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실록7권, 예종 1년 8월 22일 계유 1/2 기사 /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홍윤성·윤자운·김국광·한명회·한계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홍윤성(洪允成)을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으로, 윤자운(尹子雲)을 좌의정(左議政)으로, 김국광(金國光)을 우의정(右議政)으로, 한명회(韓明澮)를 상당군(上黨君)으로, 한계미(韓繼美)를 좌찬성(左贊成)으로, 노사신(盧思愼)을 우찬성(右贊成)으로, 임원준(任元濬)을 좌참찬(左參贊)으로, 홍응(洪應)을 우참찬(右參贊)으로, 정극인(丁克仁)을 행 사간원 정언(行司諫院正言)으로, 안극사(安克思)를 행 여주 목사(行驪州牧使)로 삼았다. 한명회가 병 때문에 사직하였으므로, 홍윤성으로 이를 대신하게 하였다. 한명회가 두 번 수상(首相)으로 있었는데, 무릇 세우거나 폐지한 모든 것에 있어서 인심에 쾌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스스로 마음을 다하여 임금을 돕고 사람들도 지극히 중하게 기대하였는데, 병 때문에 갈리니 사람들이 다 결망(缺望)하였다. 홍응은 학문이 정밀하고 해박하며 성품과 도량이 조용하고 너그러웠으며, 승지(承旨)가 되어서는 임금에게 아뢰고 응대하는 것이 상세하고 분명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자주 칭찬하였다. 임금께서 세자(世子)로 있을 때에 홍응이 빈객(賓客)으로 있었는데, 서연(書筵)에서 강독(講讀)할 적마다 말이 간단하고도 마땅하여 조금도 긴 말이 없었다. 정극인은 재주와 행실이 있어 문종조(文宗朝)에 특별히 등용되어 관직에 보임되었고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 물러가 살며 나이가 거의 70이 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탁용(擢用)하였으나, 끝내 늙었다고 하여 사퇴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1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원문
○癸酉/以洪允成爲議政府領議政, 尹子雲左議政, 金國光右議政, 韓明澮 上黨君, 韓繼美左贊成, 盧思愼右贊成, 任元濬左參贊, 洪應右參贊, 丁克仁行司諫院正言, 安克思行驪州牧使。 明澮以病辭, 以允成代之。 明澮之再爲首相也, 凡所建廢, 無不快於人心, 自期盡心補袞, 人亦擬望至重, 以病見遞, 人皆缺望。 應學問精博, 性度閑雅, 爲承旨, 奏對詳明, 世祖亟稱之。 上之在東邸也, 應爲賓客, 每書筵講讀, 言簡而當, 無一長語。 克仁有才行, 文宗朝特擧補官, 遂登第。 官罷退居田莊, 年幾七十, 至是擢用之, 竟以老辭退。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1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예종 1년 (1469) 8월 22일
예종실록7권, 예종 1년 8월 22일 계유 1/2 기사 / 1469년 명 성화(成化) 5년
홍윤성·윤자운·김국광·한명회·한계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국역
홍윤성(洪允成)을 의정부 영의정(議政府領議政)으로, 윤자운(尹子雲)을 좌의정(左議政)으로, 김국광(金國光)을 우의정(右議政)으로, 한명회(韓明澮)를 상당군(上黨君)으로, 한계미(韓繼美)를 좌찬성(左贊成)으로, 노사신(盧思愼)을 우찬성(右贊成)으로, 임원준(任元濬)을 좌참찬(左參贊)으로, 홍응(洪應)을 우참찬(右參贊)으로, 정극인(丁克仁)을 행 사간원 정언(行司諫院正言)으로, 안극사(安克思)를 행 여주 목사(行驪州牧使)로 삼았다. 한명회가 병 때문에 사직하였으므로, 홍윤성으로 이를 대신하게 하였다. 한명회가 두 번 수상(首相)으로 있었는데, 무릇 세우거나 폐지한 모든 것에 있어서 인심에 쾌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스스로 마음을 다하여 임금을 돕고 사람들도 지극히 중하게 기대하였는데, 병 때문에 갈리니 사람들이 다 결망(缺望)하였다. 홍응은 학문이 정밀하고 해박하며 성품과 도량이 조용하고 너그러웠으며, 승지(承旨)가 되어서는 임금에게 아뢰고 응대하는 것이 상세하고 분명하였으므로, 세조(世祖)가 자주 칭찬하였다. 임금께서 세자(世子)로 있을 때에 홍응이 빈객(賓客)으로 있었는데, 서연(書筵)에서 강독(講讀)할 적마다 말이 간단하고도 마땅하여 조금도 긴 말이 없었다. 정극인은 재주와 행실이 있어 문종조(文宗朝)에 특별히 등용되어 관직에 보임되었고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 물러가 살며 나이가 거의 70이 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탁용(擢用)하였으나, 끝내 늙었다고 하여 사퇴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1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원문
○癸酉/以洪允成爲議政府領議政, 尹子雲左議政, 金國光右議政, 韓明澮 上黨君, 韓繼美左贊成, 盧思愼右贊成, 任元濬左參贊, 洪應右參贊, 丁克仁行司諫院正言, 安克思行驪州牧使。 明澮以病辭, 以允成代之。 明澮之再爲首相也, 凡所建廢, 無不快於人心, 自期盡心補袞, 人亦擬望至重, 以病見遞, 人皆缺望。 應學問精博, 性度閑雅, 爲承旨, 奏對詳明, 世祖亟稱之。 上之在東邸也, 應爲賓客, 每書筵講讀, 言簡而當, 無一長語。 克仁有才行, 文宗朝特擧補官, 遂登第。 官罷退居田莊, 年幾七十, 至是擢用之, 竟以老辭退。
-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8책 41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원본
예종 1년 (1469) 8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