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102권, 중종 39년 2월 9일 무인 2/4 기사 /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대신들에게 몸이 불편하여 물러나 쉴 의사를 밝히다
국역
영의정 윤은보,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윤인경 등이 아뢰기를,
"상의 옥체가 찬바람에 감환(感患)이 드셨다가 오래지 않아 쾌차하시니 조정의 기쁨과 경사를 이루 다 전달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 해소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 심한 추위를 무릅쓰고 경연(經筵)에 나아오셨기 때문에 전일의 증세가 재발한 것입니다. 요즘 공사(公事)가 약간 적체되었으나 만약 속히 공사를 살피려 하다가는 필시 조리하시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니 우선 일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점차 공사를 보심이 좋겠습니다. 대체로 봄은 음양이 교차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일기가 아직도 한랭하니 오래도록 공사보는 일을 중단하였다가 조리를 잘하여 쾌차한 뒤에 서서히 보심이 마땅합니다. 송 인종(宋仁宗)은 어진 임금인데도 천하의 번거로운 만기(萬機)를 살핌에 있어 봄날씨가 아주 따뜻해진 뒤에야 경연에 나아갔으니 이것이 어찌 심사 숙고해서가 아니었겠습니까. 또 해소 증세는 냉한 음식을 과하게 드셨기 때문이니 지금부터 절대로 들지 않으면 영구히 나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 병이 비록 나았다고는 하나 지금은 방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 어찌 나았다고 해서 가볍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찬 음식을 삼가고 조리를 잘하여 우선 봄날씨가 화창하여진 다음 차차로 공사를 보라는 경들의 말이 지당하다. 정원에 적체된 공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시급하지 않은 공사라면 차차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내 나이 육순에 가까와 조금이라도 조섭을 잘못하면 질병이 곧장 발생한다. 지난해 전시(殿試)035) 이후 한번도 행행한 일이 없고 올해부터는 병환이 잇따랐다. 이것으로 보건대 노쇠함이 실로 전과 같지 않으니 내 심회를 어찌 감히 속일 수 있겠는가.
내가 즉위한 지 거의 40년이 되어 몇 년만 지나면 육순으로, 신하 같으면 이 나이에는 사직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임금의 자리는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라 공사를 보는 데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고 친제(親祭) 역시 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기력이 쇠했으니 필시 그르칠까 염려된다. 기동(起動)이 완전하지 못하니 비록 억지로 공사를 보고 친히 제사를 드리려 해도 기력이 감당할 수가 없다. 만약 중국 사신이라도 나오게 되면 더욱 접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 무술년036) 에도 물러나 쉬려고 했지만 그때는 기력이 지금보다는 더 건강했고 또 무단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 점점 쇠퇴해 가니 여러 사람들이 어찌 이상하게 여길 것인가. 역대의 연로한 제왕(帝王) 중에 물러나 여생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이것은 곧 내가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으로 급히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기력이 점차로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보니 형세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였다. 은보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금년은 일기가 고르지 못하여 갑자기 따뜻했다 추웠다 하므로 아랫사람들도 감기가 든 사람이 많습니다. 상의 옥체는 본디 병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증세는 즉시 나은 것인데 어찌 소소한 증세 때문에 갑자기 이러한 생각을 하십니까? 이번의 전교로 반드시 온 조정이 모두 해괴하게 여길 것이니 이러한 하교는 하지 마소서."
하니, 답하기를,
"임금이 책무는 부지런함이 가장 큰 일인데 내가 비록 큰 병은 없다고 하더라도 본디 풍질(風疾)이 있어 요즘 공사를 보는 데 있어 점차 전과 같지 않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였다. 은보 등이 아뢰기를,
"상께서 소의 한식(宵衣旰食)037) 으로 근심하고 고생하심이 시종여일하니 어찌 공사가 적체될 리가 있겠습니까. 정사에 부지런하심이 이 이상 더하실 수가 없습니다. 옛 임금 중에는 거의 90여 세에 이르도록 재위한 이도 있다는 사실은 상께서도 통찰한 바이니 일일이 예거(例擧)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번 감환(感患)은 큰 병이 아닌데 이러한 전교를 내리시니 미안합니다. 저번 무술년038) 에도 이러한 계책 때문에 인심이 동요하여 성균관 유생들까지 상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근래 인심이 더욱 각박하니 상께서 진정시키셔야지 만에 하나라도 갑자기 이러한 생각을 내셔서는 안 됩니다. 상께서 이번 하교가 부당하다고 하시어 이 하교가 잘못되었음을 다시 보이신 뒤에라야 신하들의 의아심이 풀릴 것입니다. 신들은 처음 전교를 듣고 매우 미안하여 황망한 중에 소회(所懷)를 다 전달하지 못하다가 지금에야 다시 자세히 듣고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옛임금 중에는 90여 세까지 재위한 위 무공(衛武公)039) 같은 어진 임금도 있었지만 내가 무슨 선치(善治)를 했다고 감히 옛 임금을 비할 수 있겠는가? 이번의 이 말은 내가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다.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비록 훌륭하진 못하나 만백성 위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근심해야지 어찌 감히 태만할 수가 있겠는가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력이 점점 쇠퇴하여 정사를 보는 것도 처음과 같지 않아서 인심과 풍속을 변하게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닌데 완악하고 쇠퇴한 풍속이 지금보다 심한 때가 없다. 내가 즉시 물러나서 쉬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는 곧 임금이 중책을 수행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하는 겸사(謙辭)이다. 지금 이 말을 듣고 내 본의를 자세히 안다면 어찌 동요할 리가 있겠는가. 만약 동요한다면 인심이 각박함을 더욱 알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강명(剛明)하고 과단성 있는 임금도 진정하기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나같이 혼암하고 용렬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경들이 훌륭한 정치를 이루려고 한다면 내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지 말고 힘을 다하여 세도(世道)를 만회함으로써 인심을 진정시키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3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 [註 035] 전시(殿試) : 문과(文科)의 복시(覆試)에서 선발된 33명과 무과(武科)의 복시에서 선발된 28명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궐내(闕內)에 모아 놓고 왕이 친림(親臨)하여 보이던 시험.
- [註 036] 무술년 : 1538 중종 33년.
- [註 037] 소의 한식(宵衣旰食) : 임금이 정사에 부지런하다는 뜻. 새벽녘에 일어나 정복(正服)을 입고 해가 진 뒤에 저녁 먹는다는 뜻에서 온 말. 서릉(徐陵) 진 문제 애책문(陳文帝哀策文).
- [註 038] 무술년 : 1538 중종 33년.
- [註 039] 위 무공(衛武公) : 춘추 시대 위나라의 임금으로 재위(在位) 55년에 향년(享年) 95세였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원문
○領議政尹殷輔、左議政洪彦弼、右議政尹仁鏡等啓曰: "上體感冒風寒, 未久差復, 朝廷喜慶, 何可盡達? 頃者咳嗽猶未快愈, 而適當極寒, 出御經筵, 故前證復發。 近日公事, 雖暫積滯, 若欲速覽, 則必妨於調理, 姑待日候溫暖, 隨後漸見爲當。 大抵春節, 乃陰陽交戰之時, 日氣今尙寒冷, 固宜久絶視事, 而極調快差然後, 徐徐漸見也。 宋 仁宗, 賢主也, 御天下萬機之煩, 而猶待春氣極暖然後, 乃爲經筵, 此豈非深思熟慮? 且咳嗽之證, 以過進冷物所致, 今絶不進, 則乃永瘳。" 答曰: "予病雖愈時, 不出房外。 豈以旣愈而忽之? 愼冷物, 善調攝, 姑待春氣和暖然後, 漸見公事, 卿等之言至當。 不知於政院, 有積滯公事乎? 若非汲汲公事, 漸見爲當。 然予年幾六旬, 少或失攝, 疾病輒發。 前年殿試後, 一不行幸, 自今歲病患連緜。 由是觀之, 年衰果不如初也, 予之所懷, 豈敢諱之? 予卽位垂四十年, 若過數載, 是六旬也。 如人臣則此年可以辭職, 況人君百責所萃, 視事不可不勤, 親祭亦不可不爲, 而氣衰則計慮必誤。 起動不快, 雖欲强於視事親祭, 而力不能堪。 萬一若遇華使出來, 則尤不能接待。 前於戊戌年, 雖欲退休, 其時氣力, 則比今猶强, 而以無端, 故人情竝駭矣。 予年漸衰, 則群情豈以爲駭? 歷代帝王年老者, 孰不退休餘年? 非可駭之事也。 此乃予素懷, 非令欲速爲之。 觀予氣力, 漸不如初, 則勢恐至於將然矣。" 殷輔等回啓曰: "今年日候不調, 遽溫遽寒, 故下人亦多感寒。 上體本以無病, 故此證卽愈, 豈可以小證之故, 遽生如此之計乎? 今此傳敎, 朝廷群情, 必皆驚駭, 請勿爲如此之敎。" 答曰: "人君之責, 莫大於勤, 予雖無大病, 本有風疾, 近來視事, 漸不如初, 故如此云。" 殷輔等啓曰: "聖上宵旰憂勤, 始終如一, 豈有積滯公事乎? 聽政之勤, 無以復加。 古之人君, 在位享國, 幾至九十餘歲者, 亦有之, 此皆自上所洞知, 何敢枚擧? 今者感寒, 是微恙, 非大病也, 爲此傳敎, 至爲未安。 前於戊戌年, 亦爲如此之計, 人心搖動, 至於成均館儒生等, 亦已上疏。 近來人心澆薄尤甚, 自上所當鎭定, 不可遽生此意於萬一。 請自上以此敎爲不當, 而更示此敎之誤然後, 群疑可釋。 臣等初聞傳敎, 心甚未安, 忙迫間未盡所懷, 今復詳見敢啓。" 答曰: "古之人君, 至於九十餘歲者, 有若衛武公之賢君也, 予何有善治, 而敢比於古哉? 今此之言, 非由於感冒之病。 常念予雖不穀, 居萬民之上, 夙夜憂懼, 何敢慢忽? 然心常未安者, 氣力漸衰, 視事亦不如初, 而人心風俗, 非徒不能變之, 頑風敗俗, 莫甚於此時。 予非欲卽爲退休也, 此乃人君恐不克負荷, 謙遜之意也。 今聞此言, 詳知予意, 則豈有搖動之理乎? 若果搖動, 人心澆薄, 尤爲可知, 雖以剛明果斷之君, 難以鎭定, 況如予昏庸者, 豈能變之? 卿等欲致善治, 則其勿以予爲不賢, 而所當勉力挽回世道, 務鎭人心也。"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3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중종 39년 (1544) 2월 9일
중종실록102권, 중종 39년 2월 9일 무인 2/4 기사 / 1544년 명 가정(嘉靖) 23년
대신들에게 몸이 불편하여 물러나 쉴 의사를 밝히다
국역
영의정 윤은보, 좌의정 홍언필, 우의정 윤인경 등이 아뢰기를,
"상의 옥체가 찬바람에 감환(感患)이 드셨다가 오래지 않아 쾌차하시니 조정의 기쁨과 경사를 이루 다 전달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 해소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는데 심한 추위를 무릅쓰고 경연(經筵)에 나아오셨기 때문에 전일의 증세가 재발한 것입니다. 요즘 공사(公事)가 약간 적체되었으나 만약 속히 공사를 살피려 하다가는 필시 조리하시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니 우선 일기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점차 공사를 보심이 좋겠습니다. 대체로 봄은 음양이 교차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일기가 아직도 한랭하니 오래도록 공사보는 일을 중단하였다가 조리를 잘하여 쾌차한 뒤에 서서히 보심이 마땅합니다. 송 인종(宋仁宗)은 어진 임금인데도 천하의 번거로운 만기(萬機)를 살핌에 있어 봄날씨가 아주 따뜻해진 뒤에야 경연에 나아갔으니 이것이 어찌 심사 숙고해서가 아니었겠습니까. 또 해소 증세는 냉한 음식을 과하게 드셨기 때문이니 지금부터 절대로 들지 않으면 영구히 나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내 병이 비록 나았다고는 하나 지금은 방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 어찌 나았다고 해서 가볍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찬 음식을 삼가고 조리를 잘하여 우선 봄날씨가 화창하여진 다음 차차로 공사를 보라는 경들의 말이 지당하다. 정원에 적체된 공사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시급하지 않은 공사라면 차차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내 나이 육순에 가까와 조금이라도 조섭을 잘못하면 질병이 곧장 발생한다. 지난해 전시(殿試)035) 이후 한번도 행행한 일이 없고 올해부터는 병환이 잇따랐다. 이것으로 보건대 노쇠함이 실로 전과 같지 않으니 내 심회를 어찌 감히 속일 수 있겠는가.
내가 즉위한 지 거의 40년이 되어 몇 년만 지나면 육순으로, 신하 같으면 이 나이에는 사직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임금의 자리는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라 공사를 보는 데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고 친제(親祭) 역시 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 기력이 쇠했으니 필시 그르칠까 염려된다. 기동(起動)이 완전하지 못하니 비록 억지로 공사를 보고 친히 제사를 드리려 해도 기력이 감당할 수가 없다. 만약 중국 사신이라도 나오게 되면 더욱 접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난 무술년036) 에도 물러나 쉬려고 했지만 그때는 기력이 지금보다는 더 건강했고 또 무단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이제는 내가 나이가 들어 점점 쇠퇴해 가니 여러 사람들이 어찌 이상하게 여길 것인가. 역대의 연로한 제왕(帝王) 중에 물러나 여생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이것은 곧 내가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으로 급히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 기력이 점차로 전과 같지 않은 것을 보니 형세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였다. 은보 등이 회계(回啓)하기를,
"금년은 일기가 고르지 못하여 갑자기 따뜻했다 추웠다 하므로 아랫사람들도 감기가 든 사람이 많습니다. 상의 옥체는 본디 병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증세는 즉시 나은 것인데 어찌 소소한 증세 때문에 갑자기 이러한 생각을 하십니까? 이번의 전교로 반드시 온 조정이 모두 해괴하게 여길 것이니 이러한 하교는 하지 마소서."
하니, 답하기를,
"임금이 책무는 부지런함이 가장 큰 일인데 내가 비록 큰 병은 없다고 하더라도 본디 풍질(風疾)이 있어 요즘 공사를 보는 데 있어 점차 전과 같지 않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였다. 은보 등이 아뢰기를,
"상께서 소의 한식(宵衣旰食)037) 으로 근심하고 고생하심이 시종여일하니 어찌 공사가 적체될 리가 있겠습니까. 정사에 부지런하심이 이 이상 더하실 수가 없습니다. 옛 임금 중에는 거의 90여 세에 이르도록 재위한 이도 있다는 사실은 상께서도 통찰한 바이니 일일이 예거(例擧)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번 감환(感患)은 큰 병이 아닌데 이러한 전교를 내리시니 미안합니다. 저번 무술년038) 에도 이러한 계책 때문에 인심이 동요하여 성균관 유생들까지 상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근래 인심이 더욱 각박하니 상께서 진정시키셔야지 만에 하나라도 갑자기 이러한 생각을 내셔서는 안 됩니다. 상께서 이번 하교가 부당하다고 하시어 이 하교가 잘못되었음을 다시 보이신 뒤에라야 신하들의 의아심이 풀릴 것입니다. 신들은 처음 전교를 듣고 매우 미안하여 황망한 중에 소회(所懷)를 다 전달하지 못하다가 지금에야 다시 자세히 듣고 감히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옛임금 중에는 90여 세까지 재위한 위 무공(衛武公)039) 같은 어진 임금도 있었지만 내가 무슨 선치(善治)를 했다고 감히 옛 임금을 비할 수 있겠는가? 이번의 이 말은 내가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다. 항상 생각하기를, 내가 비록 훌륭하진 못하나 만백성 위에 있으면서 밤낮으로 근심해야지 어찌 감히 태만할 수가 있겠는가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력이 점점 쇠퇴하여 정사를 보는 것도 처음과 같지 않아서 인심과 풍속을 변하게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닌데 완악하고 쇠퇴한 풍속이 지금보다 심한 때가 없다. 내가 즉시 물러나서 쉬겠다는 것이 아니고 이는 곧 임금이 중책을 수행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하는 겸사(謙辭)이다. 지금 이 말을 듣고 내 본의를 자세히 안다면 어찌 동요할 리가 있겠는가. 만약 동요한다면 인심이 각박함을 더욱 알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강명(剛明)하고 과단성 있는 임금도 진정하기 어려울 것인데 하물며 나같이 혼암하고 용렬한 사람이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경들이 훌륭한 정치를 이루려고 한다면 내가 어질지 못하다고 하지 말고 힘을 다하여 세도(世道)를 만회함으로써 인심을 진정시키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3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 [註 035] 전시(殿試) : 문과(文科)의 복시(覆試)에서 선발된 33명과 무과(武科)의 복시에서 선발된 28명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궐내(闕內)에 모아 놓고 왕이 친림(親臨)하여 보이던 시험.
- [註 036] 무술년 : 1538 중종 33년.
- [註 037] 소의 한식(宵衣旰食) : 임금이 정사에 부지런하다는 뜻. 새벽녘에 일어나 정복(正服)을 입고 해가 진 뒤에 저녁 먹는다는 뜻에서 온 말. 서릉(徐陵) 진 문제 애책문(陳文帝哀策文).
- [註 038] 무술년 : 1538 중종 33년.
- [註 039] 위 무공(衛武公) : 춘추 시대 위나라의 임금으로 재위(在位) 55년에 향년(享年) 95세였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원문
○領議政尹殷輔、左議政洪彦弼、右議政尹仁鏡等啓曰: "上體感冒風寒, 未久差復, 朝廷喜慶, 何可盡達? 頃者咳嗽猶未快愈, 而適當極寒, 出御經筵, 故前證復發。 近日公事, 雖暫積滯, 若欲速覽, 則必妨於調理, 姑待日候溫暖, 隨後漸見爲當。 大抵春節, 乃陰陽交戰之時, 日氣今尙寒冷, 固宜久絶視事, 而極調快差然後, 徐徐漸見也。 宋 仁宗, 賢主也, 御天下萬機之煩, 而猶待春氣極暖然後, 乃爲經筵, 此豈非深思熟慮? 且咳嗽之證, 以過進冷物所致, 今絶不進, 則乃永瘳。" 答曰: "予病雖愈時, 不出房外。 豈以旣愈而忽之? 愼冷物, 善調攝, 姑待春氣和暖然後, 漸見公事, 卿等之言至當。 不知於政院, 有積滯公事乎? 若非汲汲公事, 漸見爲當。 然予年幾六旬, 少或失攝, 疾病輒發。 前年殿試後, 一不行幸, 自今歲病患連緜。 由是觀之, 年衰果不如初也, 予之所懷, 豈敢諱之? 予卽位垂四十年, 若過數載, 是六旬也。 如人臣則此年可以辭職, 況人君百責所萃, 視事不可不勤, 親祭亦不可不爲, 而氣衰則計慮必誤。 起動不快, 雖欲强於視事親祭, 而力不能堪。 萬一若遇華使出來, 則尤不能接待。 前於戊戌年, 雖欲退休, 其時氣力, 則比今猶强, 而以無端, 故人情竝駭矣。 予年漸衰, 則群情豈以爲駭? 歷代帝王年老者, 孰不退休餘年? 非可駭之事也。 此乃予素懷, 非令欲速爲之。 觀予氣力, 漸不如初, 則勢恐至於將然矣。" 殷輔等回啓曰: "今年日候不調, 遽溫遽寒, 故下人亦多感寒。 上體本以無病, 故此證卽愈, 豈可以小證之故, 遽生如此之計乎? 今此傳敎, 朝廷群情, 必皆驚駭, 請勿爲如此之敎。" 答曰: "人君之責, 莫大於勤, 予雖無大病, 本有風疾, 近來視事, 漸不如初, 故如此云。" 殷輔等啓曰: "聖上宵旰憂勤, 始終如一, 豈有積滯公事乎? 聽政之勤, 無以復加。 古之人君, 在位享國, 幾至九十餘歲者, 亦有之, 此皆自上所洞知, 何敢枚擧? 今者感寒, 是微恙, 非大病也, 爲此傳敎, 至爲未安。 前於戊戌年, 亦爲如此之計, 人心搖動, 至於成均館儒生等, 亦已上疏。 近來人心澆薄尤甚, 自上所當鎭定, 不可遽生此意於萬一。 請自上以此敎爲不當, 而更示此敎之誤然後, 群疑可釋。 臣等初聞傳敎, 心甚未安, 忙迫間未盡所懷, 今復詳見敢啓。" 答曰: "古之人君, 至於九十餘歲者, 有若衛武公之賢君也, 予何有善治, 而敢比於古哉? 今此之言, 非由於感冒之病。 常念予雖不穀, 居萬民之上, 夙夜憂懼, 何敢慢忽? 然心常未安者, 氣力漸衰, 視事亦不如初, 而人心風俗, 非徒不能變之, 頑風敗俗, 莫甚於此時。 予非欲卽爲退休也, 此乃人君恐不克負荷, 謙遜之意也。 今聞此言, 詳知予意, 則豈有搖動之理乎? 若果搖動, 人心澆薄, 尤爲可知, 雖以剛明果斷之君, 難以鎭定, 況如予昏庸者, 豈能變之? 卿等欲致善治, 則其勿以予爲不賢, 而所當勉力挽回世道, 務鎭人心也。"
- 【태백산사고본】 52책 10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9책 39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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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39년 (1544)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