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24권, 세조 7년 4월 17일 정해 1/5 기사 /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영의정 강맹경의 졸기
국역
영의정(領議政) 강맹경(姜孟卿)이 졸(卒)하였다. 임금이 매우 슬퍼해서 소선(素膳)227) 을 듣고 3일 동안 철조(輟朝)228) 하고, 공신(功臣) 등에게 명하여 그 집에 가서 곡(哭)하게 하였다. 쌀과 콩 아울러 70석과 종이 1백 권(卷)을 내려 주었다. 강맹경은 성품(性稟)이 관후(寬厚)하고 활달하며 풍채(風采)가 훌륭하였다. 젊어서 과거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쳐 의정부(議政府)의 사인(舍人)이 되고, 문종조(文宗朝)에 미치어서는 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로 전직(轉職)되었다가 승정원(承政院)의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고, 여러 번 도승지(都承旨)에 올랐었는데 병 때문에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으로 바꾸었다. 세조(世祖)가 임금의 계통을 잇게 되자 좌익 공신(佐翼功臣)에 참여하여 더욱 알아줌을 받아서 드디어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힘써 대체(大體)를 따르고 대신(大臣)다운 위엄이 있어서 매양 담론(談論)하고 주대(奏對)할 때마다 말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이 거침없이 유창하다. 정인지(鄭麟趾)가 일찍이 면대(面對)하여 말하기를,
"경(卿)은 정사(政事)에 재주가 있으나, 다만 박학(博學)하지 못한 것이 한이다."
라고 하였다. 시호(諡號)를 문경(文景)이라 내려 주었는데, 충성(忠誠)하고 신의(信義)가 있으며 예문(禮文)에 의거한 것이 문(文)이요, 의(義)로 말미암아 구원한 것이 경(景)이다.
- [註 227] 소선(素膳) : 육류(肉類)가 없는 간소한 수라상. 상중(喪中)이나 재앙(災殃)이 있을 때 근신하는 의미에서 소선(素膳)을 행하였음.
- [註 228] 철조(輟朝) : 국상(國喪)을 당하거나 대신(大臣)이 죽었을 때 임시로 조회(朝會)를 정지하던 일.
원문
세조실록24권, 세조 7년 4월 17일 정해 1/5 기사 /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
영의정 강맹경의 졸기
국역
영의정(領議政) 강맹경(姜孟卿)이 졸(卒)하였다. 임금이 매우 슬퍼해서 소선(素膳)227) 을 듣고 3일 동안 철조(輟朝)228) 하고, 공신(功臣) 등에게 명하여 그 집에 가서 곡(哭)하게 하였다. 쌀과 콩 아울러 70석과 종이 1백 권(卷)을 내려 주었다. 강맹경은 성품(性稟)이 관후(寬厚)하고 활달하며 풍채(風采)가 훌륭하였다. 젊어서 과거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쳐 의정부(議政府)의 사인(舍人)이 되고, 문종조(文宗朝)에 미치어서는 판내자시사(判內資寺事)로 전직(轉職)되었다가 승정원(承政院)의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고, 여러 번 도승지(都承旨)에 올랐었는데 병 때문에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으로 바꾸었다. 세조(世祖)가 임금의 계통을 잇게 되자 좌익 공신(佐翼功臣)에 참여하여 더욱 알아줌을 받아서 드디어 영의정(領議政)에 올랐다. 힘써 대체(大體)를 따르고 대신(大臣)다운 위엄이 있어서 매양 담론(談論)하고 주대(奏對)할 때마다 말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이 거침없이 유창하다. 정인지(鄭麟趾)가 일찍이 면대(面對)하여 말하기를,
"경(卿)은 정사(政事)에 재주가 있으나, 다만 박학(博學)하지 못한 것이 한이다."
라고 하였다. 시호(諡號)를 문경(文景)이라 내려 주었는데, 충성(忠誠)하고 신의(信義)가 있으며 예문(禮文)에 의거한 것이 문(文)이요, 의(義)로 말미암아 구원한 것이 경(景)이다.
- [註 227] 소선(素膳) : 육류(肉類)가 없는 간소한 수라상. 상중(喪中)이나 재앙(災殃)이 있을 때 근신하는 의미에서 소선(素膳)을 행하였음.
- [註 228] 철조(輟朝) : 국상(國喪)을 당하거나 대신(大臣)이 죽었을 때 임시로 조회(朝會)를 정지하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