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89권, 성종 25년 4월 29일 정해 2/3 기사 /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허침·대간들과 윤호의 관직 개정과 흥복사 불사의 처벌 문제에 대해 논쟁하다
국역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 등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윤민(尹愍) 등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의 망령된 생각으로서는, 전하께서는 마음에, 윤호(尹壕)가 비록 어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나의 정치가 이미 융성하니, 이는 곧 용부(庸夫)449) 가 베개를 높이 벨 만한 때이다. 윤호가 비록 척리(戚里)라고 하더라도 연로하고 무능하여 서경(西京) 7족(七族)450) 의 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요, 스스로 어질고 밝은 자질을 믿어서 후일(後日)을 위한 계책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인데, 이것이 신 등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제왕(帝王)은 나라에 대하여 깊이 염려하고 돌이켜 생각하여, 후세에 법을 남겨서 확고 부동(確固不動)한 기업(基業)을 닦아야 하는데, 어찌 단지 목전의 일만을 도모하여 구차스레 일시적으로 편안하려 하고, 만세의 환난(患難)을 돌아보시지 아니하십니까? 전하께서 덕이 천지에 흡족하고 총명이 일월(日月)을 아울렀으니, 진실로 윤호의 사람됨을 아실 것이요, 또한 여러 사람들의 의논의 공정함도 아실 터인데, 친척의 혐의스러움을 피하시지 아니함이 오히려 또 이와 같으시니, 후세 사왕(嗣王)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대를 잇는 임금이 고사(故事)를 그대로 따라서 뒤를 이어 이를 행한다면, 후세에 반드시 그 화를 당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고려 때 이자겸(李資謙)이 위세를 부리고 복을 내리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었는데, 거의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할 뻔하였으며, 우리 조정에서도 민씨(閔氏)·심씨(沈氏)가 은총이 지극하여 사치하다가 또한 끝내 좋지 못하였는데, 이것들이 동방에서 이미 그러하였던 본보기이니, 삼가지 아니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어질고 덕이 있는 자를 특별히 골라서 정승의 자리에 임명하여 알맞은 사람을 얻었다는 경사스러움이 있고, 후일의 폐단이 없다면, 나라가 양쪽으로 평안할 터이니,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는 어찌 꺼려하여 들어주시지 아니하십니까?
흥복사(興福寺)의 불사(佛事)는 풍속(風俗)·교화(敎化)와 관계가 있으니, 추국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지휘(指揮)를 내려 주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대간이 또 아뢰기를,
"대신이란 것은 인군(人君)의 고굉(股肱)이므로 임용할 즈음에 그것을 삼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덕이 있는 자를 신중히 골라서 진출(進出)시키는 것이 가볍지 않으면, 물리치는 것도 무겁게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어진지의 여부도 논하지 아니하여 진출시키는 것이 무겁지 않으면, 물리치는 것도 가볍게 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치상으로는 의당 그러합니다.
재덕(才德)이 겸비(兼備)하고 명예와 명망이 출중(出衆)하여 고요모(皐陶謨)·이윤(伊尹)과 같이 세상에 보기 드물고 구하기가 어려운 자라면, 비록 지금이 옛날과 같지는 않다고 하나, 반드시 공의(公議)를 취하여 일시의 선임을 지극히 한 다음이라야 곧 이 직임에 가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조에서는 한갓 직차(職次)가 상당한 자를 의망(擬望)한다 하여 윤호로써 의망하였으며, 전하께서는 조정의 신하들에게 물어 보지도 않으시고 또 그대로 따라서 기꺼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알맞은 사람이 아닌 자를 임용하니,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자자합니다. 전하께서 재상을 임명하시는 것이 조심하지 않는 데에도 허물이 있지만, 가볍게 처리한 데에도 잘못이 있습니다. 대간이 글을 같이하여 진론(陳論)하지만 전하께서는 곧 말씀하시기를, ‘대신의 나아오고 물러가는 것을 가볍게 할 수가 없다. 그대들이 비록 윤호를 가지고 불가하다고 하지만, 뒷날 그 직임을 잘할는지 어찌 알겠는가? 대간의 공론(公論)을 듣고서 그 불가한 것을 알아 이를 바꾼다면, 어찌 가볍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셨습니다.
옛날의 재상은 인망(人望)이 있었는데도 혹은 나라를 그르치는 데 이른 자가 많았으나, 여러 사람의 의논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 직임을 능히 잘한 자는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윤호가 그 직임을 잘할는지 전하께서 감히 반드시 단언하지 못하는데, 신 등은 그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결단코 알고 있습니다. 삼공은 백관(百官)의 우두머리에 자리하여 만민(萬民)을 밝게 거느리니, 어찌 감히 반드시 그러하지 못할 사람을 가지고 그 사이에 섞이게 하여 당시의 비웃음을 사고, 후세에까지 비웃음을 남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어질고 능력이 있는 자를 대신시켜 《주역(周易)》에서 ‘멀지 않아 되돌아온다[不遠復].’451) 는 뜻을 이루게 한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전조(前朝)의 말엽에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가서 승도(僧徒)들과 간통하는 일이 많았는데, 심지어 사족(士族)의 부녀자들까지도 오욕(汚辱)의 이름을 얻는 자가 많았습니다. 이것을 금지하지 않는다면 말류(末流)가 전조의 폐단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선왕(先王)께서 《대전(大典)》에 실어서 후세에 남기신 것은 스스로 깊은 뜻이 있는 것인데, 전하께서 곧 이를 말무(末務)452) 라고 일컫는 것이 옳겠습니까? 만약 화기(和氣)를 손상시키고 원망을 초래하는데도 그 죄를 추국(推鞫)하지 아니한다면, 나라의 형정(刑政)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쪽은 죄가 있는데 추국하지 아니하고, 저쪽은 죄가 있는데 추국한다면, 저쪽은 얼마나 불행하며, 이쪽은 얼마나 다행함이 심하겠습니까? 나라의 형정(刑政)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卿) 등이 말하기를 곡진(曲盡)히 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면절 정쟁(面折廷諍)하는 것이 진실로 그 직분인 것이다. 지금 윤호(尹壕)가 삼공(三公)에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하나, 제왕(帝王)이 반드시 문장(文章)과 재능(才能)이 있는 자만을 모두 임명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순후(純厚)하고 불초(不肖)한 정상이 없으면, 또한 임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간(臺諫)들이 어찌 다 문장과 재능이 있겠는가? 옛날에 이르기를, ‘말하는 것을 더듬거리는 것같이 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사람을 취(取)하는데, 어찌 언어가 민첩하고 용모가 재장(齋莊)453) 한 자만을 쓰겠는가? 선왕조(先王朝)에서도 문신(文臣)이 아니면서도 정승이 된 자가 있었다. 대간의 말을 어찌 다 들어줄 수가 있겠는가? 만약 다 들어줄 수가 있다면, 사람을 쓸 때에 반드시 대간에게 물어야 할 것인데, 인군(人君)은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흥복사(興福寺)의 불사(佛事)는 절에 올라가는 예와는 같지 아니하다. 〈대군〉 부인이 대군을 위하여 절을 지으시고, 불사(佛事)하는 날에는 승도(僧徒)를 다 쫓아내고 거기에 갔으니, 무슨 불가함이 있겠는가? 〈대군〉 부인이 무차 대회(無遮大會)를 베풀고서 부처에게 공양하고 중들에게 재(齋)를 드렸으니, 잘못한 바가 매우 크다.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가는 죄를 이것에다 비교한다면 가벼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를 말무(末務)라고 일컬은 것인데, 만약 죄를 다스리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대군〉 부인을 죄준 다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군 부인은 지친(至親)인데, 어찌 이러한 실수를 가지고 죄를 줄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대간이 또 아뢰기를,
"신 등이 윤호를 재주가 없고 덕이 없다고 논하였는데, 전하께서 이에 말씀하시기를, ‘윤호는 불초(不肖)한 일이 없으니, 가(可)한 것이다. 어찌 반드시 문장이 있은 다음이라야 이를 재주라고 일컫겠는가? 대간 또한 모두 재주가 있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신 등도 또한 조충소기(雕蟲小技)454) 를 가지고 재주라고 생각지 아니하며, 밝게 살피는 바가 있고, 굳게 결단하는 바가 있으며, 고금에 통하고 사리에 통달하여 능히 건백(建白)455) 하는 바가 있으면, 이것이 신 등의 이른바 재주인 것입니다. 윤호가 이러한 데 능합니까? 그가 만약 이와 같지 아니하다면, 어찌 족히 충언(忠言)을 진언하여 곤직(袞職)456) 의 부족함을 보필하여 인주(人主)의 은택을 펴고 만민(萬民)의 목숨을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공론(公論)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친척이라는 혐의스러움을 피하지 아니하시어, 당시에 비웃음을 사고, 후세에 걱정을 끼치시니, 신은 저윽이 그를 취(取)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 등이 모두 용렬한 자질로써 언책(言責)의 자리에서 대죄(待罪)하고 있으며, 신 등이 재주가 없는 것을 어찌 스스로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 이미 이 자리에 임명하셨으므로, 그 말의 시비(是非)를 가리어 이를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 따름입니다. 그 재주가 있고 재주가 없는 것을 논하는 것은 마땅치 않으니, 만약 스스로 재주가 있은 다음에 남의 재주가 없는 것을 말한다면, 조정(朝廷) 위에서 능히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이는 전하께서 이것을 가지고 신 등의 입을 막아서 논열(論列)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지, 이것은 대간을 대우하는 체모 때문이 아닙니다.
좌도(左道)를 제창[鼓倡]하면 그 죄는 매우 큰 것이며,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은 그 조짐을 자라게 할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승도(僧徒)와 부녀자들을 추국하여 후일의 폐단을 구제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전일에 영상(領相)이 비었을 적에 이조에서 이극배(李克培)와 윤호를 의망(擬望)하였었는데, 나는 이극배가 재주와 덕이 있고 역사(歷仕)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에 윤호를 우상(右相)으로 삼지 아니하고, 이극배를 영상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공정한 처사였다. 내가 만약 사정(私情)이 있었다면, 그 때 어찌 윤호를 정승으로 삼지 않았겠는가? 경 등이 비록 나더러 사정을 쓴다고 하지만, 진실로 그렇지 아니하다. 흥복사의 일은 이를 유시(諭示)한 것이 이미 곡진(曲盡)하니, 비록 되풀이하여 이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한갓 입만 아플 뿐이지,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나는 경 등이 재주가 없으면서 자리만을 채우고 있다고는 하지 않았으니, 곧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289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16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
- [註 449] 용부(庸夫) : 보통 사람. 용인(庸人).
- [註 450] 서경(西京) 7족(七族) : 전한(前漢) 시대 외척으로서 권력을 잡았던 일곱 당족(黨族). 즉 여씨(呂氏)·곽씨(霍氏)·상관씨(上官氏)·정씨(丁氏)·조씨(趙氏)·부씨(傅氏)·왕씨(王氏).
- [註 451] ‘멀지 않아 되돌아온다[不遠復].’ : 《주역(周易)》 지뢰복(地雷復)에 이르기를, "멀지 않아 되돌아온다.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크게 좋을 것이다.[不遠復 无祗悔 元吉]"라고 하여,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함.
- [註 452] 말무(末務) : 중요하지 않은 일.
- [註 453] 재장(齋莊) : 공경하고 엄격함.
- [註 454] 조충소기(雕蟲小技) : 문장을 꾸미는 조그마한 재주.
- [註 455] 건백(建白) : 건의.
- [註 456] 곤직(袞職) : 임금의 직책.
원문
○司憲府大司憲許琛等、司諫院大司諫尹慜等來啓曰: "臣等妄意, 殿下之心以爲壕雖不賢, 吾治已隆, 是乃庸夫高枕之時, 壕雖戚里, 年老無能, 靡有西京七族之禍, 自恃仁明之資, 不爲後日之計。 此臣等之言所以不入也。 帝王之於國家, 長慮却顧, 垂憲于後, 以基不拔之業, 豈止圖目前之事, 苟安於一時, 而不顧萬世之患哉? 殿下德洽天地, 明竝日月, 固知尹壕之爲人, 亦知物論之公矣。 不避親嫌, 尙且如此, 後嗣何觀焉? 繼世之君, 因循故事, 踵而行之, 後世必有當其禍者矣。 高麗 李資謙, 威福在己, 幾危其國, 我朝閔氏、沈氏, 寵極而侈, 亦不善終, 此東方已然之效也, 可不愼歟? 別擇賢德, 任以相位, 有得人之慶, 而無後日之弊, 國家兩安, 不亦美乎? 殿下何憚而不聽歟? 興福佛事, 有關風化, 不可不推, 乞早賜指揮。" 不聽。 臺諫又啓曰: "大臣者人君之股肱也, 任用之際, 其可不謹耶? 愼簡有德, 而其進也不輕, 則其退也不得不重; 不論賢否, 而其進也不重, 則其退也不得不輕, 理宜然也。 才德兼備, 譽望出衆, 如皋陶、伊尹, 曠世難得者也。 雖今不如古, 然必取之公議, 極一時之選, 然後乃可當此任也。 吏曹徒擬職次相當, 而以尹壕擬望, 殿下不詢廷臣, 又從而肯可, 用非其人, 物論藉藉, 殿下之命相, 過於不愼, 而失於輕矣。 臺諫同辭陳論, 而殿下乃曰: ‘大臣進退不可輕矣, 爾等雖以壕爲不可, 安知異日善於其任乎?’ 聽臺諫公論, 知其不可而改之, 何謂輕耶? 古之宰相有人望而或至誤國者多矣, 不爲物議所許, 而能稱其職者未之有也。 壕之善於其任, 殿下未敢必, 而臣等則決知其不然也。 三公位冠百僚, 表率萬民, 豈宜以未敢必之人, 廁於其間, 而取笑當時, 貽譏後世哉? 伏望代以賢能, 以協《大易》不遠復之義, 幸甚。 前朝之季, 婦女上寺, 多通僧徒, 至於士族之女, 多被汚辱之名, 此而不禁, 安知末流不如前朝之弊乎? 先王載諸《大典》, 垂之于後, 自有深意, 而殿下乃謂之末務, 可乎? 若以爲傷和召怨而不推其罪, 則國家刑政, 何所用哉? 此有罪則不推, 彼有罪則推之, 彼何不幸, 而此何幸之甚耶? 國家刑政, 不可偏也。" 傳曰: "卿等言無不盡, 面折廷諍, 固其職也。 今以尹壕爲不合三公, 然帝王未必盡以文章才能者任之, 其人純厚無不肖之狀, 則亦可用也。 今之臺諫, 豈盡有文章才能乎? 古云其言也似訥, 然則取人, 何以言語敏捷、容貌齋莊爲哉? 先王朝亦有非文臣而爲政丞者, 臺諫之言, 何可盡聽? 如可盡聽, 則用人之際, 必問於臺諫, 而人君不得有爲於其間耶? 興福佛事, 非如上寺之例, 夫人爲大君創寺, 而佛事之日, 盡黜僧徒而歸之, 何不可之有? 夫人設無遮大會, 飯佛齋僧, 所失則甚大, 婦女上寺之罪, 較之於此則輕也, 故予謂之末務。 如欲治罪, 當先罪夫人然後可也。 然夫人至親, 何可以此失罪之乎?" 臺諫又啓曰: "臣等論尹壕無才無德, 而殿下乃曰: ‘尹壕無不肖之事可矣, 何必有文章然後謂之才乎? 臺諫亦皆有才耶?’ 臣等亦非以雕蟲小技爲才, 明有所察, 剛有所斷, 通古今、達事理, 能有所建白, 此臣等所謂才也, 尹壕能之乎? 不如此, 何足以進忠言而補袞職之闕, 宣主澤而救萬民之命哉? 殿下不恤公論, 不避親嫌, 取笑當時, 貽患後世, 臣竊不取焉。 臣等俱以庸資, 待罪言責, 臣等無才, 豈不自知? 然殿下旣以任之, 當辨其言之是非而處之耳, 不當論其才不才也。 若已有才而後言人之不才, 則朝廷之上, 能有幾人耶? 是殿下欲以此箝臣等之口, 不得有所論列也, 此非所以待臺諫之體也。 皷倡左道, 厥罪甚大, 婦女上寺, 漸不可長, 乞推僧徒、婦女, 以救後弊。" 傳曰: "前日領相有闕, 吏曹以李克培、尹壕擬望, 予以克培有才德, 歷仕已久, 故不以尹壕爲右相, 而以克培爲領相, 此公正之事也。 予若有私, 其時豈不以壕爲政丞耶? 卿等雖以予爲有情, 其實不然也。 興福寺事, 諭之已盡, 雖反覆言之, 徒爲口痛而已, 有何益焉? 予非以卿等爲無才而備位, 乃泛言之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289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16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
성종실록289권, 성종 25년 4월 29일 정해 2/3 기사 /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허침·대간들과 윤호의 관직 개정과 흥복사 불사의 처벌 문제에 대해 논쟁하다
국역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허침(許琛) 등과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윤민(尹愍) 등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의 망령된 생각으로서는, 전하께서는 마음에, 윤호(尹壕)가 비록 어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나의 정치가 이미 융성하니, 이는 곧 용부(庸夫)449) 가 베개를 높이 벨 만한 때이다. 윤호가 비록 척리(戚里)라고 하더라도 연로하고 무능하여 서경(西京) 7족(七族)450) 의 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요, 스스로 어질고 밝은 자질을 믿어서 후일(後日)을 위한 계책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인데, 이것이 신 등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제왕(帝王)은 나라에 대하여 깊이 염려하고 돌이켜 생각하여, 후세에 법을 남겨서 확고 부동(確固不動)한 기업(基業)을 닦아야 하는데, 어찌 단지 목전의 일만을 도모하여 구차스레 일시적으로 편안하려 하고, 만세의 환난(患難)을 돌아보시지 아니하십니까? 전하께서 덕이 천지에 흡족하고 총명이 일월(日月)을 아울렀으니, 진실로 윤호의 사람됨을 아실 것이요, 또한 여러 사람들의 의논의 공정함도 아실 터인데, 친척의 혐의스러움을 피하시지 아니함이 오히려 또 이와 같으시니, 후세 사왕(嗣王)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대를 잇는 임금이 고사(故事)를 그대로 따라서 뒤를 이어 이를 행한다면, 후세에 반드시 그 화를 당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고려 때 이자겸(李資謙)이 위세를 부리고 복을 내리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었는데, 거의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할 뻔하였으며, 우리 조정에서도 민씨(閔氏)·심씨(沈氏)가 은총이 지극하여 사치하다가 또한 끝내 좋지 못하였는데, 이것들이 동방에서 이미 그러하였던 본보기이니, 삼가지 아니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어질고 덕이 있는 자를 특별히 골라서 정승의 자리에 임명하여 알맞은 사람을 얻었다는 경사스러움이 있고, 후일의 폐단이 없다면, 나라가 양쪽으로 평안할 터이니,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전하께서는 어찌 꺼려하여 들어주시지 아니하십니까?
흥복사(興福寺)의 불사(佛事)는 풍속(風俗)·교화(敎化)와 관계가 있으니, 추국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빨리 지휘(指揮)를 내려 주소서."
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대간이 또 아뢰기를,
"대신이란 것은 인군(人君)의 고굉(股肱)이므로 임용할 즈음에 그것을 삼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덕이 있는 자를 신중히 골라서 진출(進出)시키는 것이 가볍지 않으면, 물리치는 것도 무겁게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어진지의 여부도 논하지 아니하여 진출시키는 것이 무겁지 않으면, 물리치는 것도 가볍게 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이치상으로는 의당 그러합니다.
재덕(才德)이 겸비(兼備)하고 명예와 명망이 출중(出衆)하여 고요모(皐陶謨)·이윤(伊尹)과 같이 세상에 보기 드물고 구하기가 어려운 자라면, 비록 지금이 옛날과 같지는 않다고 하나, 반드시 공의(公議)를 취하여 일시의 선임을 지극히 한 다음이라야 곧 이 직임에 가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조에서는 한갓 직차(職次)가 상당한 자를 의망(擬望)한다 하여 윤호로써 의망하였으며, 전하께서는 조정의 신하들에게 물어 보지도 않으시고 또 그대로 따라서 기꺼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알맞은 사람이 아닌 자를 임용하니,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자자합니다. 전하께서 재상을 임명하시는 것이 조심하지 않는 데에도 허물이 있지만, 가볍게 처리한 데에도 잘못이 있습니다. 대간이 글을 같이하여 진론(陳論)하지만 전하께서는 곧 말씀하시기를, ‘대신의 나아오고 물러가는 것을 가볍게 할 수가 없다. 그대들이 비록 윤호를 가지고 불가하다고 하지만, 뒷날 그 직임을 잘할는지 어찌 알겠는가? 대간의 공론(公論)을 듣고서 그 불가한 것을 알아 이를 바꾼다면, 어찌 가볍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셨습니다.
옛날의 재상은 인망(人望)이 있었는데도 혹은 나라를 그르치는 데 이른 자가 많았으나, 여러 사람의 의논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도 그 직임을 능히 잘한 자는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윤호가 그 직임을 잘할는지 전하께서 감히 반드시 단언하지 못하는데, 신 등은 그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결단코 알고 있습니다. 삼공은 백관(百官)의 우두머리에 자리하여 만민(萬民)을 밝게 거느리니, 어찌 감히 반드시 그러하지 못할 사람을 가지고 그 사이에 섞이게 하여 당시의 비웃음을 사고, 후세에까지 비웃음을 남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어질고 능력이 있는 자를 대신시켜 《주역(周易)》에서 ‘멀지 않아 되돌아온다[不遠復].’451) 는 뜻을 이루게 한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전조(前朝)의 말엽에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가서 승도(僧徒)들과 간통하는 일이 많았는데, 심지어 사족(士族)의 부녀자들까지도 오욕(汚辱)의 이름을 얻는 자가 많았습니다. 이것을 금지하지 않는다면 말류(末流)가 전조의 폐단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선왕(先王)께서 《대전(大典)》에 실어서 후세에 남기신 것은 스스로 깊은 뜻이 있는 것인데, 전하께서 곧 이를 말무(末務)452) 라고 일컫는 것이 옳겠습니까? 만약 화기(和氣)를 손상시키고 원망을 초래하는데도 그 죄를 추국(推鞫)하지 아니한다면, 나라의 형정(刑政)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쪽은 죄가 있는데 추국하지 아니하고, 저쪽은 죄가 있는데 추국한다면, 저쪽은 얼마나 불행하며, 이쪽은 얼마나 다행함이 심하겠습니까? 나라의 형정(刑政)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경(卿) 등이 말하기를 곡진(曲盡)히 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면절 정쟁(面折廷諍)하는 것이 진실로 그 직분인 것이다. 지금 윤호(尹壕)가 삼공(三公)에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하나, 제왕(帝王)이 반드시 문장(文章)과 재능(才能)이 있는 자만을 모두 임명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순후(純厚)하고 불초(不肖)한 정상이 없으면, 또한 임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대간(臺諫)들이 어찌 다 문장과 재능이 있겠는가? 옛날에 이르기를, ‘말하는 것을 더듬거리는 것같이 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사람을 취(取)하는데, 어찌 언어가 민첩하고 용모가 재장(齋莊)453) 한 자만을 쓰겠는가? 선왕조(先王朝)에서도 문신(文臣)이 아니면서도 정승이 된 자가 있었다. 대간의 말을 어찌 다 들어줄 수가 있겠는가? 만약 다 들어줄 수가 있다면, 사람을 쓸 때에 반드시 대간에게 물어야 할 것인데, 인군(人君)은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흥복사(興福寺)의 불사(佛事)는 절에 올라가는 예와는 같지 아니하다. 〈대군〉 부인이 대군을 위하여 절을 지으시고, 불사(佛事)하는 날에는 승도(僧徒)를 다 쫓아내고 거기에 갔으니, 무슨 불가함이 있겠는가? 〈대군〉 부인이 무차 대회(無遮大會)를 베풀고서 부처에게 공양하고 중들에게 재(齋)를 드렸으니, 잘못한 바가 매우 크다.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가는 죄를 이것에다 비교한다면 가벼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를 말무(末務)라고 일컬은 것인데, 만약 죄를 다스리고자 한다면 먼저 마땅히 〈대군〉 부인을 죄준 다음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대군 부인은 지친(至親)인데, 어찌 이러한 실수를 가지고 죄를 줄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대간이 또 아뢰기를,
"신 등이 윤호를 재주가 없고 덕이 없다고 논하였는데, 전하께서 이에 말씀하시기를, ‘윤호는 불초(不肖)한 일이 없으니, 가(可)한 것이다. 어찌 반드시 문장이 있은 다음이라야 이를 재주라고 일컫겠는가? 대간 또한 모두 재주가 있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신 등도 또한 조충소기(雕蟲小技)454) 를 가지고 재주라고 생각지 아니하며, 밝게 살피는 바가 있고, 굳게 결단하는 바가 있으며, 고금에 통하고 사리에 통달하여 능히 건백(建白)455) 하는 바가 있으면, 이것이 신 등의 이른바 재주인 것입니다. 윤호가 이러한 데 능합니까? 그가 만약 이와 같지 아니하다면, 어찌 족히 충언(忠言)을 진언하여 곤직(袞職)456) 의 부족함을 보필하여 인주(人主)의 은택을 펴고 만민(萬民)의 목숨을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공론(公論)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친척이라는 혐의스러움을 피하지 아니하시어, 당시에 비웃음을 사고, 후세에 걱정을 끼치시니, 신은 저윽이 그를 취(取)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신 등이 모두 용렬한 자질로써 언책(言責)의 자리에서 대죄(待罪)하고 있으며, 신 등이 재주가 없는 것을 어찌 스스로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 이미 이 자리에 임명하셨으므로, 그 말의 시비(是非)를 가리어 이를 처리하는 것이 마땅할 따름입니다. 그 재주가 있고 재주가 없는 것을 논하는 것은 마땅치 않으니, 만약 스스로 재주가 있은 다음에 남의 재주가 없는 것을 말한다면, 조정(朝廷) 위에서 능히 몇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이는 전하께서 이것을 가지고 신 등의 입을 막아서 논열(論列)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지, 이것은 대간을 대우하는 체모 때문이 아닙니다.
좌도(左道)를 제창[鼓倡]하면 그 죄는 매우 큰 것이며,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은 그 조짐을 자라게 할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승도(僧徒)와 부녀자들을 추국하여 후일의 폐단을 구제하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전일에 영상(領相)이 비었을 적에 이조에서 이극배(李克培)와 윤호를 의망(擬望)하였었는데, 나는 이극배가 재주와 덕이 있고 역사(歷仕)한 것이 이미 오래 되었기 때문에 윤호를 우상(右相)으로 삼지 아니하고, 이극배를 영상으로 삼았는데, 이것은 공정한 처사였다. 내가 만약 사정(私情)이 있었다면, 그 때 어찌 윤호를 정승으로 삼지 않았겠는가? 경 등이 비록 나더러 사정을 쓴다고 하지만, 진실로 그렇지 아니하다. 흥복사의 일은 이를 유시(諭示)한 것이 이미 곡진(曲盡)하니, 비록 되풀이하여 이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한갓 입만 아플 뿐이지,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나는 경 등이 재주가 없으면서 자리만을 채우고 있다고는 하지 않았으니, 곧 일반적으로 말한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289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16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
- [註 449] 용부(庸夫) : 보통 사람. 용인(庸人).
- [註 450] 서경(西京) 7족(七族) : 전한(前漢) 시대 외척으로서 권력을 잡았던 일곱 당족(黨族). 즉 여씨(呂氏)·곽씨(霍氏)·상관씨(上官氏)·정씨(丁氏)·조씨(趙氏)·부씨(傅氏)·왕씨(王氏).
- [註 451] ‘멀지 않아 되돌아온다[不遠復].’ : 《주역(周易)》 지뢰복(地雷復)에 이르기를, "멀지 않아 되돌아온다.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크게 좋을 것이다.[不遠復 无祗悔 元吉]"라고 하여, 모든 것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함.
- [註 452] 말무(末務) : 중요하지 않은 일.
- [註 453] 재장(齋莊) : 공경하고 엄격함.
- [註 454] 조충소기(雕蟲小技) : 문장을 꾸미는 조그마한 재주.
- [註 455] 건백(建白) : 건의.
- [註 456] 곤직(袞職) : 임금의 직책.
원문
○司憲府大司憲許琛等、司諫院大司諫尹慜等來啓曰: "臣等妄意, 殿下之心以爲壕雖不賢, 吾治已隆, 是乃庸夫高枕之時, 壕雖戚里, 年老無能, 靡有西京七族之禍, 自恃仁明之資, 不爲後日之計。 此臣等之言所以不入也。 帝王之於國家, 長慮却顧, 垂憲于後, 以基不拔之業, 豈止圖目前之事, 苟安於一時, 而不顧萬世之患哉? 殿下德洽天地, 明竝日月, 固知尹壕之爲人, 亦知物論之公矣。 不避親嫌, 尙且如此, 後嗣何觀焉? 繼世之君, 因循故事, 踵而行之, 後世必有當其禍者矣。 高麗 李資謙, 威福在己, 幾危其國, 我朝閔氏、沈氏, 寵極而侈, 亦不善終, 此東方已然之效也, 可不愼歟? 別擇賢德, 任以相位, 有得人之慶, 而無後日之弊, 國家兩安, 不亦美乎? 殿下何憚而不聽歟? 興福佛事, 有關風化, 不可不推, 乞早賜指揮。" 不聽。 臺諫又啓曰: "大臣者人君之股肱也, 任用之際, 其可不謹耶? 愼簡有德, 而其進也不輕, 則其退也不得不重; 不論賢否, 而其進也不重, 則其退也不得不輕, 理宜然也。 才德兼備, 譽望出衆, 如皋陶、伊尹, 曠世難得者也。 雖今不如古, 然必取之公議, 極一時之選, 然後乃可當此任也。 吏曹徒擬職次相當, 而以尹壕擬望, 殿下不詢廷臣, 又從而肯可, 用非其人, 物論藉藉, 殿下之命相, 過於不愼, 而失於輕矣。 臺諫同辭陳論, 而殿下乃曰: ‘大臣進退不可輕矣, 爾等雖以壕爲不可, 安知異日善於其任乎?’ 聽臺諫公論, 知其不可而改之, 何謂輕耶? 古之宰相有人望而或至誤國者多矣, 不爲物議所許, 而能稱其職者未之有也。 壕之善於其任, 殿下未敢必, 而臣等則決知其不然也。 三公位冠百僚, 表率萬民, 豈宜以未敢必之人, 廁於其間, 而取笑當時, 貽譏後世哉? 伏望代以賢能, 以協《大易》不遠復之義, 幸甚。 前朝之季, 婦女上寺, 多通僧徒, 至於士族之女, 多被汚辱之名, 此而不禁, 安知末流不如前朝之弊乎? 先王載諸《大典》, 垂之于後, 自有深意, 而殿下乃謂之末務, 可乎? 若以爲傷和召怨而不推其罪, 則國家刑政, 何所用哉? 此有罪則不推, 彼有罪則推之, 彼何不幸, 而此何幸之甚耶? 國家刑政, 不可偏也。" 傳曰: "卿等言無不盡, 面折廷諍, 固其職也。 今以尹壕爲不合三公, 然帝王未必盡以文章才能者任之, 其人純厚無不肖之狀, 則亦可用也。 今之臺諫, 豈盡有文章才能乎? 古云其言也似訥, 然則取人, 何以言語敏捷、容貌齋莊爲哉? 先王朝亦有非文臣而爲政丞者, 臺諫之言, 何可盡聽? 如可盡聽, 則用人之際, 必問於臺諫, 而人君不得有爲於其間耶? 興福佛事, 非如上寺之例, 夫人爲大君創寺, 而佛事之日, 盡黜僧徒而歸之, 何不可之有? 夫人設無遮大會, 飯佛齋僧, 所失則甚大, 婦女上寺之罪, 較之於此則輕也, 故予謂之末務。 如欲治罪, 當先罪夫人然後可也。 然夫人至親, 何可以此失罪之乎?" 臺諫又啓曰: "臣等論尹壕無才無德, 而殿下乃曰: ‘尹壕無不肖之事可矣, 何必有文章然後謂之才乎? 臺諫亦皆有才耶?’ 臣等亦非以雕蟲小技爲才, 明有所察, 剛有所斷, 通古今、達事理, 能有所建白, 此臣等所謂才也, 尹壕能之乎? 不如此, 何足以進忠言而補袞職之闕, 宣主澤而救萬民之命哉? 殿下不恤公論, 不避親嫌, 取笑當時, 貽患後世, 臣竊不取焉。 臣等俱以庸資, 待罪言責, 臣等無才, 豈不自知? 然殿下旣以任之, 當辨其言之是非而處之耳, 不當論其才不才也。 若已有才而後言人之不才, 則朝廷之上, 能有幾人耶? 是殿下欲以此箝臣等之口, 不得有所論列也, 此非所以待臺諫之體也。 皷倡左道, 厥罪甚大, 婦女上寺, 漸不可長, 乞推僧徒、婦女, 以救後弊。" 傳曰: "前日領相有闕, 吏曹以李克培、尹壕擬望, 予以克培有才德, 歷仕已久, 故不以尹壕爲右相, 而以克培爲領相, 此公正之事也。 予若有私, 其時豈不以壕爲政丞耶? 卿等雖以予爲有情, 其實不然也。 興福寺事, 諭之已盡, 雖反覆言之, 徒爲口痛而已, 有何益焉? 予非以卿等爲無才而備位, 乃泛言之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289권 32장 A면【국편영인본】 12책 516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