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실록19권, 명종 10년 7월 6일 무술 4/6 기사 /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제주 목사 김수문이 왜적이 침공한 것에 대해 장계하다
국역
제주 목사 김수문(金秀文)이 장계(狀啓)하였다.
"6월 27일, 무려 1천여 인의 왜적이 뭍으로 올라와 진을 쳤습니다. 신이 날랜 군사 70인을 뽑아 거느리고 진 앞으로 돌격하여 30보(步)의 거리까지 들어갔습니다. 화살에 맞은 왜인이 매우 많았는데도 퇴병(退兵)하지 않으므로 정로위(定虜衛) 김직손(金直孫), 갑사(甲士) 김성조(金成祖)·이희준(李希俊), 보인(保人)068) 문시봉(文時鳳) 등 4인이 말을 달려 돌격하자 적군은 드디어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홍모두구(紅毛頭具) 【투구이다.】 를 쓴 한 왜장(倭將)이 자신의 활솜씨만 믿고 홀로 물러가지 않으므로 정병(正兵) 김몽근(金夢根)이 그의 등을 쏘아 명중시키자 곧 쓰러졌습니다. 이에 아군이 승세를 타고 추격하였으므로 참획(斬獲)이 매우 많았습니다."
- [註 068] 보인(保人) : 정병(正兵)을 돕기 위해서 둔 조정(助丁). 원래는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에 현역병의 농작(農作)에 노동력을 제공하게 했었으나 뒤에는 군대의 비용으로 쓰기 위해 역(役)을 면제하여 주는 댓가로 보미(保米)나 보포(保布)를 받았다.
원문
명종실록19권, 명종 10년 7월 6일 무술 4/6 기사 / 1555년 명 가정(嘉靖) 34년
제주 목사 김수문이 왜적이 침공한 것에 대해 장계하다
국역
제주 목사 김수문(金秀文)이 장계(狀啓)하였다.
"6월 27일, 무려 1천여 인의 왜적이 뭍으로 올라와 진을 쳤습니다. 신이 날랜 군사 70인을 뽑아 거느리고 진 앞으로 돌격하여 30보(步)의 거리까지 들어갔습니다. 화살에 맞은 왜인이 매우 많았는데도 퇴병(退兵)하지 않으므로 정로위(定虜衛) 김직손(金直孫), 갑사(甲士) 김성조(金成祖)·이희준(李希俊), 보인(保人)068) 문시봉(文時鳳) 등 4인이 말을 달려 돌격하자 적군은 드디어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홍모두구(紅毛頭具) 【투구이다.】 를 쓴 한 왜장(倭將)이 자신의 활솜씨만 믿고 홀로 물러가지 않으므로 정병(正兵) 김몽근(金夢根)이 그의 등을 쏘아 명중시키자 곧 쓰러졌습니다. 이에 아군이 승세를 타고 추격하였으므로 참획(斬獲)이 매우 많았습니다."
- [註 068] 보인(保人) : 정병(正兵)을 돕기 위해서 둔 조정(助丁). 원래는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에 현역병의 농작(農作)에 노동력을 제공하게 했었으나 뒤에는 군대의 비용으로 쓰기 위해 역(役)을 면제하여 주는 댓가로 보미(保米)나 보포(保布)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