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6권, 선조 26년 3월 7일 임술 1/3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숙녕관에서 이 제독을 만나 왜적과의 강화, 경성 수복 등을 논의하다
국역
상이 이 제독이 의주(義州)에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숙령관(肅寧館)으로 거둥하여 기다리다가 제독이 동헌에 이르자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상이 말하기를,
"황은이 망극하니 먼저 황은에 사례를 하겠소."
하고, 상이 오배(五拜)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또 대인의 덕을 사례한다며 제독에게 서서 받기를 청하니, 제독이 굳이 사양하기를,
"나도 사례하고자 하니, 교배(交拜)함이 좋겠소."
하였다. 상이 자리에 나아가 절하니 제독도 답배(答拜)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양초를 이어대지 못하여 대인으로 하여금 밖에서 오랫동안 노고를 치르게 하였으니, 진 죄가 실로 많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전번에 양초를 이어대지 못하여 군사가 후퇴함으로써 끝내 왜적을 다 섬멸하지 못하였으니, 현왕(賢王)을 뵙기에 무척 부끄럽습니다. 이제 들으니 개성에는 군량이 조금 모아져 있다 하고 수병(水兵)이 또한 오늘 내일 사이에 대마도로 추격, 섬멸하게 될 것이니 적은 군색해지면 강화를 빌 것입니다. 이번 걸음에 나의 군병이 3만여 명에 후속 군병이 또 5만이 올 것이고, 군량도 14만 석이 벌써 운반되어 왔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적추(賊酋)를 다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왕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현왕께서 만약 왕자를 되찾고 싶으시다면 강화하여야 되겠지만 반드시 정벌하시겠다면 마땅히 진격하여 토벌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 중국이 군사를 동원하여 일본 대마도 등지로 침입하여 왜적의 소굴을 쳐부수고 또 첨가병 수십만이 잇달아 나와 집결한다고 한 것은 그것으로 성세(聲勢)를 삼은 것일 뿐,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장관들은 전후로 접견할 때에 이런 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신민이 왜적에 대해서는 만세를 두고라도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이므로 죽기를 다할 뿐, 강화하지 않을 것이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평양 싸움에 진격까지 한 내가 이제 와서 어찌 그들과 강화하려 하겠습니까. 경략께 이 뜻을 간곡히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천위가 우레처럼 등등하니 군사가 만약 일제히 진격한다면 적의 무리가 저절로 분산되고 말 것이고, 강화를 청하는 말도 또한 매우 거짓됩니다. 만약 강화를 한다면 황제의 위엄에 손상이 없지 않을 것이오."
하니, 제독이,
"나의 후속 군사가 오면 마땅히 진격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도로나 전진(戰陣) 사이에 반드시 불편한 일이 있을 것이기에 우려를 견디지 못하겠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귀국의 병장(兵將)으로서 약속을 따르지 않거나 교전하다 먼저 달아나는 자가 있어도 나는 일찍이 곤장을 치거나 벌한 일이 없었습니다만 이 뒤부터는 현왕께 묶어 보내어 처리하시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군사가 겁많고 나약하기 이와 같으니 지금부터는 대인이 일체 군율에 따라 하시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태평한 지가 오래되어 전투에 익숙치 않으나 요사이 귀국의 군병을 보니 역시 싸움을 잘합니다. 전라도의 군사가 마침내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포상하여 인심을 권려하소서."
하였다. 【행주(幸州)에서 승첩을 거둔 일을 가리킨 것이다. 】 상이 말하기를,
"개성의 군량이 겨우 수합되기도 하였으나, 만약 후속 군사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열흘 정도 지체한다면 양식이 고갈될 것이오. 더구나 적은 벌써 공포에 질려 저절로 도망칠 것이 속히 진병하시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략이 나에게 평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오."
하였다. 상이 게첩을 통사(通事)에게 주어서 제독에게 올렸는데, 그 내용에,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은 벌써 다 말하였으나, 그래도 빠뜨린 말이 있을까 염려되어 여기 작은 종이에 기록하여 감히 민망하고 다급한 심정을 전달하는 것이오. 우리 나라가 천지 부모와 같은 황조의 은혜를 입어 악한 적들을 소탕하고 양도(兩都)를 수복하였으니, 우리 나라 군신(君臣)에게 오늘이 다시 있게 된 것은 황제의 힘이 아닌 것이 없소. 그러나 지금의 사세로 말하건대 천병(天兵)이 진격을 한다면 승첩의 형세는 대나무를 쪼개는 것보다 쉬울 것이고, 천병이 후퇴를 한다면 우리 나라의 화(禍)는 지난날보다 심할 것이오. 삼가 속결하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들어 피를 토하며 간곡히 말하겠으니, 노야께서는 잘 계획하시오.
평양이 수복되고 나서 적의 기세가 꺾이어 도망치기에도 바쁠 터인데 그들이 버젓이 버티고서 지키는 체하고 있는 것은 허장 성세를 부려 후미를 방어하려는 계획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대병을 진격을 한다면 싸우지 않고 저절로 물러갈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첫째 이유입니다. 지금 배신(陪臣) 호조 판서 이성중(李誠中)의 장계를 보니, 개성·임진 등지에 운반하여다 쌓아 놓은 쌀이 2만 3천 5백 석, 콩이 1만 3천 석, 벼가 8천 석으로, 1개월 가량은 지탱할 수 있으나, 만약 지구책을 써서 진격하지 않는다면 주둔하고 있는 군병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 나라 군병을 구제하느라 점점 소모될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둘째 이유입니다. 평양·황해의 각 고을은 비축이 곳곳마다 고갈되어 비록 내려 주신 관량(官糧)으로써 공급한다 하더라도 하루 운반한 것이 하루 식량에 부족하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세째 이유입니다.
근일 생포한 왜놈 여신입라(如愼入羅) 등의 공초에 수길(秀吉)이 3월 께에 힘이 팔팔한 신병을 많이 증파하여 반은 서울에서 대항하고 반은 해안 지방을 약탈하겠다고 하였는데, 거짓스럽고 허황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이제 만약 지체하여 날짜를 오래 보낸다면 적들이 반드시 수길과 서로 통하여 온갖 꾀를 짜낼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네째 이유입니다. 적왜를 공격하는 방도는 이로움이 속전에 있으므로 적이 만약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군사를 집결하여 꾀를 써서 저항한다면 다 섬멸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다섯째 이유입니다. 우리 나라의 군사가 해를 넘겨 주둔하여 밖에서 노숙한 지가 오래인데다 지금은 군량도 떨어지고 기운이 빠져 점점 버틸 형세가 없어지고 있으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여섯째 이유입니다.
어떤 이는 봄비가 연일 내리어 도로가 질퍽거리므로 기병이 달리기에 불편하다고 하나 그것은 그렇지 않소. 만일 기병이 험난한 곳을 만나 진군하기 불편하다면 보병이 또한 재주를 발휘할 수 있으니, 정예 보병을 따로 뽑고 우리 나라의 군사로 우익(羽翼)을 삼아 먼저 선두에 가게 하고 나서 대군으로 성원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일곱째 이유입니다. 군사가 둔을 친 지가 벌써 오래고 아울러 굶주린 데다 바야흐로 날씨까지 더워지고 있으니 반드시 전염병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여덟째 이유입니다. 적중에서 도망쳐 돌아온 사람이 다 같이 양식이 다하였다고 말하는데, 이제 만약 군사를 늦추어 진격하지 않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양호(兩湖)로 뛰어들어 양식을 마련할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새 군사를 더 보탠 데다 또 양식까지 얻게 된다면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아홉째 이유입니다. 경종(耕種)해야 할 이 시기에 백성들이 농사를 전폐하고 있으니, 만약 싸움을 오래 끌어 전지가 황폐해 진다면 남아있는 백성들이 앉아서 굶어 죽을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열째 이유입니다.
대저 천병에게는 반드시 승첩할 수 있는 형세가 있고 우리 나라에게는 꼭 멸망당할 위험이 있으니 승첩할 수 있는 형세를 가지고 멸망당할 이 위험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의 중흥의 희망이 거의 이루어지려다가 다시 무너질 뿐만 아니라 황상(皇上)께서 작은 나라를 사랑하고 멸망하는 나라를 흥기시키려는 어짊과 흉포한 무리를 제거하려는 의리가 이루어지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노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여삐 여겨주시오. 부끄럽고 송구하여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제독이 말하기를,
"군사를 씀에는 방도가 있어야 백전 백승하게 됩니다. 후속 군병이 온 후에 진(陣) 넷을 결성하여 하나는 벽제, 하나는 영서(迎曙), 하나는 송림(松林), 【반송(盤松)을 가리킨다. 】 하나는 양주(楊州)에 주둔시키고 수병(水兵)은 한강으로 해서 과천(果川)으로 가서 주둔하게 한다면 적이 어느 곳으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황제의 명을 받든 만큼, 이 적들을 소탕해야만 복명(復命)할 것입니다. 내 나이 마흔 다섯이지만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하니 나의 마음이 현왕의 마음보다 더 절실합니다."
하였다. 자리를 파할 무렵 상이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존망이 모두 대인에게 달렸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내가 마음을 다하는 줄은 배신들이 알 것입니다."
하였다.
원문
○壬戌/上聞李提督來自義州, 幸肅寧館以候之, 提督至東軒, 更衣而出。 上曰: "皇恩罔極, 請先謝皇恩。" 上遂五拜三叩頭。 又請謝大人之德, 請大人立受, 提督固辭曰: "吾亦欲謝, 交拜爲可。" 上就席而拜. 提督亦答拜。 上曰: "小邦芻糧不繼, 使大人久勞于外, 負罪實多矣。" 提督曰: "前以芻糧不繼, 退師, 迄未盡殲倭賊, 見賢王多愧。 今聞開城糧稍集, 沙兵, 亦今明日當追勦對馬島, 賊窘乞和。 今行吾兵三萬有餘, 繼兵又且五萬, 軍糧十四萬石, 亦已運到, 今日必能盡殲賊酋, 願賢王放心。 賢王若欲還王子, 則當與之和, 若欲必征, 則當進討。" 【時, 天朝聲言發兵, 入日本 對馬島等地, 擣倭巢穴, 且添兵數十萬, 陸續來集, 以爲聲勢而已, 實無是事。 天朝將官, 前後接見, 多言此事云矣。】 上曰: "小邦臣民, 於倭賊, 有萬世必報之讐, 抵死而已, 不可與和。" 提督曰: "平壤之戰, 俺已進攻, 今豈欲與之請和? 經略前, 當懇此意。" 上曰: "天威震疊, 兵若一進, 則賊徒自當奔潰, 乞和之言, 亦甚詐譎。 若與之和, 不無皇威之虧損。" 提督曰: "俺之後軍來, 則當進攻耳。" 上曰: "道路戰陣之間, 必致愆和, 不勝憂慮。" 提督曰: "本國兵將, 不遵約束, 交戰必先走, 吾不曾一棍一誅, 自此以後, 當縳送賢王處之矣。" 上曰: "小邦之人, 怯懦如此, 自今以後, 願大人, 一依軍律。" 提督曰: "昇平日久, 不閑戰鬪, 近觀貴國之兵, 亦頗善於戰。 全羅之軍. 終致大捷, 願加褒賞, 以勸人心。" 【指幸州戰捷事。】 上曰: "開城糧餉, 僅得收合, 若待後兵, 淹滯旬日, 則糧食必竭。 況賊已震怖, 自當遁去, 請速進兵。" 提督曰: "俺非不欲爲, 但經略令我往平壤留待云。" 上, 以揭帖, 授通事呈提督曰: "悶迫之情, 已盡陳布, 猶恐言語踈漏, 故玆錄小紙, 敢達悶急之情。 小邦荷皇朝天地父母之恩, 勦蕩兇醜, 收復兩都, 小邦君臣再有今日, 無非帝力。 但以目今事勢言之, 天兵進, 則勝捷之勢, 易於破竹, 天兵退, 則我國之禍, 甚於疇曩。 謹以速進急擊之利, 瀝血陳懇, 惟老爺圖之。 平壤旣復, 賊已氣奪, 遁逃不暇, 其所以爲徊徨拒守之狀者, 不過虛張氣勢, 以爲捍後之計。 如以大兵臨之, 則不戰自遁, 此不可不速進, 一也。 今見陪臣戶曹判書李誠中狀啓, 開城、臨津等處, 搬峙米二萬三千五百石, 豆一萬三千石, 稻八千石, 可句月餘之支, 而若持久不進, 則俵給留屯之兵, 接濟我國之軍, 漸至消耗, 不可不速進, 二也。 平安、黃海各邑, 則所儲在在空竭, 雖以欽賜官糧灌注, 而一日所搬, 不足以供一日之食, 不可不速進, 三也。 近日活捉倭子如愼八羅等所供, 秀吉擬於三月間, 多添力生新兵, 一半拒敵京城, 一半分搶沿海地方云, 詐謊虛喝之言, 雖不可盡信, 而今若停宿日久, 則彼賊必與秀吉相通往來. 爲謀百端, 此不可不速進, 四也。 攻倭之道, 利於速戰, 賊若叫集諸處之兵, 作謀抵敵, 則難以勦滅, 此不可不速進, 五也。 我國之兵, 經年屯駐, 暴露已久, 及今糧缺氣疲, 漸無掎角之勢, 此不可不速進, 六也。 或者謂方春連雨, 道路泥濕, 騎兵不便馳驟云, 此則不然。 如遇艱險, 不便進兵, 亦有步兵可以効技, 另選精銳步卒, 翼以我國之軍, 先着在前, 而以大軍爲聲援, 則蔑不濟矣。 此不可不速進, 七也。 師屯旣久, 兼且飢餓, 方春天熱, 必有疾疫, 此不可不速進, 八也。 賊中回走人, 皆言糧盡, 今若緩師不擊, 則必闌入兩湖, 以爲就糧之計。 旣添新兵, 又得糧食, 則恐難圖也, 此不可不速進, 九也。 當此耕種時分, 民廢東作, 若師久不解, 田野荒閑, 則孑遺之民, 坐見塡壑, 此不可不速進, 十也。 大抵天兵有必勝之勢, 小邦有必亡之危, 以必勝之勢, 不救必亡之危, 則非但小邦重恢之望, 垂成而復壞, 皇上字小興滅之仁, 殄暴除兇之義, 恐有所未竟也。 惟老爺, 終始哀憐焉。 慙靦悚懼, 辭不能盡。" 提督曰: "用兵有道, 當百戰百勝。 待後兵之來, 當結爲四陣, 一碧蹄, 一迎曙, 一松林, 【指盤松。】 一楊州, 沙兵, 自漢江屯住果川, 則賊何處得遁。 俺受皇帝之命, 掃蕩此賊後, 當復命。 吾年四十五, 頭鬚爲白, 我心更切於賢王。" 上臨罷, 就前曰: "小邦存亡, 皆在於大人。" 提督曰: "俺, 盡心爲之, 陪臣亦知之矣。"
선조실록36권, 선조 26년 3월 7일 임술 1/3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숙녕관에서 이 제독을 만나 왜적과의 강화, 경성 수복 등을 논의하다
국역
상이 이 제독이 의주(義州)에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숙령관(肅寧館)으로 거둥하여 기다리다가 제독이 동헌에 이르자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상이 말하기를,
"황은이 망극하니 먼저 황은에 사례를 하겠소."
하고, 상이 오배(五拜)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또 대인의 덕을 사례한다며 제독에게 서서 받기를 청하니, 제독이 굳이 사양하기를,
"나도 사례하고자 하니, 교배(交拜)함이 좋겠소."
하였다. 상이 자리에 나아가 절하니 제독도 답배(答拜)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양초를 이어대지 못하여 대인으로 하여금 밖에서 오랫동안 노고를 치르게 하였으니, 진 죄가 실로 많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전번에 양초를 이어대지 못하여 군사가 후퇴함으로써 끝내 왜적을 다 섬멸하지 못하였으니, 현왕(賢王)을 뵙기에 무척 부끄럽습니다. 이제 들으니 개성에는 군량이 조금 모아져 있다 하고 수병(水兵)이 또한 오늘 내일 사이에 대마도로 추격, 섬멸하게 될 것이니 적은 군색해지면 강화를 빌 것입니다. 이번 걸음에 나의 군병이 3만여 명에 후속 군병이 또 5만이 올 것이고, 군량도 14만 석이 벌써 운반되어 왔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적추(賊酋)를 다 섬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왕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현왕께서 만약 왕자를 되찾고 싶으시다면 강화하여야 되겠지만 반드시 정벌하시겠다면 마땅히 진격하여 토벌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 중국이 군사를 동원하여 일본 대마도 등지로 침입하여 왜적의 소굴을 쳐부수고 또 첨가병 수십만이 잇달아 나와 집결한다고 한 것은 그것으로 성세(聲勢)를 삼은 것일 뿐,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장관들은 전후로 접견할 때에 이런 말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신민이 왜적에 대해서는 만세를 두고라도 반드시 갚아야 할 원수이므로 죽기를 다할 뿐, 강화하지 않을 것이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평양 싸움에 진격까지 한 내가 이제 와서 어찌 그들과 강화하려 하겠습니까. 경략께 이 뜻을 간곡히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천위가 우레처럼 등등하니 군사가 만약 일제히 진격한다면 적의 무리가 저절로 분산되고 말 것이고, 강화를 청하는 말도 또한 매우 거짓됩니다. 만약 강화를 한다면 황제의 위엄에 손상이 없지 않을 것이오."
하니, 제독이,
"나의 후속 군사가 오면 마땅히 진격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도로나 전진(戰陣) 사이에 반드시 불편한 일이 있을 것이기에 우려를 견디지 못하겠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귀국의 병장(兵將)으로서 약속을 따르지 않거나 교전하다 먼저 달아나는 자가 있어도 나는 일찍이 곤장을 치거나 벌한 일이 없었습니다만 이 뒤부터는 현왕께 묶어 보내어 처리하시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군사가 겁많고 나약하기 이와 같으니 지금부터는 대인이 일체 군율에 따라 하시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태평한 지가 오래되어 전투에 익숙치 않으나 요사이 귀국의 군병을 보니 역시 싸움을 잘합니다. 전라도의 군사가 마침내 큰 승리를 거두었으니, 포상하여 인심을 권려하소서."
하였다. 【행주(幸州)에서 승첩을 거둔 일을 가리킨 것이다. 】 상이 말하기를,
"개성의 군량이 겨우 수합되기도 하였으나, 만약 후속 군사가 오기를 기다리느라 열흘 정도 지체한다면 양식이 고갈될 것이오. 더구나 적은 벌써 공포에 질려 저절로 도망칠 것이 속히 진병하시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내가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경략이 나에게 평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오."
하였다. 상이 게첩을 통사(通事)에게 주어서 제독에게 올렸는데, 그 내용에,
"민망하고 절박한 심정은 벌써 다 말하였으나, 그래도 빠뜨린 말이 있을까 염려되어 여기 작은 종이에 기록하여 감히 민망하고 다급한 심정을 전달하는 것이오. 우리 나라가 천지 부모와 같은 황조의 은혜를 입어 악한 적들을 소탕하고 양도(兩都)를 수복하였으니, 우리 나라 군신(君臣)에게 오늘이 다시 있게 된 것은 황제의 힘이 아닌 것이 없소. 그러나 지금의 사세로 말하건대 천병(天兵)이 진격을 한다면 승첩의 형세는 대나무를 쪼개는 것보다 쉬울 것이고, 천병이 후퇴를 한다면 우리 나라의 화(禍)는 지난날보다 심할 것이오. 삼가 속결하는 것이 이롭다는 사실을 들어 피를 토하며 간곡히 말하겠으니, 노야께서는 잘 계획하시오.
평양이 수복되고 나서 적의 기세가 꺾이어 도망치기에도 바쁠 터인데 그들이 버젓이 버티고서 지키는 체하고 있는 것은 허장 성세를 부려 후미를 방어하려는 계획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대병을 진격을 한다면 싸우지 않고 저절로 물러갈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첫째 이유입니다. 지금 배신(陪臣) 호조 판서 이성중(李誠中)의 장계를 보니, 개성·임진 등지에 운반하여다 쌓아 놓은 쌀이 2만 3천 5백 석, 콩이 1만 3천 석, 벼가 8천 석으로, 1개월 가량은 지탱할 수 있으나, 만약 지구책을 써서 진격하지 않는다면 주둔하고 있는 군병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 나라 군병을 구제하느라 점점 소모될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둘째 이유입니다. 평양·황해의 각 고을은 비축이 곳곳마다 고갈되어 비록 내려 주신 관량(官糧)으로써 공급한다 하더라도 하루 운반한 것이 하루 식량에 부족하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세째 이유입니다.
근일 생포한 왜놈 여신입라(如愼入羅) 등의 공초에 수길(秀吉)이 3월 께에 힘이 팔팔한 신병을 많이 증파하여 반은 서울에서 대항하고 반은 해안 지방을 약탈하겠다고 하였는데, 거짓스럽고 허황된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이제 만약 지체하여 날짜를 오래 보낸다면 적들이 반드시 수길과 서로 통하여 온갖 꾀를 짜낼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네째 이유입니다. 적왜를 공격하는 방도는 이로움이 속전에 있으므로 적이 만약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군사를 집결하여 꾀를 써서 저항한다면 다 섬멸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다섯째 이유입니다. 우리 나라의 군사가 해를 넘겨 주둔하여 밖에서 노숙한 지가 오래인데다 지금은 군량도 떨어지고 기운이 빠져 점점 버틸 형세가 없어지고 있으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여섯째 이유입니다.
어떤 이는 봄비가 연일 내리어 도로가 질퍽거리므로 기병이 달리기에 불편하다고 하나 그것은 그렇지 않소. 만일 기병이 험난한 곳을 만나 진군하기 불편하다면 보병이 또한 재주를 발휘할 수 있으니, 정예 보병을 따로 뽑고 우리 나라의 군사로 우익(羽翼)을 삼아 먼저 선두에 가게 하고 나서 대군으로 성원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일곱째 이유입니다. 군사가 둔을 친 지가 벌써 오래고 아울러 굶주린 데다 바야흐로 날씨까지 더워지고 있으니 반드시 전염병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여덟째 이유입니다. 적중에서 도망쳐 돌아온 사람이 다 같이 양식이 다하였다고 말하는데, 이제 만약 군사를 늦추어 진격하지 않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양호(兩湖)로 뛰어들어 양식을 마련할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새 군사를 더 보탠 데다 또 양식까지 얻게 된다면 도모하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아홉째 이유입니다. 경종(耕種)해야 할 이 시기에 백성들이 농사를 전폐하고 있으니, 만약 싸움을 오래 끌어 전지가 황폐해 진다면 남아있는 백성들이 앉아서 굶어 죽을 것이니, 이것이 빨리 진격하지 않을 수 없는 열째 이유입니다.
대저 천병에게는 반드시 승첩할 수 있는 형세가 있고 우리 나라에게는 꼭 멸망당할 위험이 있으니 승첩할 수 있는 형세를 가지고 멸망당할 이 위험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의 중흥의 희망이 거의 이루어지려다가 다시 무너질 뿐만 아니라 황상(皇上)께서 작은 나라를 사랑하고 멸망하는 나라를 흥기시키려는 어짊과 흉포한 무리를 제거하려는 의리가 이루어지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노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여삐 여겨주시오. 부끄럽고 송구하여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습니다."
하였는데, 제독이 말하기를,
"군사를 씀에는 방도가 있어야 백전 백승하게 됩니다. 후속 군병이 온 후에 진(陣) 넷을 결성하여 하나는 벽제, 하나는 영서(迎曙), 하나는 송림(松林), 【반송(盤松)을 가리킨다. 】 하나는 양주(楊州)에 주둔시키고 수병(水兵)은 한강으로 해서 과천(果川)으로 가서 주둔하게 한다면 적이 어느 곳으로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황제의 명을 받든 만큼, 이 적들을 소탕해야만 복명(復命)할 것입니다. 내 나이 마흔 다섯이지만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하니 나의 마음이 현왕의 마음보다 더 절실합니다."
하였다. 자리를 파할 무렵 상이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존망이 모두 대인에게 달렸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내가 마음을 다하는 줄은 배신들이 알 것입니다."
하였다.
원문
○壬戌/上聞李提督來自義州, 幸肅寧館以候之, 提督至東軒, 更衣而出。 上曰: "皇恩罔極, 請先謝皇恩。" 上遂五拜三叩頭。 又請謝大人之德, 請大人立受, 提督固辭曰: "吾亦欲謝, 交拜爲可。" 上就席而拜. 提督亦答拜。 上曰: "小邦芻糧不繼, 使大人久勞于外, 負罪實多矣。" 提督曰: "前以芻糧不繼, 退師, 迄未盡殲倭賊, 見賢王多愧。 今聞開城糧稍集, 沙兵, 亦今明日當追勦對馬島, 賊窘乞和。 今行吾兵三萬有餘, 繼兵又且五萬, 軍糧十四萬石, 亦已運到, 今日必能盡殲賊酋, 願賢王放心。 賢王若欲還王子, 則當與之和, 若欲必征, 則當進討。" 【時, 天朝聲言發兵, 入日本 對馬島等地, 擣倭巢穴, 且添兵數十萬, 陸續來集, 以爲聲勢而已, 實無是事。 天朝將官, 前後接見, 多言此事云矣。】 上曰: "小邦臣民, 於倭賊, 有萬世必報之讐, 抵死而已, 不可與和。" 提督曰: "平壤之戰, 俺已進攻, 今豈欲與之請和? 經略前, 當懇此意。" 上曰: "天威震疊, 兵若一進, 則賊徒自當奔潰, 乞和之言, 亦甚詐譎。 若與之和, 不無皇威之虧損。" 提督曰: "俺之後軍來, 則當進攻耳。" 上曰: "道路戰陣之間, 必致愆和, 不勝憂慮。" 提督曰: "本國兵將, 不遵約束, 交戰必先走, 吾不曾一棍一誅, 自此以後, 當縳送賢王處之矣。" 上曰: "小邦之人, 怯懦如此, 自今以後, 願大人, 一依軍律。" 提督曰: "昇平日久, 不閑戰鬪, 近觀貴國之兵, 亦頗善於戰。 全羅之軍. 終致大捷, 願加褒賞, 以勸人心。" 【指幸州戰捷事。】 上曰: "開城糧餉, 僅得收合, 若待後兵, 淹滯旬日, 則糧食必竭。 況賊已震怖, 自當遁去, 請速進兵。" 提督曰: "俺非不欲爲, 但經略令我往平壤留待云。" 上, 以揭帖, 授通事呈提督曰: "悶迫之情, 已盡陳布, 猶恐言語踈漏, 故玆錄小紙, 敢達悶急之情。 小邦荷皇朝天地父母之恩, 勦蕩兇醜, 收復兩都, 小邦君臣再有今日, 無非帝力。 但以目今事勢言之, 天兵進, 則勝捷之勢, 易於破竹, 天兵退, 則我國之禍, 甚於疇曩。 謹以速進急擊之利, 瀝血陳懇, 惟老爺圖之。 平壤旣復, 賊已氣奪, 遁逃不暇, 其所以爲徊徨拒守之狀者, 不過虛張氣勢, 以爲捍後之計。 如以大兵臨之, 則不戰自遁, 此不可不速進, 一也。 今見陪臣戶曹判書李誠中狀啓, 開城、臨津等處, 搬峙米二萬三千五百石, 豆一萬三千石, 稻八千石, 可句月餘之支, 而若持久不進, 則俵給留屯之兵, 接濟我國之軍, 漸至消耗, 不可不速進, 二也。 平安、黃海各邑, 則所儲在在空竭, 雖以欽賜官糧灌注, 而一日所搬, 不足以供一日之食, 不可不速進, 三也。 近日活捉倭子如愼八羅等所供, 秀吉擬於三月間, 多添力生新兵, 一半拒敵京城, 一半分搶沿海地方云, 詐謊虛喝之言, 雖不可盡信, 而今若停宿日久, 則彼賊必與秀吉相通往來. 爲謀百端, 此不可不速進, 四也。 攻倭之道, 利於速戰, 賊若叫集諸處之兵, 作謀抵敵, 則難以勦滅, 此不可不速進, 五也。 我國之兵, 經年屯駐, 暴露已久, 及今糧缺氣疲, 漸無掎角之勢, 此不可不速進, 六也。 或者謂方春連雨, 道路泥濕, 騎兵不便馳驟云, 此則不然。 如遇艱險, 不便進兵, 亦有步兵可以効技, 另選精銳步卒, 翼以我國之軍, 先着在前, 而以大軍爲聲援, 則蔑不濟矣。 此不可不速進, 七也。 師屯旣久, 兼且飢餓, 方春天熱, 必有疾疫, 此不可不速進, 八也。 賊中回走人, 皆言糧盡, 今若緩師不擊, 則必闌入兩湖, 以爲就糧之計。 旣添新兵, 又得糧食, 則恐難圖也, 此不可不速進, 九也。 當此耕種時分, 民廢東作, 若師久不解, 田野荒閑, 則孑遺之民, 坐見塡壑, 此不可不速進, 十也。 大抵天兵有必勝之勢, 小邦有必亡之危, 以必勝之勢, 不救必亡之危, 則非但小邦重恢之望, 垂成而復壞, 皇上字小興滅之仁, 殄暴除兇之義, 恐有所未竟也。 惟老爺, 終始哀憐焉。 慙靦悚懼, 辭不能盡。" 提督曰: "用兵有道, 當百戰百勝。 待後兵之來, 當結爲四陣, 一碧蹄, 一迎曙, 一松林, 【指盤松。】 一楊州, 沙兵, 自漢江屯住果川, 則賊何處得遁。 俺受皇帝之命, 掃蕩此賊後, 當復命。 吾年四十五, 頭鬚爲白, 我心更切於賢王。" 上臨罷, 就前曰: "小邦存亡, 皆在於大人。" 提督曰: "俺, 盡心爲之, 陪臣亦知之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