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지 / 전라도 / 전주부 / 함열현
◎ 함열현(咸悅縣)
본래 백제의 감물아현(甘勿阿縣)이었는데, 신라에서 함열로 고쳐서 임피(臨陂)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 초에 전주(全州) 임내로 하였다가, 명종(明宗) 6년 병신에 【송나라 효종(孝宗) 순희(淳熙) 3년. 】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 태종(太宗) 9년 기축에 【명나라 태종(太宗) 영락(永樂) 7년. 】 본현을 용안(龍安)에 합쳐서 안열현(安悅縣)이라 하였고,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가, 【이 해에 감무(監務)를 고쳐 현감(縣監)으로 하였는데, 뒤의 것도 모두 이와 같다. 】 16년 병신에 다시 나누어서 두 현(縣)으로 하였다. 별호를 함라(咸羅)라고 한다. 고속향(古屬鄕)이 1이니, 대위(大位)이요, 【어떤 데에는 대부(大府)로 되어 있다. 】 부곡(部曲)이 1이니, 도평(桃平)이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쪽으로 익산(益山)에 이르기 10리, 서쪽으로 충청도 한산(韓山)에 이르기 7리, 남쪽으로 임피(臨陂)에 이르기 11리, 북쪽으로 용안(龍安)에 이르기 12리이다.
호수가 2백 88호요, 인구가 1천 3백 84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11명이요, 진군(鎭軍)이 25명이요, 선군(船軍)이 3백 26명이다.
토성(土姓)이 5이니, 남궁(南宮)·조(趙)·장(張)·염(廉)·박(朴)이요, 속성(續姓)이 2이니, 김(金)·임(林)이다. 【모두 향리이다.】 도평(桃平)의 속성이 4이니, 김(金)·조(趙)·장(張)·석(石)이다.
땅이 메마르며, 간전(墾田)은 3천 2백 98결이요, 【논이 8분의 5가 못된다. 】 토의(土宜)는 오곡·뽕나무·삼[麻]·모시이요, 토공(土貢)은 자리·족제비털[黃毛]이요, 약재는 호라비좆뿌리[天門冬]·겨우살이풀뿌리[麥門冬]·삵괭이쓸개[狸膽]요, 토산(土産)은 왕대다.
역(驛)이 1이니, 재곡(才谷)이다. 덕성창(德成倉) 【현(縣)의 서북쪽 10리쯤에 있다. 】 봉화가 1곳이니, 현의 서쪽 소이방(所伊坊)이었다.【서쪽으로 임피 응지(鷹旨)250) 에 응한다. 】
- 【태백산사고본】 55책 151권 7장 B면【국편영인본】 5책 657면
- [註 250]응지(鷹旨) : 매마루.
◎ 咸悅縣: 本百濟 甘勿阿縣, 新羅改咸悅, 爲臨陂領縣。 高麗初, 爲全州任內, 明宗六年丙申, 【宋 孝宗 淳熙三年。】 始置監務。 本朝太宗九年己丑, 【大明 太宗 永樂七年。】 以縣合于龍安, 稱安悅縣, 十三年癸巳, 例改縣監, 【是年, 改監務爲縣監。 後倣此。】 十六年丙申, 復分爲二縣, 別號咸羅。 古屬鄕一, 大位; 【一作大府。】 部曲一, 桃平。 四境, 東距益山十里, 西距忠淸道 韓山七里, 南距臨陂十一里, 北距龍安十二里。 戶二百八十八, 口一千三百八十四。 軍丁, 侍衛軍十一, 鎭軍二十五, 船軍三百二十六。 土姓五, 南宮、趙、張、廉、朴; 續姓二, 金、林。 【皆鄕吏。】 桃平續姓四, 金、趙、張、石。 厥土塉, 墾田三千二百九十八結。 【水田八分之五少。】 土宜五穀, 桑、麻、苧。 土貢, 席、黃毛。 藥材, 天門冬、麥門冬、狸膽。 土産, 簜。 驛一, 才谷。 德成倉。 【在縣西北十里許。】 烽火一處, 縣西所伊坊。 【西準臨陂 鷹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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