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27권, 선조 25년 6월 22일 경술 1/3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의주에 도착하여 목사의 관사에 좌정하다
국역
상이 용천을 떠나 의주에 도착하여 목사(牧使)의 아사(衙舍)에 좌정하였다. 이때에 고을 사람들이 평양이 포위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흉흉하여 두려워하더니 명나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 성안으로 들어와 약탈하자 인민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피해 들어가 성안이 텅 비었다. 목사 황진(黃璡)과 판관(判官) 권탁(權晫) 등이 관인(官人) 및 관아의 여종 두어 명을 직접 거느리고서 임금의 수라(水剌)를 장만하였으며 호종한 관원들은 성안의 빈 집에 분산 거처하였다. 꼴과 땔나무가 계속 조달되지 아니하여 비록 행재소라고는 하지만 적막하기가 빈 성(城)과 같았다.
원문
선조 25년 (1592) 6월 22일
선조실록27권, 선조 25년 6월 22일 경술 1/3 기사 / 1592년 명 만력(萬曆) 20년
의주에 도착하여 목사의 관사에 좌정하다
국역
상이 용천을 떠나 의주에 도착하여 목사(牧使)의 아사(衙舍)에 좌정하였다. 이때에 고을 사람들이 평양이 포위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흉흉하여 두려워하더니 명나라 병사들이 강을 건너 성안으로 들어와 약탈하자 인민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피해 들어가 성안이 텅 비었다. 목사 황진(黃璡)과 판관(判官) 권탁(權晫) 등이 관인(官人) 및 관아의 여종 두어 명을 직접 거느리고서 임금의 수라(水剌)를 장만하였으며 호종한 관원들은 성안의 빈 집에 분산 거처하였다. 꼴과 땔나무가 계속 조달되지 아니하여 비록 행재소라고는 하지만 적막하기가 빈 성(城)과 같았다.
원문
원본
선조 25년 (1592)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