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중종실록15권, 중종 7년 2월 24일 기해 1/4 기사 /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특진관 최한홍이 북쪽 백성들의 빈궁한 사정을 말하다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특진관(特進官) 최한홍(崔漢洪)이 아뢰기를,

"북쪽 백성들이 사채(私債)로도 의지하여 살아갈 수 없고, 공채(公債)가 있으나 수령(守令)들이 해유(解由)를 생각하여 곡식을 방출하려고 하지 않으며, 빈궁한 백성들은 절린(切隣)이 극력 배척하여 빚 얻을 문적(文籍)에 붙여주지 않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갚지 않고 도망한 사람들의 것은 독촉이 절린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빈궁한 사람들이 아이를 길에 버리므로, 우리 백성들이 거두어 길렀다가 저들(彼人)102) 에게 전매(轉賣)하는 자가 있기도 하고, 더러는 제발로 저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자도 이루 다 셀 수가 없는데, 저들이 옷을 벗어 입히고 음식을 주어 키우기 때문에 투신(投身)하는 자가 날로 많아집니다. 또 저들은 저축을 잘 하고 음식을 적게 먹으며, 사냥해서 잡은 고기로 조석의 끼니를 이으므로 빚을 갚아야 하는 고통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들은 점점 강성하여지고 우리 백성들은 점점 약해집니다.

경원(慶源)에 저축된 곡식이 거의 하나도 없이 탕진되었는데, 근자에 조원기(趙元紀)가 부사(府使)가 되어 방어하는 일은 무사만 못하지만 마음을 다해 조치하여 저축이 조금 넉넉해졌고, 그 나머지 고을들은 수령이 모두 새로 출신한 무사여서 조치는 할 줄 모르고 부질없이 관곡(官穀)만 소비합니다. 길성(吉城)은 곧 북도의 관방(關防)으로 변경(邊警)이라도 있게 되면 방어하는 모든 일을 마땅히 여기에다 정비해야 하니, 더욱 미리 예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고을의 저축한 곡식이 본래 7만 2천여 석인데 지금은 겨우 1만 1천여 석이니, 변방에 사단(事端)이라도 생긴다면 장차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하고, 영사(領事) 송일(宋軼)이 아뢰기를,

"최한홍이 아뢴 말은 매우 지당합니다. 신이 듣건대, 저들이 제일 탐내는 것은 사람이고 다음은 소와 말이므로, 우리 백성이 한 사람만 저들에게 가도 수령·병사(兵使)를 파출(罷黜)하는 것으로 논죄(論罪)합니다. 전매하는 경우에는 본래 정한 법이 있는데, 수령들이 죄가 무서워 숨기고 계문(啓聞)하지 않아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그 도(道)로 하여금 추쇄(推刷)하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한홍이 아뢰기를,

"북쪽 백성들은 사내를 낳으면 숨겨 호적에 싣지 아니하고, 동쪽 집에서 아들을 낳으면 서쪽 집에서 기르고, 서쪽 집에서 아들을 낳으면 또한 그와 같이 하는 것은 군역(軍役)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엄중한 명으로 호적에 싣도록 하더라도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오랑캐들[胡]을 먹이는 곡식이, 회령(會寧)은 1년에 90석이고 종성(鍾城)은 50석이었는데, 지난번에 고형산(高荊山)이 계문하여 일체 모두 감했습니다. 무릇 저들로서 우리 인물(人物)을 쇄환(刷還)하거나 체탐(體探)에 공 있는 자를 상경(上京)시키는 것은 제한(制限)된 수가 있고, 그 나머지 용맹스럽고 건장(健壯)한 사람들이 매우 많으나, 주장(主將)들이 술과 음식이 없기 때문에 모두 접대하지 못하고 있으니,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변방에 보고하는 일들에 있어서 혹시 방해로움이 있게 될까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큰일이니 마땅히 널리 의논하겠다."

하였다.

  • [註 102] 저들(彼人) : 여진족을 가리킨다.

원문

○己亥/御朝講。 特進官崔漢洪曰: "北方之民, 無私債, 可倚爲食, 雖有公債, 守令亦慮解由, 未肯許糶。 若民之窮者, 則切隣力擯, 不付受債之籍。 此無他, 不償而在逃者, 督切隣故也。 由是窮者, 棄兒於道路, 我土之民收養, 而轉賣於彼人者有之。 或自流入彼人者, 尤不可勝數, 而彼人解衣衣之, 與食養之, 故投接者日多。 且彼人善於儲蓄, 性且少食, 而因獵得肉, 以資朝夕, 又無償債之苦。 由是彼人漸强, 而我民漸弱, 慶源儲穀, 幾於一蕩。 近者趙元紀爲府使, 雖防禦不如武士, 然盡心措置, 積貯稍裕。 其餘州郡, 則守令皆新進武士, 不能措置, 徒糜費官穀耳。 吉城乃北道關防。 設有邊警, 防禦諸事, 當於此整齊, 尤不可不預爲之所。 此縣儲穀, 本七萬二千餘石, 而今者僅餘一萬一千餘石。 脫有邊釁, 將何以用武?" 領事宋軼曰: "漢洪所言甚當。 臣聞彼人, 首貪人物, 次貪牛馬, 故我民見虜於彼, 雖一人, 守令、兵使, 論以罷黜。 其轉賣之間, 自有定法, 守令畏罪, 秘不以聞, 此弊不少。 令其道推刷何如?" 漢洪曰: "北方之民生男, 則秘不載戶籍, 東家子生, 則養於西家, 西家子生, 則亦如之, 畏役故也。 雖嚴令載籍, 亦難也。" 又曰: "餉胡之穀, 會寧則一年九十石, 鍾城則五十石, 而往者高荊山啓聞, 一皆蠲減。 凡彼人刷還人物體探, 有功者上京有數, 而其餘年壯勇健者甚多, 主將以無酒食, 皆未接待。 若然則其於報邊等事, 恐或有妨。" 上曰: "此大事, 當廣議。"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중종실록15권, 중종 7년 2월 24일 기해 1/4 기사 / 1512년 명 정덕(正德) 7년

특진관 최한홍이 북쪽 백성들의 빈궁한 사정을 말하다

국역

조강에 나아갔다. 특진관(特進官) 최한홍(崔漢洪)이 아뢰기를,

"북쪽 백성들이 사채(私債)로도 의지하여 살아갈 수 없고, 공채(公債)가 있으나 수령(守令)들이 해유(解由)를 생각하여 곡식을 방출하려고 하지 않으며, 빈궁한 백성들은 절린(切隣)이 극력 배척하여 빚 얻을 문적(文籍)에 붙여주지 않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라 갚지 않고 도망한 사람들의 것은 독촉이 절린에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빈궁한 사람들이 아이를 길에 버리므로, 우리 백성들이 거두어 길렀다가 저들(彼人)102) 에게 전매(轉賣)하는 자가 있기도 하고, 더러는 제발로 저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자도 이루 다 셀 수가 없는데, 저들이 옷을 벗어 입히고 음식을 주어 키우기 때문에 투신(投身)하는 자가 날로 많아집니다. 또 저들은 저축을 잘 하고 음식을 적게 먹으며, 사냥해서 잡은 고기로 조석의 끼니를 이으므로 빚을 갚아야 하는 고통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저들은 점점 강성하여지고 우리 백성들은 점점 약해집니다.

경원(慶源)에 저축된 곡식이 거의 하나도 없이 탕진되었는데, 근자에 조원기(趙元紀)가 부사(府使)가 되어 방어하는 일은 무사만 못하지만 마음을 다해 조치하여 저축이 조금 넉넉해졌고, 그 나머지 고을들은 수령이 모두 새로 출신한 무사여서 조치는 할 줄 모르고 부질없이 관곡(官穀)만 소비합니다. 길성(吉城)은 곧 북도의 관방(關防)으로 변경(邊警)이라도 있게 되면 방어하는 모든 일을 마땅히 여기에다 정비해야 하니, 더욱 미리 예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고을의 저축한 곡식이 본래 7만 2천여 석인데 지금은 겨우 1만 1천여 석이니, 변방에 사단(事端)이라도 생긴다면 장차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하고, 영사(領事) 송일(宋軼)이 아뢰기를,

"최한홍이 아뢴 말은 매우 지당합니다. 신이 듣건대, 저들이 제일 탐내는 것은 사람이고 다음은 소와 말이므로, 우리 백성이 한 사람만 저들에게 가도 수령·병사(兵使)를 파출(罷黜)하는 것으로 논죄(論罪)합니다. 전매하는 경우에는 본래 정한 법이 있는데, 수령들이 죄가 무서워 숨기고 계문(啓聞)하지 않아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그 도(道)로 하여금 추쇄(推刷)하게 함이 어떠하겠습니까?"

하고, 한홍이 아뢰기를,

"북쪽 백성들은 사내를 낳으면 숨겨 호적에 싣지 아니하고, 동쪽 집에서 아들을 낳으면 서쪽 집에서 기르고, 서쪽 집에서 아들을 낳으면 또한 그와 같이 하는 것은 군역(軍役)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엄중한 명으로 호적에 싣도록 하더라도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오랑캐들[胡]을 먹이는 곡식이, 회령(會寧)은 1년에 90석이고 종성(鍾城)은 50석이었는데, 지난번에 고형산(高荊山)이 계문하여 일체 모두 감했습니다. 무릇 저들로서 우리 인물(人物)을 쇄환(刷還)하거나 체탐(體探)에 공 있는 자를 상경(上京)시키는 것은 제한(制限)된 수가 있고, 그 나머지 용맹스럽고 건장(健壯)한 사람들이 매우 많으나, 주장(主將)들이 술과 음식이 없기 때문에 모두 접대하지 못하고 있으니,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변방에 보고하는 일들에 있어서 혹시 방해로움이 있게 될까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큰일이니 마땅히 널리 의논하겠다."

하였다.

  • [註 102] 저들(彼人) : 여진족을 가리킨다.

원문

○己亥/御朝講。 特進官崔漢洪曰: "北方之民, 無私債, 可倚爲食, 雖有公債, 守令亦慮解由, 未肯許糶。 若民之窮者, 則切隣力擯, 不付受債之籍。 此無他, 不償而在逃者, 督切隣故也。 由是窮者, 棄兒於道路, 我土之民收養, 而轉賣於彼人者有之。 或自流入彼人者, 尤不可勝數, 而彼人解衣衣之, 與食養之, 故投接者日多。 且彼人善於儲蓄, 性且少食, 而因獵得肉, 以資朝夕, 又無償債之苦。 由是彼人漸强, 而我民漸弱, 慶源儲穀, 幾於一蕩。 近者趙元紀爲府使, 雖防禦不如武士, 然盡心措置, 積貯稍裕。 其餘州郡, 則守令皆新進武士, 不能措置, 徒糜費官穀耳。 吉城乃北道關防。 設有邊警, 防禦諸事, 當於此整齊, 尤不可不預爲之所。 此縣儲穀, 本七萬二千餘石, 而今者僅餘一萬一千餘石。 脫有邊釁, 將何以用武?" 領事宋軼曰: "漢洪所言甚當。 臣聞彼人, 首貪人物, 次貪牛馬, 故我民見虜於彼, 雖一人, 守令、兵使, 論以罷黜。 其轉賣之間, 自有定法, 守令畏罪, 秘不以聞, 此弊不少。 令其道推刷何如?" 漢洪曰: "北方之民生男, 則秘不載戶籍, 東家子生, 則養於西家, 西家子生, 則亦如之, 畏役故也。 雖嚴令載籍, 亦難也。" 又曰: "餉胡之穀, 會寧則一年九十石, 鍾城則五十石, 而往者高荊山啓聞, 一皆蠲減。 凡彼人刷還人物體探, 有功者上京有數, 而其餘年壯勇健者甚多, 主將以無酒食, 皆未接待。 若然則其於報邊等事, 恐或有妨。" 上曰: "此大事, 當廣議。"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원본

/ 1
태조-철종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 이동
                                                              고종-순종
                                                              • 이동
                                                                • 이동
                                                                  • 이동
                                                                    태조-철종
                                                                      고종-순종

                                                                        문자입력기

                                                                        한자목록

                                                                        문자영역
                                                                        한자목록 바로가기

                                                                        부수

                                                                        획수

                                                                        한자목록

                                                                        획수

                                                                        한자목록

                                                                        부수

                                                                        획수

                                                                        한자목록

                                                                        영문INDEX

                                                                        한어 병음

                                                                        한자목록

                                                                        영문INDEX

                                                                        일본어 음독

                                                                        한자목록

                                                                        책갈피목록

                                                                        책갈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