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8권, 선조 17년 8월 18일 신유 1/2 기사 / 1584년 명 만력(萬曆) 12년
양사가 청양군 심의겸이 붕당을 지었다고 논박하자 이로 인해 조정의 논의가 일다
국역
양사가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을 논박하기를,
"지난날 붕당(朋黨)을 세워 사림(士林)에 화를 끼쳤고 밖으로는 조정의 정령(政令)과 안으로는 궁곤(宮壼)의 거조까지 지휘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친의 상중(喪中)에 있으면서도 기복(起復)을 기도하였고, 내지(內旨)를 사칭하여 동생의 아내를 독살했으니, 파척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한 사람의 시비(是非)를 조처하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조정에 분쟁이 생겨 10년을 끌면서 결판이 나지 않고 있으니, 그간에 상해를 받은 것을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이는 전고에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죄까지 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하고, 또 이르기를,
"그가 어떤 사람들과 서로 교결(交結)했는가? 불가불 나에게 알려주어야 하겠다. 당초에 원인을 분명히 밝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정(調停)하느니 진정(鎭靜)하느니 하는 설을 만들어 상하의 마음을 미혹시킴으로써 끝내 나라를 그르치는 조짐을 빚어내었다. 이것이 비록 조정에 인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뒷날의 거울이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간관(諫官)이 된 몸으로는 마땅히 직언(直言)을 해야 하는데 두려워하여 말을 다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책임이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문하는 것은 딴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을 알아두어 뒷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권도(權度)로 삼으려는 것일 따름이다. 이는 옛사람이 이른바 ‘호랑이에게 물렸다.’008) 는 것이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하였다. 이에 논열하기를,
"박순(朴淳)·정철(鄭澈)·이이(李珥)·박응남(朴應男)·김계휘(金繼輝)·윤두수(尹斗壽)·윤근수(尹根壽)·박점(朴漸)·이해수(李海壽)·신응시(辛應時) 등이 의겸과 생사(生死)의 사귐을 맺고 서로 세력을 성원하여 조정을 탁란시켰으며 성혼(成渾)과 같은 사람도 그들의 농락을 받았습니다. 끝내 조정의 상하로 하여금 서로 다른 마음을 먹게 하여 안정되지 못하게 하였는데 모두 이들이 빚어낸 일이었습니다. 그의 죄를 빨리 정하소서."
하니, 보전해 주지 않을 수 없다고 답하였다가, 뒤에 윤허하였다. 【이 때 대사헌은 이식(李拭), 집의는 이유인(李𥙿仁), 장령은 한옹(韓顒)과 홍인헌(洪仁憲), 지평은 심대(沈岱)·이시언(李時彦), 사간은 이양중(李養中), 헌납은 정숙남(鄭淑男), 정언은 조인득(趙仁得)·송언신(宋言愼)이었다. 대사간 이발(李潑)은 아직 상경하지 않았다. 】
- [註 008] ‘호랑이에게 물렸다.’ : 호랑이에게 물려본 사람이라야 호랑이의 무서움을 안다는 뜻.
원문
○辛酉/兩司論靑陽君 沈義謙, 前日植黨朋比, 貽禍士林, 外而朝廷政令, 內而宮壼擧措, 無不指揮。 方居父喪, 規爲起復, 假稱內旨, 毒殺弟妻, 請命罷斥。 答曰: "處一人之是非, 初非難事。 而緣玆朝廷紛挐, 十年不決, 其間所傷, 何可量也? 異哉! 前古所未有也。 然若至於加罪, 則不穩。" 又曰: "交結某某人耶? 不可不使予知之。 當初原頭不明示而定之, 做調停鎭靜之說, 惑辭上下之心, 終致醞釀誤國。 此雖由於廟堂之無人, 而豈非後事之明鑑乎? 況身爲諫官, 當直言, 畏懦不盡, 責有所歸。 然今日下問者, 非有他意, 只欲知之, 以爲他日處事之權度耳。 蓋古人所謂傷於虎者也。" 於是論列朴淳、鄭澈、李珥、朴應男、金繼輝、尹斗壽、尹根壽、朴漸、李海壽、辛應時等, 與義謙結爲死生之交, 聲勢相倚, 濁亂朝政, 如成渾亦受其籠絡。 終使朝廷上下, 携貳不靖, 無非此人之釀成。 請定其罪。 答曰: "不可不曲全之。" 後允之。 【其時大司憲李拭, 執義李𥙿仁, 掌令韓顒ㆍ洪仁憲, 持平沈然ㆍ李時彦, 司諫李養中, 獻納鄭淑男, 正言趙仁得ㆍ宋言愼也。 大司諫李潑未上來。】
선조 17년 (1584) 8월 18일
선조실록18권, 선조 17년 8월 18일 신유 1/2 기사 / 1584년 명 만력(萬曆) 12년
양사가 청양군 심의겸이 붕당을 지었다고 논박하자 이로 인해 조정의 논의가 일다
국역
양사가 청양군(靑陽君) 심의겸(沈義謙)을 논박하기를,
"지난날 붕당(朋黨)을 세워 사림(士林)에 화를 끼쳤고 밖으로는 조정의 정령(政令)과 안으로는 궁곤(宮壼)의 거조까지 지휘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친의 상중(喪中)에 있으면서도 기복(起復)을 기도하였고, 내지(內旨)를 사칭하여 동생의 아내를 독살했으니, 파척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한 사람의 시비(是非)를 조처하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조정에 분쟁이 생겨 10년을 끌면서 결판이 나지 않고 있으니, 그간에 상해를 받은 것을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이는 전고에도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죄까지 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하고, 또 이르기를,
"그가 어떤 사람들과 서로 교결(交結)했는가? 불가불 나에게 알려주어야 하겠다. 당초에 원인을 분명히 밝혀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정(調停)하느니 진정(鎭靜)하느니 하는 설을 만들어 상하의 마음을 미혹시킴으로써 끝내 나라를 그르치는 조짐을 빚어내었다. 이것이 비록 조정에 인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 뒷날의 거울이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간관(諫官)이 된 몸으로는 마땅히 직언(直言)을 해야 하는데 두려워하여 말을 다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책임이 돌아갈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문하는 것은 딴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을 알아두어 뒷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권도(權度)로 삼으려는 것일 따름이다. 이는 옛사람이 이른바 ‘호랑이에게 물렸다.’008) 는 것이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하였다. 이에 논열하기를,
"박순(朴淳)·정철(鄭澈)·이이(李珥)·박응남(朴應男)·김계휘(金繼輝)·윤두수(尹斗壽)·윤근수(尹根壽)·박점(朴漸)·이해수(李海壽)·신응시(辛應時) 등이 의겸과 생사(生死)의 사귐을 맺고 서로 세력을 성원하여 조정을 탁란시켰으며 성혼(成渾)과 같은 사람도 그들의 농락을 받았습니다. 끝내 조정의 상하로 하여금 서로 다른 마음을 먹게 하여 안정되지 못하게 하였는데 모두 이들이 빚어낸 일이었습니다. 그의 죄를 빨리 정하소서."
하니, 보전해 주지 않을 수 없다고 답하였다가, 뒤에 윤허하였다. 【이 때 대사헌은 이식(李拭), 집의는 이유인(李𥙿仁), 장령은 한옹(韓顒)과 홍인헌(洪仁憲), 지평은 심대(沈岱)·이시언(李時彦), 사간은 이양중(李養中), 헌납은 정숙남(鄭淑男), 정언은 조인득(趙仁得)·송언신(宋言愼)이었다. 대사간 이발(李潑)은 아직 상경하지 않았다. 】
- [註 008] ‘호랑이에게 물렸다.’ : 호랑이에게 물려본 사람이라야 호랑이의 무서움을 안다는 뜻.
원문
○辛酉/兩司論靑陽君 沈義謙, 前日植黨朋比, 貽禍士林, 外而朝廷政令, 內而宮壼擧措, 無不指揮。 方居父喪, 規爲起復, 假稱內旨, 毒殺弟妻, 請命罷斥。 答曰: "處一人之是非, 初非難事。 而緣玆朝廷紛挐, 十年不決, 其間所傷, 何可量也? 異哉! 前古所未有也。 然若至於加罪, 則不穩。" 又曰: "交結某某人耶? 不可不使予知之。 當初原頭不明示而定之, 做調停鎭靜之說, 惑辭上下之心, 終致醞釀誤國。 此雖由於廟堂之無人, 而豈非後事之明鑑乎? 況身爲諫官, 當直言, 畏懦不盡, 責有所歸。 然今日下問者, 非有他意, 只欲知之, 以爲他日處事之權度耳。 蓋古人所謂傷於虎者也。" 於是論列朴淳、鄭澈、李珥、朴應男、金繼輝、尹斗壽、尹根壽、朴漸、李海壽、辛應時等, 與義謙結爲死生之交, 聲勢相倚, 濁亂朝政, 如成渾亦受其籠絡。 終使朝廷上下, 携貳不靖, 無非此人之釀成。 請定其罪。 答曰: "不可不曲全之。" 後允之。 【其時大司憲李拭, 執義李𥙿仁, 掌令韓顒ㆍ洪仁憲, 持平沈然ㆍ李時彦, 司諫李養中, 獻納鄭淑男, 正言趙仁得ㆍ宋言愼也。 大司諫李潑未上來。】
원본
선조 17년 (1584)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