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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1월 6일 갑진 1/2 기사 /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양사에서 이양·이감 등의 죄가 잘못 적용되어 여론이 격분함을 아뢰다

국역

양사(兩司)가 아뢰기를,

"예부터 소인이 조정에 있을 적에 위복(威福)을 전천(專擅)하여 죄가 나라를 그르친데에 해당되어서 공론이 나옴에 이르러 조정의 상하가 그 죄상을 환하게 알게 되어서는 처형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위복은 아랫사람에게 옮겨질 수 없고 죄가 나라를 그르친 데에 해당되면 국법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전일 이양의 죄는, 당초 죄주기를 청하던 날 계사(啓辭)에 갖추어져 있으니 지금 일일이 다 들 수 없습니다. 그는 간사한 소인을 끌어 올리고 당여(黨與)를 널리 심어 일국의 권한이 그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임금을 속이고 아래로는 조정을 제어하며 사림을 모함하고 조정 정사를 탁란시켰던 것입니다.

시험삼아 그의 참람한 일을 말하면, 일찍이 평안도에 있을 적에 홍단(紅緞)005) 옷을 겉에 입고 열읍(列邑)에 순행(巡行)하니 보는 사람이 모두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 집안의 거처와 복장도 또한 극히 참람하였습니다. 임금을 무시하고 위복을 전천한 죄는 옛날에서 찾아봐도 그에 비길 자가 드뭅니다.

그런데 당초에 중형으로 치죄하지 않고 다만 귀양보내게 하였으니, 성은(聖恩)은 너무 관대하고 물정(物情)은 더욱 분격하였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스스로 징계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실로 죄를 자인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인데, 남쪽 지방에서 북쪽 지방으로 귀양갈 때에 【이양(李樑)이 처음에 보령(保寧)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강계(江界)로 이배(移配)되었다.】 도성 밖에 와서 여러 날 동안 머무르면서 행동거지가 자약하였으니, 그의 방자하고 기탄이 없는 정상은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습니다. 매양 논계할 즈음에 위에서 비답하시되 ‘어리석고 망령되며 원대한 생각이 없어 처사가 잘못된 것이 많았다.’라고 말씀하시니, 여러 사람의 심정이 의혹하여, 혹 위에서 그 죄상을 다 통촉하지 못하신 것이 아닌가 염려합니다.

이감(李戡) 【음흉하고 반복하는 소인으로 이양의 앞잡이가 되어 사림(士林)을 모해하였고 행동이 개돼지와 같아서 자기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으니 소인으로서 더욱 심한 자였다.】 등 5인의 죄는 실로 이양과 차등이 없는데도 모두 귀양보내는 데에 그쳤으니 이 또한 공론이 오랫동안 시원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한때 그들과 왕래한 사람이 어찌 다 심복이 된 자들이겠습니까. 그 중에 음모와 비계(秘計)를 비밀히 그들과 함께 같은 마음으로 논의하여, 무릇 이양이 하는 짓을 참여해 알지 못함이 없는 자는 세상 사람 모두가 보고 손가락질하는 바이므로 진실로 가리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초 죄를 논정할 때에 그 당여를 논함에 있어 경중이 잘못되어 또한 놓아두고 논하지 않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공론이 미편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항간의 의논에 이르러서는 또한 잘못되었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이로써 죄를 정한 뒤에 세월이 오래지 않건만 인심이 안정되지 않고 사의(邪議)가 마구 생기니 이것이 어찌 죄를 진작 분변하지 않고 엄하게 다스리지 않은 소치가 아니겠습니까.

김백균(金百鈞) 【김백균은 품성이 사특하여 소시적부터 벗들에게 버린 바가 되었다. 일찍이 이기(李芑)에게 수학(受學)하였다. 뒤에 과거에 급제하고서는 곧 이기의 집에 나아가 종묘서 직장(宗廟署直長)이 되기를 구하였는데, 김여부(金汝孚)에게 미움을 받아 뜻을 얻지 못하고 곤궁하게 지냈다. 뒤에 김여부를 곡진하게 받들어 광양 현감(光陽縣監)으로 나가서, 진귀한 음식물은 서울의 권귀(權貴)에게 보내고 변변찮은 음식물로 자기 아비를 봉양하였다. 그 아비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나는 자식이 없다.’ 하였다. 그 계모(繼母)가 일찍이 김백균을 배척하여 한집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그 뒤에 그 아비가 죽고 장사를 지내기 전에 갑자기 서로 화합하니, 일가 친척이 다 괴이하게 여겼다. 김백균이 매양 근친(覲親)한다는 명목으로 시골에 돌아가서 항상 계모의 집에 있으니, 더러운 소문이 비로소 전파되었다 한다. 이양과 8촌의 친족인데 스스로 6촌이라 하고, 뇌물을 바치고 받들어 모심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다. 이양이 주상에게 힘껏 천거하여 특별히 필선(弼善)에 임명되고, 그로 인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갔다. 이양이 패망한 뒤에 그도 패망하여 그의 집으로 돌아와서, 이집(李楫)에게 사적으로 간청하여 다시 서용되기를 바랐다. 이집이 편지를 보내어 ‘명년 을축년006) 정월에 마땅히 대사(大赦)가 있을 터이니, 네가 반드시 서용될 것이다.’ 하였다. 이 때에 와서 과연 사령(赦令)이 있었는데, 이중경(李重慶)이 먼저 서용되었다. 공론이 이를 알아내고서 간인(姦人)이 죄는 중한데 벌은 가볍다 하여 분배(分配)하기를 청하였다.】 은 간사하고 아첨하며 독해하는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이양의 심복이 되어 그 형세를 도와 이루었고, 고맹영(高孟英) 【위인이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양에게 종처럼 굽실거리며 섬겨 드디어 청현(淸顯)의 벼슬에 이르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겨 그와 같은 반열에 서기를 부끄럽게 여겼다.】 은 경망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이양의 집에 출입하여 가장 친밀하여져서 모든 논의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5인의 죄와 다를 것이 없는데 관작만 삭탈하니, 물정이 오랠수록 더욱 분격합니다. 아울러 귀양보내소서.

강극성(姜克誠) 【위인이 경박하고 사특하며 재주를 믿고 교만하였다. 이양을 종처럼 굽실거리며 섬겨 청현(淸顯)한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스스로 잘한 계책으로 여겼으니, 그가 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은 국론(國論)에 죄를 얻어 그 관작이 삭탈되었으니, 두려워하고 물러나 엎드려 있어야 마땅하거늘, 도성에 출입하며 공공연히 객과 접촉하니 그 공론을 업신여김이 심합니다.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소서. 행 사직(行司直) 조광언(趙光彦)은 경망하고 무상(無狀)한 사람으로 그와 당원(黨援)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관작을 보전하므로 물정이 분격하니 관작을 삭탈하소서.

전 박사(博士) 이성헌(李成憲) 【이감(李戡)의 아들이다. 사람들이 시기하고 음험함을 그의 아비에 비하였다.】 은 중죄인의 아들로 심술이 바르지 못한데도 아직까지 사판(仕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호군(副護軍) 이중경(李重慶)은 경망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으로 권간(權奸)에게 빌붙어서 심복이 되어 음모와 비계(秘計)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실로 귀양간 사람과 다름이 없는데 그 관직만 파면하였으므로 공론이 오랠수록 더욱 격분합니다. 관작을 삭탈하여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소서.

이 사람들의 죄는 당초 경중의 적용이 잘못되었으므로 공론과 항의(巷議)가 오랠수록 더욱 격분하는 것이니, 진실로 지엽으로 원용(援用)하여 다스려서는 불가하므로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양은 거칠고 비루하며 어리석고 망령되어 본디 행검(行檢)이 없었다. 사류(士類)들이 자기를 허여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여 이에 척리(戚里)를 빙자하여 권력을 제 마음대로 부려 교만 방자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간사하고 무뢰한 무리들과 체결하여 요지(要地)에 늘어놓고 관작과 옥사(獄事)를 팔고, 거만하게 스스로 거드름을 피우며 한결같이 윤원형(尹元衡)이 하는 짓을 본받으니, 윤원형이 매우 꺼렸었다. 그러나 끝내 그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도리어 곤경을 당하였다. 계해년007) 에 그의 아들 이정빈(李廷賓)을 정시(庭試)에 장원으로 합격시키고 수개월이 못가서 병조 좌랑으로 삼고, 얼마 못 가서 이조 좌랑으로 삼았다. 그가 갈리게 되자 굳이 유영길(柳永吉)을 천거하여 대임으로 삼게 하였다.―정랑(正郞) 윤인함(尹仁涵)이 그 일을 주장하였다. 윤인함의 처형(妻兄) 정윤희(丁胤禧)이양에게 아첨하여, 윤인함을 시켜 그 일을 주장하게 하였으며, 유영길은 연소하고 경망 조급하여 은밀히 이정빈에게 빌붙었다.― 정랑 박소립(朴素立)과 좌랑 윤두수(尹斗壽) 등이 따르려 하지 않으니 이양의 당이 몹시 노하여―그의 의사는 대개 먼저 유영길을 천거하는 것을 주로 하고 다음에 그 무리인 이성헌(李成憲)이언이(李彦怡) 등과 같은 사람을 차례로 이조 좌랑을 하게 하려 한 것이다.― 윤원형·심통원(沈通源)과 모의하고 이감(李戡)을 사주하여,―이감이 그때 대사헌이었다.― 박소립·기대승(奇大升)―이조 낭관 등이 유영길을 천거하려 하지 않고 기대승에게 뜻을 두었으므로 아울러 미워한 것이다.― 윤두수·이문형(李文馨)을 청담(淸談)으로 나라를 그르친다고 지목하고, 허엽(許曄)·윤근수(尹根壽) 등이 죄인을 신구(伸救)하였다고―허엽·윤근수가 일찍이 경연(經筵)에서, 조광조(趙光祖)·구수담(具壽耼)의 죽음이 그의 죄가 아니라고008) 말한 적이 있다.― 아울러 논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성 밖으로 내쫓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일시의 명사(名士)를 다 죽이고자 하여 이미 그 성명을 몰래 기록하였는데 모두 40여 인이었다. 이를 테면 초야에 물러나서 병을 요양하는 이황(李滉)이나 전려(田廬)에서 농사지어 살아가는 이항(李恒)·조식(曺植) 같은 사람은 다 원한이 없는데도 또한 장차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발론(發論)하기 전에 기대항의 탄핵으로 이양과 그 당류가 죄를 얻어 찬배(竄配)되었으나 윤원형과 심통원의 죄악은 사람들이 또한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이양의 당으로서 고맹영(高孟英)·이언충(李彦忠) 같은 사람은 홍인경(洪仁慶)―이때 집의(執義)였다.―의 극력 구호로 벌을 받음이 매우 가벼우니 인심이 불평하였고, 그 외에도 이와 같은 자가 또한 많았다. 그 뒤에 ‘이양이 다시 임용된다.’고 거리에 성대하게 전파되니 유식한 사람은 이를 근심하였다. 이때 와서 사면령을 반포한 뒤 은전(恩典)을 널리 베풂으로 인하여 이중경의 관직을 서용하도록 명하니, 대간이 드디어 항론(抗論)하고, 옥당(玉堂)도 차자를 올려 그를 논하였다. 뒤에 서쪽 변경의 소요(騷擾)로 인하여 이양 등을 양이(量移)하려 하였으나 끝내 공론에 부대끼어 시행하지 못하였다. 대개 상은 이양 등에게 늘 그리워하는 의사를 두었으니, 소인(小人)은 멀리하기는 어렵고 가까이하기는 쉬움이 이러하다.】

하니, 답하기를,

"이 계사(啓辭)를 살펴보니 일이 매우 소요스러워 내 마음이 편치 아니하다. 간인을 다스리는 데에는 중도에 맞게 해야 하고 깊이 다스려서는 안되니, 그 큰 괴수는 형벌하고 협박에 따른 자는 다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전일 이양(李樑) 등을 정죄(定罪)할 때에 각인(各人)의 죄를 작정(酌定)하였다. 지금 이미 3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어찌 반드시 이미 죄를 받은 자를 다시 들추어내고 혹, 새로운 사람을 추론하여 잇달아 죄를 가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이중경의 일은, 사면령을 반포한 뒤 특별 서용함은 상례(常例)와는 다른 듯하므로 아울러 서용하였는데, 공론이 이와 같으니 전대로 파직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반드시 관작을 삭탈하여 그로 하여금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까지는 없다. 김백균·고맹영은 지금 모름지기 찬출(竄黜)할 것이 없고, 강극성은 물의를 듣게 되면 스스로 두려워서 숨어 있을 터이니 또한 반드시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까지 없다. 조광언(趙光彦)·이성헌(李成憲)은 추론할 수 없으니 더욱 윤허할 수 없다."

하였다.

  • [註 005] 홍단(紅緞) : 붉은 비단.
  • [註 006] 을축년 : 1565 명종 20년.
  • [註 007] 계해년 : 1563 명종 18년.
  • [註 008] 조광조(趙光祖)·구수담(具壽耼)의 죽음이 그의 죄가 아니라고 : 조광조는 중종 때 이상 정치를 펴려 하다가 중종 14년(1519) 기묘 사화(己卯士禍)에 심정(沈貞), 남곤(南袞) 등 훈구파(勳舊派)의 모함을 받아 사사(賜死)되었다. 구수담(具壽耼)은 중종 때 검토관(檢討官)으로 기묘 사화 때 화를 입은 유림(儒林)의 서용을 청했다가 파직되었고, 명종 5년(1550)에 앞서 대윤(大尹) 일파인 유관(柳灌)을 변호했다 하여 사사되었다.

원문

○甲辰/兩司啓曰: "自古, 小人之在朝也, 專擅威福, 罪在誤國, 而至於公論之發, 朝廷上下, 明知其罪狀, 則未有不伏辜於斧鑕之下者。 豈不以威福, 不可以下移, 罪在誤國, 則難逭於國典乎? 頃日李樑之罪, 備在於當初請罪之日, 今不可一一枚擧, 其引進憸邪, 廣植黨與, 一國之權在其掌握。 上以欺君上, 下以制朝廷, 謀陷士林, 濁亂朝政。 試言其僭偪之事, 則曾在平安道, 表着紅段之衣, 巡行列邑, 見者皆驚, 一家之居處服用, 亦極僭濫, 不有君上, 專擅威福之罪, 求之於古, 罕有其比, 而當初不置重典, 只令竄黜, 聖恩太寬, 而物情愈憤, 如少有自艾之心, 則固當負罪惕(息)〔念〕 , 而自南投北之時, 【樑初配保寧, 後移江界。】 來到都城之外, 留連累日, 行止自若, 其縱恣無忌之狀, 此亦可見。 每於論啓之際, 自上批答, 以愚妄無遠慮, 處事多失爲辭, 群情疑惑。 慮或自上未盡洞照其罪狀也。 李戡 【險陂反覆, 爲樑鷹犬。 謀害士林, 行同狗彘, 不父其父, 小人之尤者也。】 等五人之罪, 實與無有差等, 而竝止竄黜, 此亦公論之久而未快者也。 一時所與往來之人, 豈盡爲腹心者哉? 其中陰謀秘計, 密與之同心, 凡之所爲無不與知者, 十目十手, 固不可掩, 而當初定罪之時, 論其黨與, 輕重失宜, 亦有置而不論, 不但朝廷公論以爲未便, 至於巷議, 亦有失宜之譏。 以此定罪之後, 歲月未多, 而人心未靖, 邪議橫生, 此豈非辨之不早, 治之不嚴之所致乎? 金百鈞 【百鈞稟性邪慝, 自少爲朋儕所棄。 嘗受學于李芑, 後得科第, 卽趨芑門, 求爲宗廟直長。 爲金汝孚所惡, 因不得志, 後曲奉汝孚, 出宰光陽, 以珍膳遺洛中權貴, 以薄味奉其父。 其父嘗謂人曰: ‘吾無子。’ 云。 其繼母嘗斥百鈞, 不使在一家。 厥後其父死未葬, 而忽與和洽, 族黨咸怪之。 百鈞每以覲親歸鄕, 恒在繼母之家, 醜聲始播云。 與李樑八寸之族, 自云六寸, 賂遺牢奉, 無所不至。 樑力薦于上, 特授弼善, 因入玉堂。 樑敗後, 敗歸其家。 私懇于李楫, 冀望復敍, 楫通書曰: ‘明年乙丑之正, 當有大赦。 汝必見敍。 至是果有赦, 而李重慶先得敍, 公論覺之, 以姦人罪重罰輕, 請分配。】 以邪媚毒害之人, 與爲腹心, 助成其勢。 高孟英 【爲人狡黠回邪, 奴事李樑, 遂致淸顯, 人皆賤之, 羞與爲列。】 以輕邪之人, 出入其門, 最爲親密, 凡所論議, 亦無不知。 此二人無異於五人之罪, 而只削官爵, 物情久而愈激, 請竝竄逐。 姜克誠 【爲人浮薄輕回, 挾才驕傲。 奴事李樑, 久占淸顯, 自以爲得計。 其敗也宜。】 得罪國論, 削其官爵, 所當恐懼屛伏, 而出入都下, 公然接客, 其不有公論, 甚矣。 請勿使接迹都下。 行司直趙光彦, 以輕妄無狀之人, 與爲黨援, 而尙保官爵, 物情憤激, 請削奪官爵。 前博士李成憲 【勘之子也。 人以猜險, 比於其父。】 以重罪人之子, 心術不正, 尙在仕版。 副護軍李重慶, 以輕回諂媚之人, 攀附權奸, 作爲腹心, 陰謀秘計, 無不與焉。 實與竄配之人無異, 而只罷其職, 公論久而愈激。 請削奪官爵, 使不得接迹都下。 此人之罪, 當初輕重失宜, 故公論巷議, 久而愈激, 固不可以枝葉, 在所援治。 不敢不啓。 【樑麤鄙愚妄, 素無行檢, 嫉士類不與己。 乃憑藉戚里, 弄權驕恣, 締結一時, 恰邪無賴之徒, 布列要地, 賣官鬻獄, 偃然自大, 一效尹元衡所爲。 元衡甚忌之, 而終不能傾, 反爲所困。 癸亥歲, 以其子廷賓魁廷試, 未數月, 爲兵曹佐郞, 未幾爲吏曹佐郞。 及其遞也, 强薦柳永吉爲代, 正郞尹仁涵主其事, 仁涵妻兄丁㣧蒨媚於樑, 敎仁涵主之。 永吉年少輕躁, 密附廷賓。 正郞朴素立、佐郞尹斗壽等, 不肯從。 樑黨怒甚, 其意蓋欲先薦永吉爲主, 次引其類, 如李成憲、李彦怡等迭爲之也。 與元衡、通源, 所謀嗾勘, 勘時爲大司憲, 目朴素立、奇大升時吏曹郞官等, 不肯薦永吉, 而屬意於奇大昇 [升] , 故竝疾之焉。 尹斗壽李文馨爲淸談誤國, 竝論許燁尹根壽伸救罪人, 根壽, 嘗於經筵, 言趙光祖具壽聃之死非罪, 劾請削職, 黜之城外。 欲因此盡殺一時名士, 已潛錄其姓名, 凡四十餘人。 如李滉之退居養病、李恒曺植之田廬食力, 皆無讎怨, 而亦將不免。 未發, 爲奇大恒所劾。 與其黨類, 獲罪被竄, 而元衡通源之惡, 則人亦不敢言。 黨如高孟英李彦忠, 賴洪仁慶, 時爲執義力護, 得罰甚輕。 人心不平。 他如此者, 亦多。 厥後閭巷盛傳, 將復用, 有識憂之。 至是因頒赦後覃恩, 命敍重慶職, 臺諫遂抗論, 玉堂亦上箚論之。 後因西鄙有釁, 欲量移等, 竟迫公論, 不果。 蓋上於等, 常致眷戀之意。 小人之雜踈而易視也, 如是夫!"】 答曰: "觀此啓辭, 事甚騷擾, 予心不寧。 治奸當得其中, 不可深治, 刑厥渠魁, 脅從罔治, 而前日等定罪之時, 酌定各人之罪, 今已三年之久。 何必更擧已被罪者, 或追論新人, 續續加罪乎? 今者, 李重慶事, 頒赦後別敍, 似異常例, 故竝敍, 而公論如此, 仍前罷職可也。 不必削奪官爵, 使不得接迹於都下。 金百鈞高孟英今不須竄黜。 姜克誠若聞物議, 自當屛伏, 亦不必勿使接迹於都下。 趙光彦李成憲, 不可追論。 益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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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31권, 명종 20년 1월 6일 갑진 1/2 기사 / 1565년 명 가정(嘉靖) 44년

양사에서 이양·이감 등의 죄가 잘못 적용되어 여론이 격분함을 아뢰다

국역

양사(兩司)가 아뢰기를,

"예부터 소인이 조정에 있을 적에 위복(威福)을 전천(專擅)하여 죄가 나라를 그르친데에 해당되어서 공론이 나옴에 이르러 조정의 상하가 그 죄상을 환하게 알게 되어서는 처형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위복은 아랫사람에게 옮겨질 수 없고 죄가 나라를 그르친 데에 해당되면 국법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전일 이양의 죄는, 당초 죄주기를 청하던 날 계사(啓辭)에 갖추어져 있으니 지금 일일이 다 들 수 없습니다. 그는 간사한 소인을 끌어 올리고 당여(黨與)를 널리 심어 일국의 권한이 그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임금을 속이고 아래로는 조정을 제어하며 사림을 모함하고 조정 정사를 탁란시켰던 것입니다.

시험삼아 그의 참람한 일을 말하면, 일찍이 평안도에 있을 적에 홍단(紅緞)005) 옷을 겉에 입고 열읍(列邑)에 순행(巡行)하니 보는 사람이 모두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 집안의 거처와 복장도 또한 극히 참람하였습니다. 임금을 무시하고 위복을 전천한 죄는 옛날에서 찾아봐도 그에 비길 자가 드뭅니다.

그런데 당초에 중형으로 치죄하지 않고 다만 귀양보내게 하였으니, 성은(聖恩)은 너무 관대하고 물정(物情)은 더욱 분격하였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스스로 징계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실로 죄를 자인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인데, 남쪽 지방에서 북쪽 지방으로 귀양갈 때에 【이양(李樑)이 처음에 보령(保寧)으로 유배되었다가 뒤에 강계(江界)로 이배(移配)되었다.】 도성 밖에 와서 여러 날 동안 머무르면서 행동거지가 자약하였으니, 그의 방자하고 기탄이 없는 정상은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습니다. 매양 논계할 즈음에 위에서 비답하시되 ‘어리석고 망령되며 원대한 생각이 없어 처사가 잘못된 것이 많았다.’라고 말씀하시니, 여러 사람의 심정이 의혹하여, 혹 위에서 그 죄상을 다 통촉하지 못하신 것이 아닌가 염려합니다.

이감(李戡) 【음흉하고 반복하는 소인으로 이양의 앞잡이가 되어 사림(士林)을 모해하였고 행동이 개돼지와 같아서 자기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으니 소인으로서 더욱 심한 자였다.】 등 5인의 죄는 실로 이양과 차등이 없는데도 모두 귀양보내는 데에 그쳤으니 이 또한 공론이 오랫동안 시원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한때 그들과 왕래한 사람이 어찌 다 심복이 된 자들이겠습니까. 그 중에 음모와 비계(秘計)를 비밀히 그들과 함께 같은 마음으로 논의하여, 무릇 이양이 하는 짓을 참여해 알지 못함이 없는 자는 세상 사람 모두가 보고 손가락질하는 바이므로 진실로 가리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초 죄를 논정할 때에 그 당여를 논함에 있어 경중이 잘못되어 또한 놓아두고 논하지 않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정의 공론이 미편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항간의 의논에 이르러서는 또한 잘못되었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이로써 죄를 정한 뒤에 세월이 오래지 않건만 인심이 안정되지 않고 사의(邪議)가 마구 생기니 이것이 어찌 죄를 진작 분변하지 않고 엄하게 다스리지 않은 소치가 아니겠습니까.

김백균(金百鈞) 【김백균은 품성이 사특하여 소시적부터 벗들에게 버린 바가 되었다. 일찍이 이기(李芑)에게 수학(受學)하였다. 뒤에 과거에 급제하고서는 곧 이기의 집에 나아가 종묘서 직장(宗廟署直長)이 되기를 구하였는데, 김여부(金汝孚)에게 미움을 받아 뜻을 얻지 못하고 곤궁하게 지냈다. 뒤에 김여부를 곡진하게 받들어 광양 현감(光陽縣監)으로 나가서, 진귀한 음식물은 서울의 권귀(權貴)에게 보내고 변변찮은 음식물로 자기 아비를 봉양하였다. 그 아비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나는 자식이 없다.’ 하였다. 그 계모(繼母)가 일찍이 김백균을 배척하여 한집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그 뒤에 그 아비가 죽고 장사를 지내기 전에 갑자기 서로 화합하니, 일가 친척이 다 괴이하게 여겼다. 김백균이 매양 근친(覲親)한다는 명목으로 시골에 돌아가서 항상 계모의 집에 있으니, 더러운 소문이 비로소 전파되었다 한다. 이양과 8촌의 친족인데 스스로 6촌이라 하고, 뇌물을 바치고 받들어 모심이 이르지 않는 바가 없었다. 이양이 주상에게 힘껏 천거하여 특별히 필선(弼善)에 임명되고, 그로 인하여 옥당(玉堂)에 들어갔다. 이양이 패망한 뒤에 그도 패망하여 그의 집으로 돌아와서, 이집(李楫)에게 사적으로 간청하여 다시 서용되기를 바랐다. 이집이 편지를 보내어 ‘명년 을축년006) 정월에 마땅히 대사(大赦)가 있을 터이니, 네가 반드시 서용될 것이다.’ 하였다. 이 때에 와서 과연 사령(赦令)이 있었는데, 이중경(李重慶)이 먼저 서용되었다. 공론이 이를 알아내고서 간인(姦人)이 죄는 중한데 벌은 가볍다 하여 분배(分配)하기를 청하였다.】 은 간사하고 아첨하며 독해하는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이양의 심복이 되어 그 형세를 도와 이루었고, 고맹영(高孟英) 【위인이 교활하고 간사하며, 이양에게 종처럼 굽실거리며 섬겨 드디어 청현(淸顯)의 벼슬에 이르게 되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겨 그와 같은 반열에 서기를 부끄럽게 여겼다.】 은 경망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이양의 집에 출입하여 가장 친밀하여져서 모든 논의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5인의 죄와 다를 것이 없는데 관작만 삭탈하니, 물정이 오랠수록 더욱 분격합니다. 아울러 귀양보내소서.

강극성(姜克誠) 【위인이 경박하고 사특하며 재주를 믿고 교만하였다. 이양을 종처럼 굽실거리며 섬겨 청현(淸顯)한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스스로 잘한 계책으로 여겼으니, 그가 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은 국론(國論)에 죄를 얻어 그 관작이 삭탈되었으니, 두려워하고 물러나 엎드려 있어야 마땅하거늘, 도성에 출입하며 공공연히 객과 접촉하니 그 공론을 업신여김이 심합니다.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소서. 행 사직(行司直) 조광언(趙光彦)은 경망하고 무상(無狀)한 사람으로 그와 당원(黨援)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관작을 보전하므로 물정이 분격하니 관작을 삭탈하소서.

전 박사(博士) 이성헌(李成憲) 【이감(李戡)의 아들이다. 사람들이 시기하고 음험함을 그의 아비에 비하였다.】 은 중죄인의 아들로 심술이 바르지 못한데도 아직까지 사판(仕版)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부호군(副護軍) 이중경(李重慶)은 경망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으로 권간(權奸)에게 빌붙어서 심복이 되어 음모와 비계(秘計)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실로 귀양간 사람과 다름이 없는데 그 관직만 파면하였으므로 공론이 오랠수록 더욱 격분합니다. 관작을 삭탈하여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소서.

이 사람들의 죄는 당초 경중의 적용이 잘못되었으므로 공론과 항의(巷議)가 오랠수록 더욱 격분하는 것이니, 진실로 지엽으로 원용(援用)하여 다스려서는 불가하므로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이양은 거칠고 비루하며 어리석고 망령되어 본디 행검(行檢)이 없었다. 사류(士類)들이 자기를 허여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여 이에 척리(戚里)를 빙자하여 권력을 제 마음대로 부려 교만 방자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간사하고 무뢰한 무리들과 체결하여 요지(要地)에 늘어놓고 관작과 옥사(獄事)를 팔고, 거만하게 스스로 거드름을 피우며 한결같이 윤원형(尹元衡)이 하는 짓을 본받으니, 윤원형이 매우 꺼렸었다. 그러나 끝내 그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도리어 곤경을 당하였다. 계해년007) 에 그의 아들 이정빈(李廷賓)을 정시(庭試)에 장원으로 합격시키고 수개월이 못가서 병조 좌랑으로 삼고, 얼마 못 가서 이조 좌랑으로 삼았다. 그가 갈리게 되자 굳이 유영길(柳永吉)을 천거하여 대임으로 삼게 하였다.―정랑(正郞) 윤인함(尹仁涵)이 그 일을 주장하였다. 윤인함의 처형(妻兄) 정윤희(丁胤禧)이양에게 아첨하여, 윤인함을 시켜 그 일을 주장하게 하였으며, 유영길은 연소하고 경망 조급하여 은밀히 이정빈에게 빌붙었다.― 정랑 박소립(朴素立)과 좌랑 윤두수(尹斗壽) 등이 따르려 하지 않으니 이양의 당이 몹시 노하여―그의 의사는 대개 먼저 유영길을 천거하는 것을 주로 하고 다음에 그 무리인 이성헌(李成憲)이언이(李彦怡) 등과 같은 사람을 차례로 이조 좌랑을 하게 하려 한 것이다.― 윤원형·심통원(沈通源)과 모의하고 이감(李戡)을 사주하여,―이감이 그때 대사헌이었다.― 박소립·기대승(奇大升)―이조 낭관 등이 유영길을 천거하려 하지 않고 기대승에게 뜻을 두었으므로 아울러 미워한 것이다.― 윤두수·이문형(李文馨)을 청담(淸談)으로 나라를 그르친다고 지목하고, 허엽(許曄)·윤근수(尹根壽) 등이 죄인을 신구(伸救)하였다고―허엽·윤근수가 일찍이 경연(經筵)에서, 조광조(趙光祖)·구수담(具壽耼)의 죽음이 그의 죄가 아니라고008) 말한 적이 있다.― 아울러 논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성 밖으로 내쫓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일시의 명사(名士)를 다 죽이고자 하여 이미 그 성명을 몰래 기록하였는데 모두 40여 인이었다. 이를 테면 초야에 물러나서 병을 요양하는 이황(李滉)이나 전려(田廬)에서 농사지어 살아가는 이항(李恒)·조식(曺植) 같은 사람은 다 원한이 없는데도 또한 장차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발론(發論)하기 전에 기대항의 탄핵으로 이양과 그 당류가 죄를 얻어 찬배(竄配)되었으나 윤원형과 심통원의 죄악은 사람들이 또한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이양의 당으로서 고맹영(高孟英)·이언충(李彦忠) 같은 사람은 홍인경(洪仁慶)―이때 집의(執義)였다.―의 극력 구호로 벌을 받음이 매우 가벼우니 인심이 불평하였고, 그 외에도 이와 같은 자가 또한 많았다. 그 뒤에 ‘이양이 다시 임용된다.’고 거리에 성대하게 전파되니 유식한 사람은 이를 근심하였다. 이때 와서 사면령을 반포한 뒤 은전(恩典)을 널리 베풂으로 인하여 이중경의 관직을 서용하도록 명하니, 대간이 드디어 항론(抗論)하고, 옥당(玉堂)도 차자를 올려 그를 논하였다. 뒤에 서쪽 변경의 소요(騷擾)로 인하여 이양 등을 양이(量移)하려 하였으나 끝내 공론에 부대끼어 시행하지 못하였다. 대개 상은 이양 등에게 늘 그리워하는 의사를 두었으니, 소인(小人)은 멀리하기는 어렵고 가까이하기는 쉬움이 이러하다.】

하니, 답하기를,

"이 계사(啓辭)를 살펴보니 일이 매우 소요스러워 내 마음이 편치 아니하다. 간인을 다스리는 데에는 중도에 맞게 해야 하고 깊이 다스려서는 안되니, 그 큰 괴수는 형벌하고 협박에 따른 자는 다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전일 이양(李樑) 등을 정죄(定罪)할 때에 각인(各人)의 죄를 작정(酌定)하였다. 지금 이미 3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어찌 반드시 이미 죄를 받은 자를 다시 들추어내고 혹, 새로운 사람을 추론하여 잇달아 죄를 가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이중경의 일은, 사면령을 반포한 뒤 특별 서용함은 상례(常例)와는 다른 듯하므로 아울러 서용하였는데, 공론이 이와 같으니 전대로 파직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반드시 관작을 삭탈하여 그로 하여금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까지는 없다. 김백균·고맹영은 지금 모름지기 찬출(竄黜)할 것이 없고, 강극성은 물의를 듣게 되면 스스로 두려워서 숨어 있을 터이니 또한 반드시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할 것까지 없다. 조광언(趙光彦)·이성헌(李成憲)은 추론할 수 없으니 더욱 윤허할 수 없다."

하였다.

  • [註 005] 홍단(紅緞) : 붉은 비단.
  • [註 006] 을축년 : 1565 명종 20년.
  • [註 007] 계해년 : 1563 명종 18년.
  • [註 008] 조광조(趙光祖)·구수담(具壽耼)의 죽음이 그의 죄가 아니라고 : 조광조는 중종 때 이상 정치를 펴려 하다가 중종 14년(1519) 기묘 사화(己卯士禍)에 심정(沈貞), 남곤(南袞) 등 훈구파(勳舊派)의 모함을 받아 사사(賜死)되었다. 구수담(具壽耼)은 중종 때 검토관(檢討官)으로 기묘 사화 때 화를 입은 유림(儒林)의 서용을 청했다가 파직되었고, 명종 5년(1550)에 앞서 대윤(大尹) 일파인 유관(柳灌)을 변호했다 하여 사사되었다.

원문

○甲辰/兩司啓曰: "自古, 小人之在朝也, 專擅威福, 罪在誤國, 而至於公論之發, 朝廷上下, 明知其罪狀, 則未有不伏辜於斧鑕之下者。 豈不以威福, 不可以下移, 罪在誤國, 則難逭於國典乎? 頃日李樑之罪, 備在於當初請罪之日, 今不可一一枚擧, 其引進憸邪, 廣植黨與, 一國之權在其掌握。 上以欺君上, 下以制朝廷, 謀陷士林, 濁亂朝政。 試言其僭偪之事, 則曾在平安道, 表着紅段之衣, 巡行列邑, 見者皆驚, 一家之居處服用, 亦極僭濫, 不有君上, 專擅威福之罪, 求之於古, 罕有其比, 而當初不置重典, 只令竄黜, 聖恩太寬, 而物情愈憤, 如少有自艾之心, 則固當負罪惕(息)〔念〕 , 而自南投北之時, 【樑初配保寧, 後移江界。】 來到都城之外, 留連累日, 行止自若, 其縱恣無忌之狀, 此亦可見。 每於論啓之際, 自上批答, 以愚妄無遠慮, 處事多失爲辭, 群情疑惑。 慮或自上未盡洞照其罪狀也。 李戡 【險陂反覆, 爲樑鷹犬。 謀害士林, 行同狗彘, 不父其父, 小人之尤者也。】 等五人之罪, 實與無有差等, 而竝止竄黜, 此亦公論之久而未快者也。 一時所與往來之人, 豈盡爲腹心者哉? 其中陰謀秘計, 密與之同心, 凡之所爲無不與知者, 十目十手, 固不可掩, 而當初定罪之時, 論其黨與, 輕重失宜, 亦有置而不論, 不但朝廷公論以爲未便, 至於巷議, 亦有失宜之譏。 以此定罪之後, 歲月未多, 而人心未靖, 邪議橫生, 此豈非辨之不早, 治之不嚴之所致乎? 金百鈞 【百鈞稟性邪慝, 自少爲朋儕所棄。 嘗受學于李芑, 後得科第, 卽趨芑門, 求爲宗廟直長。 爲金汝孚所惡, 因不得志, 後曲奉汝孚, 出宰光陽, 以珍膳遺洛中權貴, 以薄味奉其父。 其父嘗謂人曰: ‘吾無子。’ 云。 其繼母嘗斥百鈞, 不使在一家。 厥後其父死未葬, 而忽與和洽, 族黨咸怪之。 百鈞每以覲親歸鄕, 恒在繼母之家, 醜聲始播云。 與李樑八寸之族, 自云六寸, 賂遺牢奉, 無所不至。 樑力薦于上, 特授弼善, 因入玉堂。 樑敗後, 敗歸其家。 私懇于李楫, 冀望復敍, 楫通書曰: ‘明年乙丑之正, 當有大赦。 汝必見敍。 至是果有赦, 而李重慶先得敍, 公論覺之, 以姦人罪重罰輕, 請分配。】 以邪媚毒害之人, 與爲腹心, 助成其勢。 高孟英 【爲人狡黠回邪, 奴事李樑, 遂致淸顯, 人皆賤之, 羞與爲列。】 以輕邪之人, 出入其門, 最爲親密, 凡所論議, 亦無不知。 此二人無異於五人之罪, 而只削官爵, 物情久而愈激, 請竝竄逐。 姜克誠 【爲人浮薄輕回, 挾才驕傲。 奴事李樑, 久占淸顯, 自以爲得計。 其敗也宜。】 得罪國論, 削其官爵, 所當恐懼屛伏, 而出入都下, 公然接客, 其不有公論, 甚矣。 請勿使接迹都下。 行司直趙光彦, 以輕妄無狀之人, 與爲黨援, 而尙保官爵, 物情憤激, 請削奪官爵。 前博士李成憲 【勘之子也。 人以猜險, 比於其父。】 以重罪人之子, 心術不正, 尙在仕版。 副護軍李重慶, 以輕回諂媚之人, 攀附權奸, 作爲腹心, 陰謀秘計, 無不與焉。 實與竄配之人無異, 而只罷其職, 公論久而愈激。 請削奪官爵, 使不得接迹都下。 此人之罪, 當初輕重失宜, 故公論巷議, 久而愈激, 固不可以枝葉, 在所援治。 不敢不啓。 【樑麤鄙愚妄, 素無行檢, 嫉士類不與己。 乃憑藉戚里, 弄權驕恣, 締結一時, 恰邪無賴之徒, 布列要地, 賣官鬻獄, 偃然自大, 一效尹元衡所爲。 元衡甚忌之, 而終不能傾, 反爲所困。 癸亥歲, 以其子廷賓魁廷試, 未數月, 爲兵曹佐郞, 未幾爲吏曹佐郞。 及其遞也, 强薦柳永吉爲代, 正郞尹仁涵主其事, 仁涵妻兄丁㣧蒨媚於樑, 敎仁涵主之。 永吉年少輕躁, 密附廷賓。 正郞朴素立、佐郞尹斗壽等, 不肯從。 樑黨怒甚, 其意蓋欲先薦永吉爲主, 次引其類, 如李成憲、李彦怡等迭爲之也。 與元衡、通源, 所謀嗾勘, 勘時爲大司憲, 目朴素立、奇大升時吏曹郞官等, 不肯薦永吉, 而屬意於奇大昇 [升] , 故竝疾之焉。 尹斗壽李文馨爲淸談誤國, 竝論許燁尹根壽伸救罪人, 根壽, 嘗於經筵, 言趙光祖具壽聃之死非罪, 劾請削職, 黜之城外。 欲因此盡殺一時名士, 已潛錄其姓名, 凡四十餘人。 如李滉之退居養病、李恒曺植之田廬食力, 皆無讎怨, 而亦將不免。 未發, 爲奇大恒所劾。 與其黨類, 獲罪被竄, 而元衡通源之惡, 則人亦不敢言。 黨如高孟英李彦忠, 賴洪仁慶, 時爲執義力護, 得罰甚輕。 人心不平。 他如此者, 亦多。 厥後閭巷盛傳, 將復用, 有識憂之。 至是因頒赦後覃恩, 命敍重慶職, 臺諫遂抗論, 玉堂亦上箚論之。 後因西鄙有釁, 欲量移等, 竟迫公論, 不果。 蓋上於等, 常致眷戀之意。 小人之雜踈而易視也, 如是夫!"】 答曰: "觀此啓辭, 事甚騷擾, 予心不寧。 治奸當得其中, 不可深治, 刑厥渠魁, 脅從罔治, 而前日等定罪之時, 酌定各人之罪, 今已三年之久。 何必更擧已被罪者, 或追論新人, 續續加罪乎? 今者, 李重慶事, 頒赦後別敍, 似異常例, 故竝敍, 而公論如此, 仍前罷職可也。 不必削奪官爵, 使不得接迹於都下。 金百鈞高孟英今不須竄黜。 姜克誠若聞物議, 自當屛伏, 亦不必勿使接迹於都下。 趙光彦李成憲, 不可追論。 益不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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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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