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34권, 중종 13년 9월 5일 임인 1/3 기사 /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조강에 나아가니, 향약의 시행 문제로 조광조와 정광필 등이 아뢰다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참찬관 조광조가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온양군(溫陽郡) 사람이 향약(鄕約)540) 을 잘 행한다 합니다. 만약 향약을 잘 이행한다면 진실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고, 영사 정광필이 아뢰기를,
"향약이 좋기는 좋지만, 모인 무리가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수령의 권세가 도리어 약해질 것이니 살펴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무리 아름다운 일이라도 실행이 없으면 불가하다. 모든 일은 이름에 따른 실지가 있어야 한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향약을 행하는 고을에서는 양민(良民)을 강압하여 천인(賤人)으로 만들고 관채(官債)의 납부를 막는 이러한 일은 모두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번에 김안국(金安國)이 경상 감사로 있을 적에 비로소 향약을 행하게 하였는데, 그 때에는 전처럼 싸우는 일이 있었으나 시초였기 때문입니다."
하고, 집의 김희수가 아뢰기를,
"이렇게 하여 풍속이 이루어지게 되면 조정에서 형법을 쓰지 않더라도 다 교화될 것입니다."
하고, 참찬관 유인숙(柳仁淑)이 아뢰기를,
"당장 효과를 보려고 하면 이루지 못하게 되니 오래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였다. 김희수가 아뢰기를,
"아뢴 바의 인물은 아직 동료들과 의논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이희옹 등은 아뢴 지가 오래되었으니 결코 훈적에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소격서의 일로 육조의 낭관이 또한 다 소장을 올리고, 성균관의 학생도 소를 올려 극도에 이르러서야 그 일을 들어주시니, 들어줄 것이라면 속히 들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소격서의 일은 위에서 다 이미 짐작하셨고, 근시(近侍)한 사람들도 반드시 상의 뜻을 알 것이나, 바깥 사람은 국시(國試)에 부대끼어 들어주신 것으로 의심할 것입니다. 천년이나 혁파하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야 혁파하니 매우 시원할 듯한데, 바깥사람들이 의심하는 바를 말하면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소격서는 그 유래가 오래되어 가벼이 고칠 수 없는 것이나, 일국의 공론이 다 그러함을 보았기 때문에 혁파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국시에 부대끼어 들어준 것 같으니, 아랫사람들도 이것으로써 의심한다면 매우 불가하다."
하매, 사간 민수천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반드시 국시에 부대낄 것이라 하여 아랫사람이 아뢰었다고 여기시고, 아랫사람도 국시가 임박하므로 상이 부대끼어 들어주시도록 하려고 하였다면 소격서의 유무(有無)는 진실로 관계없는 것이 되니, 위아래가 이와 같이 마음을 먹으면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런데 지금 전교를 듣건대 이와 같이 아주 훌륭하시니, 군신간에 어찌 의심을 두겠습니까?
아랫사람들이 다 이와 같은 때는 만나기 어렵다 하고, 또 잘 다스리고자 하는 임금도 세대마다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조그마한 재능이 있더라도 다 마음의 회포를 펴려고 하며 게다가 성학(聖學)이 고명하여 의리(義利)와 시비(是非)를 정확히 판단하여 의심하지 아니하므로, 아랫사람이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요(堯)·순(舜)처럼 태평 시대를 이루게 하려 하고, 전하께서 채택하는 것도 비상하여 조그마한 착한 일도 다 받아들여 버리지 않으므로 소격서의 일을 육조의 낭관과 성균관 학생들이 다 봉소(封疏)를 올렸던 것입니다. 옛말에 ‘아름다운 말은 숨겨지지 않는다.’541) 하였으니, 이는 한 세대에 드문 아름다운 일입니다. 전하께서 반성해 보시어, 내가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시면 싫어하거나 거절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만약 조금이라도 시끄럽다고 생각하시면 이는 매우 불가합니다. 지금 전교를 듣고 중외(中外)가 다 상의 뜻을 환하게 알 것입니다."
하였다. 또 이희옹·김극회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사상-도교(道敎)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註 540] 향약(鄕約) : 권선 징악(勸善懲惡)을 취지고 한 향촌(鄕村)의 자치 규약. 본시 송(宋)나라의 여대균(呂大鈞) 주창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본뜬 것으로, 덕업(德業)으로 서로 권하는 것, 과실을 서로 경계하는 것, 예다운 풍속으로 서로 사귀는 것, 환난(患難)을 서로 구휼하는 것, 이 네 가지를 강령(綱領)으로 삼았다.
- [註 541] ‘아름다운 말은 숨겨지지 않는다.’ :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데,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한 말이다.
원문
○壬寅/御朝講。 參贊官趙光祖曰: "臣聞溫陽郡人, 善行鄕約。 若善行鄕約, 則固美矣。" 領事鄭光弼曰: "鄕約好則好矣。 然聚徒而所爲不善, 則邑宰之勢, 反爲弱矣。 所當審戒也。" 上曰: "雖美事, 而其實不存則不可, 故凡事循名責實, 可也。" 光祖曰: "行鄕約之邑, 如壓良爲賤, 拒扞官債之納, 如此等事, 皆已未見。 前者金安國爲慶尙道監司時, 乃始令行之, 其時仍興鬪狠, 蓋始初故然也。" 執義金希壽曰: "以此而至於成俗, 則雖在朝廷, 不用刑法, 而皆化焉。" 參贊官柳仁淑曰: "欲亟見立效, 則不達。 待以悠久, 可也。" 希壽曰: "所啓人物, 時未與同僚議之, 但李希雍等, 啓之已久, 決不可存也。 近以昭格署事, 六曹郞官亦皆上章, 學生又從而疏陳, 至於極而後聽之。 (等)〔若〕 爲聽之, 則速爲聽納, 可也。 昭格署事, 在上皆已斟酌, 近侍之人, 則必知上意, 外人則疑其迫於國試而聽之也。 將千載所未革者, 今乃革之, 則似甚快焉, 而以外人所疑言之, 則未安處多矣。" 上曰: "昭格署, 其來已久, 不可輕改, 而見一國公論皆然, 故乃命革之, 果是似迫於國試而聽之也。 在下亦以此疑之, 則甚不可也。" 司諫閔壽千曰: "在上以爲, 下人必以國試拘迫而啓之, 下人亦以爲國試臨迫, 而欲上迫而聽之, 則夫昭格署之有無, 固無關焉, 而上下如是爲心, 所關甚大。 今聞傳敎, 如是甚善, 君臣之間, 豈存形迹? 下人皆謂, 難際如此之時, 欲治之主, 又不世出, 其有毫髮之才, 皆欲展布心懷, 重以聖學高明, 於義利是非, 已判然無疑, 故下人欲吾君致治如堯、舜, 而在上采納, 亦爲非常, 有小善, 則皆容不棄。 是故昭格署事, 六曹郞官及學生, 皆上封疏。 古云: ‘嘉言罔攸伏。’此乃一世所罕有之美事也。 在上當反躬計之, 以爲我能納言故然也, 不爲厭拒。 若稍以爲騷擾, 則甚不可焉。 今聞傳敎, 中外必皆釋然知上意也。" 又啓李希雍、金克恢等事, 不允。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사상-도교(道敎)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중종 13년 (1518) 9월 5일
중종실록34권, 중종 13년 9월 5일 임인 1/3 기사 / 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조강에 나아가니, 향약의 시행 문제로 조광조와 정광필 등이 아뢰다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참찬관 조광조가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온양군(溫陽郡) 사람이 향약(鄕約)540) 을 잘 행한다 합니다. 만약 향약을 잘 이행한다면 진실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고, 영사 정광필이 아뢰기를,
"향약이 좋기는 좋지만, 모인 무리가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수령의 권세가 도리어 약해질 것이니 살펴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무리 아름다운 일이라도 실행이 없으면 불가하다. 모든 일은 이름에 따른 실지가 있어야 한다."
하매, 조광조가 아뢰기를,
"향약을 행하는 고을에서는 양민(良民)을 강압하여 천인(賤人)으로 만들고 관채(官債)의 납부를 막는 이러한 일은 모두 보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번에 김안국(金安國)이 경상 감사로 있을 적에 비로소 향약을 행하게 하였는데, 그 때에는 전처럼 싸우는 일이 있었으나 시초였기 때문입니다."
하고, 집의 김희수가 아뢰기를,
"이렇게 하여 풍속이 이루어지게 되면 조정에서 형법을 쓰지 않더라도 다 교화될 것입니다."
하고, 참찬관 유인숙(柳仁淑)이 아뢰기를,
"당장 효과를 보려고 하면 이루지 못하게 되니 오래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였다. 김희수가 아뢰기를,
"아뢴 바의 인물은 아직 동료들과 의논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이희옹 등은 아뢴 지가 오래되었으니 결코 훈적에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소격서의 일로 육조의 낭관이 또한 다 소장을 올리고, 성균관의 학생도 소를 올려 극도에 이르러서야 그 일을 들어주시니, 들어줄 것이라면 속히 들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소격서의 일은 위에서 다 이미 짐작하셨고, 근시(近侍)한 사람들도 반드시 상의 뜻을 알 것이나, 바깥 사람은 국시(國試)에 부대끼어 들어주신 것으로 의심할 것입니다. 천년이나 혁파하지 못하던 것을 지금에야 혁파하니 매우 시원할 듯한데, 바깥사람들이 의심하는 바를 말하면 미안한 점이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소격서는 그 유래가 오래되어 가벼이 고칠 수 없는 것이나, 일국의 공론이 다 그러함을 보았기 때문에 혁파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국시에 부대끼어 들어준 것 같으니, 아랫사람들도 이것으로써 의심한다면 매우 불가하다."
하매, 사간 민수천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반드시 국시에 부대낄 것이라 하여 아랫사람이 아뢰었다고 여기시고, 아랫사람도 국시가 임박하므로 상이 부대끼어 들어주시도록 하려고 하였다면 소격서의 유무(有無)는 진실로 관계없는 것이 되니, 위아래가 이와 같이 마음을 먹으면 관계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그런데 지금 전교를 듣건대 이와 같이 아주 훌륭하시니, 군신간에 어찌 의심을 두겠습니까?
아랫사람들이 다 이와 같은 때는 만나기 어렵다 하고, 또 잘 다스리고자 하는 임금도 세대마다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조그마한 재능이 있더라도 다 마음의 회포를 펴려고 하며 게다가 성학(聖學)이 고명하여 의리(義利)와 시비(是非)를 정확히 판단하여 의심하지 아니하므로, 아랫사람이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요(堯)·순(舜)처럼 태평 시대를 이루게 하려 하고, 전하께서 채택하는 것도 비상하여 조그마한 착한 일도 다 받아들여 버리지 않으므로 소격서의 일을 육조의 낭관과 성균관 학생들이 다 봉소(封疏)를 올렸던 것입니다. 옛말에 ‘아름다운 말은 숨겨지지 않는다.’541) 하였으니, 이는 한 세대에 드문 아름다운 일입니다. 전하께서 반성해 보시어, 내가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시면 싫어하거나 거절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만약 조금이라도 시끄럽다고 생각하시면 이는 매우 불가합니다. 지금 전교를 듣고 중외(中外)가 다 상의 뜻을 환하게 알 것입니다."
하였다. 또 이희옹·김극회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사상-도교(道敎)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 [註 540] 향약(鄕約) : 권선 징악(勸善懲惡)을 취지고 한 향촌(鄕村)의 자치 규약. 본시 송(宋)나라의 여대균(呂大鈞) 주창한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본뜬 것으로, 덕업(德業)으로 서로 권하는 것, 과실을 서로 경계하는 것, 예다운 풍속으로 서로 사귀는 것, 환난(患難)을 서로 구휼하는 것, 이 네 가지를 강령(綱領)으로 삼았다.
- [註 541] ‘아름다운 말은 숨겨지지 않는다.’ :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데,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한 말이다.
원문
○壬寅/御朝講。 參贊官趙光祖曰: "臣聞溫陽郡人, 善行鄕約。 若善行鄕約, 則固美矣。" 領事鄭光弼曰: "鄕約好則好矣。 然聚徒而所爲不善, 則邑宰之勢, 反爲弱矣。 所當審戒也。" 上曰: "雖美事, 而其實不存則不可, 故凡事循名責實, 可也。" 光祖曰: "行鄕約之邑, 如壓良爲賤, 拒扞官債之納, 如此等事, 皆已未見。 前者金安國爲慶尙道監司時, 乃始令行之, 其時仍興鬪狠, 蓋始初故然也。" 執義金希壽曰: "以此而至於成俗, 則雖在朝廷, 不用刑法, 而皆化焉。" 參贊官柳仁淑曰: "欲亟見立效, 則不達。 待以悠久, 可也。" 希壽曰: "所啓人物, 時未與同僚議之, 但李希雍等, 啓之已久, 決不可存也。 近以昭格署事, 六曹郞官亦皆上章, 學生又從而疏陳, 至於極而後聽之。 (等)〔若〕 爲聽之, 則速爲聽納, 可也。 昭格署事, 在上皆已斟酌, 近侍之人, 則必知上意, 外人則疑其迫於國試而聽之也。 將千載所未革者, 今乃革之, 則似甚快焉, 而以外人所疑言之, 則未安處多矣。" 上曰: "昭格署, 其來已久, 不可輕改, 而見一國公論皆然, 故乃命革之, 果是似迫於國試而聽之也。 在下亦以此疑之, 則甚不可也。" 司諫閔壽千曰: "在上以爲, 下人必以國試拘迫而啓之, 下人亦以爲國試臨迫, 而欲上迫而聽之, 則夫昭格署之有無, 固無關焉, 而上下如是爲心, 所關甚大。 今聞傳敎, 如是甚善, 君臣之間, 豈存形迹? 下人皆謂, 難際如此之時, 欲治之主, 又不世出, 其有毫髮之才, 皆欲展布心懷, 重以聖學高明, 於義利是非, 已判然無疑, 故下人欲吾君致治如堯、舜, 而在上采納, 亦爲非常, 有小善, 則皆容不棄。 是故昭格署事, 六曹郞官及學生, 皆上封疏。 古云: ‘嘉言罔攸伏。’此乃一世所罕有之美事也。 在上當反躬計之, 以爲我能納言故然也, 不爲厭拒。 若稍以爲騷擾, 則甚不可焉。 今聞傳敎, 中外必皆釋然知上意也。" 又啓李希雍、金克恢等事, 不允。
- 【태백산사고본】 17책 34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4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사상-도교(道敎) / 정론-정론(政論) / 정론-간쟁(諫諍)
원본
중종 13년 (1518) 9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