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9일 갑진 15/16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유성룡이 한강 이남에 왜적이 출몰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국역
도체찰사 풍원 부원군 유성룡이 치계하였다.
"이달 12일 오시(午時)에 이빈(李薲)이 치보(馳報)하기를 ‘경성 안의 왜적이 많이들 양천(陽川)으로 나가 권율(權慄)의 진을 침범하여 지금 한창 접전하고 있다.’ 하기에, 신이 임진에 나아가 각 진 및 의병들에게 명하여 급속히 달려가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13일 새벽이 이빈이 또 치보하기를, ‘본진 소속의 군인이 권율의 진으로부터 와서 하는 말이 「왜적이 3위(衛)로 나누어 나오는데 각각 홍·백·적색의 3색기를 가졌고 포위하여 접전한 지 한참 만에 3위가 모두 아군에 패배하여 죽은 자가 매우 많고 결국에는 도망갔다. 」고 했다.’ 하였습니다. 대개 근일 적병은 평양에서 패해 돌아온 뒤에는 감히 출입하지 못하다가 중국군이 오래도록 전진하지 않으니 또 생기를 찾고 점차 출몰하는데, 한강 이남에 그 수가 더욱 많습니다. 벽제에서 불리하게 된 뒤로는 중국 장수의 의기가 날로 퇴축(退縮)하여 매양 날씨가 맑고 길이 마르면 전진하겠다는 핑계만 대고 오히려 경성의 적이 많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마침 역관 오정복(吳廷福)이 전일 강화로부터 와서 중국군 1인과 함께 가서 정탐하고 그저께 도착하여 중국 장수를 들어가 보고는 도성 안에 있는 왜적이 3∼4만이라고 말하고, 또 ‘배신(陪臣)들이 나에게 왜적이 적다고 말하도록 했으나 지금 사실대로 아뢰니 마땅히 큰 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국 장수는 그 말을 깊이 믿고서 진군할 계획을 다시 정지하고, 정복을 곁에 머물게 하여 죄를 받지 않게 한다고 하니, 정상이 매우 망측합니다."
원문
○都體察使豐原府院君 柳成龍馳啓曰: "本月十二日午時, 李薲馳報: ‘京中之賊, 多出陽川, 犯權慄之陣, 時方接戰。’云。 臣前到臨津, 令各陣及義兵, 急速馳救。 十三日曉頭, 李薲又爲馳報: ‘陣屬軍人, 回自權慄陣來言: 「倭賊分三衛出來, 各持紅白黑三色旗, 圍抱接戰良久, 三衛皆爲我軍所敗, 死者甚多, 竟爲遁回。」’ 云矣。 大槪近日賊兵, 自平壤敗歸之後, 不敢出入, 而天兵久不前進, 賊又生氣, 漸次出沒, 漢江以南, 其數尤多。 自碧蹄不利之後, 天將之意, 一向退縮, 每委以天晴路乾則當進, 而猶疑京賊之多。 適有譯官吳廷福, 前自江華來, 與天兵一人, 同往哨探, 昨昨來到, 入見天將, 言賊兵之在城中者三四萬, 且言: ‘陪臣等, 使我言賊少, 而今以實報, 當得大罪。’ 天將深信其說, 更停進兵之計, 且留廷福在側, 使不被罪云, 情狀極爲叵測矣。"
선조 26년 (1593) 2월 19일
- 상이 안주에 거하다
- 안주 목사 임중량이 전공을 세우자 그의 사위 노몽지를 전옥서 봉사로 삼다
- 각 고을에 권농하게 하라고 전교하다
- 소 잡는 일을 금지하고 지공도 하지 말도록 하교하다
- 간원이 군량 운송에 승군을 동원하는 일과 심신겸에 대한 가자의 개정을 청하다
- 숙천부로 행행하다
- 운암원에서 주정하다
- 노상에서 이 제독이 탄핵을 받았다는 보고를 듣고 평양 수복 자문을 올리기로 하다
- 정원이 영유로 진주하는 일을 미루기를 청하다
- 비변사가 중국군에게 계속 진격하라는 뜻을 개진하라고 청하다
- 윤두수가 이 제독에게 회군하지 말기를 청한 일을 치계하다
- 운암원에서 이덕형 등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무기, 군량, 병력 등을 논의하다
- 비변사가 군량이 공급되지 않아 중국 장수가 화를 낸다며 조치를 청하다
- 강원 감사 강신이 원주의 왜적이 분탕질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 유성룡이 한강 이남에 왜적이 출몰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 조존성을 봉교로, 신영을 예문관 검열로 삼다
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9일 갑진 15/16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유성룡이 한강 이남에 왜적이 출몰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국역
도체찰사 풍원 부원군 유성룡이 치계하였다.
"이달 12일 오시(午時)에 이빈(李薲)이 치보(馳報)하기를 ‘경성 안의 왜적이 많이들 양천(陽川)으로 나가 권율(權慄)의 진을 침범하여 지금 한창 접전하고 있다.’ 하기에, 신이 임진에 나아가 각 진 및 의병들에게 명하여 급속히 달려가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13일 새벽이 이빈이 또 치보하기를, ‘본진 소속의 군인이 권율의 진으로부터 와서 하는 말이 「왜적이 3위(衛)로 나누어 나오는데 각각 홍·백·적색의 3색기를 가졌고 포위하여 접전한 지 한참 만에 3위가 모두 아군에 패배하여 죽은 자가 매우 많고 결국에는 도망갔다. 」고 했다.’ 하였습니다. 대개 근일 적병은 평양에서 패해 돌아온 뒤에는 감히 출입하지 못하다가 중국군이 오래도록 전진하지 않으니 또 생기를 찾고 점차 출몰하는데, 한강 이남에 그 수가 더욱 많습니다. 벽제에서 불리하게 된 뒤로는 중국 장수의 의기가 날로 퇴축(退縮)하여 매양 날씨가 맑고 길이 마르면 전진하겠다는 핑계만 대고 오히려 경성의 적이 많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마침 역관 오정복(吳廷福)이 전일 강화로부터 와서 중국군 1인과 함께 가서 정탐하고 그저께 도착하여 중국 장수를 들어가 보고는 도성 안에 있는 왜적이 3∼4만이라고 말하고, 또 ‘배신(陪臣)들이 나에게 왜적이 적다고 말하도록 했으나 지금 사실대로 아뢰니 마땅히 큰 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중국 장수는 그 말을 깊이 믿고서 진군할 계획을 다시 정지하고, 정복을 곁에 머물게 하여 죄를 받지 않게 한다고 하니, 정상이 매우 망측합니다."
원문
○都體察使豐原府院君 柳成龍馳啓曰: "本月十二日午時, 李薲馳報: ‘京中之賊, 多出陽川, 犯權慄之陣, 時方接戰。’云。 臣前到臨津, 令各陣及義兵, 急速馳救。 十三日曉頭, 李薲又爲馳報: ‘陣屬軍人, 回自權慄陣來言: 「倭賊分三衛出來, 各持紅白黑三色旗, 圍抱接戰良久, 三衛皆爲我軍所敗, 死者甚多, 竟爲遁回。」’ 云矣。 大槪近日賊兵, 自平壤敗歸之後, 不敢出入, 而天兵久不前進, 賊又生氣, 漸次出沒, 漢江以南, 其數尤多。 自碧蹄不利之後, 天將之意, 一向退縮, 每委以天晴路乾則當進, 而猶疑京賊之多。 適有譯官吳廷福, 前自江華來, 與天兵一人, 同往哨探, 昨昨來到, 入見天將, 言賊兵之在城中者三四萬, 且言: ‘陪臣等, 使我言賊少, 而今以實報, 當得大罪。’ 天將深信其說, 更停進兵之計, 且留廷福在側, 使不被罪云, 情狀極爲叵測矣。"
원본
선조 26년 (1593) 2월 19일
- 상이 안주에 거하다
- 안주 목사 임중량이 전공을 세우자 그의 사위 노몽지를 전옥서 봉사로 삼다
- 각 고을에 권농하게 하라고 전교하다
- 소 잡는 일을 금지하고 지공도 하지 말도록 하교하다
- 간원이 군량 운송에 승군을 동원하는 일과 심신겸에 대한 가자의 개정을 청하다
- 숙천부로 행행하다
- 운암원에서 주정하다
- 노상에서 이 제독이 탄핵을 받았다는 보고를 듣고 평양 수복 자문을 올리기로 하다
- 정원이 영유로 진주하는 일을 미루기를 청하다
- 비변사가 중국군에게 계속 진격하라는 뜻을 개진하라고 청하다
- 윤두수가 이 제독에게 회군하지 말기를 청한 일을 치계하다
- 운암원에서 이덕형 등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무기, 군량, 병력 등을 논의하다
- 비변사가 군량이 공급되지 않아 중국 장수가 화를 낸다며 조치를 청하다
- 강원 감사 강신이 원주의 왜적이 분탕질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 유성룡이 한강 이남에 왜적이 출몰하고 있다고 치계하다
- 조존성을 봉교로, 신영을 예문관 검열로 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