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49권, 중종 18년 8월 17일 갑인 1/2 기사 /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한석호 등의 일에 대한 계복을 듣다
국역
계복(啓覆)418) 을 들었다. 승지(承旨) 윤인경(尹仁鏡)이 의금부(義禁府)에 갇혀 있는 전 서천 군수(舒川郡守) 한석호(韓碩豪)의 추안(推案)419) 을 가지고 아뢰기를,
"한석호가 동벌라도(東伐羅島)에 가서 수토(搜討)하는 일로 차정(差定)된 뒤에 주장(主將)의 영을 어긴 죄는 참대시(斬待時)420) 에 해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형을 감면하도록 하라."
하매, 집의(執義) 정응린(鄭應麟)이 아뢰기를,
"한석호는 나윤정(羅允貞)이 즉시 신보(申報)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하나, 가두지는 않고 늦게 신보한 죄를 청하기만 하였으니, 그 정상을 알 만합니다. 더구나 나윤정이 도망한 까닭은 주수(主帥)의 일을 바른대로 공초(供招)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의손(沈義孫) 등의 일은 이미 죄를 결단하였으므로 다시 중률(重律)을 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제까지 유난(留難)하시거니와, 한석호의 일은 용서할 수 없으니 율문(律文)대로 죄를 정하소서."
하고, 정언(正言) 강숭덕(姜崇德)이 아뢰기를,
"군기(軍機)에 관한 일은 엄명해야 하는데, 이런데도 죄주지 않으면 군정이 해이해질까 염려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윤정의 도망은 그 주수를 비호하는 듯하기는 하나, 한석호가 이미 갈렸으므로 비호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 상언(上言)의 뜻을 보면 관찰사(觀察使)가 곧 차정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나윤정이 이미 도망하였으므로 그 죄를 빙열(憑閱)할 수 없으니, 이는 심의손의 예와 같지 않으므로 율문대로 할 수 없다."
하매, 정응린이 아뢰기를,
"사형을 감면시키시면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德)에 있어서는 참으로 아름답겠으나, 군율은 굽힐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계복 때에 좌우가 수많이 들어와 참여하는 까닭은 그 일을 널리 순문(詢問)하려는 것이다. 이번 한석호의 일은 좌우의 뜻에는 어떠한가? 각각 아뢰라."
하매, 홍숙(洪淑)이 아뢰기를,
"군율은 엄한 것을 귀하게 여기므로 조금 범하였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데, 이제 한석호가 범한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마는, 감사(監司)의 관자(關子)421) 가 늦게 전보(傳報)되었다는 것만은 의심할 만한 것입니다."
하고, 이행(李荇)이 아뢰기를,
"군법은 엄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장(邊將)은 기회를 당하여 쾌히 결단해서 죄를 정하였으면 그만이겠으나, 조정에서 이와 같이 함께 의논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조금도 의심할 만한 것이 없고 나서 법을 보여야 합니다. 상께서 참작하여 분별하셔야 마땅합니다."
하고, 신상(申鏛)이 아뢰기를,
"정상에 의심할 만한 것이 있으면, 상께서 짐작하셔야 합니다."
하고, 조계상(曺繼商)이 아뢰기를,
"한석호는 이미 공초하여 승복하였으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데가 있으면 가벼이 일죄(一罪)422) 를 가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고, 윤은보(尹殷輔)가 아뢰기를,
"사형을 결단하는 중대한 일이니, 부득이 사간(事干)423) 을 아울러 추문(推問)하고 나서 결단해야 합니다. 한석호의 일은 나윤정이 도망중이므로 추열(推閱)할 데가 없는데, 일죄는 매우 중하므로 가벼이 시행하여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고, 김안로(金安老)가 아뢰기를,
"근래 군율이 해이해졌으므로 대간이 논계(論啓)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윤정이 도망중이므로 추열하여 귀일(歸一)시킬 수 없으니, 상께서 그 정상과 법을 참작하여 처치하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상례(常例)와 같은 공사(公事)라면 당자가 이미 승복하였으니 사간을 빙문(憑問)할 것 없겠으나, 이제 이 일죄는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나윤정이 도망중이므로 질문할 데가 없으니 사형을 감면해야 하며, 일죄를 감면하더라도 그 죄가 작지 않다."
하였다. 윤인경이 또 교하(交河)에 갇혀 있는 사노(私奴) 울산[于乙山]의 추안(推案)을 가지고 아뢰기를,
"울산이 제 화처(花妻)424) 의 아비 배두사(裵豆舍)가 누워 있는 방의 벽을 발로 차서 부서진 벽에 눌려 죽게 한 죄를 교대시(絞待時)425) 로 조율(照律)하였는데, 초복(初覆)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뜻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니니, 사형을 감면하라."
하였다. 김말문(金末文)이 아뢴 ‘절도(竊盜)를 세 번 범하여 종[奴]으로 영속(永屬)되었는데 세 번 도망해 온 자와 사노(寺奴)426) 막동(莫同)의 참대시(斬待時)의 죄’와 또 아뢴 ‘백정(白丁)427) 김의손(金義孫)·전석산(田石山) 등 명화적(明火賊)428) 의 참부대시(斬不待時)의 죄’는 다 삼복(三覆)이었는데, 율문대로 하라 하였다.
- [註 418] 계복(啓覆) : 복심(覆審)을 아룀. 사죄(死罪)는 신중히 심리(審理)하기 위하여 초복(初覆)·재복(再覆)·삼복(三覆), 즉 세 번의 복심을 거치는데 복심 때마다 임금에게 아뢴다.
- [註 419] 추안(推案) : 죄인 등을 추문(推問)한 사실을 적은 문서.
- [註 420] 참대시(斬待時) : 참형(斬刑)에 처하되 시기를 기다려 집행하는 것. 참형은 《대명률(大明律)》 오형(五刑: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 중에서 가장 중한 사형 중의 하나로 사죄(死罪) 중에서도 죄가 좀더 중하여 목을 베어서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형벌인데, 추분(秋分) 후 춘분(春分) 전에 집행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다. 이때에 집행하는 것을 대시(待時)라 하고, 죄가 극악하여 이때를 기다리지 않고 곧 집행하는 것을 부대시(不待時)라 한다.
- [註 421] 관자(關子) : 동등 이하인 아문(衙門)에 보내는 공문.
- [註 422] 일죄(一罪) : 사형.
- [註 423] 사간(事干) : 사건에 관련된 사람.
- [註 424] 화처(花妻) : 천인(賤人)의 첩(妾)을 말함.
- [註 425] 교대시(絞待時) : 교형(絞刑)에 처하되 시기를 기다려 집행하는 것. 교형은 《대명률(大明律)》 오형(五刑) 중 가장 중한 사형(死刑)의 하나로, 목을 매어 죽이는 형벌인데 참형(斬刑)에 비하면 몸은 온전하게 남는다.
- [註 426] 사노(寺奴) : 사사(寺社)의 노자(奴子). 조선 국초 이래 절을 없애고 그 노비(奴婢)를 각사(各司)·각관(各官)에 분속(分屬)하였고, 여러 번 변천을 거쳐 대부분의 사사 노비는 신역(身役) 대신 공물을 바치게 되었으나 사사 노비란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註 427] 백정(白丁) : 삼국 이래의 유민(流民)의 하나로, 고려 때에는 화척(禾尺)·양수척(楊水尺) 등으로 불렸으며, 일정한 호적·부역이 없이 유기(柳器)를 만들거나 사냥·도축(屠畜) 등으로 살아가던 것을 조선 때에 경외(京外)의 방촌(坊村)에 정착하게 한 천민(賤民).
- [註 428] 명화적(明火賊) : 불한당(不汗黨).
원문
○甲寅/聽啓覆。 承旨尹仁鏡將義禁府囚人前舒川郡守韓碩豪推案啓: "碩豪以東伐羅島搜討事差定後, 違主將之令, 罪斬待時也。" 上曰: "減死可也。" 執義鄭應麟曰: "碩豪雖云: ‘允貞不卽馳報。’ 不囚之以請緩報之罪, 則其情可見。 況允貞之逃, 必是以主帥之事, 難於直招也。 沈義孫等事則旣決其罪, 難於更加重律, 故至今留難矣。碩豪事則不可容貸, 請依律定罪。" 正言姜崇德曰: "軍機之事所當嚴明。 若此不罪, 則竊恐軍政之解弛。" 上曰: "羅允貞之逃, 雖似庇護, 其主帥韓碩豪已遞, 必不庇護矣。 且觀其上言之意, 觀察使不卽差定云。 允貞已逃, 無可憑閱其罪矣。 此非如沈義孫之例, 不可依律也。" 鄭應麟曰: "令之減死, 於好生之德誠美矣, 然軍律則不可撓屈也。" 上謂左右曰: "凡啓覆時, 左右多數入參者, 欲廣詢其事也。 今之韓碩豪事, 於左右之意如何? 其各陳之。" 洪淑曰: "軍律, 以嚴爲主, 雖有小犯, 不可容貸。 今韓碩豪所犯, 至爲重大。 但監司關字, 遲緩傳報, 此可疑者也。" 李荇曰: "軍法當嚴矣。 然邊將, 當機快斷。 定罪則已, 若朝廷如此共議事, 則必須無一毫可疑者然後, 當示之以法, 須自上參酌分辨爲當。" 申鏛曰。 "情或有可疑者, 則當自上斟酌可也。" 曹繼商曰: "韓碩豪旣已納招承服矣。 然少有疑處, 則不可輕加一罪也。" 尹殷輔曰: "斷死刑重事, 不得已竝問事干而後, 決之也。 碩豪事則允貞在逃, 推閱無據。 一罪至重, 恐不可輕施也。" 金安老曰: "近來軍律解弛, 故臺諫論啓矣。 然允貞在逃, 不能推閱歸一, 當自上酌其情法, 商量處置可也。" 上曰: "若如常例公事, 則當身已服, 不須憑問事干也, 今此一罪, 則不可不詳察也。 允貞在逃, 質之無據, 當減死。 雖減一罪, 而其罪不少也。" 尹仁鏡又以交河囚私奴亏乙山推案啓亏乙山其花妻之父裵豆含臥在房壁, 以足踢破, 壓傷致死罪, 照律絞待時, 初覆。" 上曰: "非有情也, 其減死。" 金末文啓三犯竊盜, 永屬爲奴, 而三度逃來者, 寺奴莫同斬待時罪, 又啓白丁金義孫、田石山等明火作賊, 斬不待時, 皆三覆, 依律。
중종 18년 (1523) 8월 17일
중종실록49권, 중종 18년 8월 17일 갑인 1/2 기사 /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한석호 등의 일에 대한 계복을 듣다
국역
계복(啓覆)418) 을 들었다. 승지(承旨) 윤인경(尹仁鏡)이 의금부(義禁府)에 갇혀 있는 전 서천 군수(舒川郡守) 한석호(韓碩豪)의 추안(推案)419) 을 가지고 아뢰기를,
"한석호가 동벌라도(東伐羅島)에 가서 수토(搜討)하는 일로 차정(差定)된 뒤에 주장(主將)의 영을 어긴 죄는 참대시(斬待時)420) 에 해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형을 감면하도록 하라."
하매, 집의(執義) 정응린(鄭應麟)이 아뢰기를,
"한석호는 나윤정(羅允貞)이 즉시 신보(申報)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하나, 가두지는 않고 늦게 신보한 죄를 청하기만 하였으니, 그 정상을 알 만합니다. 더구나 나윤정이 도망한 까닭은 주수(主帥)의 일을 바른대로 공초(供招)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의손(沈義孫) 등의 일은 이미 죄를 결단하였으므로 다시 중률(重律)을 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제까지 유난(留難)하시거니와, 한석호의 일은 용서할 수 없으니 율문(律文)대로 죄를 정하소서."
하고, 정언(正言) 강숭덕(姜崇德)이 아뢰기를,
"군기(軍機)에 관한 일은 엄명해야 하는데, 이런데도 죄주지 않으면 군정이 해이해질까 염려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윤정의 도망은 그 주수를 비호하는 듯하기는 하나, 한석호가 이미 갈렸으므로 비호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 상언(上言)의 뜻을 보면 관찰사(觀察使)가 곧 차정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나윤정이 이미 도망하였으므로 그 죄를 빙열(憑閱)할 수 없으니, 이는 심의손의 예와 같지 않으므로 율문대로 할 수 없다."
하매, 정응린이 아뢰기를,
"사형을 감면시키시면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德)에 있어서는 참으로 아름답겠으나, 군율은 굽힐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계복 때에 좌우가 수많이 들어와 참여하는 까닭은 그 일을 널리 순문(詢問)하려는 것이다. 이번 한석호의 일은 좌우의 뜻에는 어떠한가? 각각 아뢰라."
하매, 홍숙(洪淑)이 아뢰기를,
"군율은 엄한 것을 귀하게 여기므로 조금 범하였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데, 이제 한석호가 범한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마는, 감사(監司)의 관자(關子)421) 가 늦게 전보(傳報)되었다는 것만은 의심할 만한 것입니다."
하고, 이행(李荇)이 아뢰기를,
"군법은 엄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장(邊將)은 기회를 당하여 쾌히 결단해서 죄를 정하였으면 그만이겠으나, 조정에서 이와 같이 함께 의논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조금도 의심할 만한 것이 없고 나서 법을 보여야 합니다. 상께서 참작하여 분별하셔야 마땅합니다."
하고, 신상(申鏛)이 아뢰기를,
"정상에 의심할 만한 것이 있으면, 상께서 짐작하셔야 합니다."
하고, 조계상(曺繼商)이 아뢰기를,
"한석호는 이미 공초하여 승복하였으나,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데가 있으면 가벼이 일죄(一罪)422) 를 가하여서는 안 됩니다."
하고, 윤은보(尹殷輔)가 아뢰기를,
"사형을 결단하는 중대한 일이니, 부득이 사간(事干)423) 을 아울러 추문(推問)하고 나서 결단해야 합니다. 한석호의 일은 나윤정이 도망중이므로 추열(推閱)할 데가 없는데, 일죄는 매우 중하므로 가벼이 시행하여서는 안 될 듯합니다."
하고, 김안로(金安老)가 아뢰기를,
"근래 군율이 해이해졌으므로 대간이 논계(論啓)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윤정이 도망중이므로 추열하여 귀일(歸一)시킬 수 없으니, 상께서 그 정상과 법을 참작하여 처치하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상례(常例)와 같은 공사(公事)라면 당자가 이미 승복하였으니 사간을 빙문(憑問)할 것 없겠으나, 이제 이 일죄는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나윤정이 도망중이므로 질문할 데가 없으니 사형을 감면해야 하며, 일죄를 감면하더라도 그 죄가 작지 않다."
하였다. 윤인경이 또 교하(交河)에 갇혀 있는 사노(私奴) 울산[于乙山]의 추안(推案)을 가지고 아뢰기를,
"울산이 제 화처(花妻)424) 의 아비 배두사(裵豆舍)가 누워 있는 방의 벽을 발로 차서 부서진 벽에 눌려 죽게 한 죄를 교대시(絞待時)425) 로 조율(照律)하였는데, 초복(初覆)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뜻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니니, 사형을 감면하라."
하였다. 김말문(金末文)이 아뢴 ‘절도(竊盜)를 세 번 범하여 종[奴]으로 영속(永屬)되었는데 세 번 도망해 온 자와 사노(寺奴)426) 막동(莫同)의 참대시(斬待時)의 죄’와 또 아뢴 ‘백정(白丁)427) 김의손(金義孫)·전석산(田石山) 등 명화적(明火賊)428) 의 참부대시(斬不待時)의 죄’는 다 삼복(三覆)이었는데, 율문대로 하라 하였다.
- [註 418] 계복(啓覆) : 복심(覆審)을 아룀. 사죄(死罪)는 신중히 심리(審理)하기 위하여 초복(初覆)·재복(再覆)·삼복(三覆), 즉 세 번의 복심을 거치는데 복심 때마다 임금에게 아뢴다.
- [註 419] 추안(推案) : 죄인 등을 추문(推問)한 사실을 적은 문서.
- [註 420] 참대시(斬待時) : 참형(斬刑)에 처하되 시기를 기다려 집행하는 것. 참형은 《대명률(大明律)》 오형(五刑: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 중에서 가장 중한 사형 중의 하나로 사죄(死罪) 중에서도 죄가 좀더 중하여 목을 베어서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형벌인데, 추분(秋分) 후 춘분(春分) 전에 집행하는 것이 상례(常例)이다. 이때에 집행하는 것을 대시(待時)라 하고, 죄가 극악하여 이때를 기다리지 않고 곧 집행하는 것을 부대시(不待時)라 한다.
- [註 421] 관자(關子) : 동등 이하인 아문(衙門)에 보내는 공문.
- [註 422] 일죄(一罪) : 사형.
- [註 423] 사간(事干) : 사건에 관련된 사람.
- [註 424] 화처(花妻) : 천인(賤人)의 첩(妾)을 말함.
- [註 425] 교대시(絞待時) : 교형(絞刑)에 처하되 시기를 기다려 집행하는 것. 교형은 《대명률(大明律)》 오형(五刑) 중 가장 중한 사형(死刑)의 하나로, 목을 매어 죽이는 형벌인데 참형(斬刑)에 비하면 몸은 온전하게 남는다.
- [註 426] 사노(寺奴) : 사사(寺社)의 노자(奴子). 조선 국초 이래 절을 없애고 그 노비(奴婢)를 각사(各司)·각관(各官)에 분속(分屬)하였고, 여러 번 변천을 거쳐 대부분의 사사 노비는 신역(身役) 대신 공물을 바치게 되었으나 사사 노비란 이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註 427] 백정(白丁) : 삼국 이래의 유민(流民)의 하나로, 고려 때에는 화척(禾尺)·양수척(楊水尺) 등으로 불렸으며, 일정한 호적·부역이 없이 유기(柳器)를 만들거나 사냥·도축(屠畜) 등으로 살아가던 것을 조선 때에 경외(京外)의 방촌(坊村)에 정착하게 한 천민(賤民).
- [註 428] 명화적(明火賊) : 불한당(不汗黨).
원문
○甲寅/聽啓覆。 承旨尹仁鏡將義禁府囚人前舒川郡守韓碩豪推案啓: "碩豪以東伐羅島搜討事差定後, 違主將之令, 罪斬待時也。" 上曰: "減死可也。" 執義鄭應麟曰: "碩豪雖云: ‘允貞不卽馳報。’ 不囚之以請緩報之罪, 則其情可見。 況允貞之逃, 必是以主帥之事, 難於直招也。 沈義孫等事則旣決其罪, 難於更加重律, 故至今留難矣。碩豪事則不可容貸, 請依律定罪。" 正言姜崇德曰: "軍機之事所當嚴明。 若此不罪, 則竊恐軍政之解弛。" 上曰: "羅允貞之逃, 雖似庇護, 其主帥韓碩豪已遞, 必不庇護矣。 且觀其上言之意, 觀察使不卽差定云。 允貞已逃, 無可憑閱其罪矣。 此非如沈義孫之例, 不可依律也。" 鄭應麟曰: "令之減死, 於好生之德誠美矣, 然軍律則不可撓屈也。" 上謂左右曰: "凡啓覆時, 左右多數入參者, 欲廣詢其事也。 今之韓碩豪事, 於左右之意如何? 其各陳之。" 洪淑曰: "軍律, 以嚴爲主, 雖有小犯, 不可容貸。 今韓碩豪所犯, 至爲重大。 但監司關字, 遲緩傳報, 此可疑者也。" 李荇曰: "軍法當嚴矣。 然邊將, 當機快斷。 定罪則已, 若朝廷如此共議事, 則必須無一毫可疑者然後, 當示之以法, 須自上參酌分辨爲當。" 申鏛曰。 "情或有可疑者, 則當自上斟酌可也。" 曹繼商曰: "韓碩豪旣已納招承服矣。 然少有疑處, 則不可輕加一罪也。" 尹殷輔曰: "斷死刑重事, 不得已竝問事干而後, 決之也。 碩豪事則允貞在逃, 推閱無據。 一罪至重, 恐不可輕施也。" 金安老曰: "近來軍律解弛, 故臺諫論啓矣。 然允貞在逃, 不能推閱歸一, 當自上酌其情法, 商量處置可也。" 上曰: "若如常例公事, 則當身已服, 不須憑問事干也, 今此一罪, 則不可不詳察也。 允貞在逃, 質之無據, 當減死。 雖減一罪, 而其罪不少也。" 尹仁鏡又以交河囚私奴亏乙山推案啓亏乙山其花妻之父裵豆含臥在房壁, 以足踢破, 壓傷致死罪, 照律絞待時, 初覆。" 上曰: "非有情也, 其減死。" 金末文啓三犯竊盜, 永屬爲奴, 而三度逃來者, 寺奴莫同斬待時罪, 又啓白丁金義孫、田石山等明火作賊, 斬不待時, 皆三覆, 依律。
원본
중종 18년 (1523)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