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126권, 세종 31년 12월 24일 경오 1/1 기사 / 1449년 명 정통(正統) 14년
조칙을 맞이하고 사신을 연향하는 일을 왕세손이 대행하는 것의 가부를 논의하다
국역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조칙(詔勅)을 맞이하고 사신을 연향(宴享)하는데 있어 왕자(王子)로서 대행하도록 정했지만, 왕세손(王世孫)도 나이 장성한데다가 또 위호(位號)가 있으니, 왕세손으로 하여금 대행하게 함이 어떻겠느냐. 예전에 세자가 8세에 봉함을 받고 12세에 대신하여 칙서를 맞이했는데, 그때의 사신이 행주(行酒)를 청하고자 하였으나 통사가 미봉(彌縫)하여 그만두었다. 이제 세손으로 조칙을 맞이하게 하여, 사신이 만약 행주를 청한다면, 이를 거절하기도 어려우니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만둠이 가할 것이나, 어떻게 이를 처리할 것인지 그것을 정부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하였다. 이어서 강서원 좌익선(講書院左翊善) 박팽년(朴彭年)이 아뢰기를,
"이제 들으오니, 왕자(王子)로 하여금 대리로 조칙을 맞이하게 한다 하옵는데, 세손께서도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지셨고 천품이 뛰어나시니, 조칙을 맞이하는 일은 장소에 따라서 마땅히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조정에는 근심이 있사온데, 조칙이 올 때 임금과 동궁께서 모두 나가 마중하지 않으오면 중국에서도 의심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과 동궁께서 편찮으시어 연소한 세손이 나가 맞이한다면, 심히 조정을 공경하되 부득이하다는 뜻을 사신이 반드시 알 것입니다."
하였는데, 이윽고 사인(舍人) 정식(鄭軾)이 정부의 의논으로써 아뢰기를,
"영의정 하연(河演) 이하는 모두 세손의 나이가 어리다 하여 왕자로 하여금 대행하게 함이 옳다 하옵는데, 좌찬성 박종우(朴從愚)만은 연향(宴享)의 사례(私禮)는 왕자로써 대행함이 옳으나, 조칙을 맞이하는 중대사는 세손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하연 등의 의논을 따랐다. 또 말하기를,
"강서원(講書院)에서도 이 일을 알고 정부에다 의논하고서 또 와서 청하니 그 뜻이 무엇이냐."
하고, 인하여 박팽년(朴彭年)과 우익선(右翊善) 신숙주(申叔舟)·좌찬독(左贊讀) 유성원(柳誠源)·우찬독(右贊讀) 이극감(李克堪)을 불러 이를 물으매, 박팽년 등이 대답하기를,
"비로소 왕자가 대행한다는 것을 들었사오나, 정부에 의논한 것을 알지 못하므로 장차 정원(政院)으로 나아가 아뢰려 하다가, 길에서 우부승지 이계전(李季甸)을 만나 그 이유를 말했더니, 계전(季甸)이 말하기를, ‘이 일은 오늘 아침에 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으니 반드시 아뢸 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르러 비로소 이 일을 들었사오나 오히려 이를 청하옵는 것은 모든 일은 말하는 자가 많으면 반드시 그 일이 옳은 것이고, 성상께서도 그렇게 믿으시리라 여겨서였습니다. 신 등은 시학(侍學)한 날이 오래 되어 참으로 세손께서 행례할 수 있음을 아옵는 까닭으로 감히 청한 것이옵지,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하니, 임금이 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으로 하여금 반복하여 힐문하게 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옛날에 범조우(范祖禹)가 장차 상서(上書)하려 하는데 소동파(蘇東坡)가 이것을 보고, ‘내 뜻과 같다.’ 하여, 드디어 연명(聯名)으로 바치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간사하기만 하여 비록 타인의 소위(所爲)가 자기와 다름이 없음을 보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뜻을 달성함으로써 명예를 구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정부에서 의논하는 줄 알면서도 억지로 자기의 의사를 펴고자 했으니 간교함이 심하나, 그러나, 세손이 조칙을 맞이함은 이치에 있어서 매우 순하고 너희들의 직책으로써 와서 아뢰니, 내 어찌 너희들을 허물하겠느냐."
고 하였다.
원문
○庚午/上謂承政院曰: "迎詔勑宴使臣, 定以王子代之, 但王世孫年稍長, 且有位號, 使之代行如何? 昔世子八歲受封, 見於使臣, 十二代迎勑, 其時使臣欲請行酒, 通事彌縫而止。 今使世孫迎詔, 而使臣若請行酒, 辭之亦難。 以此觀之, 可以已矣。 處之何如? 其令政府擬議以聞。" 繼而講書院左翊善朴彭年啓: "今聞使王子代迎詔勑, 世孫名位旣定, 天姿岐嶷, 迎詔在所當行, 況今朝廷憂虞, 詔勑之來, 上與東宮皆不出迎, 中國不無疑焉。 上與東宮不豫, 而年少世孫出迎, 則甚敬朝廷不得已之意, 使臣必知之矣。" 旣而舍人鄭軾將政府之議啓曰: "領議政河演以下, 皆以爲: ‘世孫年幼, 宜使王子代行。’" 左贊成朴從愚獨以宴享私禮, 王子代行可也, 迎詔重事, 世孫當行。 上從演等議, 且曰: "講書院旣知此事, 議于政府, 而又來請, 其意何哉?" 乃召彭年及右翊善申叔舟、左贊讀柳誠源、右贊讀李克堪問之, 彭年等對曰: "纔聞王子代行, 而議于政府, 則未及知也。 將詣政院以啓, 道遇右副承旨李季甸, 說其由, 季甸曰: ‘此事今朝已下政府議之, 不必啓也。’" 至是始得聞之, 然猶請之者, 凡事言之者多, 則必其事是, 而上亦或聽之。 臣等侍學日久, 固知世孫能行禮也, 故敢請, 非有他意。" 上使安平大君 瑢反覆致詰, 乃曰: "昔范祖禹將上書, 蘇東坡見之曰: ‘如吾意也。’ 遂聯名以進。 今人姦詐, 雖見他人所爲, 與己無異, 必欲自達己意以釣名。 汝等知其議于政府, 而强欲自達, 姦巧甚矣。 然世孫迎詔, 於理甚順, 汝等以其職來啓, 予何咎汝!"
세종 31년 (1449) 12월 24일
세종실록126권, 세종 31년 12월 24일 경오 1/1 기사 / 1449년 명 정통(正統) 14년
조칙을 맞이하고 사신을 연향하는 일을 왕세손이 대행하는 것의 가부를 논의하다
국역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조칙(詔勅)을 맞이하고 사신을 연향(宴享)하는데 있어 왕자(王子)로서 대행하도록 정했지만, 왕세손(王世孫)도 나이 장성한데다가 또 위호(位號)가 있으니, 왕세손으로 하여금 대행하게 함이 어떻겠느냐. 예전에 세자가 8세에 봉함을 받고 12세에 대신하여 칙서를 맞이했는데, 그때의 사신이 행주(行酒)를 청하고자 하였으나 통사가 미봉(彌縫)하여 그만두었다. 이제 세손으로 조칙을 맞이하게 하여, 사신이 만약 행주를 청한다면, 이를 거절하기도 어려우니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만둠이 가할 것이나, 어떻게 이를 처리할 것인지 그것을 정부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하였다. 이어서 강서원 좌익선(講書院左翊善) 박팽년(朴彭年)이 아뢰기를,
"이제 들으오니, 왕자(王子)로 하여금 대리로 조칙을 맞이하게 한다 하옵는데, 세손께서도 명위(名位)가 이미 정해지셨고 천품이 뛰어나시니, 조칙을 맞이하는 일은 장소에 따라서 마땅히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조정에는 근심이 있사온데, 조칙이 올 때 임금과 동궁께서 모두 나가 마중하지 않으오면 중국에서도 의심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과 동궁께서 편찮으시어 연소한 세손이 나가 맞이한다면, 심히 조정을 공경하되 부득이하다는 뜻을 사신이 반드시 알 것입니다."
하였는데, 이윽고 사인(舍人) 정식(鄭軾)이 정부의 의논으로써 아뢰기를,
"영의정 하연(河演) 이하는 모두 세손의 나이가 어리다 하여 왕자로 하여금 대행하게 함이 옳다 하옵는데, 좌찬성 박종우(朴從愚)만은 연향(宴享)의 사례(私禮)는 왕자로써 대행함이 옳으나, 조칙을 맞이하는 중대사는 세손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하연 등의 의논을 따랐다. 또 말하기를,
"강서원(講書院)에서도 이 일을 알고 정부에다 의논하고서 또 와서 청하니 그 뜻이 무엇이냐."
하고, 인하여 박팽년(朴彭年)과 우익선(右翊善) 신숙주(申叔舟)·좌찬독(左贊讀) 유성원(柳誠源)·우찬독(右贊讀) 이극감(李克堪)을 불러 이를 물으매, 박팽년 등이 대답하기를,
"비로소 왕자가 대행한다는 것을 들었사오나, 정부에 의논한 것을 알지 못하므로 장차 정원(政院)으로 나아가 아뢰려 하다가, 길에서 우부승지 이계전(李季甸)을 만나 그 이유를 말했더니, 계전(季甸)이 말하기를, ‘이 일은 오늘 아침에 정부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으니 반드시 아뢸 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이에 이르러 비로소 이 일을 들었사오나 오히려 이를 청하옵는 것은 모든 일은 말하는 자가 많으면 반드시 그 일이 옳은 것이고, 성상께서도 그렇게 믿으시리라 여겨서였습니다. 신 등은 시학(侍學)한 날이 오래 되어 참으로 세손께서 행례할 수 있음을 아옵는 까닭으로 감히 청한 것이옵지,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하니, 임금이 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으로 하여금 반복하여 힐문하게 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옛날에 범조우(范祖禹)가 장차 상서(上書)하려 하는데 소동파(蘇東坡)가 이것을 보고, ‘내 뜻과 같다.’ 하여, 드디어 연명(聯名)으로 바치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간사하기만 하여 비록 타인의 소위(所爲)가 자기와 다름이 없음을 보더라도 스스로 자기의 뜻을 달성함으로써 명예를 구하고자 한다. 너희들은 정부에서 의논하는 줄 알면서도 억지로 자기의 의사를 펴고자 했으니 간교함이 심하나, 그러나, 세손이 조칙을 맞이함은 이치에 있어서 매우 순하고 너희들의 직책으로써 와서 아뢰니, 내 어찌 너희들을 허물하겠느냐."
고 하였다.
원문
○庚午/上謂承政院曰: "迎詔勑宴使臣, 定以王子代之, 但王世孫年稍長, 且有位號, 使之代行如何? 昔世子八歲受封, 見於使臣, 十二代迎勑, 其時使臣欲請行酒, 通事彌縫而止。 今使世孫迎詔, 而使臣若請行酒, 辭之亦難。 以此觀之, 可以已矣。 處之何如? 其令政府擬議以聞。" 繼而講書院左翊善朴彭年啓: "今聞使王子代迎詔勑, 世孫名位旣定, 天姿岐嶷, 迎詔在所當行, 況今朝廷憂虞, 詔勑之來, 上與東宮皆不出迎, 中國不無疑焉。 上與東宮不豫, 而年少世孫出迎, 則甚敬朝廷不得已之意, 使臣必知之矣。" 旣而舍人鄭軾將政府之議啓曰: "領議政河演以下, 皆以爲: ‘世孫年幼, 宜使王子代行。’" 左贊成朴從愚獨以宴享私禮, 王子代行可也, 迎詔重事, 世孫當行。 上從演等議, 且曰: "講書院旣知此事, 議于政府, 而又來請, 其意何哉?" 乃召彭年及右翊善申叔舟、左贊讀柳誠源、右贊讀李克堪問之, 彭年等對曰: "纔聞王子代行, 而議于政府, 則未及知也。 將詣政院以啓, 道遇右副承旨李季甸, 說其由, 季甸曰: ‘此事今朝已下政府議之, 不必啓也。’" 至是始得聞之, 然猶請之者, 凡事言之者多, 則必其事是, 而上亦或聽之。 臣等侍學日久, 固知世孫能行禮也, 故敢請, 非有他意。" 上使安平大君 瑢反覆致詰, 乃曰: "昔范祖禹將上書, 蘇東坡見之曰: ‘如吾意也。’ 遂聯名以進。 今人姦詐, 雖見他人所爲, 與己無異, 必欲自達己意以釣名。 汝等知其議于政府, 而强欲自達, 姦巧甚矣。 然世孫迎詔, 於理甚順, 汝等以其職來啓, 予何咎汝!"
원본
세종 31년 (1449)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