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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17권, 성종 19년 6월 22일 갑인 3/3 기사 /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전주 부윤 김극유가 아비의 시호를 고치게 해 달라고 상소하다

국역

전주 부윤(全州府尹) 김극유(金克忸)가 상소(上疏)하기를,

"원숭이[猩猩]가 능히 말할 수 있다 하나 짐승에 지나지 아니하고, 앵무새[鸚鵡]가 능히 말할 수 있다 하나 새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것은 행실(行實)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하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孝道)를 다하지 않는다면 금수(禽獸)와 어찌 다르겠습니까? 신이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나와 성상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서울로 머리를 돌려 원통함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의 아비는 세조(世祖)의 신임을 받아 경륜(經綸)의 재주를 펴서 일에 익숙한 것이 제일이라고 일컬어져, 신의 아비의 말을 세조(世祖)께서 청납(廳納)하시고 신의 아비의 계략(計略)을 세조(世祖)께서 시행하셨으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의(義)로는 군신(君臣)이나 은혜로움은 부자(父子)와 같다.’고 한 것을 신은 신의 아비에게서 보았습니다. 아아, 신의 아비는 오랫동안 국정(國政)을 지켜 병조(兵曹)의 직임(職任)을 띤 것이 8년이었습니다. 총애(寵愛)가 두터워지면 비방이 일고, 벼슬이 높아지면 훼방(毁謗)이 따르는 것은 고금(古今)의 일반적인 폐단입니다. 주공(周公)같은 성인(聖人)으로서도 오히려 뜬소문의 비방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더욱이 신의 아비이겠습니까? 또 사람이 요(堯)·순(舜)이 아니고서 어찌 허물이 없겠습니까? 신의 아비를 의논하는 자들이 비록 뜬소문으로 말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또한 국가(國家)에 공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로지 가볍게 하고, 공이 의심스러운 것은 오로지 후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더욱이 신의 아비의 비방(誹謗)은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신의 아비의 공(功)은 기록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가령 신의 아비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공과(功過)로써 그 경중(輕重)을 따져야 할 것인데, 허물이 크고 공이 적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공이 허물을 덮을 수 있다면 악행(惡行)을 은폐(隱蔽)시키고 선행(善行)을 드러내는 것이 충서(忠恕)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신의 아비가 세조(世祖)조(朝)에 세운 경제(經濟)의 공은 비록 원수의 집안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더라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적개(敵愾)606) 의 공은 다만 한때의 여사(餘事)607) 일 뿐이며, 《대전(大典)》을 만드는 데 참여하여 정하고 횡간(橫看)의 방식을 지은 것이 모두 신의 아비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서,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일대의 법을 창립(創立)하여 국가(國家)의 만세 동안 변하지 않을 규범[軌範]이 되게 한 것은 신의 아비의 공이 많은데, 어찌하여 봉상시(奉常寺)에서는 ‘뜻을 펴기만 하고 마무리짓지 못한 것[述義不克]’으로써 신의 아비의 시호(諡號)를 의정(議定)하여, 위로는 세조 대왕(世祖大王)의 사람을 알아 주는 성감(聖鑑)에 누(累)를 끼치고 아래로는 신의 아비로 하여금 지하(地下)에서 원통함을 맺게 하는 것입니까? 아아, 애통합니다. 신이 사람의 자식이 되어 아비의 원통함을 백일하(百日下)에 신원(伸冤)하지 못한다면 어버이에게 효도(孝道)를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사람의 수에 끼여 대부(大夫)의 후열(後列)에서 녹을 먹고 있으니, 신이 어찌 잠시라도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남로(南路)에 은거하여 선영(先塋)의 곁에 집을 짓고 이대로 한을 품고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신은 잠시도 마음에서 잊은 적이 없습니다.

돌아보건대, 오로지 늙은 어미는 백발(白髮)이 되어 기운[氣息]이 쇠약한데도 항상 말하기를, ‘불행하게도 너희 아비는 이미 죽었지만, 늙은 나는 오직 너희들을 의지하여 사는데, 네가 장차 아비의 묘 옆에서 늙어 죽으려 하느냐?’ 하여 모자(母子)가 서로 부여잡고서 말하다가 문득 목메이게 되니, 아아 천지(天地)는 유한(有限)한데 이 한(恨)은 무궁(無窮)합니다. 지난번에 신이 성상의 인자하심을 입었으니, 특별히 교서(敎書)를 내리시기를, ‘그대의 선부(先父) 김국광(金國光)의 시호(諡號)를 고치는 일은 글을 열 번이나 올려 그칠 줄 모르는데다가 언사(言辭)가 박절(迫切)하고 성의(誠意)가 간절하니, 그대의 부자(父子) 사이에 어버이를 위하는 정성이 지극히 가상(嘉尙)하다. 더욱이 그대의 아비는 평생 동안 임금을 도운 업적에 과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 청을 따르는 것을 아끼겠는가? 그러나 한 번 단서가 열리면 말류(末流)의 폐단을 막기가 어려우니, 비록 효자(孝子)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태상(太常)608) 의 의논이 다시 고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한다.’ 하시니, 신의 아비의 억울함이 거의 풀리고, 신 또한 감격(感激)하던 중 노모(老母)와 그것을 말하면서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아들을 아는 것은 아비만한 이가 없고, 신하를 아는 이는 임금만한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아비를 아는 데에는 전하(殿下)의 성명(聖明)만한 이가 누가 또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백왕(百王)에 뛰어나신 성명(聖明)으로 이미 말씀하시기를, ‘과실(過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셨다면, 신의 아비에게 허물이 없다는 것은 글마다 밝혀진 것입니다. 단지 말씀하시기를, ‘한 번 그 단서가 열리면 말류(末流)의 폐단을 막기가 어려워 태상(太常)의 의논이 다시 고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나, 대저 천하(天下)의 일은 선(善)과 악(惡)에 지나지 않을 뿐이므로, 시호(諡號)가 실로 합당하다면 한 번 고치는 것도 옳지 못하겠지만, 시호가 실로 합당(合當)하지 못하다면 비록 백 번 고친다 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요컨대, 명실(名實)이 합당한 데에 귀착(歸着)되는 것일 뿐입니다. 신의 아비에게 이미 과실(過失)이 없다면 잘못 더해진 그릇된 시호(諡號)를 비록 백번 고친다 하더라도 어찌 공의(公議)에 누(累)가 되겠으며, 어찌 말류(末流)의 폐단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선(善)과 악(惡)은 상반(相反)되는 것으로서, 함께 일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저 시호(諡號)란 것은 천하 만세의 의논으로 공변되어야 하는데, 만약 선한 자로 하여금 악한 시호를 얻게 하고, 악한 자로 하여금 선한 시호를 얻게 한다면, 어찌 악을 징계(懲戒)하고 선을 권장(勸奬)하는 뜻이라 하겠습니까? 옛날 자공(子貢)공자(孔子)에게 묻기를, ‘공문자(孔文子)는 어떻게 문(文)이라고 일컬었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해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문(文)이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그것을 해석하기를, ‘사람에게 한 가지 일컬을 만한 선(善)이 있어도 성인(聖人)은 반드시 그것을 취하였으니, 이는 천지와 같은 도량(度量)인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공문자(孔文子)가 실로 좋지는 아니하였으나, 단지 부지런히 배우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또한 좋은 곳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지금 봉상시(奉常寺)로 하여금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를 의논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의논하겠습니까? 신은 반드시 정(丁)이라고 하고, 문(文)이라고 의논하지는 않을 것임을 압니다. 정(丁)이라고 의논하고 문(文)이라고 의논하지 않는다면 공자(孔子)자공(子貢)의 물음에 답한 것과 주자(朱子)공자의 말을 해석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온전하게 악하기만 하고 선이 없다면 유(幽)·려(厲)609) 라고 의논할 만한데, 비록 백세(百世)가 되더라도 누가 고칠 수 있겠으며, 유려(幽厲)도 지하(地下)에서 억울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니, 그 자손 또한 청의(淸議)610) 의 공변됨으로 인해 고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의 아비는 나라에 공(功)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또한 덕행(德行)에 어긋난 바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허물만 있고 선행(善行)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니, 작은 허물이 있다고 얽매이지 말고 그 선(善)을 취하여 문(文)이라고 의논해야 마땅하지 정(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의 아비의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데 있어서 최호원(崔灝元)같은 사람이 봉상시 정(奉常寺正)이 되었을 때 신이 어리석어 알지는 못하였지만, 최호원(崔灝元)의 사람 됨됨이가 공자(孔子)보다 착하고 주자(朱子)보다 어질다는 것입니까? 학술(學術)이 잡다(雜多)하여 바르지 못하고, 언어(言語)가 궤괴(詭怪)하여 황당(荒唐)한 것은 온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어떻게 성인(聖人)의 너그러움과 천지(天地)의 도량(度量)을 알아서 선과 악을 취하고 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적이 마음이 아픕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신의 아비에게 공(功)이 있으되 허물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아비에게 선행(善行)이 있으되 악행(惡行)이 없는 것을 살피셔서, 뜬소문의 비방(誹謗)을 의심하지 마시고, 최호원(崔灝元)이 의논한 시호(諡號)가 옳다고 여기지 마시고, 자공(子貢)의 물음에 답한 공자(孔子)의 말을 구명(究明)하시고, 공자(孔子)의 말에 대한 주자(朱子)의 해석을 상고하셔서, 특별히 정(丁)자를 덜어내고 시비(是非)를 밝힘으로써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머물러 두게 하였다.

  • [註 606] 적개(敵愾) :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을 말함.
  • [註 607] 여사(餘事) : 그다지 요긴하지 않은 일.
  • [註 608] 태상(太常) : 봉상시(奉常寺).
  • [註 609] 유(幽)·려(厲) :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모두 주대(周代)의 폭군임.
  • [註 610] 청의(淸議) : 공평한 의논.

원문

全州府尹金克忸上疏曰:

猩猩能言, 而不離於獸, 鸚鵡能言, 而不離於鳥, 以其無行故也。 人臣而不能盡忠於國, 人子而不能盡孝於家, 則與禽獸奚擇焉? 臣今出尹全州, 遠離螭陛, 回首終南, 冤不能禁。 臣父知遇世祖, 展其經綸之才, 以事知第一稱之。 臣父言而世祖聽之, 臣父計而世祖行之, 古人云: "義爲君臣, 恩猶父子。" 臣於臣父見之。 噫! 臣父久秉國政, 職帶兵曹者八年, 寵傾而謗興, 位極而毁來, 古今通患。 以周公之聖, 猶未免流言之謗, 況臣父乎? 且人非, 孰能無過? 議臣父者, 雖或以飛謗爲言, 亦不得曰無功於國家也。 《書》曰: "罪疑惟輕, 功疑惟重, 況臣父之謗未形, 而臣父之功可記乎? 假使臣父有過, 猶以功過輕重之, 過大而功小則已矣, 若功可以掩過, 則隱惡而揚善, 非聖人忠恕之道乎? 臣父當世祖朝經濟之功, 雖使讎家議之, 不可曰無也。 其敵愾之功, 特一時餘事耳。 其參定《大典》, 作式橫看, 皆出臣父之手, 世祖大王創立一代之法, 爲國家萬世不易之軌範, 臣父之功爲多。 奈何奉常寺以 ‘述義不克’ 議臣父之諡, 而上以累世祖大王知人之鑑, 下以結臣父之冤於地下乎? 嗚呼, 痛哉! 臣爲人之子, 而不能伸父冤於白日之下, 則可以曰盡孝於家乎? 猶齒於人數而食祿大夫之後, 臣豈須臾安於心乎? 角巾南路, 築室先塋之側, 抱恨終身, 臣未嘗頃刻忘于懷也。 顧惟老母白髮離披, 氣息奄奄, 常語臣曰: "不幸汝父已死, 老女之生, 惟汝是賴, 今汝將欲老死於父墳之側乎?" 母子相携, 言輒於邑。 噫! 天地有窮, 此恨無窮。 頃者臣伏蒙聖慈, 特賜敎書曰: "爾以先父國光改諡事, 章十上而不知止焉。 言辭迫切, 誠意懇到, 爾於父子爲親之誠, 至爲可嘉。 況爾父平生相業, 無過失可言, 予豈靳從其請耶? 一開其端, 末流難防, 孝子之志, 雖不可奪, 太常之議, 不容追改。" 臣父之冤庶幾伸矣, 而臣亦感激于中, 時與老母言之, 繼以流涕。 古人云: "知子莫如父, 知臣莫如君。" 然則知臣父者, 孰如殿下之聖明乎? 殿下以高出百王之聖, 旣曰: "無過失可言。", 則臣父之無過, 章章明矣。 但曰: "一開其端, 末流難防, 太常之議, 不容追改。" 夫天下之事, 不過曰善與惡而已。 諡固當也, 則一改且不可; 諡固不當也, 則雖百改何害? 要以歸之於名實相當而已。 臣父旣無過失, 則其橫加之謬諡, 雖百追改, 何累於公議? 何患於末流之難防乎? 善與惡相反, 而不可竝稱也。 夫諡者, 公天下萬世之議也, 如使善者而得惡諡, 惡者而得善諡, 豈懲惡勸善之意乎? 昔子貢問於孔子曰: "孔文子何以謂之 ‘文’ 也?" 孔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 ‘文’ 也。" 朱子釋之曰: "人有一善之可稱, 聖人亦必取之, 此天地之量也。" 又曰: "孔文子固是不好, 只敏學下問, 亦多好處。" 使今之奉常議文子之諡, 則何以爲議? 臣固知必曰 ‘丁’ 而不議之以 ‘文’ 也。 議之以 ‘丁’ 而不以 ‘文’, 則孔子之答子貢之問, 朱子之釋孔子之言, 何也? 純惡而無善, 則可議之曰 ‘幽’ ‘厲’, 而雖百世誰得而改之? ‘幽’ ‘厲’ 不得冤於地下, 而其子孫亦不得改於淸議之公也。 臣父則不可曰無功於國家也, 亦不可曰有爽於德行也。 然則不過曰有過無善也。 儻有徵過, 宜取其善, 議之以 ‘文’, 而不可曰 ‘丁’ 也。 議臣父之諡者, 如崔灝元爲正於奉常之時也。 臣愚未知灝元之爲人, 聖於孔子而賢於朱子乎? 學術雜而不正, 言語詭而荒唐, 擧世知之, 安知聖人恢弘天地之量, 而能善惡之取捨乎? 臣竊痛心。 伏願殿下憐臣父有功而無過, 察臣父有善而無惡, 勿以浮言之謗爲疑, 勿以灝元之諡爲是, 究孔子子貢之問, 稽朱子孔子之言, 特去 ‘丁’ 字, 以明是非, 以分善惡, 不勝幸甚。

命留政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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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217권, 성종 19년 6월 22일 갑인 3/3 기사 / 1488년 명 홍치(弘治) 1년

전주 부윤 김극유가 아비의 시호를 고치게 해 달라고 상소하다

국역

전주 부윤(全州府尹) 김극유(金克忸)가 상소(上疏)하기를,

"원숭이[猩猩]가 능히 말할 수 있다 하나 짐승에 지나지 아니하고, 앵무새[鸚鵡]가 능히 말할 수 있다 하나 새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것은 행실(行實)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하로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孝道)를 다하지 않는다면 금수(禽獸)와 어찌 다르겠습니까? 신이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나와 성상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서울로 머리를 돌려 원통함을 금하지 못하겠습니다.

신의 아비는 세조(世祖)의 신임을 받아 경륜(經綸)의 재주를 펴서 일에 익숙한 것이 제일이라고 일컬어져, 신의 아비의 말을 세조(世祖)께서 청납(廳納)하시고 신의 아비의 계략(計略)을 세조(世祖)께서 시행하셨으니, 옛사람이 이르기를, ‘의(義)로는 군신(君臣)이나 은혜로움은 부자(父子)와 같다.’고 한 것을 신은 신의 아비에게서 보았습니다. 아아, 신의 아비는 오랫동안 국정(國政)을 지켜 병조(兵曹)의 직임(職任)을 띤 것이 8년이었습니다. 총애(寵愛)가 두터워지면 비방이 일고, 벼슬이 높아지면 훼방(毁謗)이 따르는 것은 고금(古今)의 일반적인 폐단입니다. 주공(周公)같은 성인(聖人)으로서도 오히려 뜬소문의 비방을 면하지 못하였는데, 더욱이 신의 아비이겠습니까? 또 사람이 요(堯)·순(舜)이 아니고서 어찌 허물이 없겠습니까? 신의 아비를 의논하는 자들이 비록 뜬소문으로 말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또한 국가(國家)에 공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로지 가볍게 하고, 공이 의심스러운 것은 오로지 후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더욱이 신의 아비의 비방(誹謗)은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신의 아비의 공(功)은 기록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가령 신의 아비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공과(功過)로써 그 경중(輕重)을 따져야 할 것인데, 허물이 크고 공이 적다면 그만이겠지만, 만약 공이 허물을 덮을 수 있다면 악행(惡行)을 은폐(隱蔽)시키고 선행(善行)을 드러내는 것이 충서(忠恕)의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신의 아비가 세조(世祖)조(朝)에 세운 경제(經濟)의 공은 비록 원수의 집안으로 하여금 의논하게 하더라도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적개(敵愾)606) 의 공은 다만 한때의 여사(餘事)607) 일 뿐이며, 《대전(大典)》을 만드는 데 참여하여 정하고 횡간(橫看)의 방식을 지은 것이 모두 신의 아비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서, 세조 대왕(世祖大王)께서 일대의 법을 창립(創立)하여 국가(國家)의 만세 동안 변하지 않을 규범[軌範]이 되게 한 것은 신의 아비의 공이 많은데, 어찌하여 봉상시(奉常寺)에서는 ‘뜻을 펴기만 하고 마무리짓지 못한 것[述義不克]’으로써 신의 아비의 시호(諡號)를 의정(議定)하여, 위로는 세조 대왕(世祖大王)의 사람을 알아 주는 성감(聖鑑)에 누(累)를 끼치고 아래로는 신의 아비로 하여금 지하(地下)에서 원통함을 맺게 하는 것입니까? 아아, 애통합니다. 신이 사람의 자식이 되어 아비의 원통함을 백일하(百日下)에 신원(伸冤)하지 못한다면 어버이에게 효도(孝道)를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사람의 수에 끼여 대부(大夫)의 후열(後列)에서 녹을 먹고 있으니, 신이 어찌 잠시라도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남로(南路)에 은거하여 선영(先塋)의 곁에 집을 짓고 이대로 한을 품고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신은 잠시도 마음에서 잊은 적이 없습니다.

돌아보건대, 오로지 늙은 어미는 백발(白髮)이 되어 기운[氣息]이 쇠약한데도 항상 말하기를, ‘불행하게도 너희 아비는 이미 죽었지만, 늙은 나는 오직 너희들을 의지하여 사는데, 네가 장차 아비의 묘 옆에서 늙어 죽으려 하느냐?’ 하여 모자(母子)가 서로 부여잡고서 말하다가 문득 목메이게 되니, 아아 천지(天地)는 유한(有限)한데 이 한(恨)은 무궁(無窮)합니다. 지난번에 신이 성상의 인자하심을 입었으니, 특별히 교서(敎書)를 내리시기를, ‘그대의 선부(先父) 김국광(金國光)의 시호(諡號)를 고치는 일은 글을 열 번이나 올려 그칠 줄 모르는데다가 언사(言辭)가 박절(迫切)하고 성의(誠意)가 간절하니, 그대의 부자(父子) 사이에 어버이를 위하는 정성이 지극히 가상(嘉尙)하다. 더욱이 그대의 아비는 평생 동안 임금을 도운 업적에 과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 청을 따르는 것을 아끼겠는가? 그러나 한 번 단서가 열리면 말류(末流)의 폐단을 막기가 어려우니, 비록 효자(孝子)의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태상(太常)608) 의 의논이 다시 고치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한다.’ 하시니, 신의 아비의 억울함이 거의 풀리고, 신 또한 감격(感激)하던 중 노모(老母)와 그것을 말하면서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아들을 아는 것은 아비만한 이가 없고, 신하를 아는 이는 임금만한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아비를 아는 데에는 전하(殿下)의 성명(聖明)만한 이가 누가 또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백왕(百王)에 뛰어나신 성명(聖明)으로 이미 말씀하시기를, ‘과실(過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셨다면, 신의 아비에게 허물이 없다는 것은 글마다 밝혀진 것입니다. 단지 말씀하시기를, ‘한 번 그 단서가 열리면 말류(末流)의 폐단을 막기가 어려워 태상(太常)의 의논이 다시 고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나, 대저 천하(天下)의 일은 선(善)과 악(惡)에 지나지 않을 뿐이므로, 시호(諡號)가 실로 합당하다면 한 번 고치는 것도 옳지 못하겠지만, 시호가 실로 합당(合當)하지 못하다면 비록 백 번 고친다 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요컨대, 명실(名實)이 합당한 데에 귀착(歸着)되는 것일 뿐입니다. 신의 아비에게 이미 과실(過失)이 없다면 잘못 더해진 그릇된 시호(諡號)를 비록 백번 고친다 하더라도 어찌 공의(公議)에 누(累)가 되겠으며, 어찌 말류(末流)의 폐단을 막기가 어렵다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선(善)과 악(惡)은 상반(相反)되는 것으로서, 함께 일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저 시호(諡號)란 것은 천하 만세의 의논으로 공변되어야 하는데, 만약 선한 자로 하여금 악한 시호를 얻게 하고, 악한 자로 하여금 선한 시호를 얻게 한다면, 어찌 악을 징계(懲戒)하고 선을 권장(勸奬)하는 뜻이라 하겠습니까? 옛날 자공(子貢)공자(孔子)에게 묻기를, ‘공문자(孔文子)는 어떻게 문(文)이라고 일컬었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해서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문(文)이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그것을 해석하기를, ‘사람에게 한 가지 일컬을 만한 선(善)이 있어도 성인(聖人)은 반드시 그것을 취하였으니, 이는 천지와 같은 도량(度量)인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공문자(孔文子)가 실로 좋지는 아니하였으나, 단지 부지런히 배우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이 또한 좋은 곳이 많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지금 봉상시(奉常寺)로 하여금 공문자(孔文子)의 시호(諡號)를 의논하게 한다면, 무엇이라고 의논하겠습니까? 신은 반드시 정(丁)이라고 하고, 문(文)이라고 의논하지는 않을 것임을 압니다. 정(丁)이라고 의논하고 문(文)이라고 의논하지 않는다면 공자(孔子)자공(子貢)의 물음에 답한 것과 주자(朱子)공자의 말을 해석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온전하게 악하기만 하고 선이 없다면 유(幽)·려(厲)609) 라고 의논할 만한데, 비록 백세(百世)가 되더라도 누가 고칠 수 있겠으며, 유려(幽厲)도 지하(地下)에서 억울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니, 그 자손 또한 청의(淸議)610) 의 공변됨으로 인해 고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의 아비는 나라에 공(功)이 없다고 말할 수 없고, 또한 덕행(德行)에 어긋난 바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허물만 있고 선행(善行)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니, 작은 허물이 있다고 얽매이지 말고 그 선(善)을 취하여 문(文)이라고 의논해야 마땅하지 정(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의 아비의 시호(諡號)를 의논하는 데 있어서 최호원(崔灝元)같은 사람이 봉상시 정(奉常寺正)이 되었을 때 신이 어리석어 알지는 못하였지만, 최호원(崔灝元)의 사람 됨됨이가 공자(孔子)보다 착하고 주자(朱子)보다 어질다는 것입니까? 학술(學術)이 잡다(雜多)하여 바르지 못하고, 언어(言語)가 궤괴(詭怪)하여 황당(荒唐)한 것은 온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어떻게 성인(聖人)의 너그러움과 천지(天地)의 도량(度量)을 알아서 선과 악을 취하고 버릴 수 있겠습니까?

신은 적이 마음이 아픕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殿下)께서는 신의 아비에게 공(功)이 있으되 허물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신의 아비에게 선행(善行)이 있으되 악행(惡行)이 없는 것을 살피셔서, 뜬소문의 비방(誹謗)을 의심하지 마시고, 최호원(崔灝元)이 의논한 시호(諡號)가 옳다고 여기지 마시고, 자공(子貢)의 물음에 답한 공자(孔子)의 말을 구명(究明)하시고, 공자(孔子)의 말에 대한 주자(朱子)의 해석을 상고하셔서, 특별히 정(丁)자를 덜어내고 시비(是非)를 밝힘으로써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신다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는데, 명하여 승정원(承政院)에 머물러 두게 하였다.

  • [註 606] 적개(敵愾) :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을 말함.
  • [註 607] 여사(餘事) : 그다지 요긴하지 않은 일.
  • [註 608] 태상(太常) : 봉상시(奉常寺).
  • [註 609] 유(幽)·려(厲) : 유왕(幽王)과 여왕(厲王). 모두 주대(周代)의 폭군임.
  • [註 610] 청의(淸議) : 공평한 의논.

원문

全州府尹金克忸上疏曰:

猩猩能言, 而不離於獸, 鸚鵡能言, 而不離於鳥, 以其無行故也。 人臣而不能盡忠於國, 人子而不能盡孝於家, 則與禽獸奚擇焉? 臣今出尹全州, 遠離螭陛, 回首終南, 冤不能禁。 臣父知遇世祖, 展其經綸之才, 以事知第一稱之。 臣父言而世祖聽之, 臣父計而世祖行之, 古人云: "義爲君臣, 恩猶父子。" 臣於臣父見之。 噫! 臣父久秉國政, 職帶兵曹者八年, 寵傾而謗興, 位極而毁來, 古今通患。 以周公之聖, 猶未免流言之謗, 況臣父乎? 且人非, 孰能無過? 議臣父者, 雖或以飛謗爲言, 亦不得曰無功於國家也。 《書》曰: "罪疑惟輕, 功疑惟重, 況臣父之謗未形, 而臣父之功可記乎? 假使臣父有過, 猶以功過輕重之, 過大而功小則已矣, 若功可以掩過, 則隱惡而揚善, 非聖人忠恕之道乎? 臣父當世祖朝經濟之功, 雖使讎家議之, 不可曰無也。 其敵愾之功, 特一時餘事耳。 其參定《大典》, 作式橫看, 皆出臣父之手, 世祖大王創立一代之法, 爲國家萬世不易之軌範, 臣父之功爲多。 奈何奉常寺以 ‘述義不克’ 議臣父之諡, 而上以累世祖大王知人之鑑, 下以結臣父之冤於地下乎? 嗚呼, 痛哉! 臣爲人之子, 而不能伸父冤於白日之下, 則可以曰盡孝於家乎? 猶齒於人數而食祿大夫之後, 臣豈須臾安於心乎? 角巾南路, 築室先塋之側, 抱恨終身, 臣未嘗頃刻忘于懷也。 顧惟老母白髮離披, 氣息奄奄, 常語臣曰: "不幸汝父已死, 老女之生, 惟汝是賴, 今汝將欲老死於父墳之側乎?" 母子相携, 言輒於邑。 噫! 天地有窮, 此恨無窮。 頃者臣伏蒙聖慈, 特賜敎書曰: "爾以先父國光改諡事, 章十上而不知止焉。 言辭迫切, 誠意懇到, 爾於父子爲親之誠, 至爲可嘉。 況爾父平生相業, 無過失可言, 予豈靳從其請耶? 一開其端, 末流難防, 孝子之志, 雖不可奪, 太常之議, 不容追改。" 臣父之冤庶幾伸矣, 而臣亦感激于中, 時與老母言之, 繼以流涕。 古人云: "知子莫如父, 知臣莫如君。" 然則知臣父者, 孰如殿下之聖明乎? 殿下以高出百王之聖, 旣曰: "無過失可言。", 則臣父之無過, 章章明矣。 但曰: "一開其端, 末流難防, 太常之議, 不容追改。" 夫天下之事, 不過曰善與惡而已。 諡固當也, 則一改且不可; 諡固不當也, 則雖百改何害? 要以歸之於名實相當而已。 臣父旣無過失, 則其橫加之謬諡, 雖百追改, 何累於公議? 何患於末流之難防乎? 善與惡相反, 而不可竝稱也。 夫諡者, 公天下萬世之議也, 如使善者而得惡諡, 惡者而得善諡, 豈懲惡勸善之意乎? 昔子貢問於孔子曰: "孔文子何以謂之 ‘文’ 也?" 孔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 ‘文’ 也。" 朱子釋之曰: "人有一善之可稱, 聖人亦必取之, 此天地之量也。" 又曰: "孔文子固是不好, 只敏學下問, 亦多好處。" 使今之奉常議文子之諡, 則何以爲議? 臣固知必曰 ‘丁’ 而不議之以 ‘文’ 也。 議之以 ‘丁’ 而不以 ‘文’, 則孔子之答子貢之問, 朱子之釋孔子之言, 何也? 純惡而無善, 則可議之曰 ‘幽’ ‘厲’, 而雖百世誰得而改之? ‘幽’ ‘厲’ 不得冤於地下, 而其子孫亦不得改於淸議之公也。 臣父則不可曰無功於國家也, 亦不可曰有爽於德行也。 然則不過曰有過無善也。 儻有徵過, 宜取其善, 議之以 ‘文’, 而不可曰 ‘丁’ 也。 議臣父之諡者, 如崔灝元爲正於奉常之時也。 臣愚未知灝元之爲人, 聖於孔子而賢於朱子乎? 學術雜而不正, 言語詭而荒唐, 擧世知之, 安知聖人恢弘天地之量, 而能善惡之取捨乎? 臣竊痛心。 伏願殿下憐臣父有功而無過, 察臣父有善而無惡, 勿以浮言之謗爲疑, 勿以灝元之諡爲是, 究孔子子貢之問, 稽朱子孔子之言, 特去 ‘丁’ 字, 以明是非, 以分善惡, 不勝幸甚。

命留政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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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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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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