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29권, 명종 18년 2월 14일 계해 1/1 기사 / 1563년 명 가정(嘉靖) 42년
기대항·이중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기대항(奇大恒)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이때 대항이 이조 참판이었는데, 상이 특명으로 대사헌에 의망(擬望)012) 하게 하여 제수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기대항에게 무슨 기록할 만한 현능(賢能)함이 있어서 임금의 총애가 특별히 융숭하단 말인가. 좋아하고 미워함이 이와 같으니 정령이 전도됨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이중경(李重慶) 【사람됨이 어둡고 약하여 친구를 취하는 것이 단정하지 못하였다. 이감(李戡)과 혼인을 맺고 이양(李樑)에게 의탁하였으며 윤백원(尹百源)·신사헌(愼思獻)과 밤낮으로 상종하면서도 그들의 추함을 모르고 있어 식자들이 비루하게 여겼다.】 을 이조 참판으로, 윤의중(尹毅中)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박근원(朴謹元)을 사헌부 집의로, 이인(李遴) 【이양에게 아첨하여 발신하였으니 비록 우애가 있다는 칭찬은 있었지만 말할 가치가 없다.】 과 강극성(姜克誠)을 홍문관 응교로, 박인원(朴仁元)을 성균관 사예로, 권순(權純)을 종부시 첨정으로, 김경원(金慶元)을 사간원 사간으로, 박률(朴栗) 【이양에게 붙어서 끊임없이 왕래하였다.】 과 유영길(柳永吉)을 지평으로, 구사맹(具思孟)을 사간원 헌납으로, 황임(黃琳)과 조덕원(趙德源)을 홍문관 교리로, 정엄(鄭淹)을 예조 좌랑으로, 권덕여(權德輿)와 심의겸(沈義謙)을 사간원 정언으로, 이인(李訒)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한번 정사(政事)에서 제수한 열 사람이 모두 이양의 수족들이었는데도 한 사람도 비난하는 자가 없었으니, 이제 이양의 독단과 방자함을 막을 수 없고 국가의 위태로움도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전조를 맡은 자는 정유길(鄭惟吉)인데 권간(權奸)을 아첨으로 섬겼다. 사람을 논할 적에는 장래 전형(銓衡)을 맡을 자는 아무라 하고, 글을 논할 적에는 장래 문형(文衡)을 맡을 자는 아무라 하였지만 전선(銓選)하는 때에는 한결같이 이양의 지시대로 따랐었다. 그러므로 그의 문객(門客)이나 가예(家隸)들의 발탁이 이처럼 많았던 것이다. 아, 광필(光弼)의 후예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註 012] 의망(擬望) : 이조나 병조에서 어떠한 직에 관원을 임명할 적에 후보자 세 사람을 추천하는 것. 이렇게 추천하면 임금이 이 가운데 한 사람을 임명하는데 이를 낙점(落點)이라 한다. 이때 세 사람 추천한 것을 삼망(三望)이라 하고, 한 사람만 추천하였을 경우에는 단망(單望)이라 한다. 주의(注擬).
원문
○癸亥/奇大恒爲司憲府大司憲, 【時, 大恒爲吏曹參判, 上特命擬於大司憲之望而授之。】
【史臣曰: "大恒有何賢能之可紀, 而天眷之特隆邪? 好惡如此, 無怪乎政令之顚倒也。"】
李重慶 【爲人暗弱, 取友不端。 結姻李戡, 托迹李樑, 且結尹百源、愼思報, 日夜相從, 莫知其醜, 識者鄙之。】 爲吏曹參判, 尹毅中爲司諫院大司諫, 朴謹元爲司憲府執義, 李遴、 【諂事李樑, 以發其身, 雖有友愛之稱, 而無足道也。】 姜克誠爲弘文館應敎, 朴仁元爲成均館司藝, 權純爲宗簿寺僉正, 金慶元爲司諫院司諫, 朴栗、 【依附李樑, 往來不已。】 柳永吉爲持平, 具思孟爲司諫院獻納, 黃琳、趙德源爲弘文館校理, 鄭淹爲禮曹佐郞, 權德輿、沈義謙爲司諫院正言, 李訒爲弘文館副修撰。
【史臣曰: "一政十人之除, 皆樑之鷹犬, 而無有一人間之者。 於是樑之專恣, 不可禦, 而國家之危, 無如之何矣。 判銓曹者, 鄭惟吉, 而諂附權奸, 論人則曰將來主銓衡者某也, 論文則曰將來典文衡者某也, 至於銓選之際, 一聽樑之頤指, 故其門客、家隷之騰揚遷擢, 若是其盛也。 嗚呼, 孰謂光弼之後, 乃有此人哉!"】
명종 18년 (1563) 2월 14일
명종실록29권, 명종 18년 2월 14일 계해 1/1 기사 / 1563년 명 가정(嘉靖) 42년
기대항·이중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기대항(奇大恒)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이때 대항이 이조 참판이었는데, 상이 특명으로 대사헌에 의망(擬望)012) 하게 하여 제수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기대항에게 무슨 기록할 만한 현능(賢能)함이 있어서 임금의 총애가 특별히 융숭하단 말인가. 좋아하고 미워함이 이와 같으니 정령이 전도됨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이중경(李重慶) 【사람됨이 어둡고 약하여 친구를 취하는 것이 단정하지 못하였다. 이감(李戡)과 혼인을 맺고 이양(李樑)에게 의탁하였으며 윤백원(尹百源)·신사헌(愼思獻)과 밤낮으로 상종하면서도 그들의 추함을 모르고 있어 식자들이 비루하게 여겼다.】 을 이조 참판으로, 윤의중(尹毅中)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박근원(朴謹元)을 사헌부 집의로, 이인(李遴) 【이양에게 아첨하여 발신하였으니 비록 우애가 있다는 칭찬은 있었지만 말할 가치가 없다.】 과 강극성(姜克誠)을 홍문관 응교로, 박인원(朴仁元)을 성균관 사예로, 권순(權純)을 종부시 첨정으로, 김경원(金慶元)을 사간원 사간으로, 박률(朴栗) 【이양에게 붙어서 끊임없이 왕래하였다.】 과 유영길(柳永吉)을 지평으로, 구사맹(具思孟)을 사간원 헌납으로, 황임(黃琳)과 조덕원(趙德源)을 홍문관 교리로, 정엄(鄭淹)을 예조 좌랑으로, 권덕여(權德輿)와 심의겸(沈義謙)을 사간원 정언으로, 이인(李訒)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한번 정사(政事)에서 제수한 열 사람이 모두 이양의 수족들이었는데도 한 사람도 비난하는 자가 없었으니, 이제 이양의 독단과 방자함을 막을 수 없고 국가의 위태로움도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 전조를 맡은 자는 정유길(鄭惟吉)인데 권간(權奸)을 아첨으로 섬겼다. 사람을 논할 적에는 장래 전형(銓衡)을 맡을 자는 아무라 하고, 글을 논할 적에는 장래 문형(文衡)을 맡을 자는 아무라 하였지만 전선(銓選)하는 때에는 한결같이 이양의 지시대로 따랐었다. 그러므로 그의 문객(門客)이나 가예(家隸)들의 발탁이 이처럼 많았던 것이다. 아, 광필(光弼)의 후예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 [註 012] 의망(擬望) : 이조나 병조에서 어떠한 직에 관원을 임명할 적에 후보자 세 사람을 추천하는 것. 이렇게 추천하면 임금이 이 가운데 한 사람을 임명하는데 이를 낙점(落點)이라 한다. 이때 세 사람 추천한 것을 삼망(三望)이라 하고, 한 사람만 추천하였을 경우에는 단망(單望)이라 한다. 주의(注擬).
원문
○癸亥/奇大恒爲司憲府大司憲, 【時, 大恒爲吏曹參判, 上特命擬於大司憲之望而授之。】
【史臣曰: "大恒有何賢能之可紀, 而天眷之特隆邪? 好惡如此, 無怪乎政令之顚倒也。"】
李重慶 【爲人暗弱, 取友不端。 結姻李戡, 托迹李樑, 且結尹百源、愼思報, 日夜相從, 莫知其醜, 識者鄙之。】 爲吏曹參判, 尹毅中爲司諫院大司諫, 朴謹元爲司憲府執義, 李遴、 【諂事李樑, 以發其身, 雖有友愛之稱, 而無足道也。】 姜克誠爲弘文館應敎, 朴仁元爲成均館司藝, 權純爲宗簿寺僉正, 金慶元爲司諫院司諫, 朴栗、 【依附李樑, 往來不已。】 柳永吉爲持平, 具思孟爲司諫院獻納, 黃琳、趙德源爲弘文館校理, 鄭淹爲禮曹佐郞, 權德輿、沈義謙爲司諫院正言, 李訒爲弘文館副修撰。
【史臣曰: "一政十人之除, 皆樑之鷹犬, 而無有一人間之者。 於是樑之專恣, 不可禦, 而國家之危, 無如之何矣。 判銓曹者, 鄭惟吉, 而諂附權奸, 論人則曰將來主銓衡者某也, 論文則曰將來典文衡者某也, 至於銓選之際, 一聽樑之頤指, 故其門客、家隷之騰揚遷擢, 若是其盛也。 嗚呼, 孰謂光弼之後, 乃有此人哉!"】
원본
명종 18년 (1563) 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