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1월 6일 갑진 2/2 기사 /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이양 등 6간의 죄와 간계에 관한 홍문관 부제학 김귀영 등의 차자
국역
홍문관 부제학 김귀영(金貴榮)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간흉(奸凶)과 얼아(蘖芽)가 당을 만들어 정사를 어지럽히고, 위복을 멋대로 부려 바야흐로 불측한 화를 얽어 만들어 마침내 임금을 업신여기는 죄악을 자행했는데, 다행히도 종사(宗社)가 묵묵히 도우시고 여론이 분격하여 일어나서 큰 괴수를 잡고 그의 심복들도 굴복하였습니다. 성명께서 그 죄상을 통촉하시니 마땅히 궐문 밖에서 처형해야 하거늘 마침내 관대한 법을 적용하여 유배(流配)와 파척(罷斥)에 그치니, 당시의 분울(憤鬱)이 펴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나라가 액운을 만나 새로 춘궁(春宮)의 상을 당하게 되어 상하가 슬픔 중에 있었기 때문에 논의하는 자가 다 논하지 못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형벌을 잘못 적용한 의논은 오랠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인심의 두려워함은 오랠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신민들이 믿는 바는, 전하께서 그 죄를 통촉하시어 의심없이 제거하시는 것뿐이었는데, 어찌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거두어 서용하는 명이 당을 지어 죄악을 자행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내려질 줄 헤아렸겠습니까. 더구나 원흉과 수악(首惡)을 어리석고 망령된 것으로 돌려버린다면 무엇으로 큰 악인을 징치하며 국론을 정하겠습니까. 이것이 아랫사람의 심정에 전하께서 좋아하고 미워하시는 바에 대해 근심이 없지 않은 까닭입니다.
대저 간인은 엄중히 다스려야 하고 재앙은 치밀히 막아야 하는데, 육간(六奸)을 죄주는 데에 그 율(律)대로 하지 않고 당여를 다스리는 데에 그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입이 자여(自如)하고, 서로 사의(邪議)를 만들어 내어 왕의 천심(淺深)을 엿보아 간계(奸計)를 수행하기를 바라니,【당시 사람이 혹 ‘강극성(姜克誠)이 공공연히 손을 대접하는 것은 믿는 바가 있어서 물정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하고, 혹은 ‘ 이양(李樑)·윤백원(尹百源)은 초방(椒房)의 가까운 친족009) 으로 궁금(宮禁)과 결탁한 지 이미 오래되어 장차 다시 서용될 조짐이 있다.’ 하고, 혹은 ‘이양이 내전(內殿)에 소를 진달하였는데 이 때문에 그 무리들의 사의가 분분하다.’고도 하였다.】 어찌 국가가 안전하냐 위태하냐의 조짐과 사정(邪正)이 나오느냐 물러나느냐의 기미가 아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공론을 받아들여 인심을 안정시키고 간인들의 엿봄을 막아서 후일의 화를 끊으소서. 그렇게 하면 국가가 매우 다행하고 종사(宗社)가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이때 상이 이양 등의 죄를 알고는 있으나 돌보아 생각하는 의사가 없지 않고, 또 심통원(沈通源)이 곡진히 이양을 뒷받침해 주면서 몰래 궁인(宮人)과 결탁해서 이양의 무죄함을 송변(訟辨)하게 하고 상의 의사 또한 방환(放還)하려 하니, 조정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양사(兩司)와 옥당(玉堂)이 죄를 더 주기를 청한 것이다.】
하니, 답하기를,
"간인을 다스리는 것은 비록 엄중히 해야 하나 처분 또한 중도에 맞게 해야 한다. 이중경을 거두어 서용하라는 것은 사면령을 반포한 뒤에 우연히 나왔으나 이미 공론을 따라 도로 파직을 명하였다. 또 육간을 죄주고 그 당여를 다스리게 한 것은 범연히 헤아려서 결정한 것이 아니니 지금 다시 논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2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註 009] 이양(李樑)·윤백원(尹百源)은 초방(椒房)의 가까운 친족 : 초방은 왕후의 궁전. 이양은 명종 비(明宗妃) 인순 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의 외삼촌이며, 윤백원은 문정 왕후(文定王后) 윤씨(尹氏)의 친정 조카이다.
원문
○弘文館副提學金貴榮等上箚曰:
國家不幸, 奸凶孽芽, 植黨亂政, 專擅威福, 方構不測之禍, 遂肆無君之惡。 幸賴 宗社默佑, 輿論激發, 元魁斯得, (瓜)〔爪〕 牙亦伏。 聖明洞照其狀, 宜施兩觀之誅, 而竟從寬典, 止於流竄斥罷。 當時之憤鬱而不伸, 但以國遭厄運, 春宮新喪, 上下慘戚, 論者未盡。 失刑之議, 久而愈激, 人心之懼, 久而益甚, 而臣民之所恃者, 以殿下明燭其罪, 去之不疑而已。 豈料未踰數年, 收敍之命, 遽及於黨惡之人乎? 況以元兇首惡, 諉之愚妄, 則其何以懲大憝, 而定國論乎? 此下情之所以不能無憂於殿下之好惡也。 大抵, 治奸當嚴, 防禍當密, 而罪六奸, 不以其律, 治黨與, 不以其典, 故出入自如, 胥動邪議, 窺伺淺深, 冀遂奸計, 【時人或曰: "克誠之公然接賓客也, 以有所恃而試物情也。" 或曰: "李樑、尹百源, 以椒房切親, 締結宮禁已久。" 蓋將有復敍之端。 或曰: "李樑陳疏內節以此, 其類之邪議紛紜。" 云。】 豈非國家安危之兆, 邪正進退之幾乎? 伏願殿下, 納公論而靖人心, 杜奸窺而絶後禍, 國家(奉)〔幸〕 甚, 宗社奉(幸)甚。
【是時, 上雖知樑等之罪, 不無眷戀之意。 又沈通源, 曲爲樑地, 結宮人, 使訟樑無罪。 上意亦欲放還。 朝廷凶懼, 故兩司、玉堂請加罪。】 答曰: "治奸雄, 所當嚴處之, 亦當得中。 重慶之收敍, 偶出於頒赦之後而已。 從公論, 還命罷職。 且罪六奸, 治黨與, 非偶然, 計而定之。 今不須更論也。"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2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명종 20년 (1565) 1월 6일
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1월 6일 갑진 2/2 기사 /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이양 등 6간의 죄와 간계에 관한 홍문관 부제학 김귀영 등의 차자
국역
홍문관 부제학 김귀영(金貴榮)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국가가 불행하여 간흉(奸凶)과 얼아(蘖芽)가 당을 만들어 정사를 어지럽히고, 위복을 멋대로 부려 바야흐로 불측한 화를 얽어 만들어 마침내 임금을 업신여기는 죄악을 자행했는데, 다행히도 종사(宗社)가 묵묵히 도우시고 여론이 분격하여 일어나서 큰 괴수를 잡고 그의 심복들도 굴복하였습니다. 성명께서 그 죄상을 통촉하시니 마땅히 궐문 밖에서 처형해야 하거늘 마침내 관대한 법을 적용하여 유배(流配)와 파척(罷斥)에 그치니, 당시의 분울(憤鬱)이 펴이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나라가 액운을 만나 새로 춘궁(春宮)의 상을 당하게 되어 상하가 슬픔 중에 있었기 때문에 논의하는 자가 다 논하지 못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형벌을 잘못 적용한 의논은 오랠수록 더욱 격렬해지고 인심의 두려워함은 오랠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러나 신민들이 믿는 바는, 전하께서 그 죄를 통촉하시어 의심없이 제거하시는 것뿐이었는데, 어찌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거두어 서용하는 명이 당을 지어 죄악을 자행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내려질 줄 헤아렸겠습니까. 더구나 원흉과 수악(首惡)을 어리석고 망령된 것으로 돌려버린다면 무엇으로 큰 악인을 징치하며 국론을 정하겠습니까. 이것이 아랫사람의 심정에 전하께서 좋아하고 미워하시는 바에 대해 근심이 없지 않은 까닭입니다.
대저 간인은 엄중히 다스려야 하고 재앙은 치밀히 막아야 하는데, 육간(六奸)을 죄주는 데에 그 율(律)대로 하지 않고 당여를 다스리는 데에 그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입이 자여(自如)하고, 서로 사의(邪議)를 만들어 내어 왕의 천심(淺深)을 엿보아 간계(奸計)를 수행하기를 바라니,【당시 사람이 혹 ‘강극성(姜克誠)이 공공연히 손을 대접하는 것은 믿는 바가 있어서 물정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하고, 혹은 ‘ 이양(李樑)·윤백원(尹百源)은 초방(椒房)의 가까운 친족009) 으로 궁금(宮禁)과 결탁한 지 이미 오래되어 장차 다시 서용될 조짐이 있다.’ 하고, 혹은 ‘이양이 내전(內殿)에 소를 진달하였는데 이 때문에 그 무리들의 사의가 분분하다.’고도 하였다.】 어찌 국가가 안전하냐 위태하냐의 조짐과 사정(邪正)이 나오느냐 물러나느냐의 기미가 아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공론을 받아들여 인심을 안정시키고 간인들의 엿봄을 막아서 후일의 화를 끊으소서. 그렇게 하면 국가가 매우 다행하고 종사(宗社)가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이때 상이 이양 등의 죄를 알고는 있으나 돌보아 생각하는 의사가 없지 않고, 또 심통원(沈通源)이 곡진히 이양을 뒷받침해 주면서 몰래 궁인(宮人)과 결탁해서 이양의 무죄함을 송변(訟辨)하게 하고 상의 의사 또한 방환(放還)하려 하니, 조정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양사(兩司)와 옥당(玉堂)이 죄를 더 주기를 청한 것이다.】
하니, 답하기를,
"간인을 다스리는 것은 비록 엄중히 해야 하나 처분 또한 중도에 맞게 해야 한다. 이중경을 거두어 서용하라는 것은 사면령을 반포한 뒤에 우연히 나왔으나 이미 공론을 따라 도로 파직을 명하였다. 또 육간을 죄주고 그 당여를 다스리게 한 것은 범연히 헤아려서 결정한 것이 아니니 지금 다시 논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2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註 009] 이양(李樑)·윤백원(尹百源)은 초방(椒房)의 가까운 친족 : 초방은 왕후의 궁전. 이양은 명종 비(明宗妃) 인순 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의 외삼촌이며, 윤백원은 문정 왕후(文定王后) 윤씨(尹氏)의 친정 조카이다.
원문
○弘文館副提學金貴榮等上箚曰:
國家不幸, 奸凶孽芽, 植黨亂政, 專擅威福, 方構不測之禍, 遂肆無君之惡。 幸賴 宗社默佑, 輿論激發, 元魁斯得, (瓜)〔爪〕 牙亦伏。 聖明洞照其狀, 宜施兩觀之誅, 而竟從寬典, 止於流竄斥罷。 當時之憤鬱而不伸, 但以國遭厄運, 春宮新喪, 上下慘戚, 論者未盡。 失刑之議, 久而愈激, 人心之懼, 久而益甚, 而臣民之所恃者, 以殿下明燭其罪, 去之不疑而已。 豈料未踰數年, 收敍之命, 遽及於黨惡之人乎? 況以元兇首惡, 諉之愚妄, 則其何以懲大憝, 而定國論乎? 此下情之所以不能無憂於殿下之好惡也。 大抵, 治奸當嚴, 防禍當密, 而罪六奸, 不以其律, 治黨與, 不以其典, 故出入自如, 胥動邪議, 窺伺淺深, 冀遂奸計, 【時人或曰: "克誠之公然接賓客也, 以有所恃而試物情也。" 或曰: "李樑、尹百源, 以椒房切親, 締結宮禁已久。" 蓋將有復敍之端。 或曰: "李樑陳疏內節以此, 其類之邪議紛紜。" 云。】 豈非國家安危之兆, 邪正進退之幾乎? 伏願殿下, 納公論而靖人心, 杜奸窺而絶後禍, 國家(奉)〔幸〕 甚, 宗社奉(幸)甚。
【是時, 上雖知樑等之罪, 不無眷戀之意。 又沈通源, 曲爲樑地, 結宮人, 使訟樑無罪。 上意亦欲放還。 朝廷凶懼, 故兩司、玉堂請加罪。】 答曰: "治奸雄, 所當嚴處之, 亦當得中。 重慶之收敍, 偶出於頒赦之後而已。 從公論, 還命罷職。 且罪六奸, 治黨與, 非偶然, 計而定之。 今不須更論也。"
- 【태백산사고본】 19책 31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1책 2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원본
명종 20년 (1565) 1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