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121권, 세종 30년 7월 18일 임인 3/4 기사 /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신석조·이사철 등이 불당설치 불가를 아뢰나 민신을 불러 역사를 일으키게 하다
국역
집현전(集賢殿) 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이번에 불당을 금중(禁中)에 세우라고 명하시매, 대소 신료(臣僚)가 놀라지 않음이 없어 위엄을 무릅쓰고 진달하였는데, 곧 궁성 백 보 밖에 창건할 것을 명령하였으니, 전하의 간함을 따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불가함을 알았다면 마땅히 의심 없이 쾌하게 결단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에 회답할 것이니, 궁성의 안팎을 무얼 가릴 것이 있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직불백보(直不百步)017) 의 유입니다. 지금 시종(侍從)이 불가하다 말하고, 대간(臺諫)이 불가하다 말하며, 대신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하는데, 전하가 반드시 이 일을 성취하려고 하니 무슨 생각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옛날 태종께서 깊이 불씨(佛氏)의 해를 아시고 온 나라가 몹시 좋아하여도 혼자 배척하였는데, 지금 전하는 온 조정이 불가하다 하여도 반드시 세우려고 하시니, 이것은 조종을 본받고 후세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옵기, 더욱 간절히 통심(痛心)하고 더욱 간절히 통심합니다. 신 등이 비록 같잖으나 시종(侍從)에 대죄(待罪)하와 감히 함묵(含默)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사람이 보잘것 없다 하여 말까지 폐하지 마시고, 간사한 것을 버림에 의심하지 마시고 급히 이루어진 명령을 회수하여, 온 나라 신민의 바람에 부합하게 하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으나, 회답이 없었다. 석조 등이 굳이 청하여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새벽에 이르러 석조 등이 다시 와서 청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고, 또 말하기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태종의 성덕을 읊으기를, ‘만국(滿國)이 즐기거늘 성성(聖性)에 그르다 하시니, 백만불찰(百萬佛刹)을 일조(一朝)에 고치시니.’ 하였으니, 태종께서 부처를 배척한 성덕을 말한 것이고, 또 말하기를, ‘변방 오랑캐의 간사한 말이 화복(禍福)으로 위협하고 꾀이니, 이 뜻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하였으니, 자손이 유지하여 지키는 도를 말한 것입니다. 이 시를 찬술(撰述)한 지 며칠이 못되어서 다시 불법을 높이니, 찬술한 뜻에 어떠합니까. 하물며, 시종·대신·대간이 모두 불가하다 하니, 이 일이 그른 것은 단연코 알 수 있는 것이온데, 한결같이 가부(可否)가 없으시니 마음이 간절히 아프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1천 의정이 말하더라도 내 뜻은 이미 정하여졌으니, 어찌 좇을 리가 있는가."
하니, 석조 등이 또 말하기를,
"태조가 전조(前朝)의 폐단을 승습하였는데, 태종이 다 고치었으니 불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가 비록 조종(祖宗)을 위하여 다시 세운다 일컬으시나, 시종하는 신하도 오히려 그런지를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나라 사람들이 전하더러 불법을 높이지 않는다고 하려 하겠습니까."
하고, 도승지(都承旨) 이사철(李思哲) 등이 또 아뢰기를,
"신 등이 집현전(集賢殿)으로 인하여 그 말을 돕는 것이 아니라, 시종·대간·대신의 뜻을 보면 기어이 청을 얻은 뒤에 말려고 하니, 면강하여 그 청을 따르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권신(權臣)에게 제재를 받을 임금이 아니다. 무릇 일이 의심 나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의논하지마는, 의심이 없는 것은 독단으로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권신에게 제재를 받아서 스스로 가부를 하지 못하는 줄로 생각하는가."
하였다. 사철 등이 말하기를,
"신 등이 전하더러 독단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릇 큰 일을 거행할 때에는 반드시 좌우가 모두 가하다 하고, 여러 대부(大夫)가 모두 가하다 하며, 나라 사람이 모두 가하다 한 연후에 살펴서 행할 것인데, 지금 여러 의논이 이와 같아도 오히려 좇지 않으니, 불가하지 않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承旨)들이 학술이 바르기 때문에 나를 불가하게 여기니, 내가 스스로 포치(布置)하겠다."
하고, 곧 선공 제조(繕工提調) 민신(閔伸)을 불러 방패(防牌) 2백 인을 시켜 역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 [註 017] 직불백보(直不百步) : 《맹자》 양혜왕장(梁惠王章)에 나오는 말로서, 전쟁할 때에 50보(步)를 도망한 사람이 백 보를 도망한 사람을 보고 비웃으나, 50보도 곧 백 보는 못될지언정, 도망한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이라는 뜻임.
원문
○集賢殿直提學辛碩祖等上疏曰:
今者命建佛堂于禁中, 大小臣僚罔不驚駭, 冒威陳達, 卽命於宮城百步外創置, 可見殿下從諫之美也。 然旣知其不可, 則當夬決無疑, 以答衆心, 宮城內外, 何擇焉! 是所謂直不百步之類也。 今侍從曰不可, 臺諫曰不可, 大臣皆曰不可, 而殿下必欲成此擧者, 不識何謂也? 昔太宗深燭佛氏之害, 滿國酷好, 而獨闢之, 今殿下滿朝不可, 而必欲置之, 是非所以法祖宗訓後世也, 尤切痛心, 尤切痛心。 臣等雖無似, 待罪侍從, 不敢含默, 伏望殿下不以人廢言, 去邪勿疑, 亟收成命, 以副一國臣民之望, 不勝幸甚。
不報。 (碩祚)〔碩祖〕 等固請, 不允。 至曉, 碩祖等更來請之如初, 且曰: "《龍飛御天歌》詠太宗之盛德曰: ‘滿國酷好, 聖性獨闢。 百萬佛刹, 一朝盡革。’ 言裔太宗闢佛之盛德也。 又曰: ‘裔戎之邪說, 怵誘以禍福。 此意願毋忘。’ 言子孫持守之道也。 撰述此詩, 曾未幾日, 而復崇佛法, 其於撰述之意何如? 況侍從大臣臺諫, 皆以爲不可, 則此事之非, 斷可知矣, 一無可否, 心切痛焉。"
上曰: "雖一千議政言之, 吾意已定, 安有可從之理乎!" 碩祖等又曰: "太祖承前朝之弊, 而太宗盡革之, 可知爲不可也。 殿下雖稱爲祖宗而復立, 侍從之臣, 尙未知其然也, 況國人其肯以殿下爲不崇佛法乎!" 都承旨李思哲等又啓曰: "臣等非因集賢殿而助其辭也。 觀侍從、臺諫、大臣之意, 則期於得請而後已, 勉從其請。" 上曰: "予非受制於權臣之君也。 凡事之可疑者則謀於衆, 無可疑者則獨斷爲之, 爾等以予爲權臣所制而不能自爲可否乎?" 思哲等曰: "臣等非以殿下爲不能獨斷也。 凡擧大事, 必左右皆曰可, 諸大夫皆曰可, 國人皆曰可, 然後察而行之。 今衆議如此, 而尙不從之, 無乃不可乎?" 上曰: "承旨等學術正, 故以予爲不可, 予自布置。" 卽召繕工提調閔伸, 使防牌二百人起役。
세종실록121권, 세종 30년 7월 18일 임인 3/4 기사 / 1448년 명 정통(正統) 13년
신석조·이사철 등이 불당설치 불가를 아뢰나 민신을 불러 역사를 일으키게 하다
국역
집현전(集賢殿) 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이번에 불당을 금중(禁中)에 세우라고 명하시매, 대소 신료(臣僚)가 놀라지 않음이 없어 위엄을 무릅쓰고 진달하였는데, 곧 궁성 백 보 밖에 창건할 것을 명령하였으니, 전하의 간함을 따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불가함을 알았다면 마땅히 의심 없이 쾌하게 결단하여 여러 사람의 마음에 회답할 것이니, 궁성의 안팎을 무얼 가릴 것이 있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직불백보(直不百步)017) 의 유입니다. 지금 시종(侍從)이 불가하다 말하고, 대간(臺諫)이 불가하다 말하며, 대신이 모두 불가하다고 말하는데, 전하가 반드시 이 일을 성취하려고 하니 무슨 생각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옛날 태종께서 깊이 불씨(佛氏)의 해를 아시고 온 나라가 몹시 좋아하여도 혼자 배척하였는데, 지금 전하는 온 조정이 불가하다 하여도 반드시 세우려고 하시니, 이것은 조종을 본받고 후세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옵기, 더욱 간절히 통심(痛心)하고 더욱 간절히 통심합니다. 신 등이 비록 같잖으나 시종(侍從)에 대죄(待罪)하와 감히 함묵(含默)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사람이 보잘것 없다 하여 말까지 폐하지 마시고, 간사한 것을 버림에 의심하지 마시고 급히 이루어진 명령을 회수하여, 온 나라 신민의 바람에 부합하게 하시면 다행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으나, 회답이 없었다. 석조 등이 굳이 청하여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새벽에 이르러 석조 등이 다시 와서 청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고, 또 말하기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태종의 성덕을 읊으기를, ‘만국(滿國)이 즐기거늘 성성(聖性)에 그르다 하시니, 백만불찰(百萬佛刹)을 일조(一朝)에 고치시니.’ 하였으니, 태종께서 부처를 배척한 성덕을 말한 것이고, 또 말하기를, ‘변방 오랑캐의 간사한 말이 화복(禍福)으로 위협하고 꾀이니, 이 뜻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하였으니, 자손이 유지하여 지키는 도를 말한 것입니다. 이 시를 찬술(撰述)한 지 며칠이 못되어서 다시 불법을 높이니, 찬술한 뜻에 어떠합니까. 하물며, 시종·대신·대간이 모두 불가하다 하니, 이 일이 그른 것은 단연코 알 수 있는 것이온데, 한결같이 가부(可否)가 없으시니 마음이 간절히 아프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1천 의정이 말하더라도 내 뜻은 이미 정하여졌으니, 어찌 좇을 리가 있는가."
하니, 석조 등이 또 말하기를,
"태조가 전조(前朝)의 폐단을 승습하였는데, 태종이 다 고치었으니 불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가 비록 조종(祖宗)을 위하여 다시 세운다 일컬으시나, 시종하는 신하도 오히려 그런지를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나라 사람들이 전하더러 불법을 높이지 않는다고 하려 하겠습니까."
하고, 도승지(都承旨) 이사철(李思哲) 등이 또 아뢰기를,
"신 등이 집현전(集賢殿)으로 인하여 그 말을 돕는 것이 아니라, 시종·대간·대신의 뜻을 보면 기어이 청을 얻은 뒤에 말려고 하니, 면강하여 그 청을 따르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권신(權臣)에게 제재를 받을 임금이 아니다. 무릇 일이 의심 나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의논하지마는, 의심이 없는 것은 독단으로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권신에게 제재를 받아서 스스로 가부를 하지 못하는 줄로 생각하는가."
하였다. 사철 등이 말하기를,
"신 등이 전하더러 독단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릇 큰 일을 거행할 때에는 반드시 좌우가 모두 가하다 하고, 여러 대부(大夫)가 모두 가하다 하며, 나라 사람이 모두 가하다 한 연후에 살펴서 행할 것인데, 지금 여러 의논이 이와 같아도 오히려 좇지 않으니, 불가하지 않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承旨)들이 학술이 바르기 때문에 나를 불가하게 여기니, 내가 스스로 포치(布置)하겠다."
하고, 곧 선공 제조(繕工提調) 민신(閔伸)을 불러 방패(防牌) 2백 인을 시켜 역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 [註 017] 직불백보(直不百步) : 《맹자》 양혜왕장(梁惠王章)에 나오는 말로서, 전쟁할 때에 50보(步)를 도망한 사람이 백 보를 도망한 사람을 보고 비웃으나, 50보도 곧 백 보는 못될지언정, 도망한 입장에서 보면 마찬가지이라는 뜻임.
원문
○集賢殿直提學辛碩祖等上疏曰:
今者命建佛堂于禁中, 大小臣僚罔不驚駭, 冒威陳達, 卽命於宮城百步外創置, 可見殿下從諫之美也。 然旣知其不可, 則當夬決無疑, 以答衆心, 宮城內外, 何擇焉! 是所謂直不百步之類也。 今侍從曰不可, 臺諫曰不可, 大臣皆曰不可, 而殿下必欲成此擧者, 不識何謂也? 昔太宗深燭佛氏之害, 滿國酷好, 而獨闢之, 今殿下滿朝不可, 而必欲置之, 是非所以法祖宗訓後世也, 尤切痛心, 尤切痛心。 臣等雖無似, 待罪侍從, 不敢含默, 伏望殿下不以人廢言, 去邪勿疑, 亟收成命, 以副一國臣民之望, 不勝幸甚。
不報。 (碩祚)〔碩祖〕 等固請, 不允。 至曉, 碩祖等更來請之如初, 且曰: "《龍飛御天歌》詠太宗之盛德曰: ‘滿國酷好, 聖性獨闢。 百萬佛刹, 一朝盡革。’ 言裔太宗闢佛之盛德也。 又曰: ‘裔戎之邪說, 怵誘以禍福。 此意願毋忘。’ 言子孫持守之道也。 撰述此詩, 曾未幾日, 而復崇佛法, 其於撰述之意何如? 況侍從大臣臺諫, 皆以爲不可, 則此事之非, 斷可知矣, 一無可否, 心切痛焉。"
上曰: "雖一千議政言之, 吾意已定, 安有可從之理乎!" 碩祖等又曰: "太祖承前朝之弊, 而太宗盡革之, 可知爲不可也。 殿下雖稱爲祖宗而復立, 侍從之臣, 尙未知其然也, 況國人其肯以殿下爲不崇佛法乎!" 都承旨李思哲等又啓曰: "臣等非因集賢殿而助其辭也。 觀侍從、臺諫、大臣之意, 則期於得請而後已, 勉從其請。" 上曰: "予非受制於權臣之君也。 凡事之可疑者則謀於衆, 無可疑者則獨斷爲之, 爾等以予爲權臣所制而不能自爲可否乎?" 思哲等曰: "臣等非以殿下爲不能獨斷也。 凡擧大事, 必左右皆曰可, 諸大夫皆曰可, 國人皆曰可, 然後察而行之。 今衆議如此, 而尙不從之, 無乃不可乎?" 上曰: "承旨等學術正, 故以予爲不可, 予自布置。" 卽召繕工提調閔伸, 使防牌二百人起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