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이 졸(卒)하였다. 부음(訃音)을 듣고 전교하기를,

"부의[致賻]와 관곽(棺槨)·회장(會葬) 등의 일을 한결같이 박원종(朴元宗)의 예대로 하라."

하였다. 순정의 자는 지옹(智翁)인데 진주(晉州)사람이다. 풍채가 의연(毅然)하여 문·무(文武)의 재질을 겸했고, 성격도 침중(沈重) 과묵하며 너그럽고 도량이 있어 젊어서부터 사람들이 모두 공보(公輔)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성종 때에 갑과(甲科)에 장원하여 누차 변장(邊將)이 되었었는데, 대개 공천(公薦)에 의한 것이었다. 연산군 말년에 박원종·성희안(成希顔) 등과 함께 거의(擧義)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니, 당시 사람들이 삼대장(三大將)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성격이 우유 부단(優柔不斷)하여 과단성이 적었으며, 또한 뇌물을 좋아하며 전장(田庄)을 많이 차지했었다. 일찍이 겸 병조 판서로 있으면서 무릇 관원을 제수(除授)하는 권한은 모두 그의 수중에 있어서, 첨사(僉使)나 만호(萬戶) 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뇌물이 많고 적음을 보아 제수했고, 판서는 자리만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장녹수(張綠水)의 집을 하사(下賜)받아 이사하게 되었는데, 어떤 손이 찾아가자 순정이 말하기를 ‘무령(武靈)⁵⁴⁵⁾ 은 복이 있어 그가 받은 집은 재물이 매우 많아 장독이 30개나 되는데, 내가 받은 집은 쓴 듯하니 복있는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하였으니, 그의 비루하고 인색함이 이러했다. 만년에는 또 여색(女色)에 방탕하여, 열(熱)한 약을 먹다가 실명(失明)했으며 천명대로 살지 못했다. 시호를 문정(文定)이라 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17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14책 633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 [註 545] 무령(武靈) : 유자광(柳子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