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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5권, 문종 즉위년 12월 29일 기해 7/9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육조와 대간에서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것의 편부를 논의하다

국역

육조(六曹)와 대간(臺諫)에서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것[兼牧]이 편하고 편하지 않은 것을 의논하니, 이조 판서 권맹손(權孟孫)과 참의 성득식(成得識)이 의논하기를,

"감사가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30개월(三十箇月)의 법1488) 은 세종께서 여러 대신들에게 물어서 상량하여 확정하여서 입법(立法)하였는데, 시행한 지 오래 되지 않고 별로 큰 폐단이 없으니 반드시 가볍게 고칠 것이 없습니다. 신(臣) 권맹손이 함길도 감사(咸吉道監司)가 되었을 때 함흥(咸興) 근처 한두 고을에서 이에 세시(歲時)1489) 에 음식물을 증여하여 보내는 자가 있었으나 신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더니, 그 후에는 증여하여 보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감사가 만약 받지 않는다면 수령(守令)이 어찌 모람되게 증여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순행(巡行)에 태만하기에 이르는 것은 또한 감사의 부지런하고 게으른 데 달렸을 뿐이므로 정밀히 사람을 골라서 보내어야 합니다. 옛날 그대로 목사(牧使)를 겸임하여 구임(久任)1490)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호조 판서 윤형(尹炯)·참판 기건(奇虔)·참의 김연지(金連枝)가 의논하기를,

"각도의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면 1년 내에 순행(巡行)하는 것이 한두 차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요, 항상 본영(本營)에 있어서 각 고을의 인리(人吏)가 왕래하는 폐단이 작지 않을 것이며, 또 능히 민간의 폐막(弊瘼)을 모조리 알 수가 없으니, 나라에서 위임(委任)한 뜻에 어그러짐이 있습니다. 빌건대 양계(兩界) 이외에는 목사를 겸임하는 것을 없애고 기년(期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소서."

하고, 예조 판서 허후(許詡)는 의논하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각도의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법은 태종조(太宗朝)부터 이를 시행하여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 오늘날과 같은 폐단을 듣지 못하였고, 양계(兩界)의 감사가 부윤(府尹)을 겸임하는 법도 또한 이를 시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 다른 도(道)와 같은 폐단이 있지 않았으니, 그 설시(設施)하는 방도에 그 요체(要諦)를 얻지 못한 것일까 합니다. 빌건대 이제 해당 조(曹)로 하여금 그 폐단을 찾아 조사하도록 하여서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소서."

하고, 예조 참판 정척(鄭陟)·예조 참의 민공(閔恭)은 의논하기를,

"대개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고을은 땅이 넓고 백성들이 조밀(稠密)하여 사무가 번잡합니다. 이보다 앞서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함께 다스릴 때에도 권농(勸農)과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따위의 일을 능히 제때에 맞추어 고찰(考察)할 수가 없어서 일이 늦추어지는 폐단이 작지 않았습니다. 감사가 목사를 겸임한 후로부터 판관(判官) 한 몸이 온갖 사무를 도맡아 총괄하므로, 사객(使客)1491) 을 지대(支待)하는 여러 가지 일도 오히려 능히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백성들의 일에 마음이 미쳐서 번잡한 일을 결단하여 다스리겠습니까? 빌건대 함길도(咸吉道)·평안도(平安道) 이외에 그 나머지 각도의 감사는 옛날 그대로 1주년(周年)으로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병조 판서 민신(閔伸)·참판 황수신(黃守身)은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법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고 별로 큰 폐단이 없으니, 가볍게 고치는 것은 미편(未便)합니다."

하고, 참의 홍심(洪深)은 의논하기를,

"감사와 목사를 겸임하는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판관(判官)이 감사나 과객(過客)1492) 에게 지대(支待)하는 일도 오히려 또 감당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본 고을의 여러 가지 일과 민간의 폐막(弊瘼)을 어느 겨를에 다스리겠습니까 이로 인하여 거민(居民)의 소송(訴訟)을 의논하여 다른 고을로 보내니, 양식을 가지고 왕래하는 폐단도 작지 않습니다. 또 1주년(周年)에 서로 체임(遞任)한다면 전최(殿最)할 즈음에 비록 사랑하고 미워함이 있더라도 2고(考)1493) 에 지나지 않지만, 30개월(箇月)이면 사랑하고 미워하는 폐단의 누(累)가 5고(考)에까지 미치므로, 어진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똑같이 엄체(淹滯)되니, 그 말류(末流)의 폐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감사를 그 적당한 사람으로 얻는 데 달려 있지, 목사를 겸임하거나 교체(交遞)하는 기간이 오래고 가까운 데 달려 있지 않다.’고 하나, 이것은 사람의 처음에는 부지런하나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상정(常情)을 모르는 것이니, 세월이 이미 오래되면 침체되어 처음과 같지 아니한 자가 많습니다. 빌건대 전례(前例)에 의하여 양계(兩界) 이외에는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을 없애고, 1주년(周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형조 판서 조혜(趙惠)·참판 권극화(權克和)는 의논하기를,

"한 지방을 통찰(統察)하는 직임을 띠고서 처자(妻子)를 데리고 가는 것은 실로 미편(未便)합니다. 혹은 공사(公私)의 연고(緣故)로 인하여 부득이 오랫동안 본영(本營)에 머물러 있으면 그 고을이 받는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앞서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함께 다스릴 때에도 여러 가지 일에 오히려 잊고 빠뜨리는 것이 있어서 민간(民間)에 오히려 폐막(弊瘼)이 있었는데, 이제 판관이 비록 현명하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하나의 몸으로서 온갖 사무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구나 요속(寮屬)을 지대(支待)할 즈음에 수가 적은 관노비(官奴婢)가 밤낮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고생은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없애고 구례(舊例)에 의하여 1주년(周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소서."

하고, 공조 판서 정인지(鄭麟趾)는 의논하기를,

"각도의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30개월(箇月)을 채우는 것을 신은 옳다고 주장합니다. 천하(天下)에 폐단이 없는 법은 있지 않으니, 다만 그 폐단의 경중(輕重)을 헤아릴 뿐입니다."

하고, 참의 임효신(任孝信)은 의논하기를,

"각도의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면 판관(判官)이 홀로 고을 안의 온갖 사무를 맡아 보므로 모든 일이 지체(遲滯)되니, 백성들에게 폐단이 없지 아니합니다. 감사가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부임(赴任)하면 순행(巡行)하는 기간이 옛날과 같지 아니할 것 같으며, 또 문서(文書)를 왕래하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없애고 옛날 그대로 1주년(周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소서."

하고, 대사헌(大司憲) 안완경(安完慶)·집의(執義) 신숙주(申叔舟)·장령(掌令) 나홍서(羅洪緖)는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여 그 직임에 오래 있으면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않은 것과 민간(民間)의 이(利)되고 해(害)되는 것을 모조리 알 수 있으니, 소송을 결단(決斷)하고 일을 처리하는 등 모든 시행하는 바가 또한 미리 먼저 조치(措置)할 수가 있으므로 거의 편익할 것 같습니다. 또 법을 세운 지 오래 되지 아니하여 별로 큰 폐단이 없는데, 갑자기 고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고, 장령(掌令) 하위지(河緯地)·지평(持平) 윤면(尹沔)·문여령(文汝寧)은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여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은 당초에 법을 세울 때에 진실로 반박하는 의논이 있었고, 이를 몇 년 동안 시행하였으나 별로 이익된 바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 폐단은 작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일찍이 이 법을 세웠다가 또한 오래 되지 아니하여 혁파(革罷)하였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없애소서."

하고, 사간원 우사간(司諫院右司諫) 최항(崔恒)·지사간(知司諫) 홍원용(洪元用)·좌헌납(左獻納) 김진지(金震知)·좌정언(左正言) 구인문(具人文)·우정언(右正言) 김효급(金孝給)은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것은 폐단이 실로 대단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불편하였다.’고 하므로, 건백(建白)1494) 하여 이를 혁파하고자 생각한지 오래였습니다. 더군다나 하자(下咨)1495) 를 받들고 감히 그것을 빨리 혁파해야 할 이유를 자세하게 상소(上疏)하지 않겠습니까? 계수(界首)1496) 의 고을은 땅이 반드시 크고 백성들이 많아서 한 지방의 도회소(都會所)가 되므로, 온갖 사무의 번잡함이 여러 고을의 백 배(倍)와 비견합니다. 비록 목사·판관(判官) 두 사람이 두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다스려도 매양 능히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되었으므로, 오히려 1인을 더 두어서 이를 보좌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감사의 직임이 순행(巡行)하면서 교화를 펴는 데 오로지 하므로, 비록 본영(本營)에 있다고 하더라도 다만 도내의 일만을 다스릴 뿐이며, 본 고을의 여러 사무는 일찍이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판관(判官)은 아침 저녁으로 감사를 알현(謁見)하고, 각 고을의 진상(進上)을 받아들이고, 대소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등 분주하게 바삐 일하여 하루에 이틀치의 일을 하지만, 그 부서(簿書)1497) ·기회(期會)1498) 에 대하여 생각이 어느 겨를에 미치겠으며, 감히 앉아서 백성들의 일을 다스리기를 바라겠습니까? 비록 억울함을 품고 원통함을 호소하여 소송하는 서류를 가지고 뜰에서 부르짖은 지 열흘이나 달포가 지나도 오히려 한 번 물어보지 않는 사건이 소속한 관내(管內)에서 많으면 혹은 수십 건에 이릅니다. 적미(糴米)1499) 와 곡식 종자를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것도 또한 제때에 할 수 없어서 혹은 이웃 고을의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겸하여 관리하도록 하는데, 농상(農桑)을 권과(勸課)할 겨를이 없는데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어느 겨를에 심정(審定)하겠습니까? 형세가 이 지경에 이르러 이를 감고(監考)1500) ·색리(色吏)1501) 에게 맡기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여기에서 간활(姦猾)한 무리들이 잔 꾀를 부려서 권력을 농락하고 백성들을 침어(侵漁)하여 괴롭히고 제마음대로 스스로 방자하게 굴지만, 판관(判官)이 어느 겨를에 그 시비(是非)를 고찰하겠습니까?

대체로 군(郡)에는 수(守)가 있고, 현(縣)에는 영(令)이 있는 것은 그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오로지 하게 하고자 함인데, 비록 작은 고을이라 하더라도 하루 아침인들 수령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가 목사(牧使)를 겸임한 이후로는 최근에는 계수관(界首官)이나 큰 고을에는 실로 백성들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있지 아니 하니, 이것이 무슨 법입니까? 옛날에는 계수주(界首州)에는 목사(牧使)가 있고 판관(判官)이 있어서 백성들을 위하여 명(命)을 맡아 보았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목사(牧使) 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판관(判官)도 잃어버렸으니 계수관(界首官)의 백성들이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국가에서 감사를 두는 것은 그가 임금[一人]의 이목(耳目)을 대신하여 주(州)·군(郡)을 안무(按撫)하고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살펴서 이들을 출척(黜陟)1502) 하고, 민생(民生)의 이롭고 해되는 것을 물어서 이를 장려하거나 없애기도 하는데 반드시 그 몸의 처하는 곳에 얽매여 망설이는 바가 없고 그 마음을 두는 곳에는 돌아보고 연연하는 바가 없는 뒤에야 순행(巡行)함이 쉽고 안렴(按廉)함이 공평할 것입니다. 비록 날마다 말을 몰아서 달리고 편안한 곳에 있을 겨를이 없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민정(民情)을〉 묻는 것이 주밀하지 못하고 출척(黜陟)이 밝지 못할까 두려운데, 지금은 처자(妻子)와 함께 거처하면서 편안히 사는 것을 달갑게 여기고 비록 늙고 병든 자가 아니더라도 대개 본영(本營)의 관아(官衙)에 있으면서 순행(巡行)하고 교화를 펴는 데에 게을리 하니, 먼 군(郡)이나 떨어져 있는 고을의 일을 비로소 몸소 친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더라도 한 번도 이목(耳目)으로 접(接)하여 보지 아니하는데, 백성들의 이롭고 해되는 것을 그가 두루 안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감사의 직임은 실로 여러 수령을 규찰(糾察)하는 일을 맡아 보니, 외방의 헌관(憲官)입니다. 지금은 감사가 이미 목사를 겸하면서부터 여러 군(郡)의 수령(守令)들을 보기를 일체(一體)로 하니, 오로지 규찰하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허물을 비호(庇護)하고 그 범죄를 덮어 주기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암행(暗行)의 소식을 먼저 들으면 급히 전령(傳令)의 기마(騎馬)를 보내어 두루 이를 알리니, 수령(守令)도 또한 생각하기를, ‘저도 또한 수령이요, 나도 또한 수령이다.’하고 법령을 어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법령을 범하기를 꺼려하지 않는 경우가 심히 많습니다. 먼저 감사의 잘못을 엿보아서 그것을 구실로 삼아 마음대로 불의(不義)를 행하니, 감히 누가 무엇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비록 수령(守令) 가운데 유식(有識)한 자라도 그 순찰(巡察)의 드문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일을 다스리는 데에 게을리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아니함을 그가 밝게 규찰한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감사가 본영(本營)에 오래도록 머문다면 부근의 역마(驛馬)가 항상 수십 필을 내려가지 아니하고 본영 앞에 매어 두니, 역부(驛夫)가 양식을 지고 십여 일이 지나도록 한데에서 거처하고, 또 수령관(首領官)·차사원(差使員)·교유(敎諭)·검률(檢律)·찰방(察訪)·역승(驛丞)과 그 수배(隨陪)1503) 하는 반종(伴從) 등 여러 일행 사람들이 걸핏하면 백여 명이나 되니, 지대(支待)하는 비용이 심히 적지 않습니다. 한 고을의 힘으로서 어찌 능히 홀로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쌀·소금·기름·간장·어해(魚醢)·채소(菜蔬)·포진(鋪陳)1504) 등 세세한 물건을 모조리 모두 여러 군(郡)에다 나누어 안배하여 이를 거두는데, 나누어 거두는 숫자가 많고 적은 것을 마음대로 하며,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또 다시 거둡니다. 여러 군(郡)의 수령들이 또 반드시 전전(輾轉)하여 숫자를 더 불리어 집집마다 거두어 모아서 이에 응(應)하니, 짐바리에 싣고 짐을 지고서 전수(轉輸)하는데 그 폐단을 상세하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에서 비록 감사의 선임(選任)을 중하게 하지만, 그러나 어찌 그 알맞은 사람을 다 얻겠습니까? 혹은 인정(人情)에 후(厚)한 자는 전날에 거두어 들인 물건들을 때로 비축(備蓄)하기도 하고 때로 나누어 주기도 하며, 혹은 분개하여 이를 갈고 방관(旁觀)하더라도 누가 이를 저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감사 가운데 강직(剛直)하고 바른 자는 진실로 번잡한 거동이나 청알(請謁)1505) 의 행동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혹시 그가 그렇지 아니하면 그 처(妻)가 혹은 목욕(沐浴)한다고 칭하고 혹은 근성(覲省)1506) 한다고 칭하고 출입(出入)하기를 자주하여, 성대한 수종(隨從)과 번잡한 공억(供億)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 자제(子弟)나 친척(親戚)이 왕래(往來)하여 잇달아 끊이지 아니하는데 오래도록 머물고 요구하는 것이 많으니 막대한 비용을 서로 잇대는 것이 모두 백성들의 피땀에서 나옵니다. 여러 군(郡)의 수령(守令)이 또 그 사람에게 의지하여 아부하여 정사(政事)의 좋은 성적[最]을 따고자 하여 청탁(請託)에 인연하여 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간알(干謁)의 폭주(輻湊)함과 뇌물의 주고받음의 심함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감사가〉 목사를 겸하는 폐가 아니라 하더라도 혹은 족속(族屬)이라 칭하기도 하고 어머니[阿母]를 따라가는 것이라 칭하기도 하면서 재화(財貨)를 뇌물로 바쳐서 남의 비난을 사는 자가 있는데, 하물며 지금 감사가 항상 처자(妻子)를 스스로 수종(隨從)시키는 경우이겠습니까? 재화(財貨)를 가져와 관절(關節)1507) 과 서로 통(通)하고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니,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특별한 폐단의 대략(大略)일 뿐입니다. 그 상세한 것은 다 진술(陳述)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에서 법을 세운 것은 진실로 나라를 이롭게 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고자 함인데, 이익은 있으나 폐해가 없다면 즉 법으로서 좋은 것이며,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익과 폐해가 상반(相伴)된다면 비록 이미 이루어진 법이라도 또한 마땅히 다시 고쳐 의심스러움이 없게 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그것이 아무런 이익이 없고 폐단만이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감사가〉 목사를 겸하는 한 가지 법(法)은 시행한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였으나, 그 폐단이 많다는 증험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국가에 이익되는 바가 없고, 백성들에게 편리한 바가 없고, 다만 감사 한 몸에만 이익이 될 뿐입니다. 감사의 한 몸에만 이익이 되는데도 이러한 폐법(弊法)을 시행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국가에서 처음에 이 법을 세운 것은 감사를 구임(久任)시켜서 교화(敎化)를 펴려고 하였던 것이지만, 이 법을 세운 이후로부터 오직 폐단만이 날로 생긴다고 들었으나 아직 조그마한 이익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만약 혹시 그 폐단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그것을 알았다면 빨리 고치는 데 있을 뿐이요, 어찌 가히 이미 세운 법이라고 일컫고서 다시 혁파(革罷)하기를 무겁게 여겨 반드시 인순(因循)하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 등이 홀로 이와 같이 보는 것이 아니라, 실로 여러 사람들의 의논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혁파하여 다시 1주년(周年)으로 행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같지 아니하니, 한 가지로 귀결(歸結)지울 수가 없다.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을 없애고 2기(二期)1508) 로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그것을 다시 정부에 의논하라."

하니, 영의정 하연(河演)이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법을 미편(未便)하다고 이르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간원(諫院)의 의논이 조금 상세하지만, 그러나 미편(未便)한 실상을 거의 다 말한 것이 아닙니다. 편(便)하다고 이르는 자들은 말하기를, ‘감사가 구임(久任)1509) 하면 한 도의 민정(民情)을 두루 알고, 또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법을 살펴서 이로 하여금 바치기를 끝내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이 듣건대 감사가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한 후로부터 본영(本營)에서 지대(支待)하기가 어려워서 공공연히 각 고을에서 거두어 들이는데, 각 고을에서는 또 민호(民戶)에서 거둔다고 합니다. 사무는 정하게 갖추는 것이 요체(要諦)인데, 수납(輸納)할 때에 이르러 본영(本營)의 인리(人吏)들이 그 위압(威壓)과 침학(侵虐)을 부려서 반드시 뇌물을 받은 뒤에 이를 납입(納入)시키는데, 본영(本營)에서는 소산(所産)이 없고 감사는 진상(進上)한 나머지를 항상 먹고도 뻔뻔스럽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연변(沿邊)에서 생산하는 바의 물건을 혹은 역마(驛馬)로 나르고 혹은 각 고을에서 전수(轉輸)하여 본영(本營)의 용도에 씁니다. 또 감사의 족친(族親)이 이르면 판관(判官)이 된 자는 물건을 증유(贈遺)하고 음식물을 궤향(饋餉)하는 등 하지 않는 바가 없는데, 감사는 비록 듣더라도 짐짓 알지 못하는 체 하므로, 혹은 여러 날을 머물도록 청하니, 이것도 또한 인정(人情)으로 부득이한 일이라 하겠으나 감사가 먼저 이를 범합니다. 판관(判官) 한 몸으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수고하나, 백성들이 비록 질고(疾苦)를 고장(告狀)하는 자가 있더라도 간리(姦吏)에게 이를 맡기므로, 다단(多端)하게 권력을 악용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실로 많으니, 이러한 따위의 폐단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감사의 구임(久任)하는 법은 의창(義倉)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고 하지만, 그러나 권극화(權克和)가 일찍이 충청도 감사가 되어서 이미 3년이 지났으나, 아직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를 끝마쳤다고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청주는 본영(本營)이 있는 고을인데도 의창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를 아직 끝마치지 못하였는데, 어느 겨를에 여러 고을을 고핵(告覈)하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함부림(咸傅霖)이 〈감사로서〉 목사를 겸임하였을 때 각 고을의 뇌물을 받은 사건을 진달(陳達)하였는데, 신의 친히 본 바이니, 국정(國政)에 해가 되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 법을 설립(設立)하던 당초에 신이 그 불가(不可)한 것을 진술(陳述)하였더니, 하교(下敎)하시기를, ‘우선 한 번 시험하는 것이요, 장구(長久)한 계책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결단하여 〈감사가〉 수령(守令)을 겸임하지 말게 하고, 1년 기간으로 서로 체임(遞任)하여서 출척(黜陟)의 임무를 오로지하게 하소서."

하고, 우의정 남지(南智)는 의논하기를,

"신의 뜻은 대략 하연이 의논한 것과 같으나 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의 말하는 바는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폐단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나 감사를 알맞은 사람을 얻으면 간혹 폐단을 없앨 수도 있습니다. 다만 본영(本營)의 인리(人吏)와 노비(奴婢)가 관문(官門)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분주하게 지응(支應)1510) 하는 폐단을 비록 명현(名賢)으로 하여금 이를 처리하게 하더라도 또한 능히 다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수령관(首領官)·교유(敎諭)·검률(檢律)·영리(營吏)1511) ·반종(伴從)들이 거의 50인에 이른다면 비록 5, 6일을 공억(供億)1512) 하더라도 간고(艱苦)하기에 이르는데, 만약 여름철 수십 일을 머문다면,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각 고을에 이를 균배(均排)하지만, 그러나 본영(本營)의 인리(人吏)와 노비(奴婢)가 홀로 생활을 돌보지 않고 항상 관문(官門)에 붙어 있다가 드디어 실농(失農)하기에 이르니, 어찌 가련하지 않겠습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감사를 본영(本營)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게 한다면 지대(支待)하는 폐단이 절로 없어질 것이다.’고 하지만, 신은 생각건대 만약 감사로 하여금 본영(本營)에 머무는 날을 적게 하고서 항상 스스로 순행(巡行)하게 한다면 어찌 반드시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게 하겠습니까? 또 도절제사(都節制使)·처치사(處置使)와 연변(沿邊)의 수령(守令)들이 모두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지 못하는데, 감사가 반드시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여야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주년(周年)으로 정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우참찬(右參贊) 안숭선(安崇善)이 의논하기를,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폐단을 신이 일찍이 이미 상서(上書)하였습니다. 청컨대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것을〉 없애고 2주년(周年)을 기간으로 하소서."

하고, 우찬성(右贊成) 정분(鄭苯)·좌참찬(左參贊) 정갑손(鄭甲孫)이 의논하기를,

"감사가 그 직임에 오래 있지 아니하면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일을 여사(餘事)로 생각하고, 이에 이르기를, ‘환수(還收)를 늦추더라도 죄는 나를 대신하여 오는 자에게 있다.’고 하고, 그 저축한 바를 오로지 다 나누어 주고서 체임(遞任)을 기다리고자 생각합니다. 또 깊고 멀리 떨어진 주(州)·군(郡)을 1주기(周期) 안에 다 순행(巡行)하지 못하니,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민간(民間)의 질고(疾苦)를 보고 듣는 것이 주밀(周密)하지 못합니다. 또 범죄(犯罪)하여 옥사(獄事)에 관계된 자를 왕복하면서 추국(推鞫)할 즈음에 체임(遞任)할 기간이 이미 차면 뒤에 오는 감사가 또한 이에 가게 되니, 이로 인하여 4, 5년에 이르고 혹은 10여 년에 이르지만, 일이 미루어져 결절(決絶)1513) 하지 못하니, 그 폐단이 다단(多端)합니다. 처음에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것을 허락한 뜻은 대개 몹시 춥거나 몹시 더울 때에 잠시 본영(本營)에 쉴 수 있게 한 것으로 생각하며, 항상 본영(本營)에 머무르면서 처자(妻子)와 편안히 앉아서 순행(巡行)을 게을리 하라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 감사의 행차에 역마(驛馬)가 적어도 5, 60필을 내려가지 않으며 역졸(驛卒)이 많으면 백여 인에 이르는데 이를 농민들에게 균배(均排)하니, 농사를 폐지하고 분주하게 일행(一行)을 맞아서 지나 보내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아니되어서 〈행차가 이른다는〉 소식이 먼저 또 이르니 또한 다시 전과 같이 하여야 하므로 폐단이 됨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상량하여 확정하여서 의논을 정하여 거의 폐단을 없앴습니다. 사사로운 행차에는 접대하지 아니하는 것이 영갑(令甲)에 나타나 있으니, 그 감사의 접대와 공적으로 가는 빈객(賓客)이 일년 안에 또한 몇 번쯤이겠습니까? 진실로 매달 매일 잇달아 끊이지 않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순행(巡行)에 부지런하다면 곳에 따라 서로 대접할 뿐인데, 또한 어찌 반드시 본영(本營)에서 지대(支待)하여 폐를 끼치겠습니까? 또 판관(判官)과 목사(牧使)가 모두 인정(人情)을 끊어서 없애고 지대(支待)를 중지하여 없애는데 어찌 감사의 폐단만이 홀로 심하겠습니까?

다만 감사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달려 있는데, 30개월(箇月)의 임기로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법을 시비(是非)하기 때문에 이러한 폐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말하기를, ‘본영(本營)이 거의 모두가 땅이 넓고 일이 번잡하니, 판관(判官) 한 몸으로 홀고 다스리기가 어렵다.’ 한다면 수원(水原)·성주(星州)·김해(金海)·밀양(密陽)·남원(南原)과 같이 모두 일이 번잡한 땅에서도 또한 1원(員)을 두어도 오히려 이를 다스릴 수가 없는데, 본영(本營)만이 홀로 1원(員)으로 하여금 이를 다스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감사가 한 지방을 통틀어 규찰하니, 처자(妻子)를 스스로 수종(隨從)시킬 수가 없다.’고 한다면, 감사가 된 자가 어찌 반드시 세상을 멀리 하고 속세(俗世)를 끊은 뒤에야 족히 격탁 양청(激濁揚淸)1514) 의 직임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수령(守令)이 감사를 알현(謁見)하기 때문에 본영(本營)에 많이 모이므로 지대(支待)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더욱 망령된 말입니다. 비록 형옥(刑獄)의 판결(判決)의 중요한 사건일지라도 으레 문서(文書)로써 서로 통(通)하며, 그 반드시 면대하고 의논하여야 할 일은 또한 결코 없거나 겨우 조금 있을 뿐입니다. 지금 비록 2주년(周年)으로 임기를 정하여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을 없앤다면, 신 등은 외방에서 오래도록 고생하면서 집안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간난(艱難)을 치른다는 말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서 1주기(周期)의 법으로 환원(還元)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계(兩界)의 감사는 2주기(周期)의 구임(久任)이기 때문에 이에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도록 허락하여 이를 시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그러나 폐단이 있다는 말은 일찍이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근일에 의논하는 자들이 분운(紛紜)하게 다투어 이루어진 법을 헐뜯으니, 오직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토호 품관(土豪品官)1515) 과 간리(姦吏)들이 그 감사의 이목(耳目)의 가까이 있어서 그들의 바라는 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을까 꺼려하여, 거짓말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하여서 이와 같이 분운(紛紜)하게 고치자는 의논을 일으켰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법이 어찌 오로지 양계(兩界)에서만 시행되고 다른 도에는 시행할 수 없겠습니까? 양계(兩界)에서 이를 시행하여 폐단이 없는데, 다른 도에 이를 시행한다면 폐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대저 조종(祖宗)의 만든 법은 진실로 이해(利害)가 두드러지게 다른 일이 없다면 의리상 각별히 존중하여 영세토록 전하고 바꾸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법을 세운 지 겨우 3년이 안되어 별로 큰 폐단이 없는데, 지금 갑자기 가볍게 고치는 것은 진실로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직 그대로 두고 후일(後日)을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하겠다."

하였다.

  • [註 1488] 30개월(三十箇月)의 법 : 감사가 30개월 동안 근무하던 제도. 세종 때 감사가 자주 바뀌고 그 임기가 짧아 관할 지역의 민정(民情)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여 만든 법임.
  • [註 1489] 세시(歲時) : 매년 철에 따른 절기(節期).
  • [註 1490] 구임(久任) : 옛날 관원이 한 관직(官職)에 오래 근무하던 제도. 30개월이나 6기(六期)를 근무하던 것을 말함.
  • [註 1491] 사객(使客) : 중앙에서 파견되어 오는 사자(使者).
  • [註 1492] 과객(過客) : 지나가는 사객(使客).
  • [註 1493] 고(考) : 관리의 근무 성적을 고과(考課)함.
  • [註 1494] 건백(建白) : 임금이나 조정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함.
  • [註 1495] 하자(下咨) : 임금이 아랫사람들에게 자문(咨問)을 구하던 것.
  • [註 1496] 계수(界首) : 각도의 요로(要路)에 있는 중심되는 고을. 도(道)와 몇개 고을의 중간 행정을 맡아 보았음.
  • [註 1497] 부서(簿書) : 문서(文書)를 작성하는 것.
  • [註 1498] 기회(期會) : 회계(會計)를 맞추는 것.
  • [註 1499] 적미(糴米) : 환자(還子).
  • [註 1500] 감고(監考) : 조선조 때 각 관아에서 전곡(錢穀)을 맡아 보던 하급 관원.
  • [註 1501] 색리(色吏) : 조선조 때 감영(監營)이나 군아(郡衙)에서 전곡(錢穀)의 출납과 간수(看守)를 맡아 보던 아전.
  • [註 1502] 출척(黜陟) : 관리를 올리고 내치는 것.
  • [註 1503] 수배(隨陪) : 수종하여 따름.
  • [註 1504] 포진(鋪陳) : 잠자리 도구.
  • [註 1505] 청알(請謁) : 인사를 청탁하는 것.
  • [註 1506] 근성(覲省) : 친정에 가서 부모(父母)를 보는 일.
  • [註 1507] 관절(關節) : 관방(關防)의 부절(符節).
  • [註 1508] 2기(二期) : 2주년(周年).
  • [註 1509] 구임(久任) : 한 직임에 오래 있음.
  • [註 1510] 지응(支應) : 지대(支待).
  • [註 1511] 영리(營吏) : 본영(本營)에 딸린 이속(吏屬).
  • [註 1512] 공억(供億) : 접대.
  • [註 1513] 결절(決絶) : 판결.
  • [註 1514] 격탁 양청(激濁揚淸) : 더러운 것을 무찌르고 맑은 것을 드러내는 것. 즉 출척(黜陟).
  • [註 1515] 토호 품관(土豪品官) : 지방의 토호(土豪)로서 벼슬을 하는 사람.

원문

○六曹、臺諫, 議監司兼牧便否。 吏曹判書權孟孫、參議成得識議: "監司挈家赴任, 三十箇月之法, 世宗咨諸大臣, 商確而立, 行之未久, 別無巨弊, 不必輕改。 臣孟孫爲咸吉道監司時, 咸興近處一、二官, 乃於歲時, 有以食物贈送者, 臣拒而不受, 厥後絶無贈送之人。 監司若不受, 則守令安有冒贈者乎? 以至怠於巡行, 亦在監司之勤慢耳, 精加擇遣, 仍舊兼牧, 久任爲便。" 戶曹判書尹炯、參判奇虔、參議金連枝議: "各道監司兼牧, 挈家赴任, 一年之內巡行, 不過一、二度, 常在本營, 各官人吏往來之弊不小, 且未能悉知民間弊瘼, 有違國家委任之意。 乞兩界外, 除兼牧, 期年遞差。" 禮曹判書許詡議: "竊意, 各道監司兼牧之法, 太宗朝, 行之已久, 而未聞如今時之弊。 兩界監司兼尹之法, 亦行之已久, 而未有如他道之弊。 恐其設施之方, 未得其要。 乞令該曹, 訪問弊瘼, 更議施行。" 禮曹參判鄭陟、參議閔恭議: "大抵監司兼牧之官, 地廣民稠, 事務煩劇。 前此牧使、判官共治之時, 勸農及義倉、斂散等事, 不能趁時考察, 稽緩之弊不小, 自監司兼牧之後, 判官一身, 都摠庶務, 使客支待諸事, 尙不能當, 奚暇致慮民事, 剸煩治劇乎? 乞咸吉、平安道外, 其餘各道監司, 依舊一周年爲便。" 兵曹判書閔伸、參判黃守身議: "監司兼牧, 立法未久, 別無巨弊, 輕改未便。" 參議洪深議: "監司兼牧之弊非一。 判官於監司、過客支待之事, 尙且難堪, 況本官庶事, 民間弊瘼, 奚暇治之? 因此居民訴訟, 議送他官, 齎糧往來, 其弊不貲。 且一周相遞, 則殿最之際, 雖有愛憎, 不過二考耳, 三十箇月, 則愛憎之弊, 累及五考, 賢愚同滯, 其流之弊, 不可勝言。 議者以爲: "監司在得其人, 不在兼牧遞期之久近。" 是不知始勤終怠人之常情, 歲月已久, 則寖不如初者, 多矣。 乞依前例, 兩界外, 除挈家赴任, 一周遞差爲便。" 刑曹判書趙惠、參判權克和議: "以一方統察之任, 帶去妻子, 實爲未便。 或因公私緣故, 不得已久留本營, 其官受弊, 不可勝言。 前此牧使、判官共治之時, 庶事尙有遺闕, 民間猶有弊瘼, 今判官雖賢, 安能以一身, 能治庶務? 而況寮屬支待之際, 數少官奴婢, 晝夜奔馳之苦, 所不忍見。 除兼牧, 依舊例, 周年遞差。" 工曹判書鄭麟趾議: "各道監司兼牧, 三十箇月, 臣執以爲可。 天下未有無弊之法, 但酌其輕重耳。" 參議任孝信議: "各道監司兼牧, 判官獨辦州中庶務, 凡事遲滯, 不無民瘼。 監司携妻子赴任, 巡行之期, 似不如昔, 且有文書往來之弊。 伏望, 除兼牧, 依舊, 周年遞差。" 大司憲安完慶、執義申叔舟、掌令羅洪緖議: "監司兼牧, 久於其任, 守令賢否、民間利害, 可以悉知, 決訟處事, 凡所施爲, 亦得預先措置, 庶爲便益。 且立法未久, 別無巨弊, 不宜遽改。" 掌令河緯地、持平尹沔ㆍ文汝寧議: "監司兼牧, 挈家赴任, 當初立法時, 固有駁議, 行之數年, 別無所益, 而其弊不貲。 前此嘗立此法, 亦未久而罷, 必有以也。 依故事, 除兼牧。" 司諫院右司諫崔恒、知司諫洪元用、左獻納金震知、左正言具人文、右正言金孝給議: "監司兼牧, 弊實多端, 衆皆以爲不便, 思欲建白而罷之者久。 況承下咨, 敢不悉疏其亟罷之由乎? 界首之州, 地必大, 民必夥, 爲一方都會, 庶務之煩, 比諸邑百倍, 雖牧使、判官二人, 同心共理, 每患不能堪, 尙欲加置一人以佐之。 今也監司, 則任專巡宣, 雖在本營, 但治道內之事, 而本州庶務, 曾莫之顧。 判官, 則朝夕謁監司, 納各官進上, 應接大、小賓客, 奔走鞅掌, 日復一日, 其於簿領、期會, 慮不暇及, 敢望坐治民事哉? 雖有銜冤訴屈, 齎訟書庭號者, 旬月尙不得一問, 所隷任內, 多或至十數, 其糴種斂散, 亦不得以時, 或令隣邑之宰, 兼管農桑, 無暇勸課, 徭、賦奚暇審定耶? 勢至於此, 不得不委之監考、色吏, 於是姦猾之輩, 舞智弄權, 侵漁剝民, 任情自恣, 判官又奚暇考其是非耶? 夫郡有守, 縣有令, 欲其專於治民也, 雖小邑, 不可一朝無宰。 自監司兼牧以後, 最是界首官、巨州, 實未有治民事者, 此何法也? 古者界首州, 有牧使, 有判官, 以爲民之司命。 今則非惟失牧使, 幷與判官而失之, 界首之民, 何賴? 其不可者, 一也。 國家置監司, 欲其代一人耳目, 而按州、郡, 審守令賢否, 而黜陟之, 詢民生利病, 而興除之也, 必其身之所處, 無所繫著, 心之所存, 無所顧戀, 然後巡行易, 而廉按公也。 雖日驅馳, 不遑寧處, 猶恐其咨諏有未周, 黜陟有未明, 今也甘與妻孥共處而安享, 雖非老且病者, 率在營衙, 怠於巡宣, 遠郡下界之事, 雖要躬親審視, 曾不接耳目, 民之利病, 其得謂周知乎? 監司之任, 實司糾察諸守, 外憲官也。 今則監司旣自兼牧, 視諸郡守令爲一體, 非惟不廉糾耳, 至有庇其過愆, 掩其罪犯。 如聞暗行先聲, 則急遣傳騎而周諭之, 守令亦以爲: ‘彼亦守, 我亦守’, 不畏違令, 不忌犯法, 甚多。 先伺監司之失, 而籍其口, 肆行不義, 莫敢誰何。 雖守令之有識者, 喜其巡察之罕, 而惰於治事, 則一也, 守令之賢否, 其得謂明察乎? 其不可者, 一也。 監司久留本營, 則旁近驛騎, 常不下數十匹, 繫之營前, 馹夫齎糧, 累旬露處, 又其首領官、差使員、敎諭、檢律、察訪、驛丞, 及其隨陪伴從, 諸一行人等, 動以百數, 支待之費, 甚不貲。 一州之力, 豈能獨辦? 米鹽、油醬、魚醢、蔬菜、鋪陳, 細碎之物, 悉皆敷排列郡而斂之, 敷引之數, 多寡在心, 一之不足, 又再之。 列郡之守, 又必輾轉增加, 家抽戶斂, 聚而應之, 駄負轉輸, 其弊不可覶縷。 國家雖重監司之選, 然豈盡得其人? 或厚於人情者, 則前日所斂之物, 隨畜隨散, 或有切齒旁觀, 誰得而沮之耶? 其不可者, 一也。 監司之剛正者, 則固無繁冗之擧、請謁之行, 如或不爾, 則其妻或稱沐浴, 或稱覲省, 出入屑屑, 徒從之盛、供億之繁, 不可勝言。 且其子弟、親戚, 往來絡繹, 淹留之久, 需求之多, 糜費相繼, 皆出民脂。 諸郡守令, 又欲依附其人, 以媒政最, 夤緣請托, 無所不至, 干謁之輻湊, 賂遺之旁午, 安可遏也? 雖非兼牧之日, 或有稱族屬, 稱阿母, 從行黷貨, 以貽人譏者, 況今監司, 常以妻子自隨乎? 貨來、關節之交通, 無怪其然。 其不可者, 一也。 雖然, 此特弊之大略耳, 其詳則不可盡陳。 國家立法, 固欲利國而便民也, 有利而無害, 則法之良, 而不可改者也; 利害相半, 則雖已成之法, 亦當更改而不疑。 況其無利而有害者乎? 兼牧一法, 行之未久, 其弊之多驗, 已至此, 於國無所利, 於民無所便, 但利於爲監司者, 一身耳。 爲監司一身之利, 而行此弊法, 其可乎? 國家始立此法, 欲監司久任而宣化也, 自立此法以後, 惟聞弊日生, 未見少有利。 如或未知其弊則已, 旣已知之, 則在所亟改, 豈可謂已立之法, 而重於更革, 必欲因循耶? 此非臣等獨見如此, 實衆議也。 伏望, 亟罷兼牧, 復行一朞。" 上曰: "僉議不同, 不可不歸一也。 除挈家赴任, 定爲二期, 何如? 其更議于政府。" 領議政河演議: "監司兼牧之法, 謂之未便者, 居多。 諫院之議稍詳, 然不盡言其未便之實也。 謂之便者曰: ‘監司久任, 則周知一道之民情, 又察義倉斂散之法, 使之畢納。’ 然臣聞, 自監司挈家赴任後, 本營難於支待, 公然收斂於各官, 各官又斂於民戶。 務要精備, 至於輸納之時, 本營人吏, 肆其威虐, 必受賄賂, 然後納之本營, 無所産, 監司常食進上贏餘, 恬不爲愧。 沿邊所産之物, 或以驛馬, 或以各官轉輸, 爲本營之用。 且監司族親至, 則爲判官者, 贈遺饋餉, 無所不至, 監司雖聞, 佯若不知, 或有累日請留, 此亦人情不得已之事也, 而監司先犯之。 判官一身, 早暮劬勞, 民雖有疾苦告狀者, 委之姦吏, 多端用事, 民怨實深。 此等之弊, 不可勝記。 或曰: ‘監司久任之法, 爲義倉而設。’ 然權克和, 嘗爲忠淸道監司, 已經三年, 未聞有畢斂義倉之穀。 且淸州, 本營之邑也, 而義倉之穀, 未畢斂之, 何暇告覈諸邑乎? 臣曾陳咸傅霖爲兼牧受各官賂遺之事, 此臣所親見, 有害於國政, 莫若此也。 此法設立之初, 臣具陳其不可, 敎曰: ‘姑且試之, 非欲爲長久之策也。’ 伏望聖斷, 毋兼守令, 一年相遞, 俾專黜陟之任。" 右議政南智議: "臣意大略與演議同, 而又有說焉。 議者所言, 監司兼牧之弊非一, 然監司得人, 則容或有可除之弊。 但本營人吏、奴婢, 不離官門, 晝夜奔走, 支應之弊, 雖使名賢處之, 亦不能盡除矣。 如首領官、敎諭、檢律、營吏、伴從, 幾至五十人, 雖五、六日供億, 至爲艱苦, 若至夏月留數旬, 則其弊不可勝言。 均是各官, 而本營人吏、奴婢, 獨不顧生理, 常在官門, 遂至失農, 豈不可憐? 或言: ‘監司不得久留本營, 則支待之弊, 自無。’ 臣謂, 若使監司留本營日少, 而常自巡行, 則何必挈家赴任? 且都節制使、處置使與沿邊守令, 皆不得挈家赴任, 則監司必須挈家赴任, 何意也? 定以二周年, 除挈家赴任爲便。" 右參贊安崇善議: "監司兼牧之弊, 臣曾已上書。 請除挈家, 以二周爲期。" 右贊成鄭苯、左參贊鄭甲孫議: "監司不久其任, 則義倉斂散, 以爲餘事, 乃謂: ‘還收遲緩, 罪在於代我而來者’, 以其所儲, 惟意盡散, 以待遞任。 又深遠州、郡一期之內, 未及盡巡, 守令賢否、民間疾苦, 聞見未周。 且犯罪係獄者, 往復推鞫之際, 遞期已滿, 後來監司, 亦如之, 因此至于四、五年, 或至十餘年, 淹滯不決, 其弊多端。 初許挈家赴任之意, 蓋謂, 極寒盛暑, 暫可休於本營, 非謂, 常留本營, 與妻子安坐, 而怠於巡行也。 且監司之行, 驛馬少不下五、六十, 驛卒多至百(除)〔餘〕 人, 均是農民, 而廢農奔走, 送過一行, 還家未幾, 而先聲又至, 亦復如前, 爲弊無窮。 故其時商確定議, 庶幾除弊耳。 私行不接, 著在令甲, 其監司所接、公行賓客, 則一年之內, 亦幾許哉? 固非每月每日, 絡繹不絶之比也。 況勤於巡行, 則隨處相接矣, 亦豈必於本營支待而貽弊乎? 且判官、牧使, 豈皆絶無人情, 頓除支待, 而監司之弊, 獨有甚焉乎? 只在監司賢否, 非是三十箇月挈家赴任之法, 生此弊也。 若曰: ‘本營率皆地廣事繁, 判官一身, 難以獨治’, 則如水原、星州、金海、密陽、南原, 皆是煩劇之地, 亦置一員, 猶可治之, 不應本營獨不可使一員治之也。 若曰: ‘監司, 一方統察, 不可以家累自隨’, 則爲監司者, 豈必離世絶俗, 然後足以盡激濁揚淸之任乎? 其曰: ‘守令因謁監司, 多集本營, 不勝支待’者, 尤是妄也。 雖刑決重事, 例以文書相通, 其必面議之事, 亦絶無而僅有也。 今雖定以二周年, 除挈家赴任, 臣等恐, 久勞于外, 遠離家室, 經過艱難之說, 必復起, 而還爲一期之法矣。 兩界監司, 以其再期之久, 故乃許挈家赴任, 行之已久, 而有弊之說, 曾所未聞。 近日議者紛紜, 爭毁成法, 獨何心哉? 是必土豪、品官、姦吏, 忌其監司耳目之在近, 不得逞其所欲, 胥動浮言, 致此紛更之議。 挈家赴任之法, 豈獨行於兩界, 而不可行於他道哉? 行之兩界則無弊, 行之他道則有弊, 必無是理。 大抵祖宗成憲, 苟無利害懸絶之事, 則義當恪遵, 傳之永世, 而勿替也。 此法之立, 纔未三年, 別無巨弊, 今遽輕改, 誠爲未便。" 上曰: "姑置之, 以待後日, 更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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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실록5권, 문종 즉위년 12월 29일 기해 7/9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육조와 대간에서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것의 편부를 논의하다

국역

육조(六曹)와 대간(臺諫)에서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것[兼牧]이 편하고 편하지 않은 것을 의논하니, 이조 판서 권맹손(權孟孫)과 참의 성득식(成得識)이 의논하기를,

"감사가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30개월(三十箇月)의 법1488) 은 세종께서 여러 대신들에게 물어서 상량하여 확정하여서 입법(立法)하였는데, 시행한 지 오래 되지 않고 별로 큰 폐단이 없으니 반드시 가볍게 고칠 것이 없습니다. 신(臣) 권맹손이 함길도 감사(咸吉道監司)가 되었을 때 함흥(咸興) 근처 한두 고을에서 이에 세시(歲時)1489) 에 음식물을 증여하여 보내는 자가 있었으나 신이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더니, 그 후에는 증여하여 보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감사가 만약 받지 않는다면 수령(守令)이 어찌 모람되게 증여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순행(巡行)에 태만하기에 이르는 것은 또한 감사의 부지런하고 게으른 데 달렸을 뿐이므로 정밀히 사람을 골라서 보내어야 합니다. 옛날 그대로 목사(牧使)를 겸임하여 구임(久任)1490)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호조 판서 윤형(尹炯)·참판 기건(奇虔)·참의 김연지(金連枝)가 의논하기를,

"각도의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면 1년 내에 순행(巡行)하는 것이 한두 차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요, 항상 본영(本營)에 있어서 각 고을의 인리(人吏)가 왕래하는 폐단이 작지 않을 것이며, 또 능히 민간의 폐막(弊瘼)을 모조리 알 수가 없으니, 나라에서 위임(委任)한 뜻에 어그러짐이 있습니다. 빌건대 양계(兩界) 이외에는 목사를 겸임하는 것을 없애고 기년(期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소서."

하고, 예조 판서 허후(許詡)는 의논하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각도의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법은 태종조(太宗朝)부터 이를 시행하여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 오늘날과 같은 폐단을 듣지 못하였고, 양계(兩界)의 감사가 부윤(府尹)을 겸임하는 법도 또한 이를 시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아직 다른 도(道)와 같은 폐단이 있지 않았으니, 그 설시(設施)하는 방도에 그 요체(要諦)를 얻지 못한 것일까 합니다. 빌건대 이제 해당 조(曹)로 하여금 그 폐단을 찾아 조사하도록 하여서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소서."

하고, 예조 참판 정척(鄭陟)·예조 참의 민공(閔恭)은 의논하기를,

"대개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고을은 땅이 넓고 백성들이 조밀(稠密)하여 사무가 번잡합니다. 이보다 앞서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함께 다스릴 때에도 권농(勸農)과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따위의 일을 능히 제때에 맞추어 고찰(考察)할 수가 없어서 일이 늦추어지는 폐단이 작지 않았습니다. 감사가 목사를 겸임한 후로부터 판관(判官) 한 몸이 온갖 사무를 도맡아 총괄하므로, 사객(使客)1491) 을 지대(支待)하는 여러 가지 일도 오히려 능히 감당하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백성들의 일에 마음이 미쳐서 번잡한 일을 결단하여 다스리겠습니까? 빌건대 함길도(咸吉道)·평안도(平安道) 이외에 그 나머지 각도의 감사는 옛날 그대로 1주년(周年)으로 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병조 판서 민신(閔伸)·참판 황수신(黃守身)은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법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고 별로 큰 폐단이 없으니, 가볍게 고치는 것은 미편(未便)합니다."

하고, 참의 홍심(洪深)은 의논하기를,

"감사와 목사를 겸임하는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판관(判官)이 감사나 과객(過客)1492) 에게 지대(支待)하는 일도 오히려 또 감당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본 고을의 여러 가지 일과 민간의 폐막(弊瘼)을 어느 겨를에 다스리겠습니까 이로 인하여 거민(居民)의 소송(訴訟)을 의논하여 다른 고을로 보내니, 양식을 가지고 왕래하는 폐단도 작지 않습니다. 또 1주년(周年)에 서로 체임(遞任)한다면 전최(殿最)할 즈음에 비록 사랑하고 미워함이 있더라도 2고(考)1493) 에 지나지 않지만, 30개월(箇月)이면 사랑하고 미워하는 폐단의 누(累)가 5고(考)에까지 미치므로, 어진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똑같이 엄체(淹滯)되니, 그 말류(末流)의 폐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감사를 그 적당한 사람으로 얻는 데 달려 있지, 목사를 겸임하거나 교체(交遞)하는 기간이 오래고 가까운 데 달려 있지 않다.’고 하나, 이것은 사람의 처음에는 부지런하나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상정(常情)을 모르는 것이니, 세월이 이미 오래되면 침체되어 처음과 같지 아니한 자가 많습니다. 빌건대 전례(前例)에 의하여 양계(兩界) 이외에는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을 없애고, 1주년(周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형조 판서 조혜(趙惠)·참판 권극화(權克和)는 의논하기를,

"한 지방을 통찰(統察)하는 직임을 띠고서 처자(妻子)를 데리고 가는 것은 실로 미편(未便)합니다. 혹은 공사(公私)의 연고(緣故)로 인하여 부득이 오랫동안 본영(本營)에 머물러 있으면 그 고을이 받는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앞서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함께 다스릴 때에도 여러 가지 일에 오히려 잊고 빠뜨리는 것이 있어서 민간(民間)에 오히려 폐막(弊瘼)이 있었는데, 이제 판관이 비록 현명하다 하더라도 어찌 능히 하나의 몸으로서 온갖 사무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구나 요속(寮屬)을 지대(支待)할 즈음에 수가 적은 관노비(官奴婢)가 밤낮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고생은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없애고 구례(舊例)에 의하여 1주년(周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소서."

하고, 공조 판서 정인지(鄭麟趾)는 의논하기를,

"각도의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30개월(箇月)을 채우는 것을 신은 옳다고 주장합니다. 천하(天下)에 폐단이 없는 법은 있지 않으니, 다만 그 폐단의 경중(輕重)을 헤아릴 뿐입니다."

하고, 참의 임효신(任孝信)은 의논하기를,

"각도의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면 판관(判官)이 홀로 고을 안의 온갖 사무를 맡아 보므로 모든 일이 지체(遲滯)되니, 백성들에게 폐단이 없지 아니합니다. 감사가 처자(妻子)를 거느리고 부임(赴任)하면 순행(巡行)하는 기간이 옛날과 같지 아니할 것 같으며, 또 문서(文書)를 왕래하는 폐단이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없애고 옛날 그대로 1주년(周年)으로 체임(遞任)하여 보내소서."

하고, 대사헌(大司憲) 안완경(安完慶)·집의(執義) 신숙주(申叔舟)·장령(掌令) 나홍서(羅洪緖)는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여 그 직임에 오래 있으면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않은 것과 민간(民間)의 이(利)되고 해(害)되는 것을 모조리 알 수 있으니, 소송을 결단(決斷)하고 일을 처리하는 등 모든 시행하는 바가 또한 미리 먼저 조치(措置)할 수가 있으므로 거의 편익할 것 같습니다. 또 법을 세운 지 오래 되지 아니하여 별로 큰 폐단이 없는데, 갑자기 고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고, 장령(掌令) 하위지(河緯地)·지평(持平) 윤면(尹沔)·문여령(文汝寧)은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여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은 당초에 법을 세울 때에 진실로 반박하는 의논이 있었고, 이를 몇 년 동안 시행하였으나 별로 이익된 바가 없었지만, 그러나 그 폐단은 작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일찍이 이 법을 세웠다가 또한 오래 되지 아니하여 혁파(革罷)하였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고사(故事)에 의거하여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없애소서."

하고, 사간원 우사간(司諫院右司諫) 최항(崔恒)·지사간(知司諫) 홍원용(洪元用)·좌헌납(左獻納) 김진지(金震知)·좌정언(左正言) 구인문(具人文)·우정언(右正言) 김효급(金孝給)은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것은 폐단이 실로 대단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불편하였다.’고 하므로, 건백(建白)1494) 하여 이를 혁파하고자 생각한지 오래였습니다. 더군다나 하자(下咨)1495) 를 받들고 감히 그것을 빨리 혁파해야 할 이유를 자세하게 상소(上疏)하지 않겠습니까? 계수(界首)1496) 의 고을은 땅이 반드시 크고 백성들이 많아서 한 지방의 도회소(都會所)가 되므로, 온갖 사무의 번잡함이 여러 고을의 백 배(倍)와 비견합니다. 비록 목사·판관(判官) 두 사람이 두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다스려도 매양 능히 감당하지 못할까 걱정되었으므로, 오히려 1인을 더 두어서 이를 보좌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감사의 직임이 순행(巡行)하면서 교화를 펴는 데 오로지 하므로, 비록 본영(本營)에 있다고 하더라도 다만 도내의 일만을 다스릴 뿐이며, 본 고을의 여러 사무는 일찍이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판관(判官)은 아침 저녁으로 감사를 알현(謁見)하고, 각 고을의 진상(進上)을 받아들이고, 대소 빈객(賓客)을 접대하는 등 분주하게 바삐 일하여 하루에 이틀치의 일을 하지만, 그 부서(簿書)1497) ·기회(期會)1498) 에 대하여 생각이 어느 겨를에 미치겠으며, 감히 앉아서 백성들의 일을 다스리기를 바라겠습니까? 비록 억울함을 품고 원통함을 호소하여 소송하는 서류를 가지고 뜰에서 부르짖은 지 열흘이나 달포가 지나도 오히려 한 번 물어보지 않는 사건이 소속한 관내(管內)에서 많으면 혹은 수십 건에 이릅니다. 적미(糴米)1499) 와 곡식 종자를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것도 또한 제때에 할 수 없어서 혹은 이웃 고을의 수령(守令)으로 하여금 겸하여 관리하도록 하는데, 농상(農桑)을 권과(勸課)할 겨를이 없는데 요역(徭役)과 부세(賦稅)를 어느 겨를에 심정(審定)하겠습니까? 형세가 이 지경에 이르러 이를 감고(監考)1500) ·색리(色吏)1501) 에게 맡기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여기에서 간활(姦猾)한 무리들이 잔 꾀를 부려서 권력을 농락하고 백성들을 침어(侵漁)하여 괴롭히고 제마음대로 스스로 방자하게 굴지만, 판관(判官)이 어느 겨를에 그 시비(是非)를 고찰하겠습니까?

대체로 군(郡)에는 수(守)가 있고, 현(縣)에는 영(令)이 있는 것은 그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오로지 하게 하고자 함인데, 비록 작은 고을이라 하더라도 하루 아침인들 수령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감사가 목사(牧使)를 겸임한 이후로는 최근에는 계수관(界首官)이나 큰 고을에는 실로 백성들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있지 아니 하니, 이것이 무슨 법입니까? 옛날에는 계수주(界首州)에는 목사(牧使)가 있고 판관(判官)이 있어서 백성들을 위하여 명(命)을 맡아 보았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목사(牧使) 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판관(判官)도 잃어버렸으니 계수관(界首官)의 백성들이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국가에서 감사를 두는 것은 그가 임금[一人]의 이목(耳目)을 대신하여 주(州)·군(郡)을 안무(按撫)하고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살펴서 이들을 출척(黜陟)1502) 하고, 민생(民生)의 이롭고 해되는 것을 물어서 이를 장려하거나 없애기도 하는데 반드시 그 몸의 처하는 곳에 얽매여 망설이는 바가 없고 그 마음을 두는 곳에는 돌아보고 연연하는 바가 없는 뒤에야 순행(巡行)함이 쉽고 안렴(按廉)함이 공평할 것입니다. 비록 날마다 말을 몰아서 달리고 편안한 곳에 있을 겨를이 없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민정(民情)을〉 묻는 것이 주밀하지 못하고 출척(黜陟)이 밝지 못할까 두려운데, 지금은 처자(妻子)와 함께 거처하면서 편안히 사는 것을 달갑게 여기고 비록 늙고 병든 자가 아니더라도 대개 본영(本營)의 관아(官衙)에 있으면서 순행(巡行)하고 교화를 펴는 데에 게을리 하니, 먼 군(郡)이나 떨어져 있는 고을의 일을 비로소 몸소 친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더라도 한 번도 이목(耳目)으로 접(接)하여 보지 아니하는데, 백성들의 이롭고 해되는 것을 그가 두루 안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감사의 직임은 실로 여러 수령을 규찰(糾察)하는 일을 맡아 보니, 외방의 헌관(憲官)입니다. 지금은 감사가 이미 목사를 겸하면서부터 여러 군(郡)의 수령(守令)들을 보기를 일체(一體)로 하니, 오로지 규찰하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허물을 비호(庇護)하고 그 범죄를 덮어 주기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암행(暗行)의 소식을 먼저 들으면 급히 전령(傳令)의 기마(騎馬)를 보내어 두루 이를 알리니, 수령(守令)도 또한 생각하기를, ‘저도 또한 수령이요, 나도 또한 수령이다.’하고 법령을 어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법령을 범하기를 꺼려하지 않는 경우가 심히 많습니다. 먼저 감사의 잘못을 엿보아서 그것을 구실로 삼아 마음대로 불의(不義)를 행하니, 감히 누가 무엇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비록 수령(守令) 가운데 유식(有識)한 자라도 그 순찰(巡察)의 드문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일을 다스리는 데에 게을리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아니함을 그가 밝게 규찰한다고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감사가 본영(本營)에 오래도록 머문다면 부근의 역마(驛馬)가 항상 수십 필을 내려가지 아니하고 본영 앞에 매어 두니, 역부(驛夫)가 양식을 지고 십여 일이 지나도록 한데에서 거처하고, 또 수령관(首領官)·차사원(差使員)·교유(敎諭)·검률(檢律)·찰방(察訪)·역승(驛丞)과 그 수배(隨陪)1503) 하는 반종(伴從) 등 여러 일행 사람들이 걸핏하면 백여 명이나 되니, 지대(支待)하는 비용이 심히 적지 않습니다. 한 고을의 힘으로서 어찌 능히 홀로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쌀·소금·기름·간장·어해(魚醢)·채소(菜蔬)·포진(鋪陳)1504) 등 세세한 물건을 모조리 모두 여러 군(郡)에다 나누어 안배하여 이를 거두는데, 나누어 거두는 숫자가 많고 적은 것을 마음대로 하며,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또 다시 거둡니다. 여러 군(郡)의 수령들이 또 반드시 전전(輾轉)하여 숫자를 더 불리어 집집마다 거두어 모아서 이에 응(應)하니, 짐바리에 싣고 짐을 지고서 전수(轉輸)하는데 그 폐단을 상세하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에서 비록 감사의 선임(選任)을 중하게 하지만, 그러나 어찌 그 알맞은 사람을 다 얻겠습니까? 혹은 인정(人情)에 후(厚)한 자는 전날에 거두어 들인 물건들을 때로 비축(備蓄)하기도 하고 때로 나누어 주기도 하며, 혹은 분개하여 이를 갈고 방관(旁觀)하더라도 누가 이를 저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감사 가운데 강직(剛直)하고 바른 자는 진실로 번잡한 거동이나 청알(請謁)1505) 의 행동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혹시 그가 그렇지 아니하면 그 처(妻)가 혹은 목욕(沐浴)한다고 칭하고 혹은 근성(覲省)1506) 한다고 칭하고 출입(出入)하기를 자주하여, 성대한 수종(隨從)과 번잡한 공억(供億)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 자제(子弟)나 친척(親戚)이 왕래(往來)하여 잇달아 끊이지 아니하는데 오래도록 머물고 요구하는 것이 많으니 막대한 비용을 서로 잇대는 것이 모두 백성들의 피땀에서 나옵니다. 여러 군(郡)의 수령(守令)이 또 그 사람에게 의지하여 아부하여 정사(政事)의 좋은 성적[最]을 따고자 하여 청탁(請託)에 인연하여 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간알(干謁)의 폭주(輻湊)함과 뇌물의 주고받음의 심함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감사가〉 목사를 겸하는 폐가 아니라 하더라도 혹은 족속(族屬)이라 칭하기도 하고 어머니[阿母]를 따라가는 것이라 칭하기도 하면서 재화(財貨)를 뇌물로 바쳐서 남의 비난을 사는 자가 있는데, 하물며 지금 감사가 항상 처자(妻子)를 스스로 수종(隨從)시키는 경우이겠습니까? 재화(財貨)를 가져와 관절(關節)1507) 과 서로 통(通)하고도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니, 그 불가(不可)한 것이 한 가지입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특별한 폐단의 대략(大略)일 뿐입니다. 그 상세한 것은 다 진술(陳述)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에서 법을 세운 것은 진실로 나라를 이롭게 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고자 함인데, 이익은 있으나 폐해가 없다면 즉 법으로서 좋은 것이며,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익과 폐해가 상반(相伴)된다면 비록 이미 이루어진 법이라도 또한 마땅히 다시 고쳐 의심스러움이 없게 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그것이 아무런 이익이 없고 폐단만이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감사가〉 목사를 겸하는 한 가지 법(法)은 시행한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였으나, 그 폐단이 많다는 증험이 이미 이에 이르렀으니, 국가에 이익되는 바가 없고, 백성들에게 편리한 바가 없고, 다만 감사 한 몸에만 이익이 될 뿐입니다. 감사의 한 몸에만 이익이 되는데도 이러한 폐법(弊法)을 시행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국가에서 처음에 이 법을 세운 것은 감사를 구임(久任)시켜서 교화(敎化)를 펴려고 하였던 것이지만, 이 법을 세운 이후로부터 오직 폐단만이 날로 생긴다고 들었으나 아직 조그마한 이익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만약 혹시 그 폐단을 알지 못하였다면 그만이지만, 이미 그것을 알았다면 빨리 고치는 데 있을 뿐이요, 어찌 가히 이미 세운 법이라고 일컫고서 다시 혁파(革罷)하기를 무겁게 여겨 반드시 인순(因循)하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신 등이 홀로 이와 같이 보는 것이 아니라, 실로 여러 사람들의 의논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제도를 혁파하여 다시 1주년(周年)으로 행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같지 아니하니, 한 가지로 귀결(歸結)지울 수가 없다.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을 없애고 2기(二期)1508) 로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그것을 다시 정부에 의논하라."

하니, 영의정 하연(河演)이 의논하기를,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법을 미편(未便)하다고 이르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간원(諫院)의 의논이 조금 상세하지만, 그러나 미편(未便)한 실상을 거의 다 말한 것이 아닙니다. 편(便)하다고 이르는 자들은 말하기를, ‘감사가 구임(久任)1509) 하면 한 도의 민정(民情)을 두루 알고, 또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법을 살펴서 이로 하여금 바치기를 끝내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이 듣건대 감사가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한 후로부터 본영(本營)에서 지대(支待)하기가 어려워서 공공연히 각 고을에서 거두어 들이는데, 각 고을에서는 또 민호(民戶)에서 거둔다고 합니다. 사무는 정하게 갖추는 것이 요체(要諦)인데, 수납(輸納)할 때에 이르러 본영(本營)의 인리(人吏)들이 그 위압(威壓)과 침학(侵虐)을 부려서 반드시 뇌물을 받은 뒤에 이를 납입(納入)시키는데, 본영(本營)에서는 소산(所産)이 없고 감사는 진상(進上)한 나머지를 항상 먹고도 뻔뻔스럽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연변(沿邊)에서 생산하는 바의 물건을 혹은 역마(驛馬)로 나르고 혹은 각 고을에서 전수(轉輸)하여 본영(本營)의 용도에 씁니다. 또 감사의 족친(族親)이 이르면 판관(判官)이 된 자는 물건을 증유(贈遺)하고 음식물을 궤향(饋餉)하는 등 하지 않는 바가 없는데, 감사는 비록 듣더라도 짐짓 알지 못하는 체 하므로, 혹은 여러 날을 머물도록 청하니, 이것도 또한 인정(人情)으로 부득이한 일이라 하겠으나 감사가 먼저 이를 범합니다. 판관(判官) 한 몸으로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수고하나, 백성들이 비록 질고(疾苦)를 고장(告狀)하는 자가 있더라도 간리(姦吏)에게 이를 맡기므로, 다단(多端)하게 권력을 악용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실로 많으니, 이러한 따위의 폐단은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감사의 구임(久任)하는 법은 의창(義倉)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고 하지만, 그러나 권극화(權克和)가 일찍이 충청도 감사가 되어서 이미 3년이 지났으나, 아직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를 끝마쳤다고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청주는 본영(本營)이 있는 고을인데도 의창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를 아직 끝마치지 못하였는데, 어느 겨를에 여러 고을을 고핵(告覈)하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함부림(咸傅霖)이 〈감사로서〉 목사를 겸임하였을 때 각 고을의 뇌물을 받은 사건을 진달(陳達)하였는데, 신의 친히 본 바이니, 국정(國政)에 해가 되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 법을 설립(設立)하던 당초에 신이 그 불가(不可)한 것을 진술(陳述)하였더니, 하교(下敎)하시기를, ‘우선 한 번 시험하는 것이요, 장구(長久)한 계책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께서 결단하여 〈감사가〉 수령(守令)을 겸임하지 말게 하고, 1년 기간으로 서로 체임(遞任)하여서 출척(黜陟)의 임무를 오로지하게 하소서."

하고, 우의정 남지(南智)는 의논하기를,

"신의 뜻은 대략 하연이 의논한 것과 같으나 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의논하는 자들의 말하는 바는 감사가 목사를 겸임하는 폐단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나 감사를 알맞은 사람을 얻으면 간혹 폐단을 없앨 수도 있습니다. 다만 본영(本營)의 인리(人吏)와 노비(奴婢)가 관문(官門)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분주하게 지응(支應)1510) 하는 폐단을 비록 명현(名賢)으로 하여금 이를 처리하게 하더라도 또한 능히 다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수령관(首領官)·교유(敎諭)·검률(檢律)·영리(營吏)1511) ·반종(伴從)들이 거의 50인에 이른다면 비록 5, 6일을 공억(供億)1512) 하더라도 간고(艱苦)하기에 이르는데, 만약 여름철 수십 일을 머문다면,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각 고을에 이를 균배(均排)하지만, 그러나 본영(本營)의 인리(人吏)와 노비(奴婢)가 홀로 생활을 돌보지 않고 항상 관문(官門)에 붙어 있다가 드디어 실농(失農)하기에 이르니, 어찌 가련하지 않겠습니까? 혹자는 말하기를, ‘감사를 본영(本營)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게 한다면 지대(支待)하는 폐단이 절로 없어질 것이다.’고 하지만, 신은 생각건대 만약 감사로 하여금 본영(本營)에 머무는 날을 적게 하고서 항상 스스로 순행(巡行)하게 한다면 어찌 반드시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게 하겠습니까? 또 도절제사(都節制使)·처치사(處置使)와 연변(沿邊)의 수령(守令)들이 모두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지 못하는데, 감사가 반드시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여야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2주년(周年)으로 정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하고, 우참찬(右參贊) 안숭선(安崇善)이 의논하기를,

"감사(監司)가 목사(牧使)를 겸임하는 폐단을 신이 일찍이 이미 상서(上書)하였습니다. 청컨대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것을〉 없애고 2주년(周年)을 기간으로 하소서."

하고, 우찬성(右贊成) 정분(鄭苯)·좌참찬(左參贊) 정갑손(鄭甲孫)이 의논하기를,

"감사가 그 직임에 오래 있지 아니하면 의창(義倉)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나누어 주는 일을 여사(餘事)로 생각하고, 이에 이르기를, ‘환수(還收)를 늦추더라도 죄는 나를 대신하여 오는 자에게 있다.’고 하고, 그 저축한 바를 오로지 다 나누어 주고서 체임(遞任)을 기다리고자 생각합니다. 또 깊고 멀리 떨어진 주(州)·군(郡)을 1주기(周期) 안에 다 순행(巡行)하지 못하니, 수령(守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민간(民間)의 질고(疾苦)를 보고 듣는 것이 주밀(周密)하지 못합니다. 또 범죄(犯罪)하여 옥사(獄事)에 관계된 자를 왕복하면서 추국(推鞫)할 즈음에 체임(遞任)할 기간이 이미 차면 뒤에 오는 감사가 또한 이에 가게 되니, 이로 인하여 4, 5년에 이르고 혹은 10여 년에 이르지만, 일이 미루어져 결절(決絶)1513) 하지 못하니, 그 폐단이 다단(多端)합니다. 처음에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는 것을 허락한 뜻은 대개 몹시 춥거나 몹시 더울 때에 잠시 본영(本營)에 쉴 수 있게 한 것으로 생각하며, 항상 본영(本營)에 머무르면서 처자(妻子)와 편안히 앉아서 순행(巡行)을 게을리 하라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 감사의 행차에 역마(驛馬)가 적어도 5, 60필을 내려가지 않으며 역졸(驛卒)이 많으면 백여 인에 이르는데 이를 농민들에게 균배(均排)하니, 농사를 폐지하고 분주하게 일행(一行)을 맞아서 지나 보내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아니되어서 〈행차가 이른다는〉 소식이 먼저 또 이르니 또한 다시 전과 같이 하여야 하므로 폐단이 됨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상량하여 확정하여서 의논을 정하여 거의 폐단을 없앴습니다. 사사로운 행차에는 접대하지 아니하는 것이 영갑(令甲)에 나타나 있으니, 그 감사의 접대와 공적으로 가는 빈객(賓客)이 일년 안에 또한 몇 번쯤이겠습니까? 진실로 매달 매일 잇달아 끊이지 않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데, 하물며 순행(巡行)에 부지런하다면 곳에 따라 서로 대접할 뿐인데, 또한 어찌 반드시 본영(本營)에서 지대(支待)하여 폐를 끼치겠습니까? 또 판관(判官)과 목사(牧使)가 모두 인정(人情)을 끊어서 없애고 지대(支待)를 중지하여 없애는데 어찌 감사의 폐단만이 홀로 심하겠습니까?

다만 감사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에 달려 있는데, 30개월(箇月)의 임기로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법을 시비(是非)하기 때문에 이러한 폐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말하기를, ‘본영(本營)이 거의 모두가 땅이 넓고 일이 번잡하니, 판관(判官) 한 몸으로 홀고 다스리기가 어렵다.’ 한다면 수원(水原)·성주(星州)·김해(金海)·밀양(密陽)·남원(南原)과 같이 모두 일이 번잡한 땅에서도 또한 1원(員)을 두어도 오히려 이를 다스릴 수가 없는데, 본영(本營)만이 홀로 1원(員)으로 하여금 이를 다스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감사가 한 지방을 통틀어 규찰하니, 처자(妻子)를 스스로 수종(隨從)시킬 수가 없다.’고 한다면, 감사가 된 자가 어찌 반드시 세상을 멀리 하고 속세(俗世)를 끊은 뒤에야 족히 격탁 양청(激濁揚淸)1514) 의 직임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수령(守令)이 감사를 알현(謁見)하기 때문에 본영(本營)에 많이 모이므로 지대(支待)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더욱 망령된 말입니다. 비록 형옥(刑獄)의 판결(判決)의 중요한 사건일지라도 으레 문서(文書)로써 서로 통(通)하며, 그 반드시 면대하고 의논하여야 할 일은 또한 결코 없거나 겨우 조금 있을 뿐입니다. 지금 비록 2주년(周年)으로 임기를 정하여 가족을 데리고 부임(赴任)하는 것을 없앤다면, 신 등은 외방에서 오래도록 고생하면서 집안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간난(艱難)을 치른다는 말이 반드시 다시 일어나서 1주기(周期)의 법으로 환원(還元)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계(兩界)의 감사는 2주기(周期)의 구임(久任)이기 때문에 이에 가족을 거느리고 부임하도록 허락하여 이를 시행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나, 그러나 폐단이 있다는 말은 일찍이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근일에 의논하는 자들이 분운(紛紜)하게 다투어 이루어진 법을 헐뜯으니, 오직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토호 품관(土豪品官)1515) 과 간리(姦吏)들이 그 감사의 이목(耳目)의 가까이 있어서 그들의 바라는 바를 마음대로 부릴 수 없을까 꺼려하여, 거짓말을 퍼뜨려 인심을 선동하여서 이와 같이 분운(紛紜)하게 고치자는 의논을 일으켰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법이 어찌 오로지 양계(兩界)에서만 시행되고 다른 도에는 시행할 수 없겠습니까? 양계(兩界)에서 이를 시행하여 폐단이 없는데, 다른 도에 이를 시행한다면 폐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대저 조종(祖宗)의 만든 법은 진실로 이해(利害)가 두드러지게 다른 일이 없다면 의리상 각별히 존중하여 영세토록 전하고 바꾸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 법을 세운 지 겨우 3년이 안되어 별로 큰 폐단이 없는데, 지금 갑자기 가볍게 고치는 것은 진실로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아직 그대로 두고 후일(後日)을 기다렸다가 다시 의논하겠다."

하였다.

  • [註 1488] 30개월(三十箇月)의 법 : 감사가 30개월 동안 근무하던 제도. 세종 때 감사가 자주 바뀌고 그 임기가 짧아 관할 지역의 민정(民情)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여 만든 법임.
  • [註 1489] 세시(歲時) : 매년 철에 따른 절기(節期).
  • [註 1490] 구임(久任) : 옛날 관원이 한 관직(官職)에 오래 근무하던 제도. 30개월이나 6기(六期)를 근무하던 것을 말함.
  • [註 1491] 사객(使客) : 중앙에서 파견되어 오는 사자(使者).
  • [註 1492] 과객(過客) : 지나가는 사객(使客).
  • [註 1493] 고(考) : 관리의 근무 성적을 고과(考課)함.
  • [註 1494] 건백(建白) : 임금이나 조정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함.
  • [註 1495] 하자(下咨) : 임금이 아랫사람들에게 자문(咨問)을 구하던 것.
  • [註 1496] 계수(界首) : 각도의 요로(要路)에 있는 중심되는 고을. 도(道)와 몇개 고을의 중간 행정을 맡아 보았음.
  • [註 1497] 부서(簿書) : 문서(文書)를 작성하는 것.
  • [註 1498] 기회(期會) : 회계(會計)를 맞추는 것.
  • [註 1499] 적미(糴米) : 환자(還子).
  • [註 1500] 감고(監考) : 조선조 때 각 관아에서 전곡(錢穀)을 맡아 보던 하급 관원.
  • [註 1501] 색리(色吏) : 조선조 때 감영(監營)이나 군아(郡衙)에서 전곡(錢穀)의 출납과 간수(看守)를 맡아 보던 아전.
  • [註 1502] 출척(黜陟) : 관리를 올리고 내치는 것.
  • [註 1503] 수배(隨陪) : 수종하여 따름.
  • [註 1504] 포진(鋪陳) : 잠자리 도구.
  • [註 1505] 청알(請謁) : 인사를 청탁하는 것.
  • [註 1506] 근성(覲省) : 친정에 가서 부모(父母)를 보는 일.
  • [註 1507] 관절(關節) : 관방(關防)의 부절(符節).
  • [註 1508] 2기(二期) : 2주년(周年).
  • [註 1509] 구임(久任) : 한 직임에 오래 있음.
  • [註 1510] 지응(支應) : 지대(支待).
  • [註 1511] 영리(營吏) : 본영(本營)에 딸린 이속(吏屬).
  • [註 1512] 공억(供億) : 접대.
  • [註 1513] 결절(決絶) : 판결.
  • [註 1514] 격탁 양청(激濁揚淸) : 더러운 것을 무찌르고 맑은 것을 드러내는 것. 즉 출척(黜陟).
  • [註 1515] 토호 품관(土豪品官) : 지방의 토호(土豪)로서 벼슬을 하는 사람.

원문

○六曹、臺諫, 議監司兼牧便否。 吏曹判書權孟孫、參議成得識議: "監司挈家赴任, 三十箇月之法, 世宗咨諸大臣, 商確而立, 行之未久, 別無巨弊, 不必輕改。 臣孟孫爲咸吉道監司時, 咸興近處一、二官, 乃於歲時, 有以食物贈送者, 臣拒而不受, 厥後絶無贈送之人。 監司若不受, 則守令安有冒贈者乎? 以至怠於巡行, 亦在監司之勤慢耳, 精加擇遣, 仍舊兼牧, 久任爲便。" 戶曹判書尹炯、參判奇虔、參議金連枝議: "各道監司兼牧, 挈家赴任, 一年之內巡行, 不過一、二度, 常在本營, 各官人吏往來之弊不小, 且未能悉知民間弊瘼, 有違國家委任之意。 乞兩界外, 除兼牧, 期年遞差。" 禮曹判書許詡議: "竊意, 各道監司兼牧之法, 太宗朝, 行之已久, 而未聞如今時之弊。 兩界監司兼尹之法, 亦行之已久, 而未有如他道之弊。 恐其設施之方, 未得其要。 乞令該曹, 訪問弊瘼, 更議施行。" 禮曹參判鄭陟、參議閔恭議: "大抵監司兼牧之官, 地廣民稠, 事務煩劇。 前此牧使、判官共治之時, 勸農及義倉、斂散等事, 不能趁時考察, 稽緩之弊不小, 自監司兼牧之後, 判官一身, 都摠庶務, 使客支待諸事, 尙不能當, 奚暇致慮民事, 剸煩治劇乎? 乞咸吉、平安道外, 其餘各道監司, 依舊一周年爲便。" 兵曹判書閔伸、參判黃守身議: "監司兼牧, 立法未久, 別無巨弊, 輕改未便。" 參議洪深議: "監司兼牧之弊非一。 判官於監司、過客支待之事, 尙且難堪, 況本官庶事, 民間弊瘼, 奚暇治之? 因此居民訴訟, 議送他官, 齎糧往來, 其弊不貲。 且一周相遞, 則殿最之際, 雖有愛憎, 不過二考耳, 三十箇月, 則愛憎之弊, 累及五考, 賢愚同滯, 其流之弊, 不可勝言。 議者以爲: "監司在得其人, 不在兼牧遞期之久近。" 是不知始勤終怠人之常情, 歲月已久, 則寖不如初者, 多矣。 乞依前例, 兩界外, 除挈家赴任, 一周遞差爲便。" 刑曹判書趙惠、參判權克和議: "以一方統察之任, 帶去妻子, 實爲未便。 或因公私緣故, 不得已久留本營, 其官受弊, 不可勝言。 前此牧使、判官共治之時, 庶事尙有遺闕, 民間猶有弊瘼, 今判官雖賢, 安能以一身, 能治庶務? 而況寮屬支待之際, 數少官奴婢, 晝夜奔馳之苦, 所不忍見。 除兼牧, 依舊例, 周年遞差。" 工曹判書鄭麟趾議: "各道監司兼牧, 三十箇月, 臣執以爲可。 天下未有無弊之法, 但酌其輕重耳。" 參議任孝信議: "各道監司兼牧, 判官獨辦州中庶務, 凡事遲滯, 不無民瘼。 監司携妻子赴任, 巡行之期, 似不如昔, 且有文書往來之弊。 伏望, 除兼牧, 依舊, 周年遞差。" 大司憲安完慶、執義申叔舟、掌令羅洪緖議: "監司兼牧, 久於其任, 守令賢否、民間利害, 可以悉知, 決訟處事, 凡所施爲, 亦得預先措置, 庶爲便益。 且立法未久, 別無巨弊, 不宜遽改。" 掌令河緯地、持平尹沔ㆍ文汝寧議: "監司兼牧, 挈家赴任, 當初立法時, 固有駁議, 行之數年, 別無所益, 而其弊不貲。 前此嘗立此法, 亦未久而罷, 必有以也。 依故事, 除兼牧。" 司諫院右司諫崔恒、知司諫洪元用、左獻納金震知、左正言具人文、右正言金孝給議: "監司兼牧, 弊實多端, 衆皆以爲不便, 思欲建白而罷之者久。 況承下咨, 敢不悉疏其亟罷之由乎? 界首之州, 地必大, 民必夥, 爲一方都會, 庶務之煩, 比諸邑百倍, 雖牧使、判官二人, 同心共理, 每患不能堪, 尙欲加置一人以佐之。 今也監司, 則任專巡宣, 雖在本營, 但治道內之事, 而本州庶務, 曾莫之顧。 判官, 則朝夕謁監司, 納各官進上, 應接大、小賓客, 奔走鞅掌, 日復一日, 其於簿領、期會, 慮不暇及, 敢望坐治民事哉? 雖有銜冤訴屈, 齎訟書庭號者, 旬月尙不得一問, 所隷任內, 多或至十數, 其糴種斂散, 亦不得以時, 或令隣邑之宰, 兼管農桑, 無暇勸課, 徭、賦奚暇審定耶? 勢至於此, 不得不委之監考、色吏, 於是姦猾之輩, 舞智弄權, 侵漁剝民, 任情自恣, 判官又奚暇考其是非耶? 夫郡有守, 縣有令, 欲其專於治民也, 雖小邑, 不可一朝無宰。 自監司兼牧以後, 最是界首官、巨州, 實未有治民事者, 此何法也? 古者界首州, 有牧使, 有判官, 以爲民之司命。 今則非惟失牧使, 幷與判官而失之, 界首之民, 何賴? 其不可者, 一也。 國家置監司, 欲其代一人耳目, 而按州、郡, 審守令賢否, 而黜陟之, 詢民生利病, 而興除之也, 必其身之所處, 無所繫著, 心之所存, 無所顧戀, 然後巡行易, 而廉按公也。 雖日驅馳, 不遑寧處, 猶恐其咨諏有未周, 黜陟有未明, 今也甘與妻孥共處而安享, 雖非老且病者, 率在營衙, 怠於巡宣, 遠郡下界之事, 雖要躬親審視, 曾不接耳目, 民之利病, 其得謂周知乎? 監司之任, 實司糾察諸守, 外憲官也。 今則監司旣自兼牧, 視諸郡守令爲一體, 非惟不廉糾耳, 至有庇其過愆, 掩其罪犯。 如聞暗行先聲, 則急遣傳騎而周諭之, 守令亦以爲: ‘彼亦守, 我亦守’, 不畏違令, 不忌犯法, 甚多。 先伺監司之失, 而籍其口, 肆行不義, 莫敢誰何。 雖守令之有識者, 喜其巡察之罕, 而惰於治事, 則一也, 守令之賢否, 其得謂明察乎? 其不可者, 一也。 監司久留本營, 則旁近驛騎, 常不下數十匹, 繫之營前, 馹夫齎糧, 累旬露處, 又其首領官、差使員、敎諭、檢律、察訪、驛丞, 及其隨陪伴從, 諸一行人等, 動以百數, 支待之費, 甚不貲。 一州之力, 豈能獨辦? 米鹽、油醬、魚醢、蔬菜、鋪陳, 細碎之物, 悉皆敷排列郡而斂之, 敷引之數, 多寡在心, 一之不足, 又再之。 列郡之守, 又必輾轉增加, 家抽戶斂, 聚而應之, 駄負轉輸, 其弊不可覶縷。 國家雖重監司之選, 然豈盡得其人? 或厚於人情者, 則前日所斂之物, 隨畜隨散, 或有切齒旁觀, 誰得而沮之耶? 其不可者, 一也。 監司之剛正者, 則固無繁冗之擧、請謁之行, 如或不爾, 則其妻或稱沐浴, 或稱覲省, 出入屑屑, 徒從之盛、供億之繁, 不可勝言。 且其子弟、親戚, 往來絡繹, 淹留之久, 需求之多, 糜費相繼, 皆出民脂。 諸郡守令, 又欲依附其人, 以媒政最, 夤緣請托, 無所不至, 干謁之輻湊, 賂遺之旁午, 安可遏也? 雖非兼牧之日, 或有稱族屬, 稱阿母, 從行黷貨, 以貽人譏者, 況今監司, 常以妻子自隨乎? 貨來、關節之交通, 無怪其然。 其不可者, 一也。 雖然, 此特弊之大略耳, 其詳則不可盡陳。 國家立法, 固欲利國而便民也, 有利而無害, 則法之良, 而不可改者也; 利害相半, 則雖已成之法, 亦當更改而不疑。 況其無利而有害者乎? 兼牧一法, 行之未久, 其弊之多驗, 已至此, 於國無所利, 於民無所便, 但利於爲監司者, 一身耳。 爲監司一身之利, 而行此弊法, 其可乎? 國家始立此法, 欲監司久任而宣化也, 自立此法以後, 惟聞弊日生, 未見少有利。 如或未知其弊則已, 旣已知之, 則在所亟改, 豈可謂已立之法, 而重於更革, 必欲因循耶? 此非臣等獨見如此, 實衆議也。 伏望, 亟罷兼牧, 復行一朞。" 上曰: "僉議不同, 不可不歸一也。 除挈家赴任, 定爲二期, 何如? 其更議于政府。" 領議政河演議: "監司兼牧之法, 謂之未便者, 居多。 諫院之議稍詳, 然不盡言其未便之實也。 謂之便者曰: ‘監司久任, 則周知一道之民情, 又察義倉斂散之法, 使之畢納。’ 然臣聞, 自監司挈家赴任後, 本營難於支待, 公然收斂於各官, 各官又斂於民戶。 務要精備, 至於輸納之時, 本營人吏, 肆其威虐, 必受賄賂, 然後納之本營, 無所産, 監司常食進上贏餘, 恬不爲愧。 沿邊所産之物, 或以驛馬, 或以各官轉輸, 爲本營之用。 且監司族親至, 則爲判官者, 贈遺饋餉, 無所不至, 監司雖聞, 佯若不知, 或有累日請留, 此亦人情不得已之事也, 而監司先犯之。 判官一身, 早暮劬勞, 民雖有疾苦告狀者, 委之姦吏, 多端用事, 民怨實深。 此等之弊, 不可勝記。 或曰: ‘監司久任之法, 爲義倉而設。’ 然權克和, 嘗爲忠淸道監司, 已經三年, 未聞有畢斂義倉之穀。 且淸州, 本營之邑也, 而義倉之穀, 未畢斂之, 何暇告覈諸邑乎? 臣曾陳咸傅霖爲兼牧受各官賂遺之事, 此臣所親見, 有害於國政, 莫若此也。 此法設立之初, 臣具陳其不可, 敎曰: ‘姑且試之, 非欲爲長久之策也。’ 伏望聖斷, 毋兼守令, 一年相遞, 俾專黜陟之任。" 右議政南智議: "臣意大略與演議同, 而又有說焉。 議者所言, 監司兼牧之弊非一, 然監司得人, 則容或有可除之弊。 但本營人吏、奴婢, 不離官門, 晝夜奔走, 支應之弊, 雖使名賢處之, 亦不能盡除矣。 如首領官、敎諭、檢律、營吏、伴從, 幾至五十人, 雖五、六日供億, 至爲艱苦, 若至夏月留數旬, 則其弊不可勝言。 均是各官, 而本營人吏、奴婢, 獨不顧生理, 常在官門, 遂至失農, 豈不可憐? 或言: ‘監司不得久留本營, 則支待之弊, 自無。’ 臣謂, 若使監司留本營日少, 而常自巡行, 則何必挈家赴任? 且都節制使、處置使與沿邊守令, 皆不得挈家赴任, 則監司必須挈家赴任, 何意也? 定以二周年, 除挈家赴任爲便。" 右參贊安崇善議: "監司兼牧之弊, 臣曾已上書。 請除挈家, 以二周爲期。" 右贊成鄭苯、左參贊鄭甲孫議: "監司不久其任, 則義倉斂散, 以爲餘事, 乃謂: ‘還收遲緩, 罪在於代我而來者’, 以其所儲, 惟意盡散, 以待遞任。 又深遠州、郡一期之內, 未及盡巡, 守令賢否、民間疾苦, 聞見未周。 且犯罪係獄者, 往復推鞫之際, 遞期已滿, 後來監司, 亦如之, 因此至于四、五年, 或至十餘年, 淹滯不決, 其弊多端。 初許挈家赴任之意, 蓋謂, 極寒盛暑, 暫可休於本營, 非謂, 常留本營, 與妻子安坐, 而怠於巡行也。 且監司之行, 驛馬少不下五、六十, 驛卒多至百(除)〔餘〕 人, 均是農民, 而廢農奔走, 送過一行, 還家未幾, 而先聲又至, 亦復如前, 爲弊無窮。 故其時商確定議, 庶幾除弊耳。 私行不接, 著在令甲, 其監司所接、公行賓客, 則一年之內, 亦幾許哉? 固非每月每日, 絡繹不絶之比也。 況勤於巡行, 則隨處相接矣, 亦豈必於本營支待而貽弊乎? 且判官、牧使, 豈皆絶無人情, 頓除支待, 而監司之弊, 獨有甚焉乎? 只在監司賢否, 非是三十箇月挈家赴任之法, 生此弊也。 若曰: ‘本營率皆地廣事繁, 判官一身, 難以獨治’, 則如水原、星州、金海、密陽、南原, 皆是煩劇之地, 亦置一員, 猶可治之, 不應本營獨不可使一員治之也。 若曰: ‘監司, 一方統察, 不可以家累自隨’, 則爲監司者, 豈必離世絶俗, 然後足以盡激濁揚淸之任乎? 其曰: ‘守令因謁監司, 多集本營, 不勝支待’者, 尤是妄也。 雖刑決重事, 例以文書相通, 其必面議之事, 亦絶無而僅有也。 今雖定以二周年, 除挈家赴任, 臣等恐, 久勞于外, 遠離家室, 經過艱難之說, 必復起, 而還爲一期之法矣。 兩界監司, 以其再期之久, 故乃許挈家赴任, 行之已久, 而有弊之說, 曾所未聞。 近日議者紛紜, 爭毁成法, 獨何心哉? 是必土豪、品官、姦吏, 忌其監司耳目之在近, 不得逞其所欲, 胥動浮言, 致此紛更之議。 挈家赴任之法, 豈獨行於兩界, 而不可行於他道哉? 行之兩界則無弊, 行之他道則有弊, 必無是理。 大抵祖宗成憲, 苟無利害懸絶之事, 則義當恪遵, 傳之永世, 而勿替也。 此法之立, 纔未三年, 別無巨弊, 今遽輕改, 誠爲未便。" 上曰: "姑置之, 以待後日, 更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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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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