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실록5권, 문종 즉위년 12월 2일 임신 7/10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국상 중에 음악을 연주한 정발을 추핵하도록 하다
국역
처음에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내가 때때로 들으니, 대궐 가까운 인가(人家)에서 음악 소리가 나는데, 금령(禁令)이 조금 해이해진 것이 아닌가?"
하니, 우부승지(右副承旨) 이숭지(李崇之)가 몰래 동료에게 이르기를,
"내가 어제 숙직하고 있는데, 한 어린 내수(內竪)1341) 가 와서 나에게 이르기를, ‘전일에 성상께서 대내(大內)1342) 근방에 음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내노(內奴)1343) 로 하여금 이를 밟아가게 하였더니, 바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정발(鄭發)의 집이었습니다.’고 하였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본래 호협(豪俠)하니, 의당 그가 이런 짓을 하였을 것이다."
하니, 여러 승지들이 서로 몰래 의논하기를,
"주상께서 비록 이미 정발이 한 짓인 줄을 아시나, 아직 감히 바로 정발이라고 지목하시지는 않으셨다."
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신 등이 듣건대 근일에 악을 연주한 자는 바로 정발이라고 합니다. 정발이 북경(北京)에 갔다가 돌아온 지가 얼마 되지 아니하니, 반드시 그 아들과 사위들이 잔치를 베풀고 인하여 위로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국상(國喪) 중인데, 슬픔을 잊고 음악을 잡힌 것은 매우 인신(人臣)의 도리를 잃은 것입니다. 청컨대 핵문(劾問)하여 죄를 다스리도록 하소서."
하니, 드디어 사헌부에 내려서 안핵(按劾)하게 하였다. 헌부에서 핵문하여 아뢰기를,
"정발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정발의 한 짓이다.’고 하고, 그 공초(供招)도 모두 같았습니다. 청컨대 정발에게 죄를 가(加)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8, 9월 사이에 동문(東門) 밖에서 이미 피리 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바로 정발이 중국 조정에 들어갈 때였으므로 사람들은 정발이 한 짓이라고 지목하지만, 나는 저윽이 이를 의심한다. 헌부(憲府)에서 마을 사람들을 핵문(劾問)할 때에 반드시 실마리를 먼저 스스로 꺼내어서 따지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묻는 데 따라서 공초(供招)하였을 것이다. 이는 곧 애매한 사건이니, 그것을 다시 조사하여 심문하라."
하고, 드디어 사헌 집의(司憲執義) 신숙주(申叔舟)를 불러서 그 까닭을 물으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정발이 한 짓이라고 하는데, 도리어 다시 캐묻는다 하더라도 또한 공초의 사연(辭緣)이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마리를 먼저 스스로 꺼낼만큼 애매하고 밝히기 어려운 사건이 아닙니다."
하였다. 임금이 신숙주를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이 일은 큰 일인데, 원통하고 억울함이 너무 심하였다. 내가 처음에 물었을 때에는 정원(政院)1344) 에서 말하기를, ‘정발의 집입니다.’ 하였으나, 오늘 다시 물으니, 능히 정확히 정발의 한 짓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있다. 또 헌부(憲府)에서 비록 비밀히 의논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서리(書吏) 무리들이 혹은 몰래 듣고 바깥에 떠들썩하게 전(傳)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마을 사람들도 또한 반드시 서리(書吏) 무리들의 말을 전하여 듣고 공초의 사연을 같이 하여 납초(納招)하였을 것이다.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고쳐서 변별(辨別)하게 하고자 한다."
하고 곧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다시 추핵(推劾)하게 하고, 대간(臺諫)에서도 같이 이를 잡치(雜治)1345) 하게 하였다.
- [註 1341] 내수(內竪) : 환관(宦官).
- [註 1342] 대내(大內) : 임금이 거처하는 곳.
- [註 1343] 내노(內奴) : 궁내의 종.
- [註 1344] 정원(政院) : 승정원(承政院).
- [註 1345] 잡치(雜治) : 중한 죄인을 심문할 때 대간(臺諫)과 관계 기관이 합동하여 심문하던 일.
원문
○初上謂承政院曰: "予時聞, 近闕人家, 有樂聲, 無乃禁令稍弛歟?" 右副承旨李崇之, 密謂同寮曰: "吾昨在直, 有一小竪來, 謂予曰: ‘前日上聞大內傍近有樂聲, 使內奴迹之, 乃同知中樞院事鄭發家也。’" 上曰: "此人本豪俠, 宜其爲此也。" 諸承旨相竊議曰: "上雖已知發所爲然, 未敢直指發也。" 因啓曰: "臣等聞, 近日作樂者, 乃鄭發也。 發赴京回還未久, 必子壻設宴迎慰也。 今方國喪, 忘哀作樂, 殊失人臣之義。 請劾治罪。" 遂下司憲府, 按劾。 憲府劾啓: "發里人, 皆以爲: ‘發所爲’, 其供招皆同, 請加發罪。" 上曰: "八、九月間, 東門外, 已聞有笛聲, 是乃發入朝時也。 人指以發之所爲也, 予竊疑之。 憲府問里人, 必先自開端詰問。 故隨問供招。 是乃曖昧之事也, 其更推問。" 遂召司憲執義申叔舟, 問其由, 叔舟啓: "里人, 皆以爲: ‘發所爲’, 反復詰問, 亦不變辭。 非先自開端曖昧難明之事也。" 上引見叔舟曰: "此乃大事, 冤抑莫甚。 予初問之時, 政院曰: ‘發家也。’ 今日更問之, 不能的知發所爲。 且憲府雖密議之事, 吏輩或有竊聞喧傳於外者矣。 今里人, 亦必傳聞吏輩之言, 同辭納招。 欲令義禁府, 改辨。" 尋命義禁府更劾, 同臺諫, 雜治之。
문종 즉위년 (1450) 12월 2일
- 정사를 보다
- 윤대할 차례를 당한 관원에게 고하지 않은 서리를 태형에 처하다
- 윤대하고 경연에 나아갔는데, 일찍이 까닭없이 경연을 그만두지 않다
- 곡식 종자로 군자를 의창에 옮기는 것과 관에서 보관하는 방법을 의논하게 하다
- 은율 현감 권선이 사조하니 인견하다
- 안산군의 어호가 얼음이 얼 때 고기를 잡아 바치지 않도록 상언하다
- 국상 중에 음악을 연주한 정발을 추핵하도록 하다
- 봉포동 등지로 옮겨 살게 한 백성들이 생업에 안정할 수 있도록 평안도 관찰사에게 유시하다
- 서현정에 나아가 관사하다
- 일본국 일기주 원영과 종성가에서 사람을 보내 토물을 바치다
문종실록5권, 문종 즉위년 12월 2일 임신 7/10 기사 /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국상 중에 음악을 연주한 정발을 추핵하도록 하다
국역
처음에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내가 때때로 들으니, 대궐 가까운 인가(人家)에서 음악 소리가 나는데, 금령(禁令)이 조금 해이해진 것이 아닌가?"
하니, 우부승지(右副承旨) 이숭지(李崇之)가 몰래 동료에게 이르기를,
"내가 어제 숙직하고 있는데, 한 어린 내수(內竪)1341) 가 와서 나에게 이르기를, ‘전일에 성상께서 대내(大內)1342) 근방에 음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내노(內奴)1343) 로 하여금 이를 밟아가게 하였더니, 바로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정발(鄭發)의 집이었습니다.’고 하였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본래 호협(豪俠)하니, 의당 그가 이런 짓을 하였을 것이다."
하니, 여러 승지들이 서로 몰래 의논하기를,
"주상께서 비록 이미 정발이 한 짓인 줄을 아시나, 아직 감히 바로 정발이라고 지목하시지는 않으셨다."
하고, 인하여 아뢰기를,
"신 등이 듣건대 근일에 악을 연주한 자는 바로 정발이라고 합니다. 정발이 북경(北京)에 갔다가 돌아온 지가 얼마 되지 아니하니, 반드시 그 아들과 사위들이 잔치를 베풀고 인하여 위로하였을 것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국상(國喪) 중인데, 슬픔을 잊고 음악을 잡힌 것은 매우 인신(人臣)의 도리를 잃은 것입니다. 청컨대 핵문(劾問)하여 죄를 다스리도록 하소서."
하니, 드디어 사헌부에 내려서 안핵(按劾)하게 하였다. 헌부에서 핵문하여 아뢰기를,
"정발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정발의 한 짓이다.’고 하고, 그 공초(供招)도 모두 같았습니다. 청컨대 정발에게 죄를 가(加)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8, 9월 사이에 동문(東門) 밖에서 이미 피리 소리가 들렸는데, 이는 바로 정발이 중국 조정에 들어갈 때였으므로 사람들은 정발이 한 짓이라고 지목하지만, 나는 저윽이 이를 의심한다. 헌부(憲府)에서 마을 사람들을 핵문(劾問)할 때에 반드시 실마리를 먼저 스스로 꺼내어서 따지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묻는 데 따라서 공초(供招)하였을 것이다. 이는 곧 애매한 사건이니, 그것을 다시 조사하여 심문하라."
하고, 드디어 사헌 집의(司憲執義) 신숙주(申叔舟)를 불러서 그 까닭을 물으니, 신숙주가 아뢰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정발이 한 짓이라고 하는데, 도리어 다시 캐묻는다 하더라도 또한 공초의 사연(辭緣)이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마리를 먼저 스스로 꺼낼만큼 애매하고 밝히기 어려운 사건이 아닙니다."
하였다. 임금이 신숙주를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이 일은 큰 일인데, 원통하고 억울함이 너무 심하였다. 내가 처음에 물었을 때에는 정원(政院)1344) 에서 말하기를, ‘정발의 집입니다.’ 하였으나, 오늘 다시 물으니, 능히 정확히 정발의 한 짓인 줄을 알지 못하고 있다. 또 헌부(憲府)에서 비록 비밀히 의논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서리(書吏) 무리들이 혹은 몰래 듣고 바깥에 떠들썩하게 전(傳)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마을 사람들도 또한 반드시 서리(書吏) 무리들의 말을 전하여 듣고 공초의 사연을 같이 하여 납초(納招)하였을 것이다.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고쳐서 변별(辨別)하게 하고자 한다."
하고 곧 의금부(義禁府)에 명하여 다시 추핵(推劾)하게 하고, 대간(臺諫)에서도 같이 이를 잡치(雜治)1345) 하게 하였다.
- [註 1341] 내수(內竪) : 환관(宦官).
- [註 1342] 대내(大內) : 임금이 거처하는 곳.
- [註 1343] 내노(內奴) : 궁내의 종.
- [註 1344] 정원(政院) : 승정원(承政院).
- [註 1345] 잡치(雜治) : 중한 죄인을 심문할 때 대간(臺諫)과 관계 기관이 합동하여 심문하던 일.
원문
○初上謂承政院曰: "予時聞, 近闕人家, 有樂聲, 無乃禁令稍弛歟?" 右副承旨李崇之, 密謂同寮曰: "吾昨在直, 有一小竪來, 謂予曰: ‘前日上聞大內傍近有樂聲, 使內奴迹之, 乃同知中樞院事鄭發家也。’" 上曰: "此人本豪俠, 宜其爲此也。" 諸承旨相竊議曰: "上雖已知發所爲然, 未敢直指發也。" 因啓曰: "臣等聞, 近日作樂者, 乃鄭發也。 發赴京回還未久, 必子壻設宴迎慰也。 今方國喪, 忘哀作樂, 殊失人臣之義。 請劾治罪。" 遂下司憲府, 按劾。 憲府劾啓: "發里人, 皆以爲: ‘發所爲’, 其供招皆同, 請加發罪。" 上曰: "八、九月間, 東門外, 已聞有笛聲, 是乃發入朝時也。 人指以發之所爲也, 予竊疑之。 憲府問里人, 必先自開端詰問。 故隨問供招。 是乃曖昧之事也, 其更推問。" 遂召司憲執義申叔舟, 問其由, 叔舟啓: "里人, 皆以爲: ‘發所爲’, 反復詰問, 亦不變辭。 非先自開端曖昧難明之事也。" 上引見叔舟曰: "此乃大事, 冤抑莫甚。 予初問之時, 政院曰: ‘發家也。’ 今日更問之, 不能的知發所爲。 且憲府雖密議之事, 吏輩或有竊聞喧傳於外者矣。 今里人, 亦必傳聞吏輩之言, 同辭納招。 欲令義禁府, 改辨。" 尋命義禁府更劾, 同臺諫, 雜治之。
원본
문종 즉위년 (1450) 12월 2일
- 정사를 보다
- 윤대할 차례를 당한 관원에게 고하지 않은 서리를 태형에 처하다
- 윤대하고 경연에 나아갔는데, 일찍이 까닭없이 경연을 그만두지 않다
- 곡식 종자로 군자를 의창에 옮기는 것과 관에서 보관하는 방법을 의논하게 하다
- 은율 현감 권선이 사조하니 인견하다
- 안산군의 어호가 얼음이 얼 때 고기를 잡아 바치지 않도록 상언하다
- 국상 중에 음악을 연주한 정발을 추핵하도록 하다
- 봉포동 등지로 옮겨 살게 한 백성들이 생업에 안정할 수 있도록 평안도 관찰사에게 유시하다
- 서현정에 나아가 관사하다
- 일본국 일기주 원영과 종성가에서 사람을 보내 토물을 바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