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실록6권, 단종 1년 5월 15일 신미 2/4 기사 /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유성원이 도청의 불가함과 내의 전순의를 벌줄 것을 아뢰다
국역
지평(持平) 유성원(柳誠源)을 불러서 의정부의 의논과 같이 전지(傳旨)하니, 유성원이 다시 아뢰기를,
"윤사윤(尹士昀)의 일은 신 등이 마땅히 다시 상량(商量)하겠습니다. 중[僧人]을 승적(僧籍)에 기록하는 일은 마땅히 문안(文案)을 상고하여 계목(啓目)을 갖추어서 아뢰겠습니다. 다만 지금 정부(政府)에서 무릇 대소의 서무(庶務)를 총섭(總攝)하지 아니함이 없는데, 어찌 오로지 영선(營繕)하는 한 가지 일만을 반드시 양 의정(兩議政)으로 하여금 이를 맡아 보게 하겠습니까? 공조(工曹)에서 영선(營繕)·공역(工役)을 주장(主掌)하고 제조(提調)가 역사를 감독하므로 정부(政府)의 당상은 때때로 그 공과(功過)를 살펴 볼 따름인데, 따로 도청(都廳)을 세워서 한 사람의 관원으로 하여금 그 직임을 오래도록 맡아 보게 하면, 드디어 그 굴혈(窟穴)을 만들어서 많은 불의를 행할 것입니다. 또 분사(分司)403) 한다고 이르는 것도 분예빈시(分禮賓寺)에서는 연향(宴享)의 희생(犧牲)을 맡아 보고, 분전농시(分典農寺)에서는 제사(祭祀)의 자성(粢盛)404) 을 맡아 보는데 겸하여 다스릴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분장(分掌)한다고 일컫는 것입니다. 분선공(分繕工)은 그렇지 않으나 토목의 일은 동일한데 어찌 반드시 따로 세운 뒤에야 이를 능히 하겠습니까? 또 성상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전순의(全循義)는 용졸(庸拙)하고, 의술(醫術)에 정(精)하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 하시나, 신 등은 생각하건대, 의술이 용졸하다면 마땅히 요좌(僚佐)405) 에게 널리 의논하고 방서(方書)406) 를 삼가 지켜야 할 터인데도, 전순의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금기(禁忌)하는 것을 피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해로울 것이 없다.’ 하여 마침내 대고(大故)407) 에 이르게 하였으니, 죄는 죽여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전자에 성상께서 원학(元鶴)·노중례(盧重禮)의 일을 이끌어다가 이를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원학(元鶴)의 죄는 시대가 오래되어 상고하기가 어려우나, 노중례의 죄는 신 등이 세종조(世宗朝)에 자세히 들었습니다. 노중례가 여러 날 약(藥)을 시탕(侍蕩)하다가 피곤하여서 잠이 들었는데, 세종께서 두세 번이나 그를 불렀으나 노중례가 즉시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세종께서 공경(恭敬)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영사(令史)로 정하였지만, 일찍이 치료(治療)하는 데 잘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순의는 이와 비할 바가 못되니, 그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네 가지나 있습니다. 신 등은 당초에 전순의의 목을 참(斬)하여 신민(臣民)들의 분(憤)을 쾌(快)하게 하기를 원하였는데, 비록 그와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관노(官奴)로 소속시키고 자손들은 폐고(廢錮)408) 시키기를 청합니다. 또 정부에서 정치를 총괄하여 다스리지만 대간(臺諫)에서 그 득실(得失)을 의논하고 반박하는데, 이승윤(李承胤)이 아비의 일을 당하게 되면 비록 스스로 인혐(引嫌)하더라도 동료(同僚)가 그 아비를 탄핵할 때 또한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니, 청컨대, 이를 고치소서."
하니, 전지(傳旨)하기를,
"마땅히 대신에게 의논하겠다."
하고, 이어서 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승윤의 일은 대간(臺諫)의 청(請)을 따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아울러 이를 의논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591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인사-관리(管理)
- [註 403] 분사(分司) : 관사를 나누어 일을 보는 것.
- [註 404] 자성(粢盛) : 나라의 제사에 쓰는 피와 서직(黍稷).
- [註 405] 요좌(僚佐) : 옆에 보좌 하는 관원.
- [註 406] 방서(方書) : 의서(醫書).
- [註 407] 대고(大故) : 임금의 죽음.
- [註 408] 폐고(廢錮) :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발탁(박탈)하는 것.
원문
○召持平柳誠源, 傳如議政府之議。 誠源更啓曰: "尹士昀之事, 臣等當更商量。 僧人錄籍事, 當考文案, 具啓目以進。 但今政府, 凡大小庶務, 莫不總攝, 何獨營繕一事, 必使兩議政掌之乎? 工曹主掌, 繕工提調監役, 而政府堂上, 則以時試其功過而已。 別立都廳, 使一員久掌其任, 遂作窟穴, 多行不義。 且分司云者, 如分禮賓寺, 掌宴享犠牲, 分典農寺, 掌祭祀粢盛: 以不可兼治之事, 而分掌之謂也。 分繕工則不然, 同一土木之事, 何必別立然後能之乎? 且上敎以全循義爲庸拙, 未精醫術而至此耳。 臣等以爲, 庸醫則當廣議僚佐, 謹守方書。 循義則不然, 不諱禁忌, 及稱無傷, 遂至大故, 罪不容誅。 前者, 上引元鶴、盧重禮之事言之, 然元鶴之罪, 則世遠難考; 重禮之罪, 則臣等詮聞。 世宗朝, 重禮累日侍藥, 困而睡, 世宗再三呼之, 重禮不卽應對。 世宗以爲無敬心, 定令史, 未嘗誤於治療也。 循義非此之比, 其應死之罪, 有四焉。 臣等當初願斬循義頭, 以快臣民之憤, 雖不得如此, 請屬官奴, 廢錮子孫。 且政府摠治政事, 而臺諫評駁得失, 承胤當父之事, 雖自引避, 而同僚劾其父, 亦所未穩, 請改之。" 傳曰: "當議諸大臣。" 仍傳于政府曰: "承胤事, 從臺諫之請, 何如? 幷議之。"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591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인사-관리(管理)
단종실록6권, 단종 1년 5월 15일 신미 2/4 기사 / 1453년 명 경태(景泰) 4년
유성원이 도청의 불가함과 내의 전순의를 벌줄 것을 아뢰다
국역
지평(持平) 유성원(柳誠源)을 불러서 의정부의 의논과 같이 전지(傳旨)하니, 유성원이 다시 아뢰기를,
"윤사윤(尹士昀)의 일은 신 등이 마땅히 다시 상량(商量)하겠습니다. 중[僧人]을 승적(僧籍)에 기록하는 일은 마땅히 문안(文案)을 상고하여 계목(啓目)을 갖추어서 아뢰겠습니다. 다만 지금 정부(政府)에서 무릇 대소의 서무(庶務)를 총섭(總攝)하지 아니함이 없는데, 어찌 오로지 영선(營繕)하는 한 가지 일만을 반드시 양 의정(兩議政)으로 하여금 이를 맡아 보게 하겠습니까? 공조(工曹)에서 영선(營繕)·공역(工役)을 주장(主掌)하고 제조(提調)가 역사를 감독하므로 정부(政府)의 당상은 때때로 그 공과(功過)를 살펴 볼 따름인데, 따로 도청(都廳)을 세워서 한 사람의 관원으로 하여금 그 직임을 오래도록 맡아 보게 하면, 드디어 그 굴혈(窟穴)을 만들어서 많은 불의를 행할 것입니다. 또 분사(分司)403) 한다고 이르는 것도 분예빈시(分禮賓寺)에서는 연향(宴享)의 희생(犧牲)을 맡아 보고, 분전농시(分典農寺)에서는 제사(祭祀)의 자성(粢盛)404) 을 맡아 보는데 겸하여 다스릴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분장(分掌)한다고 일컫는 것입니다. 분선공(分繕工)은 그렇지 않으나 토목의 일은 동일한데 어찌 반드시 따로 세운 뒤에야 이를 능히 하겠습니까? 또 성상께서 하교(下敎)하시기를, ‘전순의(全循義)는 용졸(庸拙)하고, 의술(醫術)에 정(精)하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 하시나, 신 등은 생각하건대, 의술이 용졸하다면 마땅히 요좌(僚佐)405) 에게 널리 의논하고 방서(方書)406) 를 삼가 지켜야 할 터인데도, 전순의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금기(禁忌)하는 것을 피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해로울 것이 없다.’ 하여 마침내 대고(大故)407) 에 이르게 하였으니, 죄는 죽여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전자에 성상께서 원학(元鶴)·노중례(盧重禮)의 일을 이끌어다가 이를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원학(元鶴)의 죄는 시대가 오래되어 상고하기가 어려우나, 노중례의 죄는 신 등이 세종조(世宗朝)에 자세히 들었습니다. 노중례가 여러 날 약(藥)을 시탕(侍蕩)하다가 피곤하여서 잠이 들었는데, 세종께서 두세 번이나 그를 불렀으나 노중례가 즉시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세종께서 공경(恭敬)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영사(令史)로 정하였지만, 일찍이 치료(治療)하는 데 잘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전순의는 이와 비할 바가 못되니, 그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네 가지나 있습니다. 신 등은 당초에 전순의의 목을 참(斬)하여 신민(臣民)들의 분(憤)을 쾌(快)하게 하기를 원하였는데, 비록 그와 같이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관노(官奴)로 소속시키고 자손들은 폐고(廢錮)408) 시키기를 청합니다. 또 정부에서 정치를 총괄하여 다스리지만 대간(臺諫)에서 그 득실(得失)을 의논하고 반박하는데, 이승윤(李承胤)이 아비의 일을 당하게 되면 비록 스스로 인혐(引嫌)하더라도 동료(同僚)가 그 아비를 탄핵할 때 또한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니, 청컨대, 이를 고치소서."
하니, 전지(傳旨)하기를,
"마땅히 대신에게 의논하겠다."
하고, 이어서 정부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승윤의 일은 대간(臺諫)의 청(請)을 따르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아울러 이를 의논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591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인사-관리(管理)
- [註 403] 분사(分司) : 관사를 나누어 일을 보는 것.
- [註 404] 자성(粢盛) : 나라의 제사에 쓰는 피와 서직(黍稷).
- [註 405] 요좌(僚佐) : 옆에 보좌 하는 관원.
- [註 406] 방서(方書) : 의서(醫書).
- [註 407] 대고(大故) : 임금의 죽음.
- [註 408] 폐고(廢錮) :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발탁(박탈)하는 것.
원문
○召持平柳誠源, 傳如議政府之議。 誠源更啓曰: "尹士昀之事, 臣等當更商量。 僧人錄籍事, 當考文案, 具啓目以進。 但今政府, 凡大小庶務, 莫不總攝, 何獨營繕一事, 必使兩議政掌之乎? 工曹主掌, 繕工提調監役, 而政府堂上, 則以時試其功過而已。 別立都廳, 使一員久掌其任, 遂作窟穴, 多行不義。 且分司云者, 如分禮賓寺, 掌宴享犠牲, 分典農寺, 掌祭祀粢盛: 以不可兼治之事, 而分掌之謂也。 分繕工則不然, 同一土木之事, 何必別立然後能之乎? 且上敎以全循義爲庸拙, 未精醫術而至此耳。 臣等以爲, 庸醫則當廣議僚佐, 謹守方書。 循義則不然, 不諱禁忌, 及稱無傷, 遂至大故, 罪不容誅。 前者, 上引元鶴、盧重禮之事言之, 然元鶴之罪, 則世遠難考; 重禮之罪, 則臣等詮聞。 世宗朝, 重禮累日侍藥, 困而睡, 世宗再三呼之, 重禮不卽應對。 世宗以爲無敬心, 定令史, 未嘗誤於治療也。 循義非此之比, 其應死之罪, 有四焉。 臣等當初願斬循義頭, 以快臣民之憤, 雖不得如此, 請屬官奴, 廢錮子孫。 且政府摠治政事, 而臺諫評駁得失, 承胤當父之事, 雖自引避, 而同僚劾其父, 亦所未穩, 請改之。" 傳曰: "當議諸大臣。" 仍傳于政府曰: "承胤事, 從臺諫之請, 何如? 幷議之。"
-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6책 591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