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실록4권, 성종 1년 3월 22일 신축 6/7 기사 /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충청도 관찰사 김양경이 광망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체포하였음을 보고하다
국역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김양경(金良璥)이 치계(馳啓)하기를,
"도내(道內)의 부여현(扶餘縣) 사람 충찬위(忠贊衛) 박효의(朴孝義)가 와서 고하기를, ‘내가 일전에 청양현(靑陽縣) 사람 지종해(池宗海)의 집에 이르니, 본현(本縣)의 호장(戶長) 이춘양(李春陽)이 또한 이르렀는데, 이춘양이 반지(半紙) 글을 소매에서 꺼내어 지종해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 글을 전사(傳寫)하여 창호(窓戶)에 붙이고 읽고 외우면 액(厄)을 면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내가 글을 알지 못하므로 그 말을 듣기를 청하니 이춘양이 해석을 하였는데, 그 말이 자못 황당하므로 감히 고합니다.’ 하였습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운남(雲南)의 광상사(廣上寺)에서 근자에 한 노인을 만났는데, 나이가 1백 49세였다. 정해년239) 6월 초10일에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났는데, 위로는 천계(天界)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부(地府)를 통달하여 인간(人間)의 일을 알려주기를, 「경인년240) 3월을 위시하여 풍우(風雨)가 갑자기 크게 일어나서 악한 사람이 모두 죽고 가뭄과 도병(刀兵)의 재앙이 있을 것이다. 경인년241) ·신묘년242) 두 해 사이에는 사람이 많이 8분(分)이나 죽어 집은 있어도 한 사람도 없고, 밭은 있어도 갈지 못하고, 아홉 여자가 한 남편을 함께 하고, 열 집이 소 한 마리를 함께 하고, 곡식의 저축이 없을 것이다. 만일 쾌히 믿는 자는 경인·신묘 두 해간의 재앙을 면할 것이다. 한 벌[本]을 전하여 쓰는 자는 한 몸의 재앙을 면하고, 두 벌을 전하여 쓰는 자는 한 집의 재앙을 면하고, 세 벌을 전하여 쓰는 자는 태평을 얻을 것인데, 만일 믿지 않는 자는 핏빛의 재앙을 당할 것이다.」 하였다. 위는 요동(遼東)에서 온 신강 화상(新降和尙)이 쓴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온양 군수(溫陽郡守) 김인민(金仁民)으로 하여금 추국(推鞫)하게 하고, 등사(謄寫)하여 전하여 보인 자 김득의(金得義)·김중영(金仲迎), 중[僧] 인형(仁泂)·의조(義照)·각회(覺會)를 잡아서 가두었으나, 중 성호(性浩)는 도망 중에 있으므로 지금 바야흐로 수색하여 잡는 중입니다."
하였다. 전지하기를,
"관찰사에게 유시하여 급히 성호를 잡아서 요망한 글이 나온 곳을 끝까지 캐어 물어 아뢰게 하라."
하였다.
- [註 239] 정해년 : 1467 세조 13년.
- [註 240] 경인년 : 1470 성종 원년.
- [註 241] 경인년 : 1470 성종 원년.
- [註 242] 신묘년 : 1471 성종 2년.
원문
○(忠請道)〔忠淸道〕 觀察使金良璥馳啓: "道內扶餘縣人忠贊衛朴孝義來告曰: ‘我日者到靑陽縣人池宗海家, 本縣戶長李春陽亦到。 春陽袖出半紙, 書示宗海曰: 「此書傳寫, 帖窓戶, 讀誦, 則可免厄。」 我不解文, 故請聞其說, 春陽解之, 其說頗荒唐, 故敢告。’ 其書曰: ‘雲南 廣上寺近, 遇一老人, 年一百四十九。 丁亥六月初十日死去, 三日還魂, 上通天界, 下達地府, 爲報人間事。 庚寅三月, 爲始風雨暴作, 惡人皆死, 有溫氣、刀兵之災。 庚寅、辛卯兩年之間, 人多死八分, 有家無一人, 有田不耕九, 女共一夫, 十家共一牛, 穀無儲食。 若樂信者, 只免庚寅、辛卯兩年之災; 傳書一本者, 免一身之災; 傳書二本者, 免一家之災; 傳書三本者, 得見太平; 若不信者, 得見血光之災。 右遼東來新降和尙書也。’ 臣令溫陽郡守金仁民推鞫, 捕得謄寫傳示者, 金得義、金仲迎, 僧仁泂、義照、覺會囚禁, 僧性浩在逃, 時方搜捕。" 傳曰: "其諭觀察使, 急捕性浩, 窮問妖書出處以啓。"
성종실록4권, 성종 1년 3월 22일 신축 6/7 기사 /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충청도 관찰사 김양경이 광망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을 체포하였음을 보고하다
국역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김양경(金良璥)이 치계(馳啓)하기를,
"도내(道內)의 부여현(扶餘縣) 사람 충찬위(忠贊衛) 박효의(朴孝義)가 와서 고하기를, ‘내가 일전에 청양현(靑陽縣) 사람 지종해(池宗海)의 집에 이르니, 본현(本縣)의 호장(戶長) 이춘양(李春陽)이 또한 이르렀는데, 이춘양이 반지(半紙) 글을 소매에서 꺼내어 지종해에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 글을 전사(傳寫)하여 창호(窓戶)에 붙이고 읽고 외우면 액(厄)을 면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내가 글을 알지 못하므로 그 말을 듣기를 청하니 이춘양이 해석을 하였는데, 그 말이 자못 황당하므로 감히 고합니다.’ 하였습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운남(雲南)의 광상사(廣上寺)에서 근자에 한 노인을 만났는데, 나이가 1백 49세였다. 정해년239) 6월 초10일에 죽었다가 3일 만에 살아났는데, 위로는 천계(天界)를 통하고 아래로는 지부(地府)를 통달하여 인간(人間)의 일을 알려주기를, 「경인년240) 3월을 위시하여 풍우(風雨)가 갑자기 크게 일어나서 악한 사람이 모두 죽고 가뭄과 도병(刀兵)의 재앙이 있을 것이다. 경인년241) ·신묘년242) 두 해 사이에는 사람이 많이 8분(分)이나 죽어 집은 있어도 한 사람도 없고, 밭은 있어도 갈지 못하고, 아홉 여자가 한 남편을 함께 하고, 열 집이 소 한 마리를 함께 하고, 곡식의 저축이 없을 것이다. 만일 쾌히 믿는 자는 경인·신묘 두 해간의 재앙을 면할 것이다. 한 벌[本]을 전하여 쓰는 자는 한 몸의 재앙을 면하고, 두 벌을 전하여 쓰는 자는 한 집의 재앙을 면하고, 세 벌을 전하여 쓰는 자는 태평을 얻을 것인데, 만일 믿지 않는 자는 핏빛의 재앙을 당할 것이다.」 하였다. 위는 요동(遼東)에서 온 신강 화상(新降和尙)이 쓴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온양 군수(溫陽郡守) 김인민(金仁民)으로 하여금 추국(推鞫)하게 하고, 등사(謄寫)하여 전하여 보인 자 김득의(金得義)·김중영(金仲迎), 중[僧] 인형(仁泂)·의조(義照)·각회(覺會)를 잡아서 가두었으나, 중 성호(性浩)는 도망 중에 있으므로 지금 바야흐로 수색하여 잡는 중입니다."
하였다. 전지하기를,
"관찰사에게 유시하여 급히 성호를 잡아서 요망한 글이 나온 곳을 끝까지 캐어 물어 아뢰게 하라."
하였다.
- [註 239] 정해년 : 1467 세조 13년.
- [註 240] 경인년 : 1470 성종 원년.
- [註 241] 경인년 : 1470 성종 원년.
- [註 242] 신묘년 : 1471 성종 2년.
원문
○(忠請道)〔忠淸道〕 觀察使金良璥馳啓: "道內扶餘縣人忠贊衛朴孝義來告曰: ‘我日者到靑陽縣人池宗海家, 本縣戶長李春陽亦到。 春陽袖出半紙, 書示宗海曰: 「此書傳寫, 帖窓戶, 讀誦, 則可免厄。」 我不解文, 故請聞其說, 春陽解之, 其說頗荒唐, 故敢告。’ 其書曰: ‘雲南 廣上寺近, 遇一老人, 年一百四十九。 丁亥六月初十日死去, 三日還魂, 上通天界, 下達地府, 爲報人間事。 庚寅三月, 爲始風雨暴作, 惡人皆死, 有溫氣、刀兵之災。 庚寅、辛卯兩年之間, 人多死八分, 有家無一人, 有田不耕九, 女共一夫, 十家共一牛, 穀無儲食。 若樂信者, 只免庚寅、辛卯兩年之災; 傳書一本者, 免一身之災; 傳書二本者, 免一家之災; 傳書三本者, 得見太平; 若不信者, 得見血光之災。 右遼東來新降和尙書也。’ 臣令溫陽郡守金仁民推鞫, 捕得謄寫傳示者, 金得義、金仲迎, 僧仁泂、義照、覺會囚禁, 僧性浩在逃, 時方搜捕。" 傳曰: "其諭觀察使, 急捕性浩, 窮問妖書出處以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