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83권, 성종 24년 10월 29일 경인 2/8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영의정 윤필상이 장을 올려 사직하다
국역
영의정(領議政) 윤필상(尹弼商)이 장(狀)을 올려 사직하기를,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삼공(三公)의 벼슬은 한 범인(凡人)이 비난하더라도 있기 어려운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사헌부(司憲府)에서 불가하다 하고 사간원(司諫院)에서 불가하다 하며, 홍문관(弘文館)에서 불가하다 하고 여러 재상들도 불가하다 하니, 이는 온 나라가 비난하는 것입니다. 간사하고 아첨하며 간교하여 대신의 절조가 전혀 없고, 재물을 탐하고 뜻을 맞추어 소인(小人)의 일을 갖추었음은 고금(古今)에 찾아보아도 신과 같은 자는 진실로 듣지 못한 바입니다. 성상께서 비록 곡진히 보전하게 하시려고 하시더라도 그 공의(公議)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은 그릇이 작고 보잘것없는 재능으로서 태석(台席)1618) 에 대죄(待罪)한 지 지금 17년이 되었는데, 국가에 털끝만한 보탬이 없고 한 몸에 산과 같은 비방이 쌓였으니, 신이 비록 용렬하고 비루하더라도 홀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마음이 아픕니다. 낭패(狼狽)하여 몸둘 바를 잃었는데, 성상께서 어찌 한 소인을 아껴서 대덕(大德)에 누(累)를 끼치려 하십니까? 또 아비가 수상(首相)이 되고 아들이 승지(承旨)가 되어 세상을 속이고 공명(功名)이 이처럼 지극함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이 누가 의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지위(脂韋)하면서 은총(恩寵)을 굳게 한 죄는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마땅히 공론으로 결단하시고 노신(老臣)을 사사로이 하지 마시어 신을 파직하기를 명하여 여망(輿望)에 보답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영상(領相)이 인혐(引嫌)하기를 이처럼 극진함에 이르렀는데, 내가 들어주지 아니하면 대간(臺諫)이 반드시 없는 허물을 찾아서 말할 것이니, 영상(領相)에게도 어찌 편안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지못하여 그대로 따르니, 이 뜻으로 그 의윤(依允)하는 비답(批答)을 지어서 답하라."
하였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윤필상이 이미 정승을 사면하자 말하기를, ‘내가 못난 재주로 오래 성만(盛滿)1619) 한 자리에 있었으니, 날이 가물면 나를 허물하고 겨울에 천둥을 하면 나를 허물한다. 능히 아들도 가르칠 수 없는데 하물며 하늘을 가르치겠는가? 차라리 큰 작위(爵位)를 바치고 세상 일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가하다.’고 했다." 하였다.
원문
○領議政尹弼商上狀辭職曰:
臣竊念, 三公之職, 一凡人非之, 尙且難居, 況今憲府曰不可, 諫院曰不可, 弘文館曰不可, 諸宰相亦曰不可, 是擧國非之矣。 邪諂侫巧, 大臣之節掃如; 黷貨逢迎, 小人之事備焉。 求諸古今, 如臣者實所未聞也。 聖上雖欲曲全之, 其於公議何? 臣以斗筲之器, 待罪台席, 于今十有七年矣。 無絲毫之補於國家, 積丘山之謗於一己, 臣雖庸陋, 獨不知恥? 臣竊痛心, 狼狽失措, 聖上何惜一小人以累大德? 且父爲首相, 子爲承旨, 欺世功名, 至於此極, 人誰不議其脂韋固寵之罪? 萬死猶輕。 伏望當以公論斷之, 勿以老臣私之, 命罷臣職, 以答輿望。
傳曰: "領相引嫌至此, 予若不聽, 則臺諫必求其所無之過, 而言之於領相, 亦豈爲安? 故黽俛從之, 其以此意製依允批以答之。"
【史臣曰: "弼商旣免相, 言曰: ‘我以不才, 久處盛滿, 天旱則咎我, 冬雷則咎我, 不能敎其子, 況敎其天乎? 寧進大爵, 都忘世事可也。"】
성종실록283권, 성종 24년 10월 29일 경인 2/8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영의정 윤필상이 장을 올려 사직하다
국역
영의정(領議政) 윤필상(尹弼商)이 장(狀)을 올려 사직하기를,
"신이 그윽이 생각하건대, 삼공(三公)의 벼슬은 한 범인(凡人)이 비난하더라도 있기 어려운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사헌부(司憲府)에서 불가하다 하고 사간원(司諫院)에서 불가하다 하며, 홍문관(弘文館)에서 불가하다 하고 여러 재상들도 불가하다 하니, 이는 온 나라가 비난하는 것입니다. 간사하고 아첨하며 간교하여 대신의 절조가 전혀 없고, 재물을 탐하고 뜻을 맞추어 소인(小人)의 일을 갖추었음은 고금(古今)에 찾아보아도 신과 같은 자는 진실로 듣지 못한 바입니다. 성상께서 비록 곡진히 보전하게 하시려고 하시더라도 그 공의(公議)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은 그릇이 작고 보잘것없는 재능으로서 태석(台席)1618) 에 대죄(待罪)한 지 지금 17년이 되었는데, 국가에 털끝만한 보탬이 없고 한 몸에 산과 같은 비방이 쌓였으니, 신이 비록 용렬하고 비루하더라도 홀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마음이 아픕니다. 낭패(狼狽)하여 몸둘 바를 잃었는데, 성상께서 어찌 한 소인을 아껴서 대덕(大德)에 누(累)를 끼치려 하십니까? 또 아비가 수상(首相)이 되고 아들이 승지(承旨)가 되어 세상을 속이고 공명(功名)이 이처럼 지극함에 이르렀으니, 사람들이 누가 의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지위(脂韋)하면서 은총(恩寵)을 굳게 한 죄는 만 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마땅히 공론으로 결단하시고 노신(老臣)을 사사로이 하지 마시어 신을 파직하기를 명하여 여망(輿望)에 보답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영상(領相)이 인혐(引嫌)하기를 이처럼 극진함에 이르렀는데, 내가 들어주지 아니하면 대간(臺諫)이 반드시 없는 허물을 찾아서 말할 것이니, 영상(領相)에게도 어찌 편안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마지못하여 그대로 따르니, 이 뜻으로 그 의윤(依允)하는 비답(批答)을 지어서 답하라."
하였다.
사신이 논평하기를, "윤필상이 이미 정승을 사면하자 말하기를, ‘내가 못난 재주로 오래 성만(盛滿)1619) 한 자리에 있었으니, 날이 가물면 나를 허물하고 겨울에 천둥을 하면 나를 허물한다. 능히 아들도 가르칠 수 없는데 하물며 하늘을 가르치겠는가? 차라리 큰 작위(爵位)를 바치고 세상 일을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가하다.’고 했다." 하였다.
원문
○領議政尹弼商上狀辭職曰:
臣竊念, 三公之職, 一凡人非之, 尙且難居, 況今憲府曰不可, 諫院曰不可, 弘文館曰不可, 諸宰相亦曰不可, 是擧國非之矣。 邪諂侫巧, 大臣之節掃如; 黷貨逢迎, 小人之事備焉。 求諸古今, 如臣者實所未聞也。 聖上雖欲曲全之, 其於公議何? 臣以斗筲之器, 待罪台席, 于今十有七年矣。 無絲毫之補於國家, 積丘山之謗於一己, 臣雖庸陋, 獨不知恥? 臣竊痛心, 狼狽失措, 聖上何惜一小人以累大德? 且父爲首相, 子爲承旨, 欺世功名, 至於此極, 人誰不議其脂韋固寵之罪? 萬死猶輕。 伏望當以公論斷之, 勿以老臣私之, 命罷臣職, 以答輿望。
傳曰: "領相引嫌至此, 予若不聽, 則臺諫必求其所無之過, 而言之於領相, 亦豈爲安? 故黽俛從之, 其以此意製依允批以答之。"
【史臣曰: "弼商旣免相, 言曰: ‘我以不才, 久處盛滿, 天旱則咎我, 冬雷則咎我, 不能敎其子, 況敎其天乎? 寧進大爵, 都忘世事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