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실록3권, 단종 즉위년 윤9월 8일 정묘 2/2 기사 /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세조가 이현로를 매질한 일을 듣고 상량하겠다 하다
국역
세조가 예궐하여 아뢰기를,
"이현로(李賢老)의 간사하고 무상(無狀)609) 한 것은 온 나라가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신에게는 본래 혐의와 틈이 없었으니 어찌 일시의 작은 노여움을 가지고 갑자기 조사(朝士)를 욕보이겠습니까? 신이 항상 스스로 이르기를 종실(宗室)의 장으로 나라를 위하여 집을 잊고 밤낮으로 보궐(補闕)610) 할 바를 생각하는 데 지극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문종이 승하(昇遐)하면서부터 종실을 계칙(戒飭)하며 날마다 근신(謹愼)하게 하였는데, 근일(近日)의 일은 실로 까닭이 있습니다. 이현로는 본래 장리(贓吏)로 문종 조 때 음양(陰陽)·화복(禍福)의 불경(不經)한 사술(邪術)로써 인심을 현혹(眩惑)시키므로 집현전(集賢殿) 여러 유신(儒臣)이 그 죄를 계청하여 문종께서 신과 의논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는데, 요즘 또 신에게 말하기를, ‘백악산(白嶽山) 뒤에 궁(宮)을 짓지 아니하면 정룡(正龍)611) 이 쇠하고 방룡(傍龍)612) 이 발(發)한다. 태종과 세종은 모두 방룡으로서 임금이 되었고 문종은 정룡이라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기에, 신이 이르기를, ‘내가 풍수학(風水學)을 관계하지 아니하니 어떻게 이런 일을 알겠는가? 네가 어찌 정부(政府)에 아뢰든지 상서(上書)하지 아니하는가? 만약 참으로 그러하면 작은 일이 아니다.’ 하니, 이현로가 안평(安平)을 돌아보면서 대신들과 함께 말하려고 하니, 안평이 이를 말렸습니다. 이튿날 신이 금성 대군(錦城大君)·화의군(和義君)·계양군(桂陽君)에게 말하기를, ‘이현로는 반드시 장차 일을 일으킬 것이므로 내가 심히 염려한다. 너희들은 이를 알아라.’ 하였더니, 이로 말미암아 미워하기를 더욱 심히 하며 분개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이것이〉 어찌 신(臣)의 한 몸의 계책이겠습니까? 또 듣건대 안평의 생일에 환관(宦官) 김득상(金得祥)·이귀(李貴)·김연(金衍)·최습(崔濕) 등이 마포강(麻浦江) 정자(亭子)에서 모였는데 조사(朝士)로 좌객(坐客)이 된 자가 30여 사람인데 이현로가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하니, 신이 더욱 분하며, 생각하건대 근시(近侍) 환관들이 종실과 교제를 맺는 것은 무슨 일이며, 조사들이 종실을 만나 보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30여 사람이 모두 좌하(坐下)가 되었으니 즉 이현로가 부른 것입니다. 이현로가 안평에게 당부(黨附)613) 하기를 날마다 심하게 하며 항상 말[馬]을 숨기고 몰래 가서 보니, 신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나 혹 국가에 일을 일으키어 안평으로 하여금 그릇 그물에 걸리게 할까 두렵습니다. 그 죄를 드러내어 바루고자 하면 즉 안평이 교제를 맺은 책망을 받을 것이며, 또 앉아 보기만 하고 꾸짖지 아니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이므로 신이 밤낮으로 생각한 것이 여러 날입니다. 신이 차라리 삼가지 못한 책망을 받을지언정 모름지기 조정에 악(惡)을 제거해야 하므로 들[野] 가운데로 끌고 가서 그 죄를 세어 들추어내며 꾸짖어 욕하였습니다. 다만 아우의 허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소인(小人)을 꺾어서 종사(宗社)를 편안히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조사(朝士)를 경멸하겠습니까? 또 이현로는 비록 조사라고 할지라도 실은 안평의 가노(家奴)입니다."
하였다. 신숙주(申叔舟)가 세조를 뵙고 말하기를,
"이현로의 일은 마땅히 도승지(都承旨)에게 의논할 것이며, 공사(公事)에 낼 수 없습니다."
하니, 강맹경이 이 말을 아뢰었다. 의정부를 불러 이를 의논하게 하니, 민건(閔騫)·박중손(朴仲孫)이 참여하였다. 모두 그 형적(形跡)을 없애어 두 대군(大君)의 사이를 평안(平安)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강맹경이 오히려 먼 지방으로 유배(流配)시키려고 하였으나 황보인·김종서 등은 이용(李瑢)의 원한(怨恨)을 두려워하여 그만두었다. 이에 사간원(司諫院)에서 아뢰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조사(朝士)를 마음대로 매질하였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수양(首陽)은 고명(高明)한데 〈이현로를〉 욕보였으니, 반드시 이현로가 막대한 죄가 있을 터이니 국문(鞫問)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상량(商量)하겠다."
하였다. 강맹경이 세조에게 통지(通知)하니, 세조가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나는 충신(忠臣)이라, 반드시 사직(社稷)을 위해 죽겠다. 만약 이현로가 서울에 있으면 내가 어찌 단지 이같이 하고 그치겠는가? 반드시 다시 계문(啓聞)할 일이 있을 것이다. 도승지(都承旨)의 의논이 지당(至當)하니 마땅히 악(惡)을 제거하고 근본에 힘을 쓴다는 뜻에 힘쓸 것이며, 부득이한 연후에는 정승(政丞)의 논의에 따르는 것이 옳다."
하였다. 이현로가 이미 매를 맞으니 황보인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사람들은 그 까닭을 몰랐으나 대개 그 흉모(兇謀)가 드러나서 세조가 알 것을 근심한 것이다. 황보인이 사사로이 세조에게 이르기를,
"조관(朝官)을 매질해 욕보인 것은 이목(耳目)을 놀라게 하는 것이 있으니, 모름지기 술이 취해 잘못되었다고 아뢰시오."
하였다. 이때에 물의(物議)가 흉흉하였는데 이현로의 무리는 모두 말하기를,
"수양 대군이 술 때문에 그랬다."
하고, 조사(朝士)들은 모두 이현로가 매를 맞은 것을 마음으로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이용(李瑢)을 비난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수양 대군이 엄명(嚴明)하고 정대(正大)함이 다른 사람의 비할 바가 아니며 또 이현로는 무상(無狀)함이 막심하니 어찌 살펴서 처리하지 아니하였겠는가? 그 마음대로 매질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권남(權擥)이 세조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이현로가 매를 맞아서 물의가 심히 높으니 장차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내가 북경(北京)에 나아갈 날이 가까운데, 이현로의 방자함이 더욱 심하여 형세를 장차 막기 어려우므로 그 죄를 계청하여 다스리려고 한다면 장차 안평 대군을 어느 지위(地位)에 두겠는가? 나의 생각으로는 이현로를 매질해 욕보여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여 흉모(兇謀)가 조금이라도 저지되면 양득(兩得)이 될 수 있으리라 하였는데, 이제 이현로가 황보인·김종서 등을 믿고 곧 역소(役所)로 돌아가서 의기양양(意氣揚揚)함이 여전하고, 도리어 드러내어 말하기를, ‘내가 술주정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의 귀에 시끄럽게 전파되었으니, 내가 장차 일일이 계달(啓達)하여 끝까지 다스리고 말겠다."
하였다. 드디어 다시 이를 계달하여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는데, 황보인 등이 이용(李瑢)의 뜻에 맞추어 말하기를,
"이현로는 광망(狂妄)하므로 그 말은 따질 것이 못된다."
하는 교묘한 말로 아뢰어, 그 죄를 다스리지 아니하고 또한 벼슬도 해직(解職)시키지 아니하였다. 이현로가 사제(私第)614) 에 물러가 누워 있으니, 한명회(韓明澮)가 사람을 시켜 찬구(饌具)를 먼저 보내고 스스로 가서 문안하니, 이현로가 맞이해 누운 자리에서 맞아들이며 말하기를,
"거처가 심히 누추하나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이니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하였다. 한명회가 인하여 매를 맞은 이유를 물으니, 이현로가 말하기를,
"그가 나를 염병[疢疾]처럼 미워하여 반드시 없애고자 함이다."
하니, 한명회가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일인가?"
하였다. 이현로가 말하기를,
"큰 일을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두어 달을 지나지 아니하여 저절로 알 것이다."
하니, 한명회가 말하기를,
"포의 천부(布衣賤夫)615) 는 국사(國事)에 참여함이 없는데, 다만 그대는 어찌 한 마디 말을 아껴서 옛 친구를 사이가 벌어지게 만드는가?"
하였다. 이현로가 미소(微笑)지으면서 말하기를,
"너는 포의(布衣)로서 이름을 아는 이가 없으므로 내가 이미 안평 대군에게 추천하였으니, 한 번 가서 뵙는 것이 옳다. 평생의 길을 얻는 것이 모두 여기에 있다."
하였으나, 한명회가 무능하다고 사례하고 드디어 하직하고 나왔다. 황보인이 양주 부사(楊州府使) 권지(權摯)를 보고 말하기를,
"네 아우 권남(權擥)이 자주 수양 대군을 가 보니, 여러 상공(相公)616) 들이 모두 옳지 못하다고 말하기에, 나는 공사(公事)로 인해 왕래하는 것이 무엇이 해로우냐고 말하였다. 그러나 물의가 가히 두려우니, 네 아우를 깨우쳐서 진퇴(進退)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옳다."
하니, 대개 세조가 선비들을 접견(接見)하는 것을 미워하여 이른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6책 540면
- 【분류】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609] 무상(無狀) : 착한 행실이나 공적이 없음.
- [註 610] 보궐(補闕) : 잘못된 일을 도와 바르게 함.
- [註 611] 정룡(正龍) : 종손(宗孫)을 상징(象徵)함.
- [註 612] 방룡(傍龍) : 지손(支孫).
- [註 613] 당부(黨附) : 한편이 되어 아부함.
- [註 614] 사제(私第) : 사택.
- [註 615] 포의 천부(布衣賤夫) : 벼슬 없는 천한 사람. 곧 자신을 말함.
- [註 616] 상공(相公) : 대신.
원문
○世祖詣闕啓曰: "李賢老奸詐無狀, 通國所知, 然於臣, 本無嫌隙, 豈以一時小怒, 遽辱朝士乎? 臣常自謂, 宗室之長, 國耳忘家, 日夜思所以補闕者, 靡所不至。 自文宗昇遐, 戒飭宗室, 日愼日謹, 近日之事, 實有由焉。 賢老本贓吏, 在文宗朝, 以陰陽禍福, 不經邪術, 眩惑人心, 集賢殿諸儒, 啓請其罪, 文宗與臣, 議欲殺之而未果。 近者又語臣曰: ‘不作宮白嶽山後, 則正龍衰, 而傍龍發, 太宗、世宗皆以傍龍而王, 文宗正龍而早世。’ 臣云: ‘吾不管風水學, 何得知此事? 子何不白政府, 若上書乎? 若實然, 則非小事也。’ 賢老顧安平, 欲同語大臣, 安平止之。 翌日臣語錦城、和義、桂陽曰: ‘賢老必將生事, 吾甚慮焉, 汝等知之。’ 由是疾之益甚, 憤憤不已, 豈是臣一身之計乎? 又聞, 安平生日, 宦官金得祥、李貴、金衍、崔濕等往會於麻浦江亭, 朝士爲坐客者三十餘人, 而賢老爲之首, 臣益憤以爲, 近侍宦官, 交結宗室, 何事, 朝士會見宗室, 何意? 三十餘人, 皆爲坐下, 則是賢老所招耳。 賢老黨附安平日甚, 常匿馬而潛謁, 臣未測其意, 深恐或生事於國家, 使安平誤掛羅網, 欲顯正其罪, 則安平受交結之責, 又坐視而不責, 是亦非也。 臣晝思夜度者, 有日, 臣寧受不愼之責? 須除惡於朝廷, 是故引至野中, 數其罪而辱之, 但欲不顯弟過, 而陰折小人, 以安宗社耳, 豈敢輕慢朝士乎? 且賢老雖爲朝士, 實安平家奴也。" 申叔舟謁世祖曰: "賢老之事, 當議都承旨, 不可出於公事。" 孟卿啓, 召議政府而議之, 閔騫、朴仲孫與焉, 皆欲其無迹, 以安二大君之間, 孟卿猶欲流於遠方, 皇甫仁、金宗瑞等畏瑢之恨而止之。 於是司諫院啓: "首陽擅撻朝士。" 又啓云: "以首陽高明, 而辱之, 必賢老有莫大之罪, 當鞫之。" 魯山曰: "商量之。" 孟卿通於世祖, 世祖送書曰: "吾忠臣也, 必爲社稷而死, 若賢老在京, 則吾豈但如是而已乎? 必復有所啓之事矣, 都承旨之論, 至當, 當勉除惡務本之意, 不得已而後, 從政丞之論, 可也。" 賢老旣被撻, 仁聞而涕泣, 人莫知其故, 蓋憂其兇謀已露, 而世祖知之也。 仁私謂世祖曰: "鞭辱朝官, 有駭耳目, 須以乘醉錯誤啓之。" 時, 物論洶洶, 賢老之黨皆曰: "首陽使酒。" 朝士則莫不快心, 賢老被撻而非瑢。 又言: "首陽嚴明正大, 非他之比, 且賢老無狀莫甚, 豈不審處之乎? 其擅撻必有以也。" 然莫知其由。 權擥詣世祖曰: "賢老被撻, 物論甚騰, 將何以處之?" 世祖曰: "予赴京日逼, 賢老之縱恣尤甚, 勢將難遏, 欲啓請其罪, 而治之, 則將置安平於何地? 余意以爲, 鞭辱賢老, 使之自退, 兇謀小沮, 則可以兩得矣。 今賢老恃仁、宗瑞等, 卽還役所, 揚揚如常, 反揚言: ‘我酗酒。’ 喧播人耳, 吾將一一啓達究治乃已。" 遂更啓之, 下政府以議, 仁等希瑢旨, 乃以賢老狂妄, 言不足數, 巧辭以啓, 不治其罪, 亦不解職。 賢老退臥私第, 明澮使人以饌具先焉, 自往候之, 賢老迎入臥席曰: "所處甚陋, 舊愛何愧?" 明澮因叩被撻之由, 賢老曰: "彼惡我如疢疾, 必欲去之。" 明澮曰: "是何事也?" 賢老曰: "大事汝焉得知? 不出數月, 當自知之。" 明澮曰: "布衣賤夫, 於國事無預, 但子何惜一言, 以阻(古)〔故〕 人耶?" 賢老微笑曰: "汝布衣, 未有知名, 吾已薦安平, 可一往拜, 平生得路, 盡在是矣。" 明澮謝以無能, 遂辭而出。 仁見楊州府使權摯曰: "汝弟擥數往謁首陽, 諸相公, 皆以爲不可, 吾則以爲, 因公事往來, 何害? 然物論可畏, 可曉汝弟, 使勿進退。" 蓋惡世祖接見士人云。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6책 540면
- 【분류】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단종 즉위년 (1452) 윤9월 8일
단종실록3권, 단종 즉위년 윤9월 8일 정묘 2/2 기사 /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세조가 이현로를 매질한 일을 듣고 상량하겠다 하다
국역
세조가 예궐하여 아뢰기를,
"이현로(李賢老)의 간사하고 무상(無狀)609) 한 것은 온 나라가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신에게는 본래 혐의와 틈이 없었으니 어찌 일시의 작은 노여움을 가지고 갑자기 조사(朝士)를 욕보이겠습니까? 신이 항상 스스로 이르기를 종실(宗室)의 장으로 나라를 위하여 집을 잊고 밤낮으로 보궐(補闕)610) 할 바를 생각하는 데 지극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문종이 승하(昇遐)하면서부터 종실을 계칙(戒飭)하며 날마다 근신(謹愼)하게 하였는데, 근일(近日)의 일은 실로 까닭이 있습니다. 이현로는 본래 장리(贓吏)로 문종 조 때 음양(陰陽)·화복(禍福)의 불경(不經)한 사술(邪術)로써 인심을 현혹(眩惑)시키므로 집현전(集賢殿) 여러 유신(儒臣)이 그 죄를 계청하여 문종께서 신과 의논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는데, 요즘 또 신에게 말하기를, ‘백악산(白嶽山) 뒤에 궁(宮)을 짓지 아니하면 정룡(正龍)611) 이 쇠하고 방룡(傍龍)612) 이 발(發)한다. 태종과 세종은 모두 방룡으로서 임금이 되었고 문종은 정룡이라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하기에, 신이 이르기를, ‘내가 풍수학(風水學)을 관계하지 아니하니 어떻게 이런 일을 알겠는가? 네가 어찌 정부(政府)에 아뢰든지 상서(上書)하지 아니하는가? 만약 참으로 그러하면 작은 일이 아니다.’ 하니, 이현로가 안평(安平)을 돌아보면서 대신들과 함께 말하려고 하니, 안평이 이를 말렸습니다. 이튿날 신이 금성 대군(錦城大君)·화의군(和義君)·계양군(桂陽君)에게 말하기를, ‘이현로는 반드시 장차 일을 일으킬 것이므로 내가 심히 염려한다. 너희들은 이를 알아라.’ 하였더니, 이로 말미암아 미워하기를 더욱 심히 하며 분개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이것이〉 어찌 신(臣)의 한 몸의 계책이겠습니까? 또 듣건대 안평의 생일에 환관(宦官) 김득상(金得祥)·이귀(李貴)·김연(金衍)·최습(崔濕) 등이 마포강(麻浦江) 정자(亭子)에서 모였는데 조사(朝士)로 좌객(坐客)이 된 자가 30여 사람인데 이현로가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하니, 신이 더욱 분하며, 생각하건대 근시(近侍) 환관들이 종실과 교제를 맺는 것은 무슨 일이며, 조사들이 종실을 만나 보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30여 사람이 모두 좌하(坐下)가 되었으니 즉 이현로가 부른 것입니다. 이현로가 안평에게 당부(黨附)613) 하기를 날마다 심하게 하며 항상 말[馬]을 숨기고 몰래 가서 보니, 신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나 혹 국가에 일을 일으키어 안평으로 하여금 그릇 그물에 걸리게 할까 두렵습니다. 그 죄를 드러내어 바루고자 하면 즉 안평이 교제를 맺은 책망을 받을 것이며, 또 앉아 보기만 하고 꾸짖지 아니하면 이것도 또한 잘못이므로 신이 밤낮으로 생각한 것이 여러 날입니다. 신이 차라리 삼가지 못한 책망을 받을지언정 모름지기 조정에 악(惡)을 제거해야 하므로 들[野] 가운데로 끌고 가서 그 죄를 세어 들추어내며 꾸짖어 욕하였습니다. 다만 아우의 허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소인(小人)을 꺾어서 종사(宗社)를 편안히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조사(朝士)를 경멸하겠습니까? 또 이현로는 비록 조사라고 할지라도 실은 안평의 가노(家奴)입니다."
하였다. 신숙주(申叔舟)가 세조를 뵙고 말하기를,
"이현로의 일은 마땅히 도승지(都承旨)에게 의논할 것이며, 공사(公事)에 낼 수 없습니다."
하니, 강맹경이 이 말을 아뢰었다. 의정부를 불러 이를 의논하게 하니, 민건(閔騫)·박중손(朴仲孫)이 참여하였다. 모두 그 형적(形跡)을 없애어 두 대군(大君)의 사이를 평안(平安)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강맹경이 오히려 먼 지방으로 유배(流配)시키려고 하였으나 황보인·김종서 등은 이용(李瑢)의 원한(怨恨)을 두려워하여 그만두었다. 이에 사간원(司諫院)에서 아뢰기를,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조사(朝士)를 마음대로 매질하였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수양(首陽)은 고명(高明)한데 〈이현로를〉 욕보였으니, 반드시 이현로가 막대한 죄가 있을 터이니 국문(鞫問)함이 마땅합니다."
하니, 노산군(魯山君)이 말하기를,
"상량(商量)하겠다."
하였다. 강맹경이 세조에게 통지(通知)하니, 세조가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나는 충신(忠臣)이라, 반드시 사직(社稷)을 위해 죽겠다. 만약 이현로가 서울에 있으면 내가 어찌 단지 이같이 하고 그치겠는가? 반드시 다시 계문(啓聞)할 일이 있을 것이다. 도승지(都承旨)의 의논이 지당(至當)하니 마땅히 악(惡)을 제거하고 근본에 힘을 쓴다는 뜻에 힘쓸 것이며, 부득이한 연후에는 정승(政丞)의 논의에 따르는 것이 옳다."
하였다. 이현로가 이미 매를 맞으니 황보인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사람들은 그 까닭을 몰랐으나 대개 그 흉모(兇謀)가 드러나서 세조가 알 것을 근심한 것이다. 황보인이 사사로이 세조에게 이르기를,
"조관(朝官)을 매질해 욕보인 것은 이목(耳目)을 놀라게 하는 것이 있으니, 모름지기 술이 취해 잘못되었다고 아뢰시오."
하였다. 이때에 물의(物議)가 흉흉하였는데 이현로의 무리는 모두 말하기를,
"수양 대군이 술 때문에 그랬다."
하고, 조사(朝士)들은 모두 이현로가 매를 맞은 것을 마음으로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이용(李瑢)을 비난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수양 대군이 엄명(嚴明)하고 정대(正大)함이 다른 사람의 비할 바가 아니며 또 이현로는 무상(無狀)함이 막심하니 어찌 살펴서 처리하지 아니하였겠는가? 그 마음대로 매질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하였다. 권남(權擥)이 세조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이현로가 매를 맞아서 물의가 심히 높으니 장차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내가 북경(北京)에 나아갈 날이 가까운데, 이현로의 방자함이 더욱 심하여 형세를 장차 막기 어려우므로 그 죄를 계청하여 다스리려고 한다면 장차 안평 대군을 어느 지위(地位)에 두겠는가? 나의 생각으로는 이현로를 매질해 욕보여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여 흉모(兇謀)가 조금이라도 저지되면 양득(兩得)이 될 수 있으리라 하였는데, 이제 이현로가 황보인·김종서 등을 믿고 곧 역소(役所)로 돌아가서 의기양양(意氣揚揚)함이 여전하고, 도리어 드러내어 말하기를, ‘내가 술주정하였다.’고 하여 사람들의 귀에 시끄럽게 전파되었으니, 내가 장차 일일이 계달(啓達)하여 끝까지 다스리고 말겠다."
하였다. 드디어 다시 이를 계달하여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는데, 황보인 등이 이용(李瑢)의 뜻에 맞추어 말하기를,
"이현로는 광망(狂妄)하므로 그 말은 따질 것이 못된다."
하는 교묘한 말로 아뢰어, 그 죄를 다스리지 아니하고 또한 벼슬도 해직(解職)시키지 아니하였다. 이현로가 사제(私第)614) 에 물러가 누워 있으니, 한명회(韓明澮)가 사람을 시켜 찬구(饌具)를 먼저 보내고 스스로 가서 문안하니, 이현로가 맞이해 누운 자리에서 맞아들이며 말하기를,
"거처가 심히 누추하나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이니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하였다. 한명회가 인하여 매를 맞은 이유를 물으니, 이현로가 말하기를,
"그가 나를 염병[疢疾]처럼 미워하여 반드시 없애고자 함이다."
하니, 한명회가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일인가?"
하였다. 이현로가 말하기를,
"큰 일을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두어 달을 지나지 아니하여 저절로 알 것이다."
하니, 한명회가 말하기를,
"포의 천부(布衣賤夫)615) 는 국사(國事)에 참여함이 없는데, 다만 그대는 어찌 한 마디 말을 아껴서 옛 친구를 사이가 벌어지게 만드는가?"
하였다. 이현로가 미소(微笑)지으면서 말하기를,
"너는 포의(布衣)로서 이름을 아는 이가 없으므로 내가 이미 안평 대군에게 추천하였으니, 한 번 가서 뵙는 것이 옳다. 평생의 길을 얻는 것이 모두 여기에 있다."
하였으나, 한명회가 무능하다고 사례하고 드디어 하직하고 나왔다. 황보인이 양주 부사(楊州府使) 권지(權摯)를 보고 말하기를,
"네 아우 권남(權擥)이 자주 수양 대군을 가 보니, 여러 상공(相公)616) 들이 모두 옳지 못하다고 말하기에, 나는 공사(公事)로 인해 왕래하는 것이 무엇이 해로우냐고 말하였다. 그러나 물의가 가히 두려우니, 네 아우를 깨우쳐서 진퇴(進退)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옳다."
하니, 대개 세조가 선비들을 접견(接見)하는 것을 미워하여 이른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6책 540면
- 【분류】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609] 무상(無狀) : 착한 행실이나 공적이 없음.
- [註 610] 보궐(補闕) : 잘못된 일을 도와 바르게 함.
- [註 611] 정룡(正龍) : 종손(宗孫)을 상징(象徵)함.
- [註 612] 방룡(傍龍) : 지손(支孫).
- [註 613] 당부(黨附) : 한편이 되어 아부함.
- [註 614] 사제(私第) : 사택.
- [註 615] 포의 천부(布衣賤夫) : 벼슬 없는 천한 사람. 곧 자신을 말함.
- [註 616] 상공(相公) : 대신.
원문
○世祖詣闕啓曰: "李賢老奸詐無狀, 通國所知, 然於臣, 本無嫌隙, 豈以一時小怒, 遽辱朝士乎? 臣常自謂, 宗室之長, 國耳忘家, 日夜思所以補闕者, 靡所不至。 自文宗昇遐, 戒飭宗室, 日愼日謹, 近日之事, 實有由焉。 賢老本贓吏, 在文宗朝, 以陰陽禍福, 不經邪術, 眩惑人心, 集賢殿諸儒, 啓請其罪, 文宗與臣, 議欲殺之而未果。 近者又語臣曰: ‘不作宮白嶽山後, 則正龍衰, 而傍龍發, 太宗、世宗皆以傍龍而王, 文宗正龍而早世。’ 臣云: ‘吾不管風水學, 何得知此事? 子何不白政府, 若上書乎? 若實然, 則非小事也。’ 賢老顧安平, 欲同語大臣, 安平止之。 翌日臣語錦城、和義、桂陽曰: ‘賢老必將生事, 吾甚慮焉, 汝等知之。’ 由是疾之益甚, 憤憤不已, 豈是臣一身之計乎? 又聞, 安平生日, 宦官金得祥、李貴、金衍、崔濕等往會於麻浦江亭, 朝士爲坐客者三十餘人, 而賢老爲之首, 臣益憤以爲, 近侍宦官, 交結宗室, 何事, 朝士會見宗室, 何意? 三十餘人, 皆爲坐下, 則是賢老所招耳。 賢老黨附安平日甚, 常匿馬而潛謁, 臣未測其意, 深恐或生事於國家, 使安平誤掛羅網, 欲顯正其罪, 則安平受交結之責, 又坐視而不責, 是亦非也。 臣晝思夜度者, 有日, 臣寧受不愼之責? 須除惡於朝廷, 是故引至野中, 數其罪而辱之, 但欲不顯弟過, 而陰折小人, 以安宗社耳, 豈敢輕慢朝士乎? 且賢老雖爲朝士, 實安平家奴也。" 申叔舟謁世祖曰: "賢老之事, 當議都承旨, 不可出於公事。" 孟卿啓, 召議政府而議之, 閔騫、朴仲孫與焉, 皆欲其無迹, 以安二大君之間, 孟卿猶欲流於遠方, 皇甫仁、金宗瑞等畏瑢之恨而止之。 於是司諫院啓: "首陽擅撻朝士。" 又啓云: "以首陽高明, 而辱之, 必賢老有莫大之罪, 當鞫之。" 魯山曰: "商量之。" 孟卿通於世祖, 世祖送書曰: "吾忠臣也, 必爲社稷而死, 若賢老在京, 則吾豈但如是而已乎? 必復有所啓之事矣, 都承旨之論, 至當, 當勉除惡務本之意, 不得已而後, 從政丞之論, 可也。" 賢老旣被撻, 仁聞而涕泣, 人莫知其故, 蓋憂其兇謀已露, 而世祖知之也。 仁私謂世祖曰: "鞭辱朝官, 有駭耳目, 須以乘醉錯誤啓之。" 時, 物論洶洶, 賢老之黨皆曰: "首陽使酒。" 朝士則莫不快心, 賢老被撻而非瑢。 又言: "首陽嚴明正大, 非他之比, 且賢老無狀莫甚, 豈不審處之乎? 其擅撻必有以也。" 然莫知其由。 權擥詣世祖曰: "賢老被撻, 物論甚騰, 將何以處之?" 世祖曰: "予赴京日逼, 賢老之縱恣尤甚, 勢將難遏, 欲啓請其罪, 而治之, 則將置安平於何地? 余意以爲, 鞭辱賢老, 使之自退, 兇謀小沮, 則可以兩得矣。 今賢老恃仁、宗瑞等, 卽還役所, 揚揚如常, 反揚言: ‘我酗酒。’ 喧播人耳, 吾將一一啓達究治乃已。" 遂更啓之, 下政府以議, 仁等希瑢旨, 乃以賢老狂妄, 言不足數, 巧辭以啓, 不治其罪, 亦不解職。 賢老退臥私第, 明澮使人以饌具先焉, 自往候之, 賢老迎入臥席曰: "所處甚陋, 舊愛何愧?" 明澮因叩被撻之由, 賢老曰: "彼惡我如疢疾, 必欲去之。" 明澮曰: "是何事也?" 賢老曰: "大事汝焉得知? 不出數月, 當自知之。" 明澮曰: "布衣賤夫, 於國事無預, 但子何惜一言, 以阻(古)〔故〕 人耶?" 賢老微笑曰: "汝布衣, 未有知名, 吾已薦安平, 可一往拜, 平生得路, 盡在是矣。" 明澮謝以無能, 遂辭而出。 仁見楊州府使權摯曰: "汝弟擥數往謁首陽, 諸相公, 皆以爲不可, 吾則以爲, 因公事往來, 何害? 然物論可畏, 可曉汝弟, 使勿進退。" 蓋惡世祖接見士人云。
-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6책 540면
- 【분류】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왕실-종친(宗親)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원본
단종 즉위년 (1452) 윤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