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8권, 세조 3년 6월 10일 임인 4/5 기사 /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일본 국왕이 양국 상인간의 거래에 대해 시정과 감독을 청하는 글을 보내다
국역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선주(船主) 도행(道幸)을 시켜 예조에 글을 보내기를,
"대개 듣건대, 교역(交易)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융통(融通)하는 방도이니, 《주역(周易)》의 《서합괘(噬嗑卦)》596) 에서 취한 것이라 합니다. 주(周)나라에서 시역사(市易司)597) 를 세워서 시장(市場) 정책을 균평(均平)하게 하였고, 당(唐)나라에서 시박사(市舶使)598) 를 설치하여 해국(海國)의 상인들을 받아들였으니, 그 이익은 비단 국용(國用)을 돕고 민력(民力)을 넉넉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먼 곳까지 회유(懷柔)하는 덕(德)이 일어나서 일시동인(一視同仁)599) 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는데, 어찌 의(義)로써 교역(交易)하면서 이(利)를 보려고 예(禮)로써 이를 조절(調節)하였겠습니까.? 만약 이에 반하여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는 더러운 짓으로써 이(利)를 본다면 서합(噬嗑) 1괘(卦)는 삭제(削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을해년600) 에 우리 나라에서 본조(本朝)601) 에 신사(信使)의 배를 보낼 때 우리 백성 가운데 장사하는 자들이 명(命)을 받고 물건을 부쳤습니다. 가득 실은 물건이 몇 만 근(斤)인데, 그 반이 이미 도하(都下)에 전운(轉運) 되었습니다. 도하(都下)의 상인(商人)들이 이를 싸게 사고자 하지만, 우리 상인들은 밑천을 건지는 데 이익을 잃을 환(患)이 있기 때문에 비싸게 팔고자 하니, 양쪽 상인들의 교역[噬嗑]이 질질 시간을 끌고 결정되지 않습니다. 유사(有司)에서 마땅히 주(周)나라의 균평(均平)하게 하던 때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또 다시 지체(遲滯)된 물화(物貨)로서 제포(薺浦)602) 에 있는 것이 동(銅)이 2만 1천 2백 근(斤)이요, 단목(丹木)이 1만 1천 근이요, 납(鑞)이 5천 9백 근인데, 겹겹이 쌓아서 바닷가에 내버려두니, 일찍이 성하(城下)에 이르러 보지도 못한 채 중도에서 끝나버리겠습니다. 대체로 생명을 한 조각의 판목(板木)에 의지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커다란 파도를 넘어서 일부러 오는 까닭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뿐입니다. 지금 이익을 얻지 못하고 이내 이를 걱정하는 데 겨를이 없으니, 우리들의 재물을 이처럼 내버려두심이 극심(極甚)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초(楚)나라의 인재(人材)를 진(晉)나라에서 쓰고, 초(楚)나라의 인재(人材)를 진(晉)나라에서 쓰고, 603) 고(郜)604) 나라의 대정(大鼎)을 노(魯)나라에서 받아들인 것은 옛날의 미담(美談)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본조(本朝)에서 당(唐)나라의 법전을 적용하여 시박사(市舶使)를 임명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관(官)의 재물을 털어서 그 값을 지급(支給)하여 주소서. 진실로 이와 같이 하신다면, 우리의 산물(産物)이 곧 본조(本朝)의 재물이 되고, 우리의 상인이 곧 본조(本朝)의 백성이 될 것이니,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더욱 친근히 하시고 통호(通好)하여 주시기를 더욱 돈독히 하여서, 멀리 있는 자를 회유(懷柔)하시고 인정(仁政)을 베풀기를 같이 하소서. 곧바로 본조의 의례(儀禮)로 하여금 이당(李唐)605) 과 짝하게 하고, 인덕(仁德)은 창희(蒼姬)606) 와 짝하게 하여, 한때의 아름다움을 천세(千歲)에 전하는 것은 이번 한 가지 일에 달려 있으니, 또한 이롭지 않겠습니까.? 비루하게 말하면서 꺼릴 줄을 모른 것은 어리석은 충정을 바치려는데 있으니, 함부로 모독(冒瀆)한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소서."
하였다. 예조에서 이것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전자에 도안(道安)이 안동하여 데려온 사송인(使送人)과 다른 왜인(倭人)들이 서울에 와서 무역(貿易)할 때에 면주(綿紬) 1필(匹)의 값을 납철(鑞鐵)인 경우에는 4근(斤)에 준(准)하게 하고, 동철(銅鐵)·소목(蘇木)인 경우에는 11근으로 하게 하여 이미 정한 값이 있으니 바꿀 수가 없습니다. 또 매매(買賣)하는 양가(兩家)의 사정에 따르는데, 억지로 팔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이런 뜻으로써 도행(道幸)에게 타이르고 전대로 무역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註 596] 《서합괘(噬嗑卦)》 : 《주역(周易)》 십익(十翼)에 나오는 괘(卦)의 하나. "턱 가운데 물건이 있는 것을 ‘서합(噬嗑)’이라 하는데, 서합하면 형통하리라. [頣中有物 曰噬嗑 噬嗑而享]"하여, 물건을 서로 융통하는 상(象)임.
- [註 597] 시역사(市易司) : 중국 주(周)나라 때 시장의 교역(交易) 관계를 맡아 보던 관청.
- [註 598] 시박사(市舶使) :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 관세 징수 등 외국 무역에 관한 모든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
- [註 599] 일시동인(一視同仁) : 중국 황제가 사해(四海)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로 보아 골고루 인정(仁政)을 베푸는 것.
- [註 600] 을해년 : 1455 세조 원년.
- [註 601] 본조(本朝) : 조선을 말함.
- [註 602] 제포(薺浦) : 3포(三浦)의 하나.
- [註 603] 초(楚)나라의 인재(人材)를 진(晉)나라에서 쓰고, : 자기 나라의 인재(人材)를 다른 나라에서 이용함을 말함.
- [註 604] 고(郜) : 춘추 시대 나라 이름.
- [註 605] 이당(李唐) : 중국 당나라는 이씨(李氏)가 세웠기 때문에 이당(李唐)이라 부름.
- [註 606] 창희(蒼姬) : 중국 주(周)나라는 푸른색[蒼]을 숭앙하고 희씨(姬氏)의 성이엇기 때문에 창희(蒼姬)라고 부름.
원문
○日本國王使船主道幸致書于禮曹曰:
蓋聞交易, 通有無之道, 取諸《易》噬嗑也。 周立市易司, 以均平市政, 唐置市舶使, 以納海國之商, 厥利不唯助國用寬民力而已, 懷遠之德興而同仁之術暢矣, 豈以義之和而利之, 以禮節之歟? 若反之, 以賤買貴賣之汚利而爲利, 則《噬嗑》一卦可削也。 歲之乙亥敝邑馳信船於本朝, 吾民爲商者承命而駙焉, 所稛載物若干萬, 其半已轉運于都下。 都下之商人, 欲賤買之, 而吾商有拔本失利之患, 故欲貴賣之, 兩商之噬嗑, 猶豫未決。 有司宜從周而均平之秋也。 抑復滯貨之在薺浦者, 銅二萬一千二百斤、丹木一萬一千斤、鑞五千九百斤, 累累然棄抛于海畔, 不曾及溝中斷也。 凡托生命於一板, 淩不測之鯨波(得)得來者, 豈有他哉? 唯利是得也。 今利之不得也, 乃不遑患之, 如之何其使吾賄至此棄捐之極也邪? 楚材晋用、郜鼎魯納者, 古之美談也。 宓幸本朝擧唐之典, 差市舶使納之, 振官財以支給其價。 誠若此, 則吾産卽本朝之貲也, 有吾商卽本朝之氓也, 可憐焉彌密, 好焉彌敦, 而遠焉者懷, 仁焉者同。 直令本朝儀禮耦于李 唐, 仁悳配於蒼姬, 麗一時而傳千祀也, 係乎此一擧, 不亦利乎? 鄙言不知忌, 在傾愚衷, 冒瀆之罪, 賜恕宥。
禮曹據此啓: "前次道安管提使送人及他倭人等, 來京貿易時, 綿紬一匹價, 鑞鐵則準四斤, 銅鐵、蘇木則十一斤, 已有定價, 不可移易。 且買賣, 從兩家情願, 不可使抑賣。 請將此諭道幸, 依前貿易。" 從之。
세조실록8권, 세조 3년 6월 10일 임인 4/5 기사 / 1457년 명 천순(天順) 1년
일본 국왕이 양국 상인간의 거래에 대해 시정과 감독을 청하는 글을 보내다
국역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선주(船主) 도행(道幸)을 시켜 예조에 글을 보내기를,
"대개 듣건대, 교역(交易)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융통(融通)하는 방도이니, 《주역(周易)》의 《서합괘(噬嗑卦)》596) 에서 취한 것이라 합니다. 주(周)나라에서 시역사(市易司)597) 를 세워서 시장(市場) 정책을 균평(均平)하게 하였고, 당(唐)나라에서 시박사(市舶使)598) 를 설치하여 해국(海國)의 상인들을 받아들였으니, 그 이익은 비단 국용(國用)을 돕고 민력(民力)을 넉넉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먼 곳까지 회유(懷柔)하는 덕(德)이 일어나서 일시동인(一視同仁)599) 하는 방법이 발달하였는데, 어찌 의(義)로써 교역(交易)하면서 이(利)를 보려고 예(禮)로써 이를 조절(調節)하였겠습니까.? 만약 이에 반하여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는 더러운 짓으로써 이(利)를 본다면 서합(噬嗑) 1괘(卦)는 삭제(削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을해년600) 에 우리 나라에서 본조(本朝)601) 에 신사(信使)의 배를 보낼 때 우리 백성 가운데 장사하는 자들이 명(命)을 받고 물건을 부쳤습니다. 가득 실은 물건이 몇 만 근(斤)인데, 그 반이 이미 도하(都下)에 전운(轉運) 되었습니다. 도하(都下)의 상인(商人)들이 이를 싸게 사고자 하지만, 우리 상인들은 밑천을 건지는 데 이익을 잃을 환(患)이 있기 때문에 비싸게 팔고자 하니, 양쪽 상인들의 교역[噬嗑]이 질질 시간을 끌고 결정되지 않습니다. 유사(有司)에서 마땅히 주(周)나라의 균평(均平)하게 하던 때를 따라야 하겠습니다. 또 다시 지체(遲滯)된 물화(物貨)로서 제포(薺浦)602) 에 있는 것이 동(銅)이 2만 1천 2백 근(斤)이요, 단목(丹木)이 1만 1천 근이요, 납(鑞)이 5천 9백 근인데, 겹겹이 쌓아서 바닷가에 내버려두니, 일찍이 성하(城下)에 이르러 보지도 못한 채 중도에서 끝나버리겠습니다. 대체로 생명을 한 조각의 판목(板木)에 의지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커다란 파도를 넘어서 일부러 오는 까닭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뿐입니다. 지금 이익을 얻지 못하고 이내 이를 걱정하는 데 겨를이 없으니, 우리들의 재물을 이처럼 내버려두심이 극심(極甚)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초(楚)나라의 인재(人材)를 진(晉)나라에서 쓰고, 초(楚)나라의 인재(人材)를 진(晉)나라에서 쓰고, 603) 고(郜)604) 나라의 대정(大鼎)을 노(魯)나라에서 받아들인 것은 옛날의 미담(美談)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본조(本朝)에서 당(唐)나라의 법전을 적용하여 시박사(市舶使)를 임명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관(官)의 재물을 털어서 그 값을 지급(支給)하여 주소서. 진실로 이와 같이 하신다면, 우리의 산물(産物)이 곧 본조(本朝)의 재물이 되고, 우리의 상인이 곧 본조(本朝)의 백성이 될 것이니,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더욱 친근히 하시고 통호(通好)하여 주시기를 더욱 돈독히 하여서, 멀리 있는 자를 회유(懷柔)하시고 인정(仁政)을 베풀기를 같이 하소서. 곧바로 본조의 의례(儀禮)로 하여금 이당(李唐)605) 과 짝하게 하고, 인덕(仁德)은 창희(蒼姬)606) 와 짝하게 하여, 한때의 아름다움을 천세(千歲)에 전하는 것은 이번 한 가지 일에 달려 있으니, 또한 이롭지 않겠습니까.? 비루하게 말하면서 꺼릴 줄을 모른 것은 어리석은 충정을 바치려는데 있으니, 함부로 모독(冒瀆)한 죄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소서."
하였다. 예조에서 이것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전자에 도안(道安)이 안동하여 데려온 사송인(使送人)과 다른 왜인(倭人)들이 서울에 와서 무역(貿易)할 때에 면주(綿紬) 1필(匹)의 값을 납철(鑞鐵)인 경우에는 4근(斤)에 준(准)하게 하고, 동철(銅鐵)·소목(蘇木)인 경우에는 11근으로 하게 하여 이미 정한 값이 있으니 바꿀 수가 없습니다. 또 매매(買賣)하는 양가(兩家)의 사정에 따르는데, 억지로 팔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청컨대 이런 뜻으로써 도행(道幸)에게 타이르고 전대로 무역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註 596] 《서합괘(噬嗑卦)》 : 《주역(周易)》 십익(十翼)에 나오는 괘(卦)의 하나. "턱 가운데 물건이 있는 것을 ‘서합(噬嗑)’이라 하는데, 서합하면 형통하리라. [頣中有物 曰噬嗑 噬嗑而享]"하여, 물건을 서로 융통하는 상(象)임.
- [註 597] 시역사(市易司) : 중국 주(周)나라 때 시장의 교역(交易) 관계를 맡아 보던 관청.
- [註 598] 시박사(市舶使) :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 관세 징수 등 외국 무역에 관한 모든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
- [註 599] 일시동인(一視同仁) : 중국 황제가 사해(四海)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로 보아 골고루 인정(仁政)을 베푸는 것.
- [註 600] 을해년 : 1455 세조 원년.
- [註 601] 본조(本朝) : 조선을 말함.
- [註 602] 제포(薺浦) : 3포(三浦)의 하나.
- [註 603] 초(楚)나라의 인재(人材)를 진(晉)나라에서 쓰고, : 자기 나라의 인재(人材)를 다른 나라에서 이용함을 말함.
- [註 604] 고(郜) : 춘추 시대 나라 이름.
- [註 605] 이당(李唐) : 중국 당나라는 이씨(李氏)가 세웠기 때문에 이당(李唐)이라 부름.
- [註 606] 창희(蒼姬) : 중국 주(周)나라는 푸른색[蒼]을 숭앙하고 희씨(姬氏)의 성이엇기 때문에 창희(蒼姬)라고 부름.
원문
○日本國王使船主道幸致書于禮曹曰:
蓋聞交易, 通有無之道, 取諸《易》噬嗑也。 周立市易司, 以均平市政, 唐置市舶使, 以納海國之商, 厥利不唯助國用寬民力而已, 懷遠之德興而同仁之術暢矣, 豈以義之和而利之, 以禮節之歟? 若反之, 以賤買貴賣之汚利而爲利, 則《噬嗑》一卦可削也。 歲之乙亥敝邑馳信船於本朝, 吾民爲商者承命而駙焉, 所稛載物若干萬, 其半已轉運于都下。 都下之商人, 欲賤買之, 而吾商有拔本失利之患, 故欲貴賣之, 兩商之噬嗑, 猶豫未決。 有司宜從周而均平之秋也。 抑復滯貨之在薺浦者, 銅二萬一千二百斤、丹木一萬一千斤、鑞五千九百斤, 累累然棄抛于海畔, 不曾及溝中斷也。 凡托生命於一板, 淩不測之鯨波(得)得來者, 豈有他哉? 唯利是得也。 今利之不得也, 乃不遑患之, 如之何其使吾賄至此棄捐之極也邪? 楚材晋用、郜鼎魯納者, 古之美談也。 宓幸本朝擧唐之典, 差市舶使納之, 振官財以支給其價。 誠若此, 則吾産卽本朝之貲也, 有吾商卽本朝之氓也, 可憐焉彌密, 好焉彌敦, 而遠焉者懷, 仁焉者同。 直令本朝儀禮耦于李 唐, 仁悳配於蒼姬, 麗一時而傳千祀也, 係乎此一擧, 不亦利乎? 鄙言不知忌, 在傾愚衷, 冒瀆之罪, 賜恕宥。
禮曹據此啓: "前次道安管提使送人及他倭人等, 來京貿易時, 綿紬一匹價, 鑞鐵則準四斤, 銅鐵、蘇木則十一斤, 已有定價, 不可移易。 且買賣, 從兩家情願, 不可使抑賣。 請將此諭道幸, 依前貿易。" 從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