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100권, 세종 25년 5월 28일 임오 3/4 기사 /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지평 이종겸이 일본 통신사 변효문을 논죄하고 행수의 법에 대해 건의하다
국역
지평 이종겸(李宗謙)이 아뢰기를,
"일본 통신사(通信使) 변효문(卞孝文) 일행이 〈일본(日本)으로 갈때〉 경상도의 수령과 만호들이 기생 10여 명을 거느리고 2, 3일 동안 따라가면서 전송했는데, 효문과 서장관(書狀官) 신숙주(申叔舟)가 거절하지 않았으니, 그 죄가 큽니다. 그러나, 일이 사유(赦宥) 전에 있었으므로 죄를 줄 수는 없으나, 징계하지 않으면 후일을 징계할 수 없으니, 효문과 숙주와 수령·만호를 파직시켜서 뒷 사람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또 행수(行守)의 법을 마련한 다음부터 매양 수령을 제수할 때에 동반(東班) 4품 이상이 매우 적으므로 대개 서반 4품으로 제수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갑사(甲士)·별시위(別侍衛) 따위의 출신이어서 모두 일에 경험이 없는 자입니다. 대개 수령은 임금의 걱정을 나누어 하고 교화(敎化)를 펴므로, 백성의 휴척(休戚)이 달려 있습니다. 주(州)·부(府)와 같은 곳은 백성이 많고 사무도 번잡한데,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밝고 익숙한 자가 아니면 족히 감당할 수 없으니, 신 등의 생각에는 만일 행수(行守)의 법을 쓰려면 외방에도 통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동반 조사(朝士)는 직무에 수고하여 아침 저녁으로 분주하는 것이, 별시위들이 사흘을 번(番)들면 스무 날을 휴가하는 것과 아주 다릅니다. 별시위는 혹 6품으로서 4품에 제수되는 자가 있으나, 동반은 30개월 만에 다만 한 자품(資品)이 오르게 되어, 서로가 너무 동떨어지게 다릅니다. 이제부터 갑사와 별시위 5, 6품은 거관(去官)된 다음에 재능이 있는 자만 내금위(內禁衛)에 옮겨 붙이고 차례로 천전(遷轉)시켜서, 동반에서 고르지 못하다는 탄식이 없도록 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효문의 사건은 사유 전에 있었던 것인데, 어찌 그만두지 못하고 다시 탄핵하기를 심하게 하는가. 우리 나라 인심에 대개 이와 같은 것이 많은데, 수령과 만호가 어찌 효문을 위해서 그렇게 하였겠는가. 왕명을 받든 사신이 멀리 바다를 건너므로 위로했던 것이다. 또 강상에 관계되는 용서 못할 죄도 아니고, 그 사건이 사유 전에 있었던 것이니, 어찌 파직하겠는가. 행수의 법은 내가 당초에 옛 제도를 상고했으나 외직(外職)에는 행하는 제도가 없었고, 법을 세운 본의도 또한 경관(京官) 각사(各司)에 외람되게 높은 직질에 승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다. 법을 세워도 폐단이 생기는 것은 필연한 사세이다. 무릇 무슨 일이든지 큰 강령(綱領)만 바르게 할 뿐이고 작은 절목은 편리한가 않은가를 다 헤아릴 것이 없다. 별시위·갑사 5, 6품이 거관한 후에 내금위로 옮겨 붙이는 것은 결단코 시행할 수 없다. 행수의 법을 외직에 통용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10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7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
원문
○持平李宗謙啓: "日本通信使卞孝文之行, 慶尙道守令萬戶等率妓十餘人, 慰送於二三日之程, 孝文與書狀官申叔舟不之拒, 厥罪爲大, 而事在赦前, 不可加罪, 然不懲, 則無以戒後。 請罷孝文、叔舟及守令萬戶, 以示後來。 且自行守之法立而每當守令除授時, 東班四品以上甚少, 率以西班四品授之, 此輩出自甲士別侍衛, 類皆不更事。 夫守令, 分憂宣化, 民之休戚係焉。 若州府則民多務煩, 非明習吏治者, 不足以當之, 臣等以謂如用行守之法, 宜通行於外方。 且東班朝士勞於供職, 朝夕奔走, 其諸異乎別侍衛等輩三日入番二十日休暇者矣。 別侍衛或以六品受四品者有之矣, 東班則每三十月, 只加一資, 相去甚遠。 願自今甲士別侍衛五六品去官後, 有才者移屬內禁衛, 以次遷轉, 俾無東班不均之嘆。" 上曰: "孝文事在赦前, 何不舍之, 更劾之甚耶? 我國人心, 率多類此。 其守令萬戶, 豈爲孝文而然耶? 謂其奉命使臣遠涉滄溟而慰之也。 且非關係綱常, 不原之罪, 而事在赦前, 何可罷也? 行守之法, 予初稽之古制, 外官無行守, 而立法本意, 亦爲京官各司濫遷高秩者而設也。 法立弊生, 勢之必至。 凡事, 大綱正則小節不必盡料其便否也。 別侍衛甲士五六品去官後移屬內禁衛事, 斷不可行也。 行守之法, 通行於外官, 予當更思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10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7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
세종실록100권, 세종 25년 5월 28일 임오 3/4 기사 / 1443년 명 정통(正統) 8년
지평 이종겸이 일본 통신사 변효문을 논죄하고 행수의 법에 대해 건의하다
국역
지평 이종겸(李宗謙)이 아뢰기를,
"일본 통신사(通信使) 변효문(卞孝文) 일행이 〈일본(日本)으로 갈때〉 경상도의 수령과 만호들이 기생 10여 명을 거느리고 2, 3일 동안 따라가면서 전송했는데, 효문과 서장관(書狀官) 신숙주(申叔舟)가 거절하지 않았으니, 그 죄가 큽니다. 그러나, 일이 사유(赦宥) 전에 있었으므로 죄를 줄 수는 없으나, 징계하지 않으면 후일을 징계할 수 없으니, 효문과 숙주와 수령·만호를 파직시켜서 뒷 사람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또 행수(行守)의 법을 마련한 다음부터 매양 수령을 제수할 때에 동반(東班) 4품 이상이 매우 적으므로 대개 서반 4품으로 제수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갑사(甲士)·별시위(別侍衛) 따위의 출신이어서 모두 일에 경험이 없는 자입니다. 대개 수령은 임금의 걱정을 나누어 하고 교화(敎化)를 펴므로, 백성의 휴척(休戚)이 달려 있습니다. 주(州)·부(府)와 같은 곳은 백성이 많고 사무도 번잡한데,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 밝고 익숙한 자가 아니면 족히 감당할 수 없으니, 신 등의 생각에는 만일 행수(行守)의 법을 쓰려면 외방에도 통용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동반 조사(朝士)는 직무에 수고하여 아침 저녁으로 분주하는 것이, 별시위들이 사흘을 번(番)들면 스무 날을 휴가하는 것과 아주 다릅니다. 별시위는 혹 6품으로서 4품에 제수되는 자가 있으나, 동반은 30개월 만에 다만 한 자품(資品)이 오르게 되어, 서로가 너무 동떨어지게 다릅니다. 이제부터 갑사와 별시위 5, 6품은 거관(去官)된 다음에 재능이 있는 자만 내금위(內禁衛)에 옮겨 붙이고 차례로 천전(遷轉)시켜서, 동반에서 고르지 못하다는 탄식이 없도록 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효문의 사건은 사유 전에 있었던 것인데, 어찌 그만두지 못하고 다시 탄핵하기를 심하게 하는가. 우리 나라 인심에 대개 이와 같은 것이 많은데, 수령과 만호가 어찌 효문을 위해서 그렇게 하였겠는가. 왕명을 받든 사신이 멀리 바다를 건너므로 위로했던 것이다. 또 강상에 관계되는 용서 못할 죄도 아니고, 그 사건이 사유 전에 있었던 것이니, 어찌 파직하겠는가. 행수의 법은 내가 당초에 옛 제도를 상고했으나 외직(外職)에는 행하는 제도가 없었고, 법을 세운 본의도 또한 경관(京官) 각사(各司)에 외람되게 높은 직질에 승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다. 법을 세워도 폐단이 생기는 것은 필연한 사세이다. 무릇 무슨 일이든지 큰 강령(綱領)만 바르게 할 뿐이고 작은 절목은 편리한가 않은가를 다 헤아릴 것이 없다. 별시위·갑사 5, 6품이 거관한 후에 내금위로 옮겨 붙이는 것은 결단코 시행할 수 없다. 행수의 법을 외직에 통용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10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7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
원문
○持平李宗謙啓: "日本通信使卞孝文之行, 慶尙道守令萬戶等率妓十餘人, 慰送於二三日之程, 孝文與書狀官申叔舟不之拒, 厥罪爲大, 而事在赦前, 不可加罪, 然不懲, 則無以戒後。 請罷孝文、叔舟及守令萬戶, 以示後來。 且自行守之法立而每當守令除授時, 東班四品以上甚少, 率以西班四品授之, 此輩出自甲士別侍衛, 類皆不更事。 夫守令, 分憂宣化, 民之休戚係焉。 若州府則民多務煩, 非明習吏治者, 不足以當之, 臣等以謂如用行守之法, 宜通行於外方。 且東班朝士勞於供職, 朝夕奔走, 其諸異乎別侍衛等輩三日入番二十日休暇者矣。 別侍衛或以六品受四品者有之矣, 東班則每三十月, 只加一資, 相去甚遠。 願自今甲士別侍衛五六品去官後, 有才者移屬內禁衛, 以次遷轉, 俾無東班不均之嘆。" 上曰: "孝文事在赦前, 何不舍之, 更劾之甚耶? 我國人心, 率多類此。 其守令萬戶, 豈爲孝文而然耶? 謂其奉命使臣遠涉滄溟而慰之也。 且非關係綱常, 不原之罪, 而事在赦前, 何可罷也? 行守之法, 予初稽之古制, 外官無行守, 而立法本意, 亦爲京官各司濫遷高秩者而設也。 法立弊生, 勢之必至。 凡事, 大綱正則小節不必盡料其便否也。 別侍衛甲士五六品去官後移屬內禁衛事, 斷不可行也。 行守之法, 通行於外官, 予當更思之。"
- 【태백산사고본】 32책 100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479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사법-탄핵(彈劾) / 군사-중앙군(中央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