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실록6권, 문종 1년 2월 20일 기축 4/6 기사 /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서현정에 나아가 동반·서반의 각 품관의 사후를 구경하다
국역
서현정(序賢亭)에 나아가서 동반·서반의 각 품관(品官)의 사후(射侯)225) 와 기사(騎射)를 구경하였다. 장령(掌令) 신숙주(申叔舟)가 일찍이 정사를 보는 데에서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경사(卿士)는 모두 시(詩)·서(書)·예(禮)·악(樂)의 가르침을 익혀서 천하에서 문명한 곳이라고 일컫는데, 이제 전하께서 날마다 군사를 이끌고 활 쏘기를 익히시니, 여러 신하들이 본을 받아 사대부(士大夫)가 그 일을 힘쓰지 아니하고 날마다 사후(射侯)로 일을 삼으니, 이 풍속이 한 번 일어나면 다시 고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 [註 225] 사후(射侯) : 활로써 목표물인 솔[帿]을 쏘던 일. 무예(武藝)를 익히는 방법의 하나였음.
원문
문종실록6권, 문종 1년 2월 20일 기축 4/6 기사 /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서현정에 나아가 동반·서반의 각 품관의 사후를 구경하다
국역
서현정(序賢亭)에 나아가서 동반·서반의 각 품관(品官)의 사후(射侯)225) 와 기사(騎射)를 구경하였다. 장령(掌令) 신숙주(申叔舟)가 일찍이 정사를 보는 데에서 아뢰기를,
"우리 나라의 경사(卿士)는 모두 시(詩)·서(書)·예(禮)·악(樂)의 가르침을 익혀서 천하에서 문명한 곳이라고 일컫는데, 이제 전하께서 날마다 군사를 이끌고 활 쏘기를 익히시니, 여러 신하들이 본을 받아 사대부(士大夫)가 그 일을 힘쓰지 아니하고 날마다 사후(射侯)로 일을 삼으니, 이 풍속이 한 번 일어나면 다시 고칠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 [註 225] 사후(射侯) : 활로써 목표물인 솔[帿]을 쏘던 일. 무예(武藝)를 익히는 방법의 하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