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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54권, 연산 10년 6월 16일 을해 9번째기사 1504년 명 홍치(弘治) 17년

전 이조 판서 홍귀달의 졸기

전교하기를,

"전에 홍귀달(洪貴達)이 손녀(孫女)가 병으로 아직 예궐(詣闕)하지 못함을 와서 아뢰되, 비록 즉시 ‘예궐하게 할지라도 올 수 없으리라.’ 하였으니, 말이 매우 공경하지 못하다. 이러한 자는 살려두어도 쓸모가 없다."

하매, 유순 등이 아뢰기를,

"상의 분부와 같다면 대죄(大罪)에 처치하여야 마땅합니다마는, 이에 앞서 이세좌(李世佐)를 정죄(定罪)할 때에 분부하시기를 ‘귀달의 말은 실수니라.’ 하셨으니, 이제 무슨 법으로 죄주리까?"

하니, 전교하기를,

"그때에는 귀달의 죄가 세좌에 견주면 차이가 있으므로 말의 실수라 하였을 따름이다. 귀달은 임금에게 오만함이 심하다. 이제 바야흐로 풍속을 바로잡는 때이거늘, 어찌 재상이라 하여 죄주지 않을 수 있으랴. 교형(絞刑)에 처하라."

하였다.

귀달은 한미(寒微)한 신분에서 일어나 힘써 배워서 급제하여, 벼슬이 재상에 이르렀다. 성품이 평탄하고 너그러워 평생에 남을 거스르는 빛을 가진 적이 없으며, 남이 자기를 헐뜯음을 들어도 성내지 않으니, 그의 아량에 감복하는 사람이 많았다. 문장(文章)에 있어서는 곱고도 굳세고 법도가 있었으며, 서사(敍事)를 더욱 잘하여 한때의 비명(碑銘)·묘지(墓誌)가 다 그의 손에서 나왔다. 그 정자에 편액(扁額)하기를 허백(虛白)이라 하고 날마다 서사(書史)317) 를 스스로 즐겼다. 시정(時政)이 날로 거칠어지매 여러 번 경연(經筵)에서 옛일에 따라 간언(諫言)을 진술하니, 이로 말미암아 뜻을 거슬리더니, 경기 감사(京畿監司)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때 왕이 바야흐로 장녹수(張綠水)를 고이는데, 경영(京營)의 고지기[庫直]가 되고자 하는 어떤 사람이 녹수를 인연하여 왕에게 청하매, 왕이 몰래 신수근(愼守勤)을 시켜서 자기 뜻을 부탁하였으나 귀달이 듣지 않으므로 왕이 언짢아하여, 어느 일로 외방으로 귀양보냈다가, 이에 이르러 죽이니, 사람들이 다 그 허물 없이 당함을 슬퍼하였다. 다만 일찍이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있을 때에 뇌물을 많이 받았으므로 사림(士林)이 이를 비평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39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인물(人物)

  • [註 317]
    서사(書史) : 경서(經書)와 사서(史書)·서적(書籍).

○傳曰: "前者洪貴達以孫女病未詣闕來啓曰: ‘雖卽令詣闕, 未能來矣。’ 言甚不恭。 如此者存之無用。" 等啓: "若如上敎, 則當置大罪。 但前此李世佐定罪時敎云: ‘貴達言語之失。’ 今罪之何律?" 傳曰: "其時貴達之罪, 比之世佐則有間, 故云: ‘言語之失而已。’ 貴達慢君甚矣。 今方革俗之時, 豈可以爲宰相, 而不罪乎? 其處絞。" 貴達起自寒微, 力學登第, 位至宰相。 性坦夷寬大, 平生未嘗與人有忤色, 聞人毁己, 亦不爲怒, 人多服其量。 爲文章麗而健, 有法度。 尤長於敍事, 一時碑銘、墓誌皆出其手。 扁其亭曰: ‘虛白。’ 日以書史自娛。 見時政日荒, 屢於經筵, 因古事陳諫, 由是忤旨。 及爲京畿監司時, 王方寵綠水, 有人欲爲京營庫直者, 因綠水, 請于王, 王潛令愼守勤以己意囑之, 貴達不聽, 王頷之, 竟因事竄外, 至是殺之, 人皆慟其非辜。 但嘗爲吏曹判書, 多受賄賂, 士林譏之。


  • 【태백산사고본】 15책 54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3 책 639 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