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42권, 세조 13년 5월 17일 신사 2/4 기사 / 1467년 명 성화(成化) 3년
이시애를 토벌할 방략을 의논하고 귀성군 이준을 4도 병마 도총사로 삼다
국역
임금이 대조전(大造殿)에 나아가 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좌찬성(左贊成) 조석문(曹錫文)·도승지(都承旨) 윤필상(尹弼商) 등을 불러 이시애(李施愛)를 토벌할 방략(方略)을 의논하고,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으로 군사를 거느려 보내려고 하였는데, 침(琛)이 병을 칭탁하여 사양하므로, 마침내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함길도(咸吉道)·강원도(江原道)·평안도(平安道)·황해도(黃海道) 4도(道)의 병마 도총사(兵馬都摠使)로 삼고, 조석문(曹錫文)을 부사(副使)로 삼았다. 또 고령군(高靈君) 신숙주·좌의정 심회(沈澮)·병조 판서 김국광(金國光)·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와 승지(承旨) 등을 불러 모의(謀議)하고, 임금이 신숙주에게 이르기를,
"이시애가 이미 경(卿)을 구실로 삼았고, 경의 아들 신면(申㴐)이 지금 마침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으니, 이시애가 반드시 죽일 것이다. 속히 체대(遞代)하여 오게 함이 가하겠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어세공(魚世恭)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내가 경으로써 오래도록 승지(承旨)의 임무를 맡기려고 하였는데, 지금 북방에 사변이 일어났으니, 경은 마땅히 속히 가서 이를 진정(鎭定)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8책 74면
원문
세조실록42권, 세조 13년 5월 17일 신사 2/4 기사 / 1467년 명 성화(成化) 3년
이시애를 토벌할 방략을 의논하고 귀성군 이준을 4도 병마 도총사로 삼다
국역
임금이 대조전(大造殿)에 나아가 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좌찬성(左贊成) 조석문(曹錫文)·도승지(都承旨) 윤필상(尹弼商) 등을 불러 이시애(李施愛)를 토벌할 방략(方略)을 의논하고, 밀성군(密城君) 이침(李琛)으로 군사를 거느려 보내려고 하였는데, 침(琛)이 병을 칭탁하여 사양하므로, 마침내 귀성군(龜城君) 이준(李浚)을 함길도(咸吉道)·강원도(江原道)·평안도(平安道)·황해도(黃海道) 4도(道)의 병마 도총사(兵馬都摠使)로 삼고, 조석문(曹錫文)을 부사(副使)로 삼았다. 또 고령군(高靈君) 신숙주·좌의정 심회(沈澮)·병조 판서 김국광(金國光)·호조 판서 노사신(盧思愼)·이조 판서 한계희(韓繼禧)와 승지(承旨) 등을 불러 모의(謀議)하고, 임금이 신숙주에게 이르기를,
"이시애가 이미 경(卿)을 구실로 삼았고, 경의 아들 신면(申㴐)이 지금 마침 관찰사(觀察使)가 되었으니, 이시애가 반드시 죽일 것이다. 속히 체대(遞代)하여 오게 함이 가하겠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어세공(魚世恭)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내가 경으로써 오래도록 승지(承旨)의 임무를 맡기려고 하였는데, 지금 북방에 사변이 일어났으니, 경은 마땅히 속히 가서 이를 진정(鎭定)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2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8책 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