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30권, 선조 25년 9월 15일 임신 4/4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왜적과의 전투 내용을 담은 요동에 보낸 자문
국역
요동에 자문을 보냈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전라도 병마 절도사 최원(崔遠)이 8월 6일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강화 부사(江華府使) 윤담(尹湛), 월곶진 첨절제사(月串鎭僉節制使) 이빈(李蘋) 등과 배를 타고 진격하니 적이 퇴각하여 토성(土城)으로 들어갔는데, 제군(諸軍)이 2백여 명을 사살하고 수급 92과(顆)를 얻었습니다. 적도 1천여 명이 영천군(永川郡)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7월 28일 경상 병사 박진(朴晉)이 돌격장(突擊將)인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 권응수(權應銖) 등에게 응모한 군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본군(本郡)을 포위하게 한 다음 포(砲)로 성을 공격하고 불을 질러 관사(官舍)와 창고(倉庫)를 불태우자 적도들이 놀라 무너졌습니다. 장졸들이 승세를 타고 추격하자 적들은 불로 뛰어들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무수히 많았으며 수급 5백 17과(顆)를 베었습니다.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진수(金進壽)는 이달 24일 별장(別將) 차은로(車殷輅) 등과 요로(要路)에 매복하였다가 왜적 5백여 명이 평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만나 함성을 지르며 어지럽게 화살을 날려 수급 22과를 참획하고 말 45필을 빼앗았으며 투구·갑옷·총포(銃砲) 등의 물건을 노획하였습니다.
8월 18일에 왜적 1천여 명이 이천(利川)으로 침입해 오자 복병장(伏兵將)인 훈련원 봉사 이열(李悅) 등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니 적도들이 무너졌고 승세를 타고 추격하여 수급 54과를 참획하였습니다. 왜적 6백여 명이 토원(兎院) 지방의 가옥을 불태우자 양주 목사 고언백(高彦伯)이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하니 적이 산기슭으로 도망쳤는데 수급 62과를 참획하였습니다. 충청 감사 윤선각(尹先覺)이 제장(諸將)과 청주(淸州)를 진격하여 포위하자 적군 6백 명이 나와서 포(砲)를 쏘아댔습니다. 공주(公州)에 있던 승려 영규(靈圭)가 모집한 승군 8백 명을 거느리고 함성을 지르며 돌입하자 제군(諸軍)이 승세를 타고 수급 51과를 참획하였는데 남은 적은 밤을 틈타 도망쳤습니다. 이상을 조찰(照察)하시기 바랍니다.
왜적이 각 지방에 가득하여 날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각기 지방의 해당 장수들이 참획하고는 있으나 대세가 꺾이지 않아 갈수록 흉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또 평양의 왜적과 황해·함경 두 도의 적도들이 성세(聲勢)가 서로 연결되어 수시로 출몰하는데 본국의 군사들은 피로가 너무 극심하니 민망할 뿐입니다."
【상이 자문을 보고나서 이르기를,"중국 조정에서 으레 상을 내리니 미안하다. 나는 이 자문을 보내지 않았으면 싶다." 하니, 대신들이 아뢰기를,"중국에서 적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또 이르기를,"중국 조정에서 매번 상을 내리니 내 마음에 미안하다. 이런 뜻을 비변사에 내려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하니, 비변사가 아뢰기를,"수급을 바치는 것은 당초 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각처에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중국군이 속히 와주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수급이 이미 압록강을 건넜으니 이번은 우선 그대로 보내소서." 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
원문
○移咨遼東, 略曰:
全羅道兵馬節度使崔遠, 八月初六日, 與義兵將金千鎰, 江華府使尹湛, 月串鎭僉節制使李蘋等,乘船進擊, 賊退入土城, 諸軍射殺二百餘人, 斬獲首級九十二顆。 賊一千餘名, 屯聚(永川部)〔永川郡〕 , 七月二十八日, 慶尙兵使朴晋, 令突擊將訓鍊院奉事權應銖等, 率領應募兵二千餘名, 進圍本郡, 砲城放火, 焚燒官舍倉庫, 賊徒驚潰。 將卒乘勝追擊, 賊赴火墜水死者無數, 斬獲首級五百一十七顆。 黃州牧使金進壽, 本月二十四日, 與別將車殷輅等, 設伏要路, 遇有倭賊五百餘名走向平壤, 鼓譟亂射, 斬獲首級二十二顆, 奪獲馬四十五匹, 得獲盔甲銃砲等件。 八月十八日, 有倭賊一千餘名, 來寇利川府地面, 伏兵將訓錬院奉事李悅等, 各領軍兵, 冒死突進, 賊徒奔潰, 乘勝追擊, 斬獲首級五十四顆。 倭賊六百餘名, 焚燒兔院廬舍, 楊州牧使高彦伯, 領軍進戰, 賊走入山麓, 斬獲首級六十二顆。 忠淸監司尹先覺, 與諸將進圍淸州, 賊六百餘名, 出陣放砲。 有公州僧人靈圭, 率自募僧軍八百餘名, 發喊突入, 諸軍乘勝, 斬獲首級五十一顆, 餘賊乘夜逃遁。 爲照前項倭賊遍滿各處, 日肆搶殺, 靡有紀極。 各該將領等官, 雖有斬獲, 大勢不挫, 愈逞兇毒。 兼又平壤賊倭, 黃海、咸鏡兩道之賊, 聲勢相連, 出沒無常, 本國軍兵, 疲老已甚, 委爲悶迫。
【上覽咨文曰: "中朝例爲賞賜未安。 予勿欲爲此咨也。" 大臣以爲: "欲使上國知擒賊之意。" 上又曰: "中朝每賞賜, 予心未安。 此意下備邊司議啓。" 備邊司以爲: "獻馘初非有希賞之心。 只以各處戰爭不息, 唯冀天兵速來之意。 首級已爲過江, 今姑仍送上。" 許之。】
선조실록30권, 선조 25년 9월 15일 임신 4/4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왜적과의 전투 내용을 담은 요동에 보낸 자문
국역
요동에 자문을 보냈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전라도 병마 절도사 최원(崔遠)이 8월 6일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강화 부사(江華府使) 윤담(尹湛), 월곶진 첨절제사(月串鎭僉節制使) 이빈(李蘋) 등과 배를 타고 진격하니 적이 퇴각하여 토성(土城)으로 들어갔는데, 제군(諸軍)이 2백여 명을 사살하고 수급 92과(顆)를 얻었습니다. 적도 1천여 명이 영천군(永川郡)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7월 28일 경상 병사 박진(朴晉)이 돌격장(突擊將)인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 권응수(權應銖) 등에게 응모한 군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본군(本郡)을 포위하게 한 다음 포(砲)로 성을 공격하고 불을 질러 관사(官舍)와 창고(倉庫)를 불태우자 적도들이 놀라 무너졌습니다. 장졸들이 승세를 타고 추격하자 적들은 불로 뛰어들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무수히 많았으며 수급 5백 17과(顆)를 베었습니다.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진수(金進壽)는 이달 24일 별장(別將) 차은로(車殷輅) 등과 요로(要路)에 매복하였다가 왜적 5백여 명이 평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만나 함성을 지르며 어지럽게 화살을 날려 수급 22과를 참획하고 말 45필을 빼앗았으며 투구·갑옷·총포(銃砲) 등의 물건을 노획하였습니다.
8월 18일에 왜적 1천여 명이 이천(利川)으로 침입해 오자 복병장(伏兵將)인 훈련원 봉사 이열(李悅) 등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니 적도들이 무너졌고 승세를 타고 추격하여 수급 54과를 참획하였습니다. 왜적 6백여 명이 토원(兎院) 지방의 가옥을 불태우자 양주 목사 고언백(高彦伯)이 군사를 거느리고 진격하니 적이 산기슭으로 도망쳤는데 수급 62과를 참획하였습니다. 충청 감사 윤선각(尹先覺)이 제장(諸將)과 청주(淸州)를 진격하여 포위하자 적군 6백 명이 나와서 포(砲)를 쏘아댔습니다. 공주(公州)에 있던 승려 영규(靈圭)가 모집한 승군 8백 명을 거느리고 함성을 지르며 돌입하자 제군(諸軍)이 승세를 타고 수급 51과를 참획하였는데 남은 적은 밤을 틈타 도망쳤습니다. 이상을 조찰(照察)하시기 바랍니다.
왜적이 각 지방에 가득하여 날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각기 지방의 해당 장수들이 참획하고는 있으나 대세가 꺾이지 않아 갈수록 흉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또 평양의 왜적과 황해·함경 두 도의 적도들이 성세(聲勢)가 서로 연결되어 수시로 출몰하는데 본국의 군사들은 피로가 너무 극심하니 민망할 뿐입니다."
【상이 자문을 보고나서 이르기를,"중국 조정에서 으레 상을 내리니 미안하다. 나는 이 자문을 보내지 않았으면 싶다." 하니, 대신들이 아뢰기를,"중국에서 적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또 이르기를,"중국 조정에서 매번 상을 내리니 내 마음에 미안하다. 이런 뜻을 비변사에 내려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하니, 비변사가 아뢰기를,"수급을 바치는 것은 당초 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각처에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 중국군이 속히 와주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습니다. 수급이 이미 압록강을 건넜으니 이번은 우선 그대로 보내소서." 하니, 상이 허락하였다. 】
원문
○移咨遼東, 略曰:
全羅道兵馬節度使崔遠, 八月初六日, 與義兵將金千鎰, 江華府使尹湛, 月串鎭僉節制使李蘋等,乘船進擊, 賊退入土城, 諸軍射殺二百餘人, 斬獲首級九十二顆。 賊一千餘名, 屯聚(永川部)〔永川郡〕 , 七月二十八日, 慶尙兵使朴晋, 令突擊將訓鍊院奉事權應銖等, 率領應募兵二千餘名, 進圍本郡, 砲城放火, 焚燒官舍倉庫, 賊徒驚潰。 將卒乘勝追擊, 賊赴火墜水死者無數, 斬獲首級五百一十七顆。 黃州牧使金進壽, 本月二十四日, 與別將車殷輅等, 設伏要路, 遇有倭賊五百餘名走向平壤, 鼓譟亂射, 斬獲首級二十二顆, 奪獲馬四十五匹, 得獲盔甲銃砲等件。 八月十八日, 有倭賊一千餘名, 來寇利川府地面, 伏兵將訓錬院奉事李悅等, 各領軍兵, 冒死突進, 賊徒奔潰, 乘勝追擊, 斬獲首級五十四顆。 倭賊六百餘名, 焚燒兔院廬舍, 楊州牧使高彦伯, 領軍進戰, 賊走入山麓, 斬獲首級六十二顆。 忠淸監司尹先覺, 與諸將進圍淸州, 賊六百餘名, 出陣放砲。 有公州僧人靈圭, 率自募僧軍八百餘名, 發喊突入, 諸軍乘勝, 斬獲首級五十一顆, 餘賊乘夜逃遁。 爲照前項倭賊遍滿各處, 日肆搶殺, 靡有紀極。 各該將領等官, 雖有斬獲, 大勢不挫, 愈逞兇毒。 兼又平壤賊倭, 黃海、咸鏡兩道之賊, 聲勢相連, 出沒無常, 本國軍兵, 疲老已甚, 委爲悶迫。
【上覽咨文曰: "中朝例爲賞賜未安。 予勿欲爲此咨也。" 大臣以爲: "欲使上國知擒賊之意。" 上又曰: "中朝每賞賜, 予心未安。 此意下備邊司議啓。" 備邊司以爲: "獻馘初非有希賞之心。 只以各處戰爭不息, 唯冀天兵速來之意。 首級已爲過江, 今姑仍送上。" 許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