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273권, 성종 24년 1월 28일 갑오 3/4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부제학 안침 등이 김종직의 시호를 바꿀 수 없음과 유생에게 죄를 주는 것이 부당함을 아뢰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안침(安琛) 등이 와서 아뢰기를,
"김종직(金宗直)의 시호(諡號)를 바꾸고 또 시호를 의논한 관원을 국문하도록 명하셨는데, 신 등은 그 의논한 것이 과연 김종직에게는 지나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문충(文忠)’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도덕(道德)이 높고 사물을 널리 들어 잘 안다.’고 해석한 적이 한 번이 아닌데, 김종직이 이 시호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해롭겠습니까? 하물며 한 번 이름하면 고칠 수 없는 것이 시호입니다. 그리고 사학(四學)의 유생(儒生)은 모두 나이가 어린 광동(狂童)들이어서 형신(刑訊)함은 마땅치 않으니, 청컨대 회초리[夏楚]로 벌주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시호를 의정(議政)한 일은 사헌부(司憲府)에서 모두들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고치고 국문하도록 명하였다. 유생이 광망(狂妄)하고 방자한데도 지금 만약 죄주지 않는다면 후에는 징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안침 등이 다시 아뢰기를,
"이순(李恂)의 종이 학궁(學宮)에 함부로 들어가서 유생을 붙잡고 머리털을 휘어잡기까지 하였으니, 거리낌 없음이 심합니다. 이와 같이 사나운 종은 엄하게 다스리더라도 금하기 어려운데, 도리어 유생을 가두어 형신(刑訊)을 가한다면 그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종직은 잘못한 바가 적으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권근(權近)은 모두 문충(文忠)이라고 시호를 의정하였으니, 신의 생각에는 시호는 고칠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27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71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원문
○弘文館副提學安琛等來啓曰: "命改金宗直諡號, 且鞫議諡之員。 臣等以爲, 其議果於宗直過矣, 然我國名之曰文忠, 釋之以道德博聞者, 非一宗直, 雖得此諡何妨? 況一名之, 則不可改者諡也。 且四學儒生皆年少狂童, 不宜刑訊, 請以夏楚罰之。" 傳曰: "議諡事, 政、憲府皆曰太過, 故命改而鞫之耳。 儒生狂妄自恣, 今若不罪, 後無懲艾矣。" 琛等更啓曰: "恂奴闌入學宮, 拘執儒生, 至於(猝)〔捽〕 髮, 其無忌憚甚矣。 如此悍奴, 雖痛治之, 尙且難禁, 反囚儒生, 加以刑訊, 則其弊不貲。 且宗直所失小, 可謂善人矣。 前者申叔舟、崔恒、權近, 皆以文忠議諡, 臣意以爲不可改諡也。" 不聽。
- 【태백산사고본】 42책 27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71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성종실록273권, 성종 24년 1월 28일 갑오 3/4 기사 / 1493년 명 홍치(弘治) 6년
부제학 안침 등이 김종직의 시호를 바꿀 수 없음과 유생에게 죄를 주는 것이 부당함을 아뢰다
국역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안침(安琛) 등이 와서 아뢰기를,
"김종직(金宗直)의 시호(諡號)를 바꾸고 또 시호를 의논한 관원을 국문하도록 명하셨는데, 신 등은 그 의논한 것이 과연 김종직에게는 지나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문충(文忠)’이라고 이름하는 것은 ‘도덕(道德)이 높고 사물을 널리 들어 잘 안다.’고 해석한 적이 한 번이 아닌데, 김종직이 이 시호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해롭겠습니까? 하물며 한 번 이름하면 고칠 수 없는 것이 시호입니다. 그리고 사학(四學)의 유생(儒生)은 모두 나이가 어린 광동(狂童)들이어서 형신(刑訊)함은 마땅치 않으니, 청컨대 회초리[夏楚]로 벌주도록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시호를 의정(議政)한 일은 사헌부(司憲府)에서 모두들 너무 지나치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고치고 국문하도록 명하였다. 유생이 광망(狂妄)하고 방자한데도 지금 만약 죄주지 않는다면 후에는 징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안침 등이 다시 아뢰기를,
"이순(李恂)의 종이 학궁(學宮)에 함부로 들어가서 유생을 붙잡고 머리털을 휘어잡기까지 하였으니, 거리낌 없음이 심합니다. 이와 같이 사나운 종은 엄하게 다스리더라도 금하기 어려운데, 도리어 유생을 가두어 형신(刑訊)을 가한다면 그 폐해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종직은 잘못한 바가 적으니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권근(權近)은 모두 문충(文忠)이라고 시호를 의정하였으니, 신의 생각에는 시호는 고칠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27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71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원문
○弘文館副提學安琛等來啓曰: "命改金宗直諡號, 且鞫議諡之員。 臣等以爲, 其議果於宗直過矣, 然我國名之曰文忠, 釋之以道德博聞者, 非一宗直, 雖得此諡何妨? 況一名之, 則不可改者諡也。 且四學儒生皆年少狂童, 不宜刑訊, 請以夏楚罰之。" 傳曰: "議諡事, 政、憲府皆曰太過, 故命改而鞫之耳。 儒生狂妄自恣, 今若不罪, 後無懲艾矣。" 琛等更啓曰: "恂奴闌入學宮, 拘執儒生, 至於(猝)〔捽〕 髮, 其無忌憚甚矣。 如此悍奴, 雖痛治之, 尙且難禁, 反囚儒生, 加以刑訊, 則其弊不貲。 且宗直所失小, 可謂善人矣。 前者申叔舟、崔恒、權近, 皆以文忠議諡, 臣意以爲不可改諡也。" 不聽。
- 【태백산사고본】 42책 273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12책 271면
- 【분류】신분-천인(賤人)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사(宗社)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