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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48권, 중종 18년 6월 26일 을축 5/5 기사 /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의정부·병조·비변사의 변방 일을 잘 아는 재상을 인견하여 병선의 제도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의정부·병조, 비변사의 변방 일을 잘 아는 재상(宰相) 등이 모두 대궐로 나아가니 상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인견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병조(兵曹)가 아뢴 일은 모두 해야 될 일이지만 단 거행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나 병선을 개조(改造)하는 일은 아뢴 대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전라도·경상도는 왜적의 변란에 대한 일이 긴박하므로, 병선을 5년 만에 개조하기도 하고 7∼8년만에 개조하기도 하는 것이 예(例)입니다. 충청도·경기도·황해도 등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여 보존되어 있는 병선을 조사하여 보건대 모두 부실하니, 부득이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단 맹선(猛船)은 대·중·소의 3등급이 있는데 충청도·경기도·황해도에서 늘 사용하고 있으니 일체 폐기하여 병선으로 개조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황해도 장산곶[長山串]과 전라도 변산(邊山) 등처에는 재목(材木)이 있어 배를 만들수 있으니, 특별히 유사(有司)를 선정하여 검거(檢擧)하고 감독하게 하되 선척(船隻)의 체제는 병조에서 아뢴 대로 하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단 지금은, 맹선은 만들지 말고 모름지기 급난한 변을 당하여 쓸 수 있는 배를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유담년(柳聃年)·조윤손(曹潤孫)도 모두 이 일에 대하여 알고 있으니 하문하여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고형산(高荊山)은 아뢰기를,

"신이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있을 때에 선척을 개조하는 일로 의논하다가 미처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마는, 황해도·평안도의 병선은 경쾌하지 못하여 쓸 수가 없습니다. 경상도·전라도는 비록 맹선이 있으나 모두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으므로 육지에 매여진 채 부패하여 썩을 뿐이요, 늘 사용하는 것은 바로 비거도선(鼻居刀船)입니다. 그러나 맹선을 설치한 것은 진실로 우연한 일이 아닌 것으로 우리 나라의 조운(漕運)에는 모두 맹선을 사용하고 있으니 일체 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중·소의 3등급이 있으니 마땅히 그 숫자를 짐작하여 맹선이 4척이면 그 가운데 2척은 경쾌한 병선으로 개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난번 왜적이 침구하여 왔을 적에도 경쾌한 배가 있었다면 그들을 포획(捕獲)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하고, 홍숙은 아뢰기를,

"고형산의 말이 과연 옳습니다. 각도에 물어본 결과 모두 맹선이 없어서는 불가하다고 하므로, 맹선의 반을 감하여 병선으로 만들 일로 병조가 이미 수교(受敎)하였습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성을 쌓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도의 군량을 저축한 창고와 군기를 보관한 창고가 있는 곳에 모두 성이 없으니, 만약 뜻밖의 변을 당하면 수호(守護)할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신이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적에 바닷가의 고을에 모두 성을 쌓고자 하였으나 경솔하게 착수하는 것은 불가하였으므로, 목책(木柵)을 세우기 위하여 조정(朝廷)에 알렸더니 ‘목책은 화재의 위험이 있을 뿐더러 장차 왜적이 침구하여 오면 어떻게 이것으로 방어(防禦)할 수 있겠는가? 성을 쌓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성을 쌓을 만한 고을에는 돌을 주워 모아놓게 하였었는데, 미처 쌓지 못한 채 체직되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속히 쌓아야 합니다."

하고, 안윤덕(安潤德)은 아뢰기를,

"신상(申鏛)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비변사(備邊司)에서 맹선의 혁폐(革廢)에 대한 편부를 묻기에, 비거도선(鼻居刀船)이 접전(接戰)할 때에 매우 빠르고 경쾌하긴 하지만 적병이 바다를 뒤덮어 침구하여 올 때는 마땅히 맹선이라야 군인을 많이 인솔할 수 있으므로 일체 혁폐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였더니, 비변사에서 옳다고 여겨서 입계(入啓)하였었습니다."

하고, 형산(荊山)이 아뢰기를,

"이미 배를 타본 사람은 당연히 알 것이니, 유담년·조윤손은 반드시 편부에 관하여 알 것입니다."

하고, 윤손(潤孫)은 아뢰기를,

"신이 경상좌우도 병수사(慶尙左右道兵水使)를 연임(連任)할 적에 제포(諸浦)의 대맹선·소맹선을 보니 과연 군인을 많이 실을 수 있었으나 그 선체가 경쾌하지 못하여 바람을 만나게 되면 마음대로 운용(運用)할 수가 없어 패몰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거도선은 경쾌하여 비록 사나운 바람을 만나도 쉽게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가 좌도(左道)에도 많이 있었지만 우도(右道)에는 있다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고, 김극성(金克成)은 아뢰기를,

"신이 경오년에 안골포(安骨浦)에서 왜적에게 포위당하였을 때 왜선(倭船) 1척을 보았는데 높고도 커서 2백여 인을 태울 수 있었으며, 기타 나머지 배들도 높기도 하고 작기도 하여 그 제도가 한결같지 않았으니, 저들도 반드시 대·중·소를 준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경상우도의 대맹선·중맹선은 매어놓기만 할 뿐 사용하지 않으니, 유명 무실하여 급한 변을 당하여도 모두 사용할 수가 없었으며, 황해도·충청도 등에는 그나마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고, 한형윤(韓亨允)은 아뢰기를,

"전라도·경상도의 선제(船制)에 대하여는 이제 의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의논할 것은 단지 황해·경기·충청 3도의 병선(兵船) 체제의 대소(大小)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니, 특별히 제조할 일에 대하여 의논하는 것이 가합니다. 3등급의 맹선을 일체 혁폐(革廢)하는 것은 불가할 것 같습니다."

하고, 김석철(金錫哲)은 아뢰기를,

"신이 제포 첨사(薺浦僉使)로 있을 때 물어보니 왜선은 아무리 높고 큰 배라 할지라도 매우 경쾌하다 하였는데, 경오년 이후 경상우도의 선척도 그 제도가 지극히 공교하여 왜선과 똑같이 경쾌하니 맹선을 폐할 수는 없으나 비거도선은 맹선의 배수(倍數)로 제조하여 두어야 합니다. 충청도·경기도·황해도 등의 배는 모두 사용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이런 배를 타고 왜적을 포획할 수 있겠습니까? 속히 경상도·전라도의 선제(船制)에 따라 개조(改造)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맹선을 뜯어버릴 것이 아니라 특별히 비거도선(鼻居刀船)을 제조하여, 맹선의 군인을 나누어 태워서 사세(事勢)의 완급(緩急)에 따라 돌려가면서 사용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형산(荊山)의 말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선제(船制)의 모양이 두 가지가 되면 그것을 관리하기가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하고, 심순경(沈順經)이 아뢰기를,

"신이 충청 수사(忠淸水使)로 있을 때 보니 대소(大小) 맹선(猛船)은 모두 쓰지를 않고 단지 비거도선만 쓰고 있었으며, 또 수군(水軍)도 유명 무실하여 조운(漕運)할 때에 전부 배로 올라가고 나면 포소(浦所)가 텅 비었습니다. 이른바 수군이라는 것도 직접 배를 움직이는 법을 익힌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고용되어 배를 탄 사람들로서, 이들이 수군의 역사(役事)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수군 자신은 집에 있으므로 전혀 배를 조종할 줄 모르는 자가 파다하여 비록 배는 있다 하더라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이 또한 매우 우려되는 일입니다. 지난 정사년에 왜적이 녹도(鹿島)를 침구하였을 때였습니다. 이계동(李季仝)을 장수로 삼아 수토(搜討)할 적에 신이 군관(軍官)으로 따라가서 보니, 대맹선은 선체가 크고 경쾌하지 못하여 위급할 때는 쓸 수 없었으므로 모두 포작선(鮑作船)을 모아 사용하였었습니다. 만일 대대적으로 거병(擧兵)할 경우라면 마땅히 맹선을 써야 하겠지만 갑자기 서로 싸우게 될 경우에는 작은 배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심의손(沈義孫)이 왜적을 만나 접전(接戰)할 때에 왜적 한 사람이 칼을 빼들고 돌진하여 오니 심의손이 거느리고 있던 포작선의 격군(格軍)들이 모두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숨고 배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 왜적이 배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살상(殺傷)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의손은 배 안에서 믿는 것은 오로지 사공인데 급난(急難)을 당할 때마다 이렇게 한다면 어떻게 배를 보존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마땅히 격군을 죄주어 그들로 하여금 적을 피하여 물로 뛰어들어 숨는다 할지라도 결국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병선(兵船)에 관하여는 해조(該曹)가 각포(各浦)로 하여금 맹선을 깨뜨려 소선(小船)을 만들되 그 숫자는 양정(量定)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각포에 성(城)을 쌓는 일에 관하여는 또한 모아놓은 돌의 다소(多少)를 물어서 조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고형산은 아뢰기를,

"성(城)을 쌓는 일에 대하여는 신이 둘러본 바 여러 곳은 모두 다 쌓았는데, 단지 오포(烏浦)·축산포(丑山浦)만이 아직 쌓지 못하였으니, 병조(兵曹)에 분부하여 검거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수군에 대한 일은, 이것이 곧 근본인데 그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경기도·황해도의 경우 소금을 굽고 해물(海物)을 수채(水採)하는 것을 모두 수군이 하고 있으므로 하루도 진(鎭)에 있을 때가 없는데, 또 경기도의 수군은 부득이 서울의 역사(役事)에까지 부역(赴役)합니다. 물선(物膳)에 관한 일 또한 중대한데 각포의 수군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김극성(金克成)은 아뢰기를,

"수군이 바치는 물선은 스스로 수채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값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사서 바치므로 그 폐단이 더욱 심하니, 이 또한 염려스럽습니다."

하고, 고형산은 아뢰기를,

"수근에 대한 일은 병조(兵曹)로 하여금 그들이 하는 바를 기록하여 역사하는 곳의 경중을 헤아려 조처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이번에 사로잡힌 왜노(倭奴)가 말하기를 ‘중국에 조공(朝貢)하러 가다가 표류하여 충청도 지방을 횡행하면서 노략질했다.’ 하는데, 이는 우리 나라를 공동(恐動)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소청을 이루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 소청을 이루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다시 와서 노략질할 것이지만, 저들이 우리 국경에서 군졸(軍卒)을 만날 때마다 번번이 쫓겨서 돌아갔으니, 반드시 경솔하게 침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수군이 해물을 수채(收採)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할 수가 없는 것이니 역시 일체 유방(留防)시키는 것은 불가합니다. 정로위(定虜衛)는 전에 없었던 군대이니 그 다소(多少)를 헤아려 나누어 유방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유담년은 아뢰기를,

"경상도의 경우는 수군뿐이 아니라 경내(境內)의 군사 또한 모두 제진(諸鎭)에 나누어 유방시키고 있으니, 정로위도 당번(當番)을 정하여 유방(留防)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하고, 김극성은 아뢰기를,

"경상도·전라도는 항상 싸움이 있는 곳이지만 무인(武人)이 또한 적어서 수군(水軍)이 5백 명이면 활을 쏠 수 있는 자는 30여 인에 불과하고, 더구나 경기도에는 활을 쏘는 자가 백에 한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하고, 이사균(李思鈞)은 아뢰기를,

"왜변(倭變)은 예로부터 있어 온 일로 3등급의 맹선(猛船)을 설치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를 설치한 뜻은 반드시 저들의 배는 작고 우리 배가 크면 저 왜적이 감히 뛰어오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일체 추포(追捕)하는 일을 위주로 한다면 과연 작은 배를 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맹선을 일체 폐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대대적으로 거병(擧兵)할 일을 당하면 맹선이 아니고서는 많은 군인을 실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이 왜선(倭船) 하나를 침구하여 온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단지 우리 나라를 공동(恐動)시키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대저 왜인은 본디 배 조종하는 것을 장기(長技)로 삼고 있으므로 비록 고기잡는 배라 할지라도 반드시 기병(旗屛)을 설치하고서 다니는데, 우리 나라의 변장이 그것을 보면 곧 침구하여 온 것이라 여겨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조정에 치보(馳報)하면, 조정 또한 경동(驚動)하여 조방장(助防將)과 금군(禁軍)을 보내기도 하므로 매우 소요(騷擾)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의견이 과연 지당하다. 지난번의 일은 역시 소요스러웠다고 할 만한데, 그때가 바야흐로 농번기였으니 반드시 폐단이 많았을 것이다."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황해도에 조방장 보낼 것을 의논한 것은 본도(本道)에서 전혀 방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만약 왜적이 편리함을 이용하여 침구해오면 방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금군(禁軍)을 내려보내는 것은 과연 부당한 일입니다."

하고, 홍숙(洪淑)은 아뢰기를,

"경상도·전라도 등의 경우는 말할 것이 없지만, 경기도·황해도는 전혀 방비를 엄하게 하지 않고 있고 나라에서도 내버려두고 문제삼지 않았으므로 이런 일이 생긴것입니다. 지난번에 만약 일찍 황해도에 조방장을 보냈다면 장산곶[張山串]에서 왜적과 싸울 때에 전부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신은 지금도 일찍 보내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여깁니다. 윤임(尹任)이 변변치 못한 군관(軍官)을 보내었으므로 능히 사로잡지도 못하였을 뿐더러 도리어 패몰(敗沒)하였으니 지극히 통한(痛恨)스러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충청도에서 있었던 일은 과연 통한스러운 일이었다."

하매, 김극성이 아뢰기를,

"윤임은 무재(武才)가 있는 사람인데 단 변방 일을 잘 몰랐으므로 처치(處置)하는 데 있어 마땅함을 잃은 것입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경기도·황해도에 병수사(兵水使)를 다시 설치하는 일에 대하여는 신 등이 이미 의논하였습니다만, 경기도의 경우에는 화량(花梁)이 거진(巨鎭)이므로 예전에도 수사가 있었으니 지금 다시 설치하는 것이 그래도 가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해도의 경우에는 결단코 다시 설치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설치한다면 반드시 별도로 영진(營鎭)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영(營)을 설치한다면 영에 소속될 사람이 없는데, 이 인원을 충차(充差)하기가 더욱 어려운 일이니 경솔하게 설치할 수 없습니다. 화량 첨사(花梁僉使)를 쓸만한 사람으로 택차(擇差)한다면 따로 수사(水使)를 설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형산(荊山)은 아뢰기를,

"화량 첨사는 비록 택차하여 보내더라도 첨사라는 칭호가 있으면 각포(各浦)를 검거(檢擧)할 수 없으니, 칭호를 조방장이라 하여 관찰사(觀察使)와 함께 같이 의논하여 포폄(褒貶)하게 함으로써 각포를 검거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이항(李沆)은 아뢰기를,

"근일 왜노(倭奴)의 배 하나가 변방을 침구하여 온 것 때문에 경동(驚動)하여 경기도·황해도에 병수사(兵水使)를 설치한다고 한는 것은 보고 듣기에도 불가한 일이며 또한 조정의 경중에도 관계되는 것입니다. 충청도의 경우에는 병수사가 있었는데도 능히 포착(捕捉)하지 못하였으니, 대신이 아뢴 바와 같이 화량 첨사를 택차하여 보내는 것이 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관제(官制)를 설치한 것은 이미 조종(祖宗)께서 하신 일인데, 이제 왜선 1척이 침구하여 온 것 때문에 경솔히 관제를 고쳐 갑자기 없던 관직(官職)을 설치하는 것은 과연 사체(事體)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하문(下問)하신 파방(罷防)하는 일에 대하여는, 신 등의 생각은 왜선이 대양(大洋) 가운데로 나왔다가 본토(本土)를 향하여 돌아간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집니다. 파방하고 돌아온 뒤에 허술함을 이용하여 다시 노략질할는지에 대하여는 비록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조방장 및 군관을 접대하는 폐단이 반드시 클 것이니 관찰사가 있는 곳에 글을 내려 방어에 관한 제반 일을 해이하게 하지 말도록 효유(曉諭)하소서. 그리고 조방장 등으로 하여금 이달을 기한(期限)으로 유방(留防)하게 하고 다음 달에는 파방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고형산은 아뢰기를,

"왜선이 황해도·경기도에 나타났을 적에 포획하지 못하여 이미 충청도·전라도를 지나갔으니, 왜적들은 본디 방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침구하지 못하고 본토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니 속히 파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이 아뢴 바가 매우 지당하다. 마땅히 본도 관찰사에게 효유(曉諭)하여 이달을 기한으로 유방(留防)하게 하는 것이 가하다."

하매, 윤인경(尹人鏡)이 아뢰기를,

"황해도 각포(各浦)의 만호(萬戶)·첨사(僉使)가 왜적을 포획하지 못하였는데, 그 가운데 더욱 심한 자는 파직(罷職)시킨 뒤에 추문(推問)할 일로 전에 전교(傳敎)가 계셨었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파방(罷防)한 뒤에 즉시 추문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상이 대신들에게 묻기를,

"황해도의 첨사·만호·수령 들 가운데 왜적을 포획하지 못한 자를 만약 다 파직시킨다면 소요가 일까 염려스러우니, 그 가운데 더욱 심한 자만을 적간(摘奸)하여 파직시키고서 추문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황해도에는 전혀 무비(武備)가 없으므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장연 현감(長淵縣監) 김이(金璃)의 경우에는 장산곶[長山串]의 협소한 곳으로 왜적이 들어왔을 때 만약 힘써 싸웠다면 포획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정원(政院)이 비록 그 도의 관찰사 장계(狀啓)에 의하여 그 가운데 더욱 심한 자를 적간한다 하더라도 모두 다 사실대로 할 수 없을까 염려스러우니, 조관(朝官)을 보내어 그 중 더욱 심한 자에 대하여는 끝까지 추문하여 파직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사균(李思鈞)은 아뢰기를,

"전혀 추포(追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서로 싸우다가 포획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그 경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과연 다 사실대로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우니, 조관을 보내어 추문한다면 실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원문

○議政府、兵曹、備邊司、知邊事宰相等皆詣闕, 上御思政殿引見南袞曰: "兵曹所啓事, 皆可爲而但難於擧行。 如造, 船當依所啓, 我國全羅、慶尙兩道倭變事緊, 故兵船五年而改造, 或七八年而改造, 例也, 如忠淸、黃海、京畿等道不然。 其所存兵船摘奸, 則皆無實矣, 不得已新造可也。 但猛船有大中小三等, 乃忠淸、黃海、京畿所常用, 不可一切廢之, 而改以兵船也。 黃海道 長山串, 全羅道, 邊山等處有材木, 可以造船。 當別定有司, 檢擧監掌, 船隻體制, 依兵曹所啓甚當。 但今勿造猛船, 須造緩急可用者何如? 柳聃年、曺潤孫皆知此事, 下問則可知矣。" 高荊山曰: "臣爲兵曹判書時, 改造船隻事, 議而未及施行。 黃海、平安道兵船不輕快, 不可用也。 慶尙、全羅兩道雖有猛船, 皆置而不用, 故徒掛陸腐朽, 所常用者, 乃鼻居刀船也。 然猛船之設, 固非偶然。 我國漕運, 皆用猛船, 不可專廢也。 但有大中小三等, 當斟酌其數, 猛船四隻則二隻作輕快兵船好矣。 頃日賊倭之來, 若有輕快船, 則何難捕獲?" 洪淑曰: "高荊山所言果然問諸各道, 皆以爲不可無猛船云, 故猛船減半,作兵船事兵曹已受敎矣。" 南袞曰: "築城事, 不可不爲。 各道軍糧所儲倉庫及軍器所藏, 皆無城子。 若有不虞之變, 將有不能守護之弊。 臣爲黃海道觀察使時, 沿海官皆欲築城, 然不可輕易爲之。 欲爲木柵, 聞于朝廷, 則木柵有(木災)〔火災〕 , 且賊來則何能以此防禦? 宜築城云。 臣令可築之官, 使之拾石, 未及築之而來, 所當速築。" 安潤德曰: "申鏛爲全羅道觀察使, 備邊司問猛船革廢便否, 則鼻居刀船, 於接戰時甚輕捷, 然賊兵蔽海而來, 則當以猛船, 多率軍人, 不可專廢, 備邊司以爲是, 而入啓。" 荊山曰: "已經騎船者當知, 柳聃年、曺潤孫必知便否也。" 潤孫曰: "臣連任慶尙左右道兵、水使。 見諸浦大小猛, 船則果多載軍人。 然其體不輕快, 遭風則不得任意而用, 將有敗沒之患。 鼻居刀船則輕快, 雖遇惡風, 可易用矣。 然左道多有, 而右道則不可謂有也。" 金克成曰: "臣庚午年, 於安骨浦 倭賊圍城時, 見倭船一隻, 高大, 可乘二百餘人。 他餘船或高或小, 其制不一, 彼亦必備大中小以用矣。 慶尙右道大猛、中猛之船, 徒掛不用, 有名無實, 緩急皆不可用, 黃海、忠淸等道全無矣。" 韓亨允曰: "全羅、慶尙兩道船制, 今不必議。 今之所議, 只爲黃海、京畿、忠淸三道兵船體制, 大小何如也? 當議其別造之事可也。 三等猛船, 恐不可全廢也。" 金錫哲曰: "臣爲薺浦僉使時, 問之則倭船雖有高大者, 甚輕快若飛。 庚午年後, 慶尙右道船隻, 其制極巧, 與倭船同其輕快。 猛船雖不可廢, 鼻居刀船所當倍數造置。 忠淸、京畿、黃海等道之船, 皆不可用, 其何能乘此而捕倭乎? 速依慶尙、全羅船制, 改造可也。" 南袞曰: "猛船不必毁之。 但別造鼻居刀船, 以猛船軍人分騎, 因其緩急, 互相用之何如? 荊山之言當矣。 然船制有二樣, 則守之亦難。" 沈順經曰: "臣爲忠淸水使時見之, 大小猛船皆不用, 只用鼻居刀船矣。 且其水軍有名無實, 若於漕運時, 則盡歸於船, 浦所一空。 其所謂水軍, 亦非親習舟楫, 皆雇於騎船, 以代其役, 身則在家, 專不知操舟者頗多。 雖有船而無人, 是亦甚可慮也。 前於丁巳年倭犯鹿島, 命李季仝爲將搜討, 而臣以軍官, 從往見之, 大猛船體大不快, 非緩急可用者也, 皆聚鮑(昨)〔作〕 之船用之。 若大擧則當用猛船, 卒然相戰, 不可不用小船。 且沈義孫逢倭接戰之時, 倭賊一人拔劍投突, 義孫所領船鮑作、 格軍等皆投潛水中, 無一人在船。 幸其倭不能入船, 故無所殺傷。 舟中所恃, 專在蒿工, 而有難則輒如是, 何能保其船耶? 此言若實, 則當罪格軍, 使之知避賊投水之不得免死, 何如?" 袞曰: "兵船, 該曹令各浦, 破猛船造小船, 量定其數爲之可也。 各浦築城事, 亦問其聚石多少, 而處之何如?" 荊山曰: "城子事, 臣所見諸處, 皆爲畢築, 只烏浦、丑山浦未及築之, 兵曹受敎撿擧則可矣。" 袞曰: "水軍事, 乃是根本, 而恐不能行其事也。 如京畿、黃海兩道煮鹽及海採, 皆水軍所事, 無一日在鎭之時矣。 且京畿水軍則不得已赴役於京。 役事則已, 物膳之事, 亦且重大, 而非各浦水軍, 不能事矣。" 克成曰: "水軍所納物膳, 非所自採。 以其價, 來京貿納, 其弊尤甚, 此亦可慮。" 荊山曰: "水軍事, 令兵曹書其所爲, 量其役處輕重, 而處之可也。" 袞曰: "今此倭奴被擒者云: ‘朝貢于中朝, 而漂流, 乃於忠淸道橫行作耗。’ 此不過恐動我國, 以遂其請。 今不得請, 則近必更來作賊, 然彼於我境, 每遇軍卒輒被逐而歸, 必知其不可輕犯也。 且水軍海採之事, 不可使他人爲之, 亦不可一切留防。 如定虜衛, 前所無之軍, 量其多少, 使之分防何如?" 柳聃年曰: "慶尙道則非徒水軍, 境內軍士亦皆分防諸鎭矣。 定虜衛除當番, 留防何如?" 克成曰: "慶尙、全羅雖常用武之地, 而武人亦尠, 如水軍五百, 則能射者不過三十餘人。 況京畿則執弓者百無一二矣。" 李思鈞曰: "倭變, 自古有之。 三等猛船之設, 非偶然也。 其設意則必是彼船小, 我船大, 彼賊不敢跳上也, 若欲以一切追捕爲事, 則果用小船也。 不然則不可偏廢猛船也, 且當有大兵, 則非猛船不可多載軍人。 今此一船倭, 不可謂寇賊, 只欲恐動我也。 大抵, 倭人本以操舟爲長技, 故雖釣魚船, 必設旗屛而行。 我國邊將見之, 則輒以爲賊, 顚倒騷動, 馳報朝廷, 朝廷亦且驚動, 或遣助防將、禁軍, 甚爲騷擾。" 上曰: "是意果當, 頃者之事, 亦云騷動。 方農之時, 必多有弊。" 袞曰: "黃海道議遣助防將者, 本道專不爲防備之事, 萬一倭賊乘便入來, 則不可禦之故也。 但禁軍下送, 果爲不當。" 洪淑曰: "如慶尙、全羅等道則已, 京畿、黃海專不嚴防備, 國家亦置之慮外, 故以致此矣。 頃者, 若早遣助防將於黃海道, 則長山串, 與倭相戰時, 可得盡捕, 臣, 至今恨其不早遣也。 尹任只遣迷劣軍官, 不能捕擒, 反致敗沒, 至爲痛恨。" 上曰: "忠淸道事, 果爲痛甚。" 克成曰: "尹任有武才, 但未諳邊事, 故處置失宜。" 袞曰: "京畿、黃海兵ㆍ水使復設事, 臣等已議之。 京畿則花梁巨鎭, 古有水使, 今之復設猶或可也, 黃海則決不可設。 若置之則必須別作營鎭, 而設營處, 亦無營屬之人, 尤難充數, 不可輕易爲之。 花梁僉使擇差可用者, 則不必別設水使也。" 荊山曰: "花梁僉使雖擇差, 有僉使之號, 則不能檢擧各浦。 但稱號助防將, 與觀察使同議褒貶, 使之檢擧各浦則好矣。" 李沆曰: "近日, 倭奴一船犯邊, 輒爲驚動, 設置兵、水使, 于京畿、黃海兩道, 於見聞不可, 亦關於朝廷輕重。 如忠淸道雖有兵、水使亦不能捕捉, 如大臣所啓。 擇差花梁僉使則可矣。" 上曰: "官制之設, 已自祖宗矣。 今因一倭船之來, 輕變官制, 遽設所無之官, 果異於事體也。" 袞曰: "下問罷防事, 臣等以爲, 倭船出於大洋中, 還向本土, 似爲明白。 其罷防還來後, 乘便作耗, 雖不可知, 然其助防將及軍官供億之弊必大。 觀察使處下書, 諭以毌解弛防備諸事, 而令助防將等限今月留防, 來月則罷之何如?" 荊山曰: "倭船現形於黃海、京畿時, 旣不能捕, 今已過於忠淸、全羅則倭奴素知有防備, 必不入寇。 其還本土丁寧, 宜速罷防。" 上曰: "大臣所啓甚當矣。 當諭本道觀察使, 限今月留防可也。" 尹仁鏡曰: "黃海各浦萬戶、僉使不能捕倭。 其中尤甚者, 罷防後推之事, 前有傳敎, 何以爲之?" 上曰: "罷防後卽推之可也。" 上問于大臣曰: "黃海僉使、萬戶、守令等不能捕倭者, 若全數遞之, 則恐爲騷擾, 摘其中尤甚者, 罷職而推之何如?" 袞曰: "黃海道全無武備, 故以至於此也。 然如長淵縣監金璃, 於長山串入窄地時, 若力戰則可以捕捉矣。 政院雖以其道觀察使狀啓, 摘其尤甚者, 然恐不能盡實也。 其遣朝官, 窮推尤甚者罷之, 何如?" 思鈞曰: "或專不追捕, 或相戰而不能捕者, 其爲輕重可知矣。" 上曰: "果恐未盡實也。 其遣朝官推之, 則可知其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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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48권, 중종 18년 6월 26일 을축 5/5 기사 /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의정부·병조·비변사의 변방 일을 잘 아는 재상을 인견하여 병선의 제도에 대해 의논하다

국역

의정부·병조, 비변사의 변방 일을 잘 아는 재상(宰相) 등이 모두 대궐로 나아가니 상이 사정전(思政殿)에 나아가 인견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병조(兵曹)가 아뢴 일은 모두 해야 될 일이지만 단 거행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러나 병선을 개조(改造)하는 일은 아뢴 대로 하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전라도·경상도는 왜적의 변란에 대한 일이 긴박하므로, 병선을 5년 만에 개조하기도 하고 7∼8년만에 개조하기도 하는 것이 예(例)입니다. 충청도·경기도·황해도 등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여 보존되어 있는 병선을 조사하여 보건대 모두 부실하니, 부득이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단 맹선(猛船)은 대·중·소의 3등급이 있는데 충청도·경기도·황해도에서 늘 사용하고 있으니 일체 폐기하여 병선으로 개조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황해도 장산곶[長山串]과 전라도 변산(邊山) 등처에는 재목(材木)이 있어 배를 만들수 있으니, 특별히 유사(有司)를 선정하여 검거(檢擧)하고 감독하게 하되 선척(船隻)의 체제는 병조에서 아뢴 대로 하는 것이 매우 마땅합니다. 단 지금은, 맹선은 만들지 말고 모름지기 급난한 변을 당하여 쓸 수 있는 배를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유담년(柳聃年)·조윤손(曹潤孫)도 모두 이 일에 대하여 알고 있으니 하문하여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고형산(高荊山)은 아뢰기를,

"신이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있을 때에 선척을 개조하는 일로 의논하다가 미처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마는, 황해도·평안도의 병선은 경쾌하지 못하여 쓸 수가 없습니다. 경상도·전라도는 비록 맹선이 있으나 모두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으므로 육지에 매여진 채 부패하여 썩을 뿐이요, 늘 사용하는 것은 바로 비거도선(鼻居刀船)입니다. 그러나 맹선을 설치한 것은 진실로 우연한 일이 아닌 것으로 우리 나라의 조운(漕運)에는 모두 맹선을 사용하고 있으니 일체 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중·소의 3등급이 있으니 마땅히 그 숫자를 짐작하여 맹선이 4척이면 그 가운데 2척은 경쾌한 병선으로 개조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난번 왜적이 침구하여 왔을 적에도 경쾌한 배가 있었다면 그들을 포획(捕獲)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하고, 홍숙은 아뢰기를,

"고형산의 말이 과연 옳습니다. 각도에 물어본 결과 모두 맹선이 없어서는 불가하다고 하므로, 맹선의 반을 감하여 병선으로 만들 일로 병조가 이미 수교(受敎)하였습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성을 쌓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도의 군량을 저축한 창고와 군기를 보관한 창고가 있는 곳에 모두 성이 없으니, 만약 뜻밖의 변을 당하면 수호(守護)할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신이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적에 바닷가의 고을에 모두 성을 쌓고자 하였으나 경솔하게 착수하는 것은 불가하였으므로, 목책(木柵)을 세우기 위하여 조정(朝廷)에 알렸더니 ‘목책은 화재의 위험이 있을 뿐더러 장차 왜적이 침구하여 오면 어떻게 이것으로 방어(防禦)할 수 있겠는가? 성을 쌓아야 한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이 성을 쌓을 만한 고을에는 돌을 주워 모아놓게 하였었는데, 미처 쌓지 못한 채 체직되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속히 쌓아야 합니다."

하고, 안윤덕(安潤德)은 아뢰기를,

"신상(申鏛)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비변사(備邊司)에서 맹선의 혁폐(革廢)에 대한 편부를 묻기에, 비거도선(鼻居刀船)이 접전(接戰)할 때에 매우 빠르고 경쾌하긴 하지만 적병이 바다를 뒤덮어 침구하여 올 때는 마땅히 맹선이라야 군인을 많이 인솔할 수 있으므로 일체 혁폐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였더니, 비변사에서 옳다고 여겨서 입계(入啓)하였었습니다."

하고, 형산(荊山)이 아뢰기를,

"이미 배를 타본 사람은 당연히 알 것이니, 유담년·조윤손은 반드시 편부에 관하여 알 것입니다."

하고, 윤손(潤孫)은 아뢰기를,

"신이 경상좌우도 병수사(慶尙左右道兵水使)를 연임(連任)할 적에 제포(諸浦)의 대맹선·소맹선을 보니 과연 군인을 많이 실을 수 있었으나 그 선체가 경쾌하지 못하여 바람을 만나게 되면 마음대로 운용(運用)할 수가 없어 패몰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거도선은 경쾌하여 비록 사나운 바람을 만나도 쉽게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가 좌도(左道)에도 많이 있었지만 우도(右道)에는 있다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고, 김극성(金克成)은 아뢰기를,

"신이 경오년에 안골포(安骨浦)에서 왜적에게 포위당하였을 때 왜선(倭船) 1척을 보았는데 높고도 커서 2백여 인을 태울 수 있었으며, 기타 나머지 배들도 높기도 하고 작기도 하여 그 제도가 한결같지 않았으니, 저들도 반드시 대·중·소를 준비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경상우도의 대맹선·중맹선은 매어놓기만 할 뿐 사용하지 않으니, 유명 무실하여 급한 변을 당하여도 모두 사용할 수가 없었으며, 황해도·충청도 등에는 그나마도 전혀 없었습니다."

하고, 한형윤(韓亨允)은 아뢰기를,

"전라도·경상도의 선제(船制)에 대하여는 이제 의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의논할 것은 단지 황해·경기·충청 3도의 병선(兵船) 체제의 대소(大小)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니, 특별히 제조할 일에 대하여 의논하는 것이 가합니다. 3등급의 맹선을 일체 혁폐(革廢)하는 것은 불가할 것 같습니다."

하고, 김석철(金錫哲)은 아뢰기를,

"신이 제포 첨사(薺浦僉使)로 있을 때 물어보니 왜선은 아무리 높고 큰 배라 할지라도 매우 경쾌하다 하였는데, 경오년 이후 경상우도의 선척도 그 제도가 지극히 공교하여 왜선과 똑같이 경쾌하니 맹선을 폐할 수는 없으나 비거도선은 맹선의 배수(倍數)로 제조하여 두어야 합니다. 충청도·경기도·황해도 등의 배는 모두 사용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이런 배를 타고 왜적을 포획할 수 있겠습니까? 속히 경상도·전라도의 선제(船制)에 따라 개조(改造)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맹선을 뜯어버릴 것이 아니라 특별히 비거도선(鼻居刀船)을 제조하여, 맹선의 군인을 나누어 태워서 사세(事勢)의 완급(緩急)에 따라 돌려가면서 사용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형산(荊山)의 말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선제(船制)의 모양이 두 가지가 되면 그것을 관리하기가 또한 어려울 것입니다."

하고, 심순경(沈順經)이 아뢰기를,

"신이 충청 수사(忠淸水使)로 있을 때 보니 대소(大小) 맹선(猛船)은 모두 쓰지를 않고 단지 비거도선만 쓰고 있었으며, 또 수군(水軍)도 유명 무실하여 조운(漕運)할 때에 전부 배로 올라가고 나면 포소(浦所)가 텅 비었습니다. 이른바 수군이라는 것도 직접 배를 움직이는 법을 익힌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고용되어 배를 탄 사람들로서, 이들이 수군의 역사(役事)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수군 자신은 집에 있으므로 전혀 배를 조종할 줄 모르는 자가 파다하여 비록 배는 있다 하더라도 이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이 또한 매우 우려되는 일입니다. 지난 정사년에 왜적이 녹도(鹿島)를 침구하였을 때였습니다. 이계동(李季仝)을 장수로 삼아 수토(搜討)할 적에 신이 군관(軍官)으로 따라가서 보니, 대맹선은 선체가 크고 경쾌하지 못하여 위급할 때는 쓸 수 없었으므로 모두 포작선(鮑作船)을 모아 사용하였었습니다. 만일 대대적으로 거병(擧兵)할 경우라면 마땅히 맹선을 써야 하겠지만 갑자기 서로 싸우게 될 경우에는 작은 배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심의손(沈義孫)이 왜적을 만나 접전(接戰)할 때에 왜적 한 사람이 칼을 빼들고 돌진하여 오니 심의손이 거느리고 있던 포작선의 격군(格軍)들이 모두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숨고 배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 왜적이 배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살상(殺傷)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의손은 배 안에서 믿는 것은 오로지 사공인데 급난(急難)을 당할 때마다 이렇게 한다면 어떻게 배를 보존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마땅히 격군을 죄주어 그들로 하여금 적을 피하여 물로 뛰어들어 숨는다 할지라도 결국 죽음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병선(兵船)에 관하여는 해조(該曹)가 각포(各浦)로 하여금 맹선을 깨뜨려 소선(小船)을 만들되 그 숫자는 양정(量定)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각포에 성(城)을 쌓는 일에 관하여는 또한 모아놓은 돌의 다소(多少)를 물어서 조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고형산은 아뢰기를,

"성(城)을 쌓는 일에 대하여는 신이 둘러본 바 여러 곳은 모두 다 쌓았는데, 단지 오포(烏浦)·축산포(丑山浦)만이 아직 쌓지 못하였으니, 병조(兵曹)에 분부하여 검거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수군에 대한 일은, 이것이 곧 근본인데 그 일을 수행할 수 없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경기도·황해도의 경우 소금을 굽고 해물(海物)을 수채(水採)하는 것을 모두 수군이 하고 있으므로 하루도 진(鎭)에 있을 때가 없는데, 또 경기도의 수군은 부득이 서울의 역사(役事)에까지 부역(赴役)합니다. 물선(物膳)에 관한 일 또한 중대한데 각포의 수군이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하고, 김극성(金克成)은 아뢰기를,

"수군이 바치는 물선은 스스로 수채하는 것이 아니고 그 값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사서 바치므로 그 폐단이 더욱 심하니, 이 또한 염려스럽습니다."

하고, 고형산은 아뢰기를,

"수근에 대한 일은 병조(兵曹)로 하여금 그들이 하는 바를 기록하여 역사하는 곳의 경중을 헤아려 조처하게 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이번에 사로잡힌 왜노(倭奴)가 말하기를 ‘중국에 조공(朝貢)하러 가다가 표류하여 충청도 지방을 횡행하면서 노략질했다.’ 하는데, 이는 우리 나라를 공동(恐動)시킴으로써 자기들의 소청을 이루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 소청을 이루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다시 와서 노략질할 것이지만, 저들이 우리 국경에서 군졸(軍卒)을 만날 때마다 번번이 쫓겨서 돌아갔으니, 반드시 경솔하게 침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또 수군이 해물을 수채(收採)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할 수가 없는 것이니 역시 일체 유방(留防)시키는 것은 불가합니다. 정로위(定虜衛)는 전에 없었던 군대이니 그 다소(多少)를 헤아려 나누어 유방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유담년은 아뢰기를,

"경상도의 경우는 수군뿐이 아니라 경내(境內)의 군사 또한 모두 제진(諸鎭)에 나누어 유방시키고 있으니, 정로위도 당번(當番)을 정하여 유방(留防)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하고, 김극성은 아뢰기를,

"경상도·전라도는 항상 싸움이 있는 곳이지만 무인(武人)이 또한 적어서 수군(水軍)이 5백 명이면 활을 쏠 수 있는 자는 30여 인에 불과하고, 더구나 경기도에는 활을 쏘는 자가 백에 한둘도 없는 형편입니다."

하고, 이사균(李思鈞)은 아뢰기를,

"왜변(倭變)은 예로부터 있어 온 일로 3등급의 맹선(猛船)을 설치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를 설치한 뜻은 반드시 저들의 배는 작고 우리 배가 크면 저 왜적이 감히 뛰어오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일체 추포(追捕)하는 일을 위주로 한다면 과연 작은 배를 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맹선을 일체 폐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대대적으로 거병(擧兵)할 일을 당하면 맹선이 아니고서는 많은 군인을 실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이 왜선(倭船) 하나를 침구하여 온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단지 우리 나라를 공동(恐動)시키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대저 왜인은 본디 배 조종하는 것을 장기(長技)로 삼고 있으므로 비록 고기잡는 배라 할지라도 반드시 기병(旗屛)을 설치하고서 다니는데, 우리 나라의 변장이 그것을 보면 곧 침구하여 온 것이라 여겨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면서 조정에 치보(馳報)하면, 조정 또한 경동(驚動)하여 조방장(助防將)과 금군(禁軍)을 보내기도 하므로 매우 소요(騷擾)스럽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의견이 과연 지당하다. 지난번의 일은 역시 소요스러웠다고 할 만한데, 그때가 바야흐로 농번기였으니 반드시 폐단이 많았을 것이다."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황해도에 조방장 보낼 것을 의논한 것은 본도(本道)에서 전혀 방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만약 왜적이 편리함을 이용하여 침구해오면 방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금군(禁軍)을 내려보내는 것은 과연 부당한 일입니다."

하고, 홍숙(洪淑)은 아뢰기를,

"경상도·전라도 등의 경우는 말할 것이 없지만, 경기도·황해도는 전혀 방비를 엄하게 하지 않고 있고 나라에서도 내버려두고 문제삼지 않았으므로 이런 일이 생긴것입니다. 지난번에 만약 일찍 황해도에 조방장을 보냈다면 장산곶[張山串]에서 왜적과 싸울 때에 전부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신은 지금도 일찍 보내지 않은 것을 한스럽게 여깁니다. 윤임(尹任)이 변변치 못한 군관(軍官)을 보내었으므로 능히 사로잡지도 못하였을 뿐더러 도리어 패몰(敗沒)하였으니 지극히 통한(痛恨)스러운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충청도에서 있었던 일은 과연 통한스러운 일이었다."

하매, 김극성이 아뢰기를,

"윤임은 무재(武才)가 있는 사람인데 단 변방 일을 잘 몰랐으므로 처치(處置)하는 데 있어 마땅함을 잃은 것입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경기도·황해도에 병수사(兵水使)를 다시 설치하는 일에 대하여는 신 등이 이미 의논하였습니다만, 경기도의 경우에는 화량(花梁)이 거진(巨鎭)이므로 예전에도 수사가 있었으니 지금 다시 설치하는 것이 그래도 가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해도의 경우에는 결단코 다시 설치할 수 없습니다. 만약 설치한다면 반드시 별도로 영진(營鎭)을 만들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영(營)을 설치한다면 영에 소속될 사람이 없는데, 이 인원을 충차(充差)하기가 더욱 어려운 일이니 경솔하게 설치할 수 없습니다. 화량 첨사(花梁僉使)를 쓸만한 사람으로 택차(擇差)한다면 따로 수사(水使)를 설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고, 형산(荊山)은 아뢰기를,

"화량 첨사는 비록 택차하여 보내더라도 첨사라는 칭호가 있으면 각포(各浦)를 검거(檢擧)할 수 없으니, 칭호를 조방장이라 하여 관찰사(觀察使)와 함께 같이 의논하여 포폄(褒貶)하게 함으로써 각포를 검거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이항(李沆)은 아뢰기를,

"근일 왜노(倭奴)의 배 하나가 변방을 침구하여 온 것 때문에 경동(驚動)하여 경기도·황해도에 병수사(兵水使)를 설치한다고 한는 것은 보고 듣기에도 불가한 일이며 또한 조정의 경중에도 관계되는 것입니다. 충청도의 경우에는 병수사가 있었는데도 능히 포착(捕捉)하지 못하였으니, 대신이 아뢴 바와 같이 화량 첨사를 택차하여 보내는 것이 가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관제(官制)를 설치한 것은 이미 조종(祖宗)께서 하신 일인데, 이제 왜선 1척이 침구하여 온 것 때문에 경솔히 관제를 고쳐 갑자기 없던 관직(官職)을 설치하는 것은 과연 사체(事體)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였다. 남곤이 아뢰기를,

"하문(下問)하신 파방(罷防)하는 일에 대하여는, 신 등의 생각은 왜선이 대양(大洋) 가운데로 나왔다가 본토(本土)를 향하여 돌아간 것이 분명하다고 여겨집니다. 파방하고 돌아온 뒤에 허술함을 이용하여 다시 노략질할는지에 대하여는 비록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조방장 및 군관을 접대하는 폐단이 반드시 클 것이니 관찰사가 있는 곳에 글을 내려 방어에 관한 제반 일을 해이하게 하지 말도록 효유(曉諭)하소서. 그리고 조방장 등으로 하여금 이달을 기한(期限)으로 유방(留防)하게 하고 다음 달에는 파방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고형산은 아뢰기를,

"왜선이 황해도·경기도에 나타났을 적에 포획하지 못하여 이미 충청도·전라도를 지나갔으니, 왜적들은 본디 방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침구하지 못하고 본토로 돌아간 것이 분명하니 속히 파방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이 아뢴 바가 매우 지당하다. 마땅히 본도 관찰사에게 효유(曉諭)하여 이달을 기한으로 유방(留防)하게 하는 것이 가하다."

하매, 윤인경(尹人鏡)이 아뢰기를,

"황해도 각포(各浦)의 만호(萬戶)·첨사(僉使)가 왜적을 포획하지 못하였는데, 그 가운데 더욱 심한 자는 파직(罷職)시킨 뒤에 추문(推問)할 일로 전에 전교(傳敎)가 계셨었으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파방(罷防)한 뒤에 즉시 추문하는 것이 가하다."

하였다. 상이 대신들에게 묻기를,

"황해도의 첨사·만호·수령 들 가운데 왜적을 포획하지 못한 자를 만약 다 파직시킨다면 소요가 일까 염려스러우니, 그 가운데 더욱 심한 자만을 적간(摘奸)하여 파직시키고서 추문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매, 남곤이 아뢰기를,

"황해도에는 전혀 무비(武備)가 없으므로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장연 현감(長淵縣監) 김이(金璃)의 경우에는 장산곶[長山串]의 협소한 곳으로 왜적이 들어왔을 때 만약 힘써 싸웠다면 포획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정원(政院)이 비록 그 도의 관찰사 장계(狀啓)에 의하여 그 가운데 더욱 심한 자를 적간한다 하더라도 모두 다 사실대로 할 수 없을까 염려스러우니, 조관(朝官)을 보내어 그 중 더욱 심한 자에 대하여는 끝까지 추문하여 파직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이사균(李思鈞)은 아뢰기를,

"전혀 추포(追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서로 싸우다가 포획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므로 그 경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과연 다 사실대로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우니, 조관을 보내어 추문한다면 실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원문

○議政府、兵曹、備邊司、知邊事宰相等皆詣闕, 上御思政殿引見南袞曰: "兵曹所啓事, 皆可爲而但難於擧行。 如造, 船當依所啓, 我國全羅、慶尙兩道倭變事緊, 故兵船五年而改造, 或七八年而改造, 例也, 如忠淸、黃海、京畿等道不然。 其所存兵船摘奸, 則皆無實矣, 不得已新造可也。 但猛船有大中小三等, 乃忠淸、黃海、京畿所常用, 不可一切廢之, 而改以兵船也。 黃海道 長山串, 全羅道, 邊山等處有材木, 可以造船。 當別定有司, 檢擧監掌, 船隻體制, 依兵曹所啓甚當。 但今勿造猛船, 須造緩急可用者何如? 柳聃年、曺潤孫皆知此事, 下問則可知矣。" 高荊山曰: "臣爲兵曹判書時, 改造船隻事, 議而未及施行。 黃海、平安道兵船不輕快, 不可用也。 慶尙、全羅兩道雖有猛船, 皆置而不用, 故徒掛陸腐朽, 所常用者, 乃鼻居刀船也。 然猛船之設, 固非偶然。 我國漕運, 皆用猛船, 不可專廢也。 但有大中小三等, 當斟酌其數, 猛船四隻則二隻作輕快兵船好矣。 頃日賊倭之來, 若有輕快船, 則何難捕獲?" 洪淑曰: "高荊山所言果然問諸各道, 皆以爲不可無猛船云, 故猛船減半,作兵船事兵曹已受敎矣。" 南袞曰: "築城事, 不可不爲。 各道軍糧所儲倉庫及軍器所藏, 皆無城子。 若有不虞之變, 將有不能守護之弊。 臣爲黃海道觀察使時, 沿海官皆欲築城, 然不可輕易爲之。 欲爲木柵, 聞于朝廷, 則木柵有(木災)〔火災〕 , 且賊來則何能以此防禦? 宜築城云。 臣令可築之官, 使之拾石, 未及築之而來, 所當速築。" 安潤德曰: "申鏛爲全羅道觀察使, 備邊司問猛船革廢便否, 則鼻居刀船, 於接戰時甚輕捷, 然賊兵蔽海而來, 則當以猛船, 多率軍人, 不可專廢, 備邊司以爲是, 而入啓。" 荊山曰: "已經騎船者當知, 柳聃年、曺潤孫必知便否也。" 潤孫曰: "臣連任慶尙左右道兵、水使。 見諸浦大小猛, 船則果多載軍人。 然其體不輕快, 遭風則不得任意而用, 將有敗沒之患。 鼻居刀船則輕快, 雖遇惡風, 可易用矣。 然左道多有, 而右道則不可謂有也。" 金克成曰: "臣庚午年, 於安骨浦 倭賊圍城時, 見倭船一隻, 高大, 可乘二百餘人。 他餘船或高或小, 其制不一, 彼亦必備大中小以用矣。 慶尙右道大猛、中猛之船, 徒掛不用, 有名無實, 緩急皆不可用, 黃海、忠淸等道全無矣。" 韓亨允曰: "全羅、慶尙兩道船制, 今不必議。 今之所議, 只爲黃海、京畿、忠淸三道兵船體制, 大小何如也? 當議其別造之事可也。 三等猛船, 恐不可全廢也。" 金錫哲曰: "臣爲薺浦僉使時, 問之則倭船雖有高大者, 甚輕快若飛。 庚午年後, 慶尙右道船隻, 其制極巧, 與倭船同其輕快。 猛船雖不可廢, 鼻居刀船所當倍數造置。 忠淸、京畿、黃海等道之船, 皆不可用, 其何能乘此而捕倭乎? 速依慶尙、全羅船制, 改造可也。" 南袞曰: "猛船不必毁之。 但別造鼻居刀船, 以猛船軍人分騎, 因其緩急, 互相用之何如? 荊山之言當矣。 然船制有二樣, 則守之亦難。" 沈順經曰: "臣爲忠淸水使時見之, 大小猛船皆不用, 只用鼻居刀船矣。 且其水軍有名無實, 若於漕運時, 則盡歸於船, 浦所一空。 其所謂水軍, 亦非親習舟楫, 皆雇於騎船, 以代其役, 身則在家, 專不知操舟者頗多。 雖有船而無人, 是亦甚可慮也。 前於丁巳年倭犯鹿島, 命李季仝爲將搜討, 而臣以軍官, 從往見之, 大猛船體大不快, 非緩急可用者也, 皆聚鮑(昨)〔作〕 之船用之。 若大擧則當用猛船, 卒然相戰, 不可不用小船。 且沈義孫逢倭接戰之時, 倭賊一人拔劍投突, 義孫所領船鮑作、 格軍等皆投潛水中, 無一人在船。 幸其倭不能入船, 故無所殺傷。 舟中所恃, 專在蒿工, 而有難則輒如是, 何能保其船耶? 此言若實, 則當罪格軍, 使之知避賊投水之不得免死, 何如?" 袞曰: "兵船, 該曹令各浦, 破猛船造小船, 量定其數爲之可也。 各浦築城事, 亦問其聚石多少, 而處之何如?" 荊山曰: "城子事, 臣所見諸處, 皆爲畢築, 只烏浦、丑山浦未及築之, 兵曹受敎撿擧則可矣。" 袞曰: "水軍事, 乃是根本, 而恐不能行其事也。 如京畿、黃海兩道煮鹽及海採, 皆水軍所事, 無一日在鎭之時矣。 且京畿水軍則不得已赴役於京。 役事則已, 物膳之事, 亦且重大, 而非各浦水軍, 不能事矣。" 克成曰: "水軍所納物膳, 非所自採。 以其價, 來京貿納, 其弊尤甚, 此亦可慮。" 荊山曰: "水軍事, 令兵曹書其所爲, 量其役處輕重, 而處之可也。" 袞曰: "今此倭奴被擒者云: ‘朝貢于中朝, 而漂流, 乃於忠淸道橫行作耗。’ 此不過恐動我國, 以遂其請。 今不得請, 則近必更來作賊, 然彼於我境, 每遇軍卒輒被逐而歸, 必知其不可輕犯也。 且水軍海採之事, 不可使他人爲之, 亦不可一切留防。 如定虜衛, 前所無之軍, 量其多少, 使之分防何如?" 柳聃年曰: "慶尙道則非徒水軍, 境內軍士亦皆分防諸鎭矣。 定虜衛除當番, 留防何如?" 克成曰: "慶尙、全羅雖常用武之地, 而武人亦尠, 如水軍五百, 則能射者不過三十餘人。 況京畿則執弓者百無一二矣。" 李思鈞曰: "倭變, 自古有之。 三等猛船之設, 非偶然也。 其設意則必是彼船小, 我船大, 彼賊不敢跳上也, 若欲以一切追捕爲事, 則果用小船也。 不然則不可偏廢猛船也, 且當有大兵, 則非猛船不可多載軍人。 今此一船倭, 不可謂寇賊, 只欲恐動我也。 大抵, 倭人本以操舟爲長技, 故雖釣魚船, 必設旗屛而行。 我國邊將見之, 則輒以爲賊, 顚倒騷動, 馳報朝廷, 朝廷亦且驚動, 或遣助防將、禁軍, 甚爲騷擾。" 上曰: "是意果當, 頃者之事, 亦云騷動。 方農之時, 必多有弊。" 袞曰: "黃海道議遣助防將者, 本道專不爲防備之事, 萬一倭賊乘便入來, 則不可禦之故也。 但禁軍下送, 果爲不當。" 洪淑曰: "如慶尙、全羅等道則已, 京畿、黃海專不嚴防備, 國家亦置之慮外, 故以致此矣。 頃者, 若早遣助防將於黃海道, 則長山串, 與倭相戰時, 可得盡捕, 臣, 至今恨其不早遣也。 尹任只遣迷劣軍官, 不能捕擒, 反致敗沒, 至爲痛恨。" 上曰: "忠淸道事, 果爲痛甚。" 克成曰: "尹任有武才, 但未諳邊事, 故處置失宜。" 袞曰: "京畿、黃海兵ㆍ水使復設事, 臣等已議之。 京畿則花梁巨鎭, 古有水使, 今之復設猶或可也, 黃海則決不可設。 若置之則必須別作營鎭, 而設營處, 亦無營屬之人, 尤難充數, 不可輕易爲之。 花梁僉使擇差可用者, 則不必別設水使也。" 荊山曰: "花梁僉使雖擇差, 有僉使之號, 則不能檢擧各浦。 但稱號助防將, 與觀察使同議褒貶, 使之檢擧各浦則好矣。" 李沆曰: "近日, 倭奴一船犯邊, 輒爲驚動, 設置兵、水使, 于京畿、黃海兩道, 於見聞不可, 亦關於朝廷輕重。 如忠淸道雖有兵、水使亦不能捕捉, 如大臣所啓。 擇差花梁僉使則可矣。" 上曰: "官制之設, 已自祖宗矣。 今因一倭船之來, 輕變官制, 遽設所無之官, 果異於事體也。" 袞曰: "下問罷防事, 臣等以爲, 倭船出於大洋中, 還向本土, 似爲明白。 其罷防還來後, 乘便作耗, 雖不可知, 然其助防將及軍官供億之弊必大。 觀察使處下書, 諭以毌解弛防備諸事, 而令助防將等限今月留防, 來月則罷之何如?" 荊山曰: "倭船現形於黃海、京畿時, 旣不能捕, 今已過於忠淸、全羅則倭奴素知有防備, 必不入寇。 其還本土丁寧, 宜速罷防。" 上曰: "大臣所啓甚當矣。 當諭本道觀察使, 限今月留防可也。" 尹仁鏡曰: "黃海各浦萬戶、僉使不能捕倭。 其中尤甚者, 罷防後推之事, 前有傳敎, 何以爲之?" 上曰: "罷防後卽推之可也。" 上問于大臣曰: "黃海僉使、萬戶、守令等不能捕倭者, 若全數遞之, 則恐爲騷擾, 摘其中尤甚者, 罷職而推之何如?" 袞曰: "黃海道全無武備, 故以至於此也。 然如長淵縣監金璃, 於長山串入窄地時, 若力戰則可以捕捉矣。 政院雖以其道觀察使狀啓, 摘其尤甚者, 然恐不能盡實也。 其遣朝官, 窮推尤甚者罷之, 何如?" 思鈞曰: "或專不追捕, 或相戰而不能捕者, 其爲輕重可知矣。" 上曰: "果恐未盡實也。 其遣朝官推之, 則可知其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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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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