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25권, 선조 24년 7월 5일 무진 1/1 기사 / 1591년 명 만력(萬曆) 19년
양사가 정암수의 국문을 반대한 당시 양사를 탄핵하다
국역
이에 앞서 호남 유생 정암수(丁巖壽) 등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이산해와 유성룡 등을 지척하여 역당이라고 하니 상이 그날로 산해와 성룡을 인견하고 여러 가지로 위로한 뒤, 연명한 사람들을 모두 죄줄 수는 없으니 이름을 적은 자 중 위에서 10명만 잡아다가 추국하라고 하였다. 양사가 논집(論執)하고 또 태학생(太學生)들도 소를 올려 구원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이때 양사가 다시 당시의 양사가 권간의 사주를 받아 논계하였다고 탄핵하면서 아울러 파직시킬 것을 청하니, 상이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파직시키면 소요스럽다는 것으로 난색을 표명하다가 끝내는 윤허하였다. 당시의 양사는 대사헌 최황(崔滉), 집의 성영(成泳), 장령 심희수(沈喜壽)·윤섬(尹暹), 지평 신잡(申磼)·우준민(禹俊民), 대사간 이증(李增), 사간 오억령(吳億齡), 헌납 백유함(白惟咸)·유대진(兪大進), 정언 강찬(姜燦)과 이흡(李洽) 등이었다.
원문
선조 24년 (1591) 7월 5일
선조실록25권, 선조 24년 7월 5일 무진 1/1 기사 / 1591년 명 만력(萬曆) 19년
양사가 정암수의 국문을 반대한 당시 양사를 탄핵하다
국역
이에 앞서 호남 유생 정암수(丁巖壽) 등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이산해와 유성룡 등을 지척하여 역당이라고 하니 상이 그날로 산해와 성룡을 인견하고 여러 가지로 위로한 뒤, 연명한 사람들을 모두 죄줄 수는 없으니 이름을 적은 자 중 위에서 10명만 잡아다가 추국하라고 하였다. 양사가 논집(論執)하고 또 태학생(太學生)들도 소를 올려 구원하니 상이 윤허하였다.
이때 양사가 다시 당시의 양사가 권간의 사주를 받아 논계하였다고 탄핵하면서 아울러 파직시킬 것을 청하니, 상이 처음에는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파직시키면 소요스럽다는 것으로 난색을 표명하다가 끝내는 윤허하였다. 당시의 양사는 대사헌 최황(崔滉), 집의 성영(成泳), 장령 심희수(沈喜壽)·윤섬(尹暹), 지평 신잡(申磼)·우준민(禹俊民), 대사간 이증(李增), 사간 오억령(吳億齡), 헌납 백유함(白惟咸)·유대진(兪大進), 정언 강찬(姜燦)과 이흡(李洽) 등이었다.
원문
원본
선조 24년 (1591)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