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19권, 세조 6년 2월 27일 갑술 1/1 기사 / 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의창군 이공의 졸기
국역
의창군 이공(李玒)이 졸(卒)하니,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50석(石), 종이 2백 권(卷), 정포(正布) 60필(匹), 백저포(白苧布) 10필(匹), 백면포(白綿布) 12필(匹), 석회(石灰) 60석(石)을 내려 주었다. 이공(李玒)은 세종(世宗)의 후궁(後宮) 신빈 김씨(愼嬪金氏)의 제2자였는데, 성질이 청렴 결백(淸廉潔白)하고 의분 강개(義憤慷慨)하였다. 시호(諡號)를 강도(剛悼)라고 하였으니, 굳세고 과감(果敢)한 것을 ‘강(剛)’ 이라 하고, 중년(中年)에 일찍 죽은 것을 ‘도(悼)’라 한다. 이공(李玒)이 졸(卒)하자, 예조(禮曹)에서 경녕군(敬寧君)의 상례(喪例)에 의하기를 청하니, 어서(御書)로 말하기를,
"정(情)이 중(重)한 자는 예(例)에다 견줄 수 없다. 다만 실제 정(情)에 따를 뿐이다."
하고, 명하여 거애(擧哀)하는 것을 없애게 하였다.
원문
세조 6년 (1460) 2월 27일
세조실록19권, 세조 6년 2월 27일 갑술 1/1 기사 / 1460년 명 천순(天順) 4년
의창군 이공의 졸기
국역
의창군 이공(李玒)이 졸(卒)하니, 부의(賻儀)로 쌀·콩 아울러 50석(石), 종이 2백 권(卷), 정포(正布) 60필(匹), 백저포(白苧布) 10필(匹), 백면포(白綿布) 12필(匹), 석회(石灰) 60석(石)을 내려 주었다. 이공(李玒)은 세종(世宗)의 후궁(後宮) 신빈 김씨(愼嬪金氏)의 제2자였는데, 성질이 청렴 결백(淸廉潔白)하고 의분 강개(義憤慷慨)하였다. 시호(諡號)를 강도(剛悼)라고 하였으니, 굳세고 과감(果敢)한 것을 ‘강(剛)’ 이라 하고, 중년(中年)에 일찍 죽은 것을 ‘도(悼)’라 한다. 이공(李玒)이 졸(卒)하자, 예조(禮曹)에서 경녕군(敬寧君)의 상례(喪例)에 의하기를 청하니, 어서(御書)로 말하기를,
"정(情)이 중(重)한 자는 예(例)에다 견줄 수 없다. 다만 실제 정(情)에 따를 뿐이다."
하고, 명하여 거애(擧哀)하는 것을 없애게 하였다.
원문
원본
세조 6년 (1460)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