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82권, 성종 24년 9월 11일 임인 2/2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개성부의 명귀석의 군역 문제를 의논하다
국역
병조에서 아뢰기를,
"개성부(開城府)에 사는 학생(學生) 명귀석(明貴石)이 상언하기를, ‘신의 고조(高祖) 흠문 소무 황제(欽文昭武皇帝) 명옥진(明玉珍)이 원(元)나라 말엽에 대하 황제(大夏皇帝)라고 자칭하였는데 그 아들 명승(明昇)이 어머니 팽씨(彭氏)와 더불어 대명(大明)의 포로가 되자,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조선(朝鮮)에 살라고 명령하고 그 조칙(詔勅)에, 「군(軍)으로 만들지도 말고 민(民)으로 만들지라도 말라.」고 하였는데, 지금 신을 군오(軍伍)에 편입시키니 원통하고 민망함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칙서를 자세히 보니 비록 ‘군으로 만들지도 말고 민으로 만들지도 말라.’고 하였으나, 이는 일시적인 특별한 은혜일 뿐이니, 어찌 이로써 자손에게까지 군역(軍役)을 영구히 면제시켜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신소(申訴)한 것은 마땅히 들어주지 마소서."
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 및 의정부(議政府)에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홍무(洪武) 5년1330) 에 중서성(中書省)에서 아뢰기를, ‘성지(聖旨)를 공손히 받들어서 진황제(陳皇帝)의 가족과 하황제(夏皇帝)의 가족으로 하여금 왕경(王京)을 떠나서 군도 되지 말고 민도 되지 말며 다른 땅에 한가하게 정착해서 스스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중국 황제의 특지가 있은 것은 명확합니다. 다만 우리 나라에 있는 자손은 어떻게 처리해야 대체(大體)에 합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조(禮曹)로 하여금 널리 옛 제도를 상고해서 아뢰게 한 후에 다시 의논하게 하소서."
하고, 이극배(李克培)·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이철견(李鐵堅)·윤효손(尹孝孫)은 의논하기를,
"아뢴 바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고,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향화(向化)한 예(例)에 의해서 시행하소서."
하고, 정문형(鄭文炯)은 의논하기를,
"칙서에 이르기를, ‘군(軍)도 되지 말고 민도 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자(當者) 일신(一身)만을 지적했을 뿐이지 영구한 세대(世代)의 자손까지를 지적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명귀석은 명승(明昇)의 증손이 되므로 대(代)가 이미 까마득하게 멀어졌습니다. 비록 군역(軍役)을 지워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물며 예조에서 받은 수교(受敎)에, ‘귀화한 자손도 함께 민에 편입하고 예(例)에 의하여 군역을 지운다.’고 하였음이겠습니까?"
하니, 윤필상의 의논을 따랐다.
- [註 1330] "홍무(洪武) 5년 : 1372년 공민왕 21년.
원문
○兵曹啓: "開城府居學生明貴石上言: ‘臣高祖欽文昭武皇帝明玉珍, 於元末自稱大夏皇帝, 其子明昇與母彭氏爲虜於大明, 太祖高皇帝仍命居朝鮮。 其詔勑云: 「不做軍, 不做民。」而今以臣(偏)〔編〕 軍伍, 不勝冤憫。’ 臣等參詳勑書, 雖云: ‘不做軍, 不做民。’ 此一時特恩耳, 豈以此至子孫永免軍役乎? 其申訴宜勿聽。" 命議于領敦寧以上及議政府。 尹弼商議: "洪武五年, 中書省啓: ‘欽奉聖旨, 就將陳皇帝老少、夏皇帝老少, 去王京, 不做軍、不做民, 閑住著他自過活此。’ 則明有聖旨。 但不知子孫在我國何以處之, 乃合大體, 令禮曹廣考古制, 啓聞後更議。" 李克培、盧思愼、尹壕、李鐵堅、尹孝孫議: "依所啓施行。" 許琮議: "依向化例施行。" 鄭文炯議: "勑書云: ‘不做軍、不做民。’ 者, 的指當身而已, 非指永世子孫也。 今明貴, 乃是明昇曾孫, 則代已玄遠, 雖軍役無妨。 況禮曹受敎云: ‘向化子孫, 有同編民, 依例軍役。’ 乎?" 從弼商議。
성종 24년 (1493) 9월 11일
성종실록282권, 성종 24년 9월 11일 임인 2/2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개성부의 명귀석의 군역 문제를 의논하다
국역
병조에서 아뢰기를,
"개성부(開城府)에 사는 학생(學生) 명귀석(明貴石)이 상언하기를, ‘신의 고조(高祖) 흠문 소무 황제(欽文昭武皇帝) 명옥진(明玉珍)이 원(元)나라 말엽에 대하 황제(大夏皇帝)라고 자칭하였는데 그 아들 명승(明昇)이 어머니 팽씨(彭氏)와 더불어 대명(大明)의 포로가 되자,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조선(朝鮮)에 살라고 명령하고 그 조칙(詔勅)에, 「군(軍)으로 만들지도 말고 민(民)으로 만들지라도 말라.」고 하였는데, 지금 신을 군오(軍伍)에 편입시키니 원통하고 민망함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칙서를 자세히 보니 비록 ‘군으로 만들지도 말고 민으로 만들지도 말라.’고 하였으나, 이는 일시적인 특별한 은혜일 뿐이니, 어찌 이로써 자손에게까지 군역(軍役)을 영구히 면제시켜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신소(申訴)한 것은 마땅히 들어주지 마소서."
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 및 의정부(議政府)에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홍무(洪武) 5년1330) 에 중서성(中書省)에서 아뢰기를, ‘성지(聖旨)를 공손히 받들어서 진황제(陳皇帝)의 가족과 하황제(夏皇帝)의 가족으로 하여금 왕경(王京)을 떠나서 군도 되지 말고 민도 되지 말며 다른 땅에 한가하게 정착해서 스스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를 보면 중국 황제의 특지가 있은 것은 명확합니다. 다만 우리 나라에 있는 자손은 어떻게 처리해야 대체(大體)에 합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조(禮曹)로 하여금 널리 옛 제도를 상고해서 아뢰게 한 후에 다시 의논하게 하소서."
하고, 이극배(李克培)·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이철견(李鐵堅)·윤효손(尹孝孫)은 의논하기를,
"아뢴 바에 의하여 시행하소서."
하고, 허종(許琮)은 의논하기를,
"향화(向化)한 예(例)에 의해서 시행하소서."
하고, 정문형(鄭文炯)은 의논하기를,
"칙서에 이르기를, ‘군(軍)도 되지 말고 민도 되지 말라.’고 한 것은 당자(當者) 일신(一身)만을 지적했을 뿐이지 영구한 세대(世代)의 자손까지를 지적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명귀석은 명승(明昇)의 증손이 되므로 대(代)가 이미 까마득하게 멀어졌습니다. 비록 군역(軍役)을 지워도 무방할 것입니다. 하물며 예조에서 받은 수교(受敎)에, ‘귀화한 자손도 함께 민에 편입하고 예(例)에 의하여 군역을 지운다.’고 하였음이겠습니까?"
하니, 윤필상의 의논을 따랐다.
- [註 1330] "홍무(洪武) 5년 : 1372년 공민왕 21년.
원문
○兵曹啓: "開城府居學生明貴石上言: ‘臣高祖欽文昭武皇帝明玉珍, 於元末自稱大夏皇帝, 其子明昇與母彭氏爲虜於大明, 太祖高皇帝仍命居朝鮮。 其詔勑云: 「不做軍, 不做民。」而今以臣(偏)〔編〕 軍伍, 不勝冤憫。’ 臣等參詳勑書, 雖云: ‘不做軍, 不做民。’ 此一時特恩耳, 豈以此至子孫永免軍役乎? 其申訴宜勿聽。" 命議于領敦寧以上及議政府。 尹弼商議: "洪武五年, 中書省啓: ‘欽奉聖旨, 就將陳皇帝老少、夏皇帝老少, 去王京, 不做軍、不做民, 閑住著他自過活此。’ 則明有聖旨。 但不知子孫在我國何以處之, 乃合大體, 令禮曹廣考古制, 啓聞後更議。" 李克培、盧思愼、尹壕、李鐵堅、尹孝孫議: "依所啓施行。" 許琮議: "依向化例施行。" 鄭文炯議: "勑書云: ‘不做軍、不做民。’ 者, 的指當身而已, 非指永世子孫也。 今明貴, 乃是明昇曾孫, 則代已玄遠, 雖軍役無妨。 況禮曹受敎云: ‘向化子孫, 有同編民, 依例軍役。’ 乎?" 從弼商議。
원본
성종 24년 (1493)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