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7권, 선조 26년 4월 24일 무신 3/9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사간원이 왜적에게 부역한 자를 처단할 것과 하례를 중지할 것을 아뢰다
국역
사간원이 아뢰기를,
"왜적이 서울에 들어와 국세(國勢)가 매우 위태로왔을 때에 무지한 백성들 중에 적에게 부역한 자들을 일일이 의(義)로 꾸짖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신으로서 포로가 되어 한 번 죽어 군신의 대의(大義)를 밝히지는 못하고 도리어 목숨을 보전하여 구차하게 살 것만을 생각해서 꼬리를 치며 애처로이 구걸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관백(關白)을 전하(殿下)라고 일컬은 자도 있었으니, 악한 짓을 하는 것이 여기에까지 이를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들이 무도하게 임금을 무시한 죄상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나라에 상형(常刑)이 있으니 하루라도 천지 사이에 용납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적중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지금까지 처치하지 못하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이 분해하여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前) 첨지(僉知) 성세령(成世寧)은 처음부터 도성(都城)을 나가지 않고 있다가 술과 안주를 성대히 마련하고 왜적을 맞이하였으며, 경기 방백(方伯)120) 의 직첩(職帖)을 받고서는 멋대로 용사(用事)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자들은 모두들 원통히 생각하여 그 자의 육신을 먹고 싶어 하나 서울에 있는 적들이 아직 물러나지 않아서 천벌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어 악한 짓을 하는 무리들이 진계되거나 두려워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간다면 군신간의 의(義)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듣건대 이 제독이 이미 도성(都城)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도체찰사 유성룡과 도원수 김명원에게 하유하여 여러 방법으로 근포(跟捕)하여 율(律)에 따라 처단하게 하소서. 이 역적들을 토벌하지 않고 돌아가게 내버려 둔다면 서울이 수복된다 하더라도 분(憤)이 그대로 남을 것이니, 더욱 와신 상담(臥薪嘗膽)의 복수심을 불태워 기어이 복수할 것을 다짐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조정에서 하례를 받아 큰 경사가 있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더구나 대적(大賊)들이 겨우 문밖으로 나갔을 뿐 한수(漢水) 이남은 아직도 적의 소굴이 되어 있는데, 급히 하례를 행하신다면 적들이 이 소식을 듣고 반드시 더욱 비웃으며 업신여길 것입니다. 하례를 정지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성세령의 일은 의논해서 조처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 정원에 분부하기를,
"성세령의 일은 진실로 의논해서 조처하여야 한다. 다만 왜적에게 투항한 자에 대해서는 중국 장수가 이미 죽이지 말라고 선유(宣諭)하였으니, 이처럼 처치하는 것은 부당한 듯하다. 비변사에 일러서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성세령의 일은 신들도 들었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하는데, 떠도는 말이라서 분명히 알기 어렵습니다. 도체찰사 유성룡에게 명하여 자세히 물어 실상을 알아서 간원(諫院)이 아뢴 것에 따라 조처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9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註 120] 방백(方伯) : 관찰사(觀察使).
원문
○司諫院啓曰: "大賊入京, 國勢危急, 無知小民之陷賊附賊者, 不可一一責之以義。 至如宰臣見虜, 不能決一死, 以明君臣之大義, 反以偸生苟活爲念, 搖尾乞憐, 無所不至, 甚者至以關白稱殿下, 不圖爲惡之至於斯也。 無君不道之狀已著。 邦有常刑, 不可一日容於覆載之間。 而時未回自賊中, 故至今未得處置, 輿情齊憤, 礪刃以待。 前僉知成世寧, 自初不出都城, 盛設酒饌, 以迎賊倭, 至受京畿方伯之帖, 得意用事, 少無畏忌。 聞者痛惋, 莫不欲食其肉, 而京賊未退, 尙稽天誅, 爲惡之輩, 莫所懲畏。 若此不已, 君臣之義, 幾乎泯滅。 今聞李提督, 已入都城云。 請下諭都體察使、都元帥, 多般跟捕, 依律處斷。 此賊未討, 任他退還, 京城雖復, 餘憤尙在, 猶當益勵嘗膽, 以期必報, 豈至於臨朝受賀, 有若大慶者然乎? 況大賊纔出門外, 漢水以南, 時爲賊窟, 而遽行賀禮, 則彼賊聞之, 必益笑侮。 請命停陳賀之擧。" 上曰: "依啓。 成世寧事, 當議處。" 仍敎政院曰: "成世寧事, 固當議處矣。 但投降倭賊者, 天將已爲宣諭勿殺, 如是處置, 似爲不當。 言于備邊司議處。" 備邊司回啓曰: "成世寧事, 臣等亦聞之矣。 但或云已死, 往來之言, 難以的知。 令都體察使柳成龍, 窮問得實, 依諫院所啓, 處置。"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9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선조 26년 (1593) 4월 24일
- 대신이 경성 수복을 맞아 이 제독을 치사하라고 청하다
- 대신이 경성 수복을 맞아 하례하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해달라고 청하다
- 사간원이 왜적에게 부역한 자를 처단할 것과 하례를 중지할 것을 아뢰다
- 사헌부가 풍속과 윤기의 확립, 충렬에 대한 위로 등을 청하다
- 성영이 보고한 선릉 등을 봉심한 결과. 경략에게 적의 토벌을 청하는 자문을 올리다
- 예조가 능침의 변고에 대해 3일 조곡하라고 아뢰다
- 대신이 능침의 변고를 맞아 개장 도감을 설치하기를 청하다
- 이조가 도감을 하나만 두라고 아뢰다
- 유성룡 등이 경략의 패문과 왜적을 치자고 쟁변한 내용을 아뢰다
선조실록37권, 선조 26년 4월 24일 무신 3/9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사간원이 왜적에게 부역한 자를 처단할 것과 하례를 중지할 것을 아뢰다
국역
사간원이 아뢰기를,
"왜적이 서울에 들어와 국세(國勢)가 매우 위태로왔을 때에 무지한 백성들 중에 적에게 부역한 자들을 일일이 의(義)로 꾸짖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신으로서 포로가 되어 한 번 죽어 군신의 대의(大義)를 밝히지는 못하고 도리어 목숨을 보전하여 구차하게 살 것만을 생각해서 꼬리를 치며 애처로이 구걸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으며 심한 경우에는 관백(關白)을 전하(殿下)라고 일컬은 자도 있었으니, 악한 짓을 하는 것이 여기에까지 이를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들이 무도하게 임금을 무시한 죄상은 이미 드러났습니다. 나라에 상형(常刑)이 있으니 하루라도 천지 사이에 용납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적중에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지금까지 처치하지 못하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이 분해하여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前) 첨지(僉知) 성세령(成世寧)은 처음부터 도성(都城)을 나가지 않고 있다가 술과 안주를 성대히 마련하고 왜적을 맞이하였으며, 경기 방백(方伯)120) 의 직첩(職帖)을 받고서는 멋대로 용사(用事)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자들은 모두들 원통히 생각하여 그 자의 육신을 먹고 싶어 하나 서울에 있는 적들이 아직 물러나지 않아서 천벌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어 악한 짓을 하는 무리들이 진계되거나 두려워하는 바가 없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간다면 군신간의 의(義)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 듣건대 이 제독이 이미 도성(都城)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도체찰사 유성룡과 도원수 김명원에게 하유하여 여러 방법으로 근포(跟捕)하여 율(律)에 따라 처단하게 하소서. 이 역적들을 토벌하지 않고 돌아가게 내버려 둔다면 서울이 수복된다 하더라도 분(憤)이 그대로 남을 것이니, 더욱 와신 상담(臥薪嘗膽)의 복수심을 불태워 기어이 복수할 것을 다짐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조정에서 하례를 받아 큰 경사가 있는 것처럼 한단 말입니까. 더구나 대적(大賊)들이 겨우 문밖으로 나갔을 뿐 한수(漢水) 이남은 아직도 적의 소굴이 되어 있는데, 급히 하례를 행하신다면 적들이 이 소식을 듣고 반드시 더욱 비웃으며 업신여길 것입니다. 하례를 정지하도록 명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성세령의 일은 의논해서 조처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 정원에 분부하기를,
"성세령의 일은 진실로 의논해서 조처하여야 한다. 다만 왜적에게 투항한 자에 대해서는 중국 장수가 이미 죽이지 말라고 선유(宣諭)하였으니, 이처럼 처치하는 것은 부당한 듯하다. 비변사에 일러서 의논하여 조처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성세령의 일은 신들도 들었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 하는데, 떠도는 말이라서 분명히 알기 어렵습니다. 도체찰사 유성룡에게 명하여 자세히 물어 실상을 알아서 간원(諫院)이 아뢴 것에 따라 조처하게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9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 [註 120] 방백(方伯) : 관찰사(觀察使).
원문
○司諫院啓曰: "大賊入京, 國勢危急, 無知小民之陷賊附賊者, 不可一一責之以義。 至如宰臣見虜, 不能決一死, 以明君臣之大義, 反以偸生苟活爲念, 搖尾乞憐, 無所不至, 甚者至以關白稱殿下, 不圖爲惡之至於斯也。 無君不道之狀已著。 邦有常刑, 不可一日容於覆載之間。 而時未回自賊中, 故至今未得處置, 輿情齊憤, 礪刃以待。 前僉知成世寧, 自初不出都城, 盛設酒饌, 以迎賊倭, 至受京畿方伯之帖, 得意用事, 少無畏忌。 聞者痛惋, 莫不欲食其肉, 而京賊未退, 尙稽天誅, 爲惡之輩, 莫所懲畏。 若此不已, 君臣之義, 幾乎泯滅。 今聞李提督, 已入都城云。 請下諭都體察使、都元帥, 多般跟捕, 依律處斷。 此賊未討, 任他退還, 京城雖復, 餘憤尙在, 猶當益勵嘗膽, 以期必報, 豈至於臨朝受賀, 有若大慶者然乎? 況大賊纔出門外, 漢水以南, 時爲賊窟, 而遽行賀禮, 則彼賊聞之, 必益笑侮。 請命停陳賀之擧。" 上曰: "依啓。 成世寧事, 當議處。" 仍敎政院曰: "成世寧事, 固當議處矣。 但投降倭賊者, 天將已爲宣諭勿殺, 如是處置, 似爲不當。 言于備邊司議處。" 備邊司回啓曰: "成世寧事, 臣等亦聞之矣。 但或云已死, 往來之言, 難以的知。 令都體察使柳成龍, 窮問得實, 依諫院所啓, 處置。"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20책 37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93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왕실-의식(儀式) / 사법-탄핵(彈劾)
원본
선조 26년 (1593) 4월 24일
- 대신이 경성 수복을 맞아 이 제독을 치사하라고 청하다
- 대신이 경성 수복을 맞아 하례하는 의식을 거행하도록 해달라고 청하다
- 사간원이 왜적에게 부역한 자를 처단할 것과 하례를 중지할 것을 아뢰다
- 사헌부가 풍속과 윤기의 확립, 충렬에 대한 위로 등을 청하다
- 성영이 보고한 선릉 등을 봉심한 결과. 경략에게 적의 토벌을 청하는 자문을 올리다
- 예조가 능침의 변고에 대해 3일 조곡하라고 아뢰다
- 대신이 능침의 변고를 맞아 개장 도감을 설치하기를 청하다
- 이조가 도감을 하나만 두라고 아뢰다
- 유성룡 등이 경략의 패문과 왜적을 치자고 쟁변한 내용을 아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