王景祚)의 치보에 ‘흉적 2만여 기(騎)가 진주(晉州)로부터 곧바로 악양창(岳陽倉)으로 와서 분탕한 다음 점점 우리 군사가 매복해 있는 곳으로 나오고 있다.’ 하였습니다. 4일에 보낸 왕경조의 치보에 또 ‘흉적이 우리 군사가 매복하고 있는 10여 리 밖에서 분탕질을 친 뒤에 진(陣)을 치자, 파수(把守)하는 군사들이 모두 도망하였으므로 파수할 방법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적세가 가까와지자 매복한 군사들이 풍문만 듣고 모두 도산(逃散)하니 본도(本道)가 와해(瓦解)되는 화(禍)는 시간 문제입니다. 그러니 조정에서 급히 처치하여 정예(精銳)한 군사 다수를 보내주소서."
원문
○全羅道觀察使李廷馣馳啓曰: "去六月二十七日, 左道水軍節度使李舜臣馳報: ‘釜山、金海賊船, 移聚熊川之數, 多至七八百餘隻。’ 緣由已爲馳啓。 其熊川等地移泊之船, 今六月二十三日夜間, 乘暗潛渡, 自巨濟境至永登浦、松珎浦、河淸加耳, 彌滿列泊, 船數則不得詳計, 焚蕩閭閻, 比前尤甚。 觀此賊勢, 水陸俱擧, 移犯湖南之意, 顯然無疑。 賊路要衝, 巨濟境閑山島、見乃梁等處, 三道舟師合勢, 要截決死, 而行在隔遠, 趁未馳報矣。 今七月初四日, 求禮地境石柱伏兵將古阜郡守王景祚馳報: ‘兇賊二萬餘騎, 自晋州出來, 直到岳陽倉, 焚蕩後, 漸進伏處’ 云。 初四日, 王景祚馳報: ‘兇賊自伏兵處十里許, 焚蕩後結陣。 把守軍人等, 竝皆逃亡, 把守無策, 罔知所爲,’ 云。 賊勢已迫, 伏兵軍人望風逃散, 本道瓦解之禍, 不朝卽夕。 朝廷急速處置, 精銳之士, 多數下送。"
원본
선조 26년 (1593) 7월 20일
- 이항복이 경략을 만나 관방 설치, 유정 철수, 심유경의 문제를 의논하다
- 이항복이 분열되어 있는 중국군 장수들을 두루 방문 설득하겠다 아뢰다
- 비변사가 이항복을 보내지 말고 왕의 친서를 보내자고 아뢰다
- 괴산 유생 전유형이 왜적을 막는 일 등 10여 조에 대한 상소를 올리다
- 충청도 감사에게 전유형을 올려보내라 하유하다
- 정곤수 등이 병들고 분열되어 진격을 꺼리는 명군의 상황을 보고하다
- 독포사 박진이 초계 지역에서 적병을 만나 후퇴했다고 보고하다
- 혜성이 작아지고 객성과 유성이 있다
- 전라 관찰사 이정암이 해안 지역 상황을 아뢰며 구원군의 파견을 청하다
- 정곤수 등이 전라도의 구원 요청과 이여송의 미온적인 반응을 보고하다
- 게첩에도 어보를 찍도록 전교하다
- 수령과 변장의 부임 기한을 조정하고 어긴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다
- 선종과 교종의 판사 차출, 선과 지급 등을 통해 승군을 모으다
- 이유중·이상의·김의원·이기빈에게 관직을 제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