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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25권, 중종 11년 7월 1일 경진 2번째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문소전의 일로 자신을 꾸짖고 충언을 구하는 교지를 내리도록 명하다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이행(李荇) 등이 상차(上箚)하기를,

"지난달 28일의 교지(敎旨)를 보건대, 애통 참달(哀痛慘怛)하여 몸 둘 바가 없는 듯하시니, 직위에 있는 신하들이 마음 잡을 길이 없습니다. 상고하건대, 송 이종(宋理宗)태묘(太廟)에 화재가 있으매 황제가 소복(素服)하고, 재집(宰執)은 관봉(官封) 1등을 낮추었는데, 대개 막대한 변을 당하여 임금과 신하가 서로 폄손(貶損)하여 각각 자기의 도리를 다한 것이니, 동체(同體)의 의리가 워낙 이러하여야 합니다. 문소전(文昭殿)이 태묘와 같지는 않으나, 신위(神位)를 잃은 것은 화재보다 심한 일이므로 전하의 참달(慘怛)한 교지가 이와 같으신데 직위에 있는 대신은 허물을 지고 폄손할 뜻을 갖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재이(災異)를 당하면 대신도 반드시 대죄(待罪)하여 보치(輔治)를 다하지 못한 것을 빌었는데, 이번의 변이 어떠한 일이며 선후(先后)의 신위가 지금 어디에 계시기에 감히 스스로 편안하게 여기는 것인지 신 등은 모르겠습니다. 또, 친제(親祭)하시던 날 거가(車駕)가 겨우 돌아와 아직 대내(大內)에 들지 않았고 날이 아직 어둡지 않고 별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유성(流星)이 변이 있었으며, 이날 초야(初夜)에 도성(都城)에 지진(地震)이 있어 천둥 같은 소리가 났으며, 화살이 헌부(憲府)의 문에 맞은 것도 이날에 있었던 일이었으므로, 신인 천지(神人天地)의 변이 하루 안에 함께 일어나서 지극한 변이가 이토록 심하였으니, 전하께서는 더욱 참달하셔야 마땅한 것입니다. 또, 임금이 하교(下敎)하여 자신을 꾸짖는 것도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바라는 바가 있는 것일 터이니, 중외(中外)로 하여금 나라의 궐실(闕失)을 널리 아뢰게 하여, 전하께서 참달하게 여기는 참뜻을 보이셔야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말한 것이 지당하다."

하고, 이어서 자신을 꾸짖고 충언(忠言)을 구하는 교지를 내리도록 명하여, 정부(政府)에 하교하기를,

"내 덕이 부족하여 위로는 하늘에 보답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이끌지 못하매, 간변(姦變)이 거듭 일고 재이(災異)가 겹쳐 이르므로, 내 몸을 스스로 꾸짖고 매양 매우 조심하나 정성이 부족하여 위아래에 죄를 더 얻게 되어 문소전에 도둑이 들어 제사실(第四室)의 선후의 신위를 잃었으니 천고(千古)에 없던 큰 변이다. 내몸에 죄가 있는데 화(禍)가 선후께 미쳤으니 애통 참달함이 어찌 끝이 있겠으며, 신위가 계신 곳을 아직 알 수 없으니 황급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 어찌 차마 편히 있겠는가? 스스로 찾아 모시어 무궁한 마음을 조금은 펴 보려고 원묘(原廟) 곁 한데에 거처하면서 신위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고자 하였으나, 대신(大臣)이 그럴 수 없다고 고집하므로 내 뜻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대신이 분주히 나흘 동안 두루 찾았으나, 신어(神馭)가 묘연하여 소식이 아직도 막혔으니, 하늘이 나를 죄주는 것이 어찌하여 차마 이러한가? 당초에 변고를 듣고 황급히 달려 가서 묘정(廟庭)을 살피고서 수레가 겨우 궁(宮)으로 돌아오고 날은 아직 어둡지 않았는데 유성이 이변을 보였고, 이 밤에 경도에 지진이 있었으며, 화살이 사헌부의 문을 쏘아 맞힌 일도 이 날에 있었는데 이것도 막대한 변이거니와, 헌부는 풍헌(風憲)을 맡은 곳인데 나라에 기강이 있으면 어찌 그렇게까지 되겠는가? 천재 지이(天災地異)와 신화 인변(神禍人變)이 하루 안에 몰려 온 것은 다 내가 덕이 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몹시 자책(自責)되어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이 간사한 이변이 사람의 짓이라고는 하나 모두가 하늘의 뜻이다. 위로 하늘의 노여움을 그치게 하고 아래로 투박한 풍속을 돌이키게 하는 데에 어찌 그 도리가 없겠는가? 지난 허물은 미칠 수 없으나 장래는 오히려 바랄 수 있다. 아, 너희 신민(臣民)은 숨김 없이 나라의 궐실을 극진하게 말하라. 내가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려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꾀하리니, 이 뜻으로 중외에 널리 하유(下諭)하여 내 뜻을 알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5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95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사법-치안(治安)

    ○弘文館副提學李荇等上箚曰:

    伏覩前月二十八日敎旨, 哀痛慘怛, 若無自容, 在位臣僚, 何以爲心? 謹按, 理宗太廟災, 帝素服, 宰執降官封一等, 蓋處莫大之變, 君臣交相貶損, 各盡己道, 同體之義, 固當如是也。 文昭殿雖非太廟, 而神位亡失, 甚於火災。 殿下慘怛之敎如此, 而在位大臣, 無有引咎貶損之意。 古者凡遇災異, 大臣亦必待罪, 以謝輔治無效。 臣等未審今此之變, 爲何等事, 而先后神位, 今在何所, 敢爾自安耶? 又於親祭之日, 車駕纔還, 未入大內, 日尙未昏, 星且不現, 而有流星之變, 是夜初鼓, 都城地震, 有聲如雷。 矢射憲府門扉, 亦在是日, 神人天地之變, 同發於一日之內, 變異之極, 至於如此, 殿下尤宜慘怛者也。 且王者下敎責躬, 亦必有望於下, 宜令中外, 廣陳闕失, 以示殿下慘怛之實。

    傳曰: "所言至當。" 仍命下責己求言之旨, 敎政府曰: "予德不類, 上無以答天; 下無以導民。 姦變屢起, 災異疊至, 撫躬自責, 兢懼每切, 而誠未孚格, 秪益獲戾于上下。 盜入文昭殿, 亡失第四室先后神位, 千古未有之大變。 寡躬有罪, 禍延先后, 痛摧慘怛, 曷有紀極? 神位所御, 尙未得知, 皇皇罔措, 何忍寧居? 欲躬自奉尋, 少伸無窮之思, 露處原廟之側, 以竢神位之復, 大臣執以爲難, 予情未遂。 大臣奔走旁索四日, 神馭邈邈, 消息尙阻, 天之罪予, 胡寧忍斯? 當初聞變, 蒼皇奔詣, 祗審廟庭, 駕纔還宮, 日且未昏, 而流星見異。 是夜京都地震, 矢射司憲府門扉, 又在是日, 此又莫大之變。 憲府, 風憲所寄, 國有紀綱, 寧至是耶? 天災地異, 神禍人變, 駢臻於一日之內, 皆由予之不德, 痛自刻責, 不知所爲。 凡此奸變, 雖云人爲, 莫非天意。 上弭天怒, 下回薄俗, 豈無其道? 往愆無及, 來猶可冀, 咨爾臣庶, 極言闕失, 無有所諱。 予方虛佇, 庶圖自新, 其廣諭中外, 使知予意。"


    • 【태백산사고본】 13책 25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195면
    • 【분류】
      왕실-종사(宗社)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과학-지학(地學) / 사법-치안(治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