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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48권, 성종 21년 12월 14일 신유 2번째기사 1490년 명 홍치(弘治) 3년

봉보 부인 백씨의 졸기

봉보 부인(奉保夫人) 백씨(白氏)가 졸(卒)하였다. 부인(夫人)은 본래 천인(賤人)으로서 임금의 유온(乳媼)이었다. 임금이 매우 돈독하게 대우하고 넉넉하게 하사(下賜)하였으므로, 따르는 자가 문앞에 가득하였다. 노비(奴婢)와 전토(田土)를 뇌물로 바치는 자도 있었으며, 양민(良民)도 종으로 의탁하는 자가 많아 가재(家財)가 거만(鉅萬)이었고, 궁중에 출입할 적에는 추종하는 자가 길에 가득하였다. 그의 남편 강선(姜善)도 천인(賤人)이었는데, 벼슬이 당상(堂上)에 이르렀고, 권귀(權貴)한 자들과 교결(交結)하여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많이 하였다. 그러자 홍문관(弘文館)에서 소계(疏啓)하기를,

"부인(夫人)이 갑자기 부귀(富貴)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만하면 충분히 그 노고에 보답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을 크게 열어놓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니, 염치없는 무리들로 추종하는 자가 많은데, 어찌 이익됨이 없이 그러겠습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그 상소를 보고 매우 기뻐하지 아니하였었는데, 그 뒤에는 차츰 소원(疎遠)해졌고 부인도 마음 내키는 대로 하지 못하였었다. 이때에 와서 병이 들자 임금이 걱정을 하여 비록 밤이라도 유문(留門)1076) 하게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존문(存問)하였는데, 서너 번까지 이르렀다. 이때에 부음(訃音)이 알려지자, 임금이 매우 슬퍼하였다.

사신(史臣)이 논평하기를, "백씨(白氏)는 성품이 아주 총명하였다. 임금이 키워 준 공로를 생각하여 매우 융숭하게 대우해 주었었는데, 환득 환실(患得患失)1077) 하는 무리가 그 문전(門前)에 모여들었다. 이보다 앞서 순천 부사(順天府使) 이공(李拱)고만(考滿)1078) 이 되어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자 조야(朝野)가 깜짝 놀랐는데, 임명이 되는 날에 시정(市井)의 무리가 우연히 길에서 말하기를, ‘그 사람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곧 봉보 부인(奉保夫人)의 질녀(姪女)의 남편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24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67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신분-천인(賤人)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註 1076]
    유문(留門) : 궁문(宮門)의 개폐(開閉)는 정시(定時)에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꼭 나가야 할 사람과 들어올 사람이 있을 때는 그 개폐를 유보(留保)하는 일.
  • [註 1077]
    환득 환실(患得患失) :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근심하고 얻은 다음에는 그것을 잃을까 근심함.
  • [註 1078]
    고만(考滿) : 임기 만료.

奉保夫人 白氏卒。 夫人本賤人, 上之乳媪也。 上眷遇甚篤, 賜與優厚, 趨附者盈門。 或賂以奴婢、土田, 良民亦多托爲奴, 家財鉅萬, 常出入宮掖, 騶從滿路。 其夫姜善, 亦賤人也, 位至堂上, 交結權貴, 多行不義。 弘文館疏啓云: "夫人猝至富貴, 此足酬其勞矣。 大開門第, 多所接引, 無恥之徒, 趨附者衆, 豈無所利而然哉?" 上覽疏頗不悅, 其後稍疎之, 夫人亦未得肆意焉。 至是遘疾, 上軫慮, 雖夜留門, 遣使存問, 或至數四。 至是訃聞, 上悼甚。

【史臣曰: "白氏性聰慧。 上念推燥乾濕之勞, 寵遇甚隆, 凡患得患失之徒, 輻輳其門。 前此順天府使李拱考滿, 拜同副承旨, 朝野駭愕, 政下之日, 有市井之徒, 偶語於道曰: ‘此非有賢良, 乃奉保夫人姪女夫也。’"】


  • 【태백산사고본】 38책 248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1책 676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 신분-천인(賤人)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