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7일 임인 11/16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병조 판서 이항복 등을 인견하여 이여송이 평양으로 물러난 일 등을 논의하다
국역
포시(晡時)에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 병조 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니 우부승지 심우승(沈友勝)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제독이 평양으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근래 말먹이 콩은 이미 떨어졌으나 군량은 그렇게 부족하지 않습니다. 신이 지난번 윤근수(尹根壽)의 서장을 보니 송 경략(宋經略)이 군사를 물리도록 했기 때문에 평양으로 와서 주둔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렇게 된다면 비단 우리 나라의 일만 어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중원이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였다가 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중도에 갑자기 중단하니, 아이들 장난과 같을 뿐이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대군이 임진(臨津)에 다다라 이틀간 먹이지 못해 죽은 말이 무수하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말이 굶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말에 돌림병이 크게 성했다고도 한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양 중군(楊中軍)의 말에도 또한 마초가 부족하여 우선 물러왔다고 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일 총병을 만날 때 말로 전달하게 되면 빠뜨리는 것이 있을까 걱정이 되니 글로 써서 보이기를 ‘전쟁이란 대세일 뿐이다. 비록 많은 적이 주둔하고 있더라도 중국군이 만약 평양에서의 위세로 승승 장구하여 곧바로 경성을 공격했다면 왜적은 반드시 도망가느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병(兵)은 신속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했으니, 용병(用兵)의 도는 신속해야지 늦추어서는 안 된다. 만약 군사를 주둔시키고 진격하지 않는다면 북적이 또한 간사한 계략을 내어 서로 힘을 합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중국군이 대대적으로 함께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청컨대 포수 1천여 명을 빌려주어 우리 군사와 힘을 합쳐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할 것이다. 경들이 문장을 지어 소첩(小帖)을 만들어 올리면 내가 소매 속에 넣었다가 보여주겠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상이 하교가 아주 훌륭하십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도원수는 어찌하여 사람을 시켜 적중을 정탐케 하지 않는가? 만약 정탐한다면 적의 정세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의 숫자가 많고 적은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또 상이 이르기를,
"비록 이곳에서 자원자를 시켜 가서 정탐하게 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옛사람은 반드시 간첩을 행하는 것이 있었다. 정탐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 끝내 하지 않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들으니 경성에서 정탐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부질없이 유언 비어만 전하므로 감히 다 번거롭게 진달하지 못한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파발의 말을 들으니 경성에는 왜적 4만이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믿을 만한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오늘 조인징(趙仁徵)이 문서를 가지고 왔기에 소신이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사청(射廳)에서 남산에 이르기까지 큰 진(陣)이 있고, 묵사동(墨寺洞)·장흥고동(長興庫洞) 등지에도 네 개의 진이 있고 용산에도 역시 한 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인징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인징은 백의 종군(白衣從軍)하여 대군 가운데 있었으니 필시 경성에서 정탐하고 왔을 것입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지난번 평양 승첩시의 자문에서 극구 칭찬하지 않아서, 중국 장수가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내심 불쾌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자문에 대해서는 비록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나 지난번의 자문을 새겨 보면 매우 칭찬한 것 같았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전일에 보낸 가라말[玄馬]을 보고 제독이 매우 기뻐하여 뜰 아래 내려와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그 사람을 보니 기백이 많아서 용병술(用兵術)은 혹 칭찬할 만하더라도 옛사람에 비교할 수는 없을 듯싶다. 요즈음의 일 처리를 보건대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평양을 수복하자마자 곧바로 말을 요구하니 그래서 되겠는가. 그가 탔던 말이 총알을 맞았다고 하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또 평양을 탈환한 뒤에 북적이 배후에 있는 것도 걱정하지 않고 군사를 남겨 두지 않은 채 전군으로 곧바로 송경(松京)으로 달려갔으니 용병을 잘 하는 자라면 어찌 이같이 하겠는가. 또 논공(論功)이 공평하지 못하였다. 장세작(張世爵)이 철령위(鐵嶺衛) 사람이어서 세작을 수공(首功)으로 하고 남군(南軍)을 하등에 두었으니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중원의 전마(戰馬)가 죽은 것이 많으니 우리 나라의 목장마를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생각 역시 좋다. 그런데 목장마가 넉넉하지 않은 것이 걱정이고, 또한 전쟁터에서 쓸모가 없을까 두렵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중원에서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와서 우리 나라를 구원하는데 만약 힘을 다해 접대하지 않아 저들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불쾌한 생각을 갖게 한다면 대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제독이 만약 오거든 순안(順安)에 진주(進駐)하셨다가 가셔서 만나보시고 간곡한 뜻을 보이심이 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성을 정탐하는 일은 내가 이미 모두 말하였다. 경성 안 왜적의 곡식 저장소를 어찌 계책을 세워 불태울 수 없겠는가? 옛사람도 ‘중한 상 아래에는 반드시 용감하게 죽는 군사가 있다.’ 했으니 지금도 만약 사람을 중한 상으로 모집한다면 어찌 자원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소신이 동궁을 모시고 있을 때에 서리(胥吏) 강득운(姜得云)이란 자가 독약을 음식에 넣어 적장을 죽이고 적의 군량을 불태우는 일로 자원했었으나 끝내 실효가 없었으니 그 일이 쉽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고, 항복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인심이 교사(巧詐)하여 중한 상을 주더라도 필시 응모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원의 급사중(給事中)이 기록해 놓은 것을 보니 ‘평양에서 배를 타고 가면 곧바로 중원에 도달할 수 있으니 만약 평양을 평정하고 지키면 중국은 걱정이 없을 것이다.’고 했다. 지금 황해·경기 등 도에 모두 수로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 요양(遼陽)·계주(薊州)에 이르러 천진(天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내용을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려고 하나 우리 나라가 중국을 협박하느라고 그런다 할까 두렵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평양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용천(龍川)·의주(義州)로부터 연해 여러 곳의 수로에 이르기까지 상국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또 적이 비축하고 있는 양곡이 얼마나 되는가? 옛사람 중에도 적의 비축 양곡을 불태운 사람이 있었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주계창(周繼昌)이나 박대곤(朴大坤)은 부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사람들을 시킨 다면 불태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자들은 두 마음을 지녀 믿을 수가 없다. 경중에서 내응하는 사람으로 유덕종(柳德種)·전언경(全彦卿) 같은 자들도 믿을 수가 없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소신도 평소부터 그 사람을 아는데 모두 범용한 자들로서 큰일을 하기에는 실로 부족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35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교통-마정(馬政)
원문
○晡時, 引見兵曹判書李恒福, 兵曹參判沈忠謙, 右副承旨沈友勝入侍。 上曰: "提督退屯平壤, 爲之奈何?" 恒福曰: "近來, 馬太則已絶矣, 軍糧不甚匱乏。 臣頃見尹根壽書狀, 則宋經略使之退兵, 故來屯平壤矣。" 上曰: "若此而已, 則不特我國之事, 無可奈何, 中原動天下之兵, 事功未就, 而中途遽止, 若兒戲耳。" 恒福曰: "大軍到臨津, 不食二日, 馬死者不知其數云矣。" 上曰: "馬則非徒飢斃, 馬疫大熾云矣。" 恒福曰: "楊中軍之言, 亦以爲糧芻不足, 姑先退來云矣。" 上曰: "明日見摠兵時, 以言傳之, 則恐有遺漏之患, 以書示之曰: ‘兵者勢而已。 大賊雖屯聚, 天兵若因平壤之威, 乘勝長驅, 直檮京城, 則賊必遁逃之不暇。 古人曰: 「兵貴神速,」 用兵之道, 必速而不可緩也。 若屯兵不進, 則北賊亦生奸謀, 與之合力必矣。 若天兵不要大擧合攻, 則請借砲手千餘, 與我軍合力擊之如何?’ 卿等下字成文, 爲小帖以進, 予當袖而示之。" 恒福曰: "上敎最好。" 上曰: "都元帥, 何不使人哨探賊中耶? 若能哨探, 則賊情雖不可詳知, 其數多寡, 可以知矣。" 上曰: "雖於此處, 從自募, 使之往探, 未爲不可。 古人必有行間牒者。 體探不可不爲, 而終始不爲, 是何故也?" 恒福曰: "聞我國之人哨探於京城者, 空傳虛說流聞之言, 不敢盡爲煩達也。" 上曰: "聞擺撥兒之言, 京中之賊, 有四萬云, 斯言信然耶?" 恒福曰: "今日趙仁徵, 持書以來, 小臣問之曰: ‘射廳至南山, 有大陣, 墨寺洞 長興庫洞等處, 有四陣, 龍山亦有一陣。’ 云矣。" 上曰: "仁徵, 從何處來耶?" 恒福曰: "仁徵, 白衣從軍, 在大軍中, 必自京城體探來矣。" 忠謙曰: "頃日平壤勝捷咨文, 不爲鋪張, 天將頗以爲沒實, 不快於意云。" 上曰: "予於咨文, 雖不詳解, 而頃日之咨, 銘神見之, 則極似鋪張矣。" 恒福曰: "前日所送玄馬, 提督見之甚喜, 至於下階, 以手撫之云矣。" 上曰: "予見其人, 多有氣魄, 其用兵, 雖或可稱, 而似不可與古人比也。 以近日處事觀之, 多有不足處。 纔克平壤, 便卽求馬, 此其可乎? 其所乘馬, 中鐵丸云者, 未可信也。 且平壤旣拔之後, 不慮北賊在背後, 而不爲留兵, 擧軍直趨松京, 善用兵者, 則豈若是乎? 且論功不均, 張世爵, 鐵嶺衛人也, 以世爵爲首功, 以南軍居下, 其心可知。" 忠謙曰: "中原戰馬顚斃者多, 以我國牧場馬, 俵給如何?" 上曰: "此意亦好。 恐場馬不敷, 亦恐無用於戰陣。" 忠謙曰: "中原動天下之兵, 來救我國, 若不盡力接待, 使彼小有不快, 則大事去矣。 提督若來, 則進駐順安, 因以往見, 以示繾綣之意可也。" 上曰: "然。" 上曰: "京城體探之事, 予旣盡言之。 京中賊糧積聚處, 豈不可以計焚之乎?" 古人曰: ‘重賞之下, 必有死士。’ 今若募人重賞, 則寧無自募之人乎?" 忠謙曰: "小臣侍東宮之時, 胥吏姜得云者, 以置毒賊將, 焚蕩賊糧事, 自募而終無實效, 其事之不易, 可知也。" 恒福曰: "我國人心巧詐, 雖重賞, 必無應募之人。" 上曰: "且以中原給事中所記觀之: ‘自平壤乘舟, 則可以直達中原, 若平平壤而守之, 則中國可無患矣。’ 今欲以黃海、京畿等道, 皆有水路, 無處不通, 可以到遼、薊而達天津之意, 奏聞于天朝, 而抑恐其以我國爲恐動而然也。" 恒福曰: "不必獨擧平壤言之, 自龍川、義州, 至於沿海諸處水路, 無不可通于上國爲辭可也。" 上曰: "然則無可奈何。 且賊儲糧幾何? 古人亦有焚其敵之所儲者矣。" 恒福曰: "周繼昌、朴大坤, 似可使用。 使此人可以焚之。" 上曰: "這漢, 有兩段心, 不可信。 京中內應之人, 如柳德種、全彦卿等, 亦不足信也。" 恒福曰: "小臣, 平日知其爲人, 其人俱是衆人中凡庸者, 固不足爲大事也。"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35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교통-마정(馬政)
선조 26년 (1593) 2월 17일
- 대가가 가산에 머물다
- 병조 판서 이항복 등이 영의정 최흥원으로 하여금 대가를 호종하게 하라고 청하다
- 위관이 김덕회 등이 왜적과 통한 일을 형문한 뒤 율에 따라 처단하기를 청하다
- 비변사가 중국군이 평양으로 퇴각한다는 보고가 있자 자문을 보내자고 청하다
- 비변사가 경성 수복 때에 도체찰사의 지휘를 받도록 장수들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 정주를 출발하면서 인민들에게 효유하다
- 대가가 출발하려 할 때 인민들이 전 목사 이징의 선정을 아뢰며 풀어주기를 청하다
- 가산 군수 심신겸을 통정으로 가자하다
- 전 목사 이징을 백성들의 호소에 따라 석방하고 헌부가 김덕회의 중벌을 청하다
- 가평관 서헌에 이어하다
- 병조 판서 이항복 등을 인견하여 이여송이 평양으로 물러난 일 등을 논의하다
- 접반사 한응인 등이 이 제독을 만나 조속한 진격을 청하고 치계하다
- 접반사 한응인 등이 이 제독에게 진군을 재촉한 일을 치계하다
- 양 총병이 가평관에 이르다
- 방어사 이시언이 왜적을 베고 보고하자 포상하다
- 북도를 정벌한 파수군의 증원을 청하자 송 경략이 조선에 보낸 자문
선조실록35권, 선조 26년 2월 17일 임인 11/16 기사 /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병조 판서 이항복 등을 인견하여 이여송이 평양으로 물러난 일 등을 논의하다
국역
포시(晡時)에 병조 판서 이항복(李恒福), 병조 참판 심충겸(沈忠謙)을 인견하니 우부승지 심우승(沈友勝)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제독이 평양으로 물러나 주둔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근래 말먹이 콩은 이미 떨어졌으나 군량은 그렇게 부족하지 않습니다. 신이 지난번 윤근수(尹根壽)의 서장을 보니 송 경략(宋經略)이 군사를 물리도록 했기 때문에 평양으로 와서 주둔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렇게 된다면 비단 우리 나라의 일만 어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중원이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였다가 일을 성취하지 못하고 중도에 갑자기 중단하니, 아이들 장난과 같을 뿐이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대군이 임진(臨津)에 다다라 이틀간 먹이지 못해 죽은 말이 무수하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말이 굶어 죽었을 뿐만 아니라 말에 돌림병이 크게 성했다고도 한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양 중군(楊中軍)의 말에도 또한 마초가 부족하여 우선 물러왔다고 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일 총병을 만날 때 말로 전달하게 되면 빠뜨리는 것이 있을까 걱정이 되니 글로 써서 보이기를 ‘전쟁이란 대세일 뿐이다. 비록 많은 적이 주둔하고 있더라도 중국군이 만약 평양에서의 위세로 승승 장구하여 곧바로 경성을 공격했다면 왜적은 반드시 도망가느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병(兵)은 신속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고 했으니, 용병(用兵)의 도는 신속해야지 늦추어서는 안 된다. 만약 군사를 주둔시키고 진격하지 않는다면 북적이 또한 간사한 계략을 내어 서로 힘을 합칠 것이 분명하다. 만약 중국군이 대대적으로 함께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청컨대 포수 1천여 명을 빌려주어 우리 군사와 힘을 합쳐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할 것이다. 경들이 문장을 지어 소첩(小帖)을 만들어 올리면 내가 소매 속에 넣었다가 보여주겠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상이 하교가 아주 훌륭하십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도원수는 어찌하여 사람을 시켜 적중을 정탐케 하지 않는가? 만약 정탐한다면 적의 정세를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의 숫자가 많고 적은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또 상이 이르기를,
"비록 이곳에서 자원자를 시켜 가서 정탐하게 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옛사람은 반드시 간첩을 행하는 것이 있었다. 정탐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 끝내 하지 않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들으니 경성에서 정탐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부질없이 유언 비어만 전하므로 감히 다 번거롭게 진달하지 못한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파발의 말을 들으니 경성에는 왜적 4만이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믿을 만한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오늘 조인징(趙仁徵)이 문서를 가지고 왔기에 소신이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사청(射廳)에서 남산에 이르기까지 큰 진(陣)이 있고, 묵사동(墨寺洞)·장흥고동(長興庫洞) 등지에도 네 개의 진이 있고 용산에도 역시 한 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인징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인징은 백의 종군(白衣從軍)하여 대군 가운데 있었으니 필시 경성에서 정탐하고 왔을 것입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지난번 평양 승첩시의 자문에서 극구 칭찬하지 않아서, 중국 장수가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내심 불쾌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자문에 대해서는 비록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나 지난번의 자문을 새겨 보면 매우 칭찬한 것 같았다."
하였다. 항복이 아뢰기를,
"전일에 보낸 가라말[玄馬]을 보고 제독이 매우 기뻐하여 뜰 아래 내려와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가 그 사람을 보니 기백이 많아서 용병술(用兵術)은 혹 칭찬할 만하더라도 옛사람에 비교할 수는 없을 듯싶다. 요즈음의 일 처리를 보건대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 평양을 수복하자마자 곧바로 말을 요구하니 그래서 되겠는가. 그가 탔던 말이 총알을 맞았다고 하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또 평양을 탈환한 뒤에 북적이 배후에 있는 것도 걱정하지 않고 군사를 남겨 두지 않은 채 전군으로 곧바로 송경(松京)으로 달려갔으니 용병을 잘 하는 자라면 어찌 이같이 하겠는가. 또 논공(論功)이 공평하지 못하였다. 장세작(張世爵)이 철령위(鐵嶺衛) 사람이어서 세작을 수공(首功)으로 하고 남군(南軍)을 하등에 두었으니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중원의 전마(戰馬)가 죽은 것이 많으니 우리 나라의 목장마를 나누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생각 역시 좋다. 그런데 목장마가 넉넉하지 않은 것이 걱정이고, 또한 전쟁터에서 쓸모가 없을까 두렵다."
하였다. 충겸이 아뢰기를,
"중원에서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와서 우리 나라를 구원하는데 만약 힘을 다해 접대하지 않아 저들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불쾌한 생각을 갖게 한다면 대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제독이 만약 오거든 순안(順安)에 진주(進駐)하셨다가 가셔서 만나보시고 간곡한 뜻을 보이심이 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성을 정탐하는 일은 내가 이미 모두 말하였다. 경성 안 왜적의 곡식 저장소를 어찌 계책을 세워 불태울 수 없겠는가? 옛사람도 ‘중한 상 아래에는 반드시 용감하게 죽는 군사가 있다.’ 했으니 지금도 만약 사람을 중한 상으로 모집한다면 어찌 자원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하니, 충겸이 아뢰기를,
"소신이 동궁을 모시고 있을 때에 서리(胥吏) 강득운(姜得云)이란 자가 독약을 음식에 넣어 적장을 죽이고 적의 군량을 불태우는 일로 자원했었으나 끝내 실효가 없었으니 그 일이 쉽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고, 항복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인심이 교사(巧詐)하여 중한 상을 주더라도 필시 응모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중원의 급사중(給事中)이 기록해 놓은 것을 보니 ‘평양에서 배를 타고 가면 곧바로 중원에 도달할 수 있으니 만약 평양을 평정하고 지키면 중국은 걱정이 없을 것이다.’고 했다. 지금 황해·경기 등 도에 모두 수로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 요양(遼陽)·계주(薊州)에 이르러 천진(天津)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내용을 중국 조정에 주문(奏聞)하려고 하나 우리 나라가 중국을 협박하느라고 그런다 할까 두렵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평양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용천(龍川)·의주(義州)로부터 연해 여러 곳의 수로에 이르기까지 상국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또 적이 비축하고 있는 양곡이 얼마나 되는가? 옛사람 중에도 적의 비축 양곡을 불태운 사람이 있었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주계창(周繼昌)이나 박대곤(朴大坤)은 부릴 수 있을 듯합니다. 이 사람들을 시킨 다면 불태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자들은 두 마음을 지녀 믿을 수가 없다. 경중에서 내응하는 사람으로 유덕종(柳德種)·전언경(全彦卿) 같은 자들도 믿을 수가 없다."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소신도 평소부터 그 사람을 아는데 모두 범용한 자들로서 큰일을 하기에는 실로 부족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35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교통-마정(馬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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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晡時, 引見兵曹判書李恒福, 兵曹參判沈忠謙, 右副承旨沈友勝入侍。 上曰: "提督退屯平壤, 爲之奈何?" 恒福曰: "近來, 馬太則已絶矣, 軍糧不甚匱乏。 臣頃見尹根壽書狀, 則宋經略使之退兵, 故來屯平壤矣。" 上曰: "若此而已, 則不特我國之事, 無可奈何, 中原動天下之兵, 事功未就, 而中途遽止, 若兒戲耳。" 恒福曰: "大軍到臨津, 不食二日, 馬死者不知其數云矣。" 上曰: "馬則非徒飢斃, 馬疫大熾云矣。" 恒福曰: "楊中軍之言, 亦以爲糧芻不足, 姑先退來云矣。" 上曰: "明日見摠兵時, 以言傳之, 則恐有遺漏之患, 以書示之曰: ‘兵者勢而已。 大賊雖屯聚, 天兵若因平壤之威, 乘勝長驅, 直檮京城, 則賊必遁逃之不暇。 古人曰: 「兵貴神速,」 用兵之道, 必速而不可緩也。 若屯兵不進, 則北賊亦生奸謀, 與之合力必矣。 若天兵不要大擧合攻, 則請借砲手千餘, 與我軍合力擊之如何?’ 卿等下字成文, 爲小帖以進, 予當袖而示之。" 恒福曰: "上敎最好。" 上曰: "都元帥, 何不使人哨探賊中耶? 若能哨探, 則賊情雖不可詳知, 其數多寡, 可以知矣。" 上曰: "雖於此處, 從自募, 使之往探, 未爲不可。 古人必有行間牒者。 體探不可不爲, 而終始不爲, 是何故也?" 恒福曰: "聞我國之人哨探於京城者, 空傳虛說流聞之言, 不敢盡爲煩達也。" 上曰: "聞擺撥兒之言, 京中之賊, 有四萬云, 斯言信然耶?" 恒福曰: "今日趙仁徵, 持書以來, 小臣問之曰: ‘射廳至南山, 有大陣, 墨寺洞 長興庫洞等處, 有四陣, 龍山亦有一陣。’ 云矣。" 上曰: "仁徵, 從何處來耶?" 恒福曰: "仁徵, 白衣從軍, 在大軍中, 必自京城體探來矣。" 忠謙曰: "頃日平壤勝捷咨文, 不爲鋪張, 天將頗以爲沒實, 不快於意云。" 上曰: "予於咨文, 雖不詳解, 而頃日之咨, 銘神見之, 則極似鋪張矣。" 恒福曰: "前日所送玄馬, 提督見之甚喜, 至於下階, 以手撫之云矣。" 上曰: "予見其人, 多有氣魄, 其用兵, 雖或可稱, 而似不可與古人比也。 以近日處事觀之, 多有不足處。 纔克平壤, 便卽求馬, 此其可乎? 其所乘馬, 中鐵丸云者, 未可信也。 且平壤旣拔之後, 不慮北賊在背後, 而不爲留兵, 擧軍直趨松京, 善用兵者, 則豈若是乎? 且論功不均, 張世爵, 鐵嶺衛人也, 以世爵爲首功, 以南軍居下, 其心可知。" 忠謙曰: "中原戰馬顚斃者多, 以我國牧場馬, 俵給如何?" 上曰: "此意亦好。 恐場馬不敷, 亦恐無用於戰陣。" 忠謙曰: "中原動天下之兵, 來救我國, 若不盡力接待, 使彼小有不快, 則大事去矣。 提督若來, 則進駐順安, 因以往見, 以示繾綣之意可也。" 上曰: "然。" 上曰: "京城體探之事, 予旣盡言之。 京中賊糧積聚處, 豈不可以計焚之乎?" 古人曰: ‘重賞之下, 必有死士。’ 今若募人重賞, 則寧無自募之人乎?" 忠謙曰: "小臣侍東宮之時, 胥吏姜得云者, 以置毒賊將, 焚蕩賊糧事, 自募而終無實效, 其事之不易, 可知也。" 恒福曰: "我國人心巧詐, 雖重賞, 必無應募之人。" 上曰: "且以中原給事中所記觀之: ‘自平壤乘舟, 則可以直達中原, 若平平壤而守之, 則中國可無患矣。’ 今欲以黃海、京畿等道, 皆有水路, 無處不通, 可以到遼、薊而達天津之意, 奏聞于天朝, 而抑恐其以我國爲恐動而然也。" 恒福曰: "不必獨擧平壤言之, 自龍川、義州, 至於沿海諸處水路, 無不可通于上國爲辭可也。" 上曰: "然則無可奈何。 且賊儲糧幾何? 古人亦有焚其敵之所儲者矣。" 恒福曰: "周繼昌、朴大坤, 似可使用。 使此人可以焚之。" 上曰: "這漢, 有兩段心, 不可信。 京中內應之人, 如柳德種、全彦卿等, 亦不足信也。" 恒福曰: "小臣, 平日知其爲人, 其人俱是衆人中凡庸者, 固不足爲大事也。"
- 【태백산사고본】 18책 35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635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 군사-통신(通信) / 교통-마정(馬政)
원본
선조 26년 (1593) 2월 17일
- 대가가 가산에 머물다
- 병조 판서 이항복 등이 영의정 최흥원으로 하여금 대가를 호종하게 하라고 청하다
- 위관이 김덕회 등이 왜적과 통한 일을 형문한 뒤 율에 따라 처단하기를 청하다
- 비변사가 중국군이 평양으로 퇴각한다는 보고가 있자 자문을 보내자고 청하다
- 비변사가 경성 수복 때에 도체찰사의 지휘를 받도록 장수들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 정주를 출발하면서 인민들에게 효유하다
- 대가가 출발하려 할 때 인민들이 전 목사 이징의 선정을 아뢰며 풀어주기를 청하다
- 가산 군수 심신겸을 통정으로 가자하다
- 전 목사 이징을 백성들의 호소에 따라 석방하고 헌부가 김덕회의 중벌을 청하다
- 가평관 서헌에 이어하다
- 병조 판서 이항복 등을 인견하여 이여송이 평양으로 물러난 일 등을 논의하다
- 접반사 한응인 등이 이 제독을 만나 조속한 진격을 청하고 치계하다
- 접반사 한응인 등이 이 제독에게 진군을 재촉한 일을 치계하다
- 양 총병이 가평관에 이르다
- 방어사 이시언이 왜적을 베고 보고하자 포상하다
- 북도를 정벌한 파수군의 증원을 청하자 송 경략이 조선에 보낸 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