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92권, 세종 23년 3월 17일 갑인 1/2 기사 /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왕과 왕비가 온수현에 행행하다
국역
왕과 왕비가 온수현(溫水縣)으로 행행하니, 왕세자가 호종(扈從)하고, 종친과 문무 군신 50여 인이 호가(扈駕)하였다.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한남군(漢南君) 이어(李𤥽)로서 수궁(守宮)하게 하고, 이 뒤로부터는 종친들에게 차례로 왕래하게 하였다. 임금이 가마골[加麽谷]에 이르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이 행차에 처음 초여(軺輿)를 쓰고 기리고(記里鼓)를 사용하니, 거가(車駕)가 1리(里)를 가게 되면 목인(木人)이 스스로 북을 쳤다.
원문
세종 23년 (1441) 3월 17일
국역
왕과 왕비가 온수현(溫水縣)으로 행행하니, 왕세자가 호종(扈從)하고, 종친과 문무 군신 50여 인이 호가(扈駕)하였다. 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한남군(漢南君) 이어(李𤥽)로서 수궁(守宮)하게 하고, 이 뒤로부터는 종친들에게 차례로 왕래하게 하였다. 임금이 가마골[加麽谷]에 이르러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이 행차에 처음 초여(軺輿)를 쓰고 기리고(記里鼓)를 사용하니, 거가(車駕)가 1리(里)를 가게 되면 목인(木人)이 스스로 북을 쳤다.
원문
원본
세종 23년 (1441) 3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