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78권, 세종 19년 9월 22일 기유 1/2 기사 /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이천이 이끄는 야인 토벌군이 승전했음을 알려오다
국역
평안도 감사가 치보하기를,
"이번 9월 초7일에 좌군 도병마사 상호군 이화와 우군 도병마사 대호군 정덕성(鄭德成)이 산양회(山羊會)에서 압록강을 지나갔고, 도절제사 이천 등은 만포 구자(滿浦口子)의 앞 여울을 지나서, 11일에 좌·우군이 고음한(古音閑) 지방에 들어가서 적의 전장(田庄)을 양쪽으로 공격하니, 적이 모두 도망하므로 좌군은 홍타리(紅拖里)로 향했고, 도절제사의 군대는 오자점(吾自岾)에서 강을 따라 내려와서, 적의 소굴 12호를 수색하고는 적 35명을 목 베이고 5명을 생금(生擒)하였으며, 소와 말들을 빼앗고 그들이 쌓아 둔 서속을 불태웠습니다. 12일에는 우군이 파저강을 지나서 올라 산성과 아한(阿閒) 지방을 수색하였으나, 적이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므로 단지 1명만 목 베이고, 그들의 집과 콩과 서속을 태우고는 즉시 파저강을 도로 건너서, 13일 새벽녘에 우군과 도절제사 군사들이 함께 오미부(吾彌府)에 이르러서 그 적의 소굴을 포위하니, 이미 적이 미리 알고 다 숨어서 드디어 그들의 빈집 24호와 쌓아 둔 콩과 서속들을 불태웠습니다. 도절제사의 군사는 즉시 돌아오고, 우군은 소토리(所土里)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좌군을 기다렸는데, 좌군은 적 10명을 목 베이고 남녀 9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홍타리로부터 와서 모이니, 이날 해질 무렵에 적이 우군이 진을 치지 않은 틈을 타서 돌입(突入)하여 교전(交戰)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습니다. 14일에 아침에 적이 또 곧장 좌군을 가리키면서 크게 호통을 치며 진을 범하기로, 우리 군사가 화포를 쏘니 적이 물러났고, 좌·우군이 모두 군사를 돌려서 좌군이 앞을 서고 우군이 뒤에서 오다가, 길에서 또 적의 50여 기(騎)가 갑자기 숲 사이에서 나왔으나,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그들의 말 2필을 빼앗았습니다. 16일에는 좌·우군과 도절제사 군사가 모두 도로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모두 적을 죽이고 잡은 것이 60명이옵고, 우리 군사인즉, 황해도에서 자원하고 들어온 1명이 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였다. 천 등이 사인(使人)을 보내어 첩서(捷書)를 바치기를 전후하여 다섯 차례나 하였는데, 그 때마다 사인들에게 모두 의복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고, 최정안(崔井安)도 또한 승전(勝戰)한 것을 와서 아뢰므로, 옷을 내려 주고 인하여 전농 주부(典農注簿) 이하의 고신을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07면
- 【분류】외교-야(野)
원문
○己酉/平安道監司馳報: "今九月初七日, 左軍都兵馬使上護軍李樺、右軍都兵馬使大護軍鄭德成, 自山羊會過鴨綠江; 都節制使李蕆等過滿浦口子前灘。 十一日, 左右軍入古音閑地, 夾攻賊田莊, 賊皆逃遁。 左軍向紅拖里, 都節制使兵, 自吾自岾沿江而下, 搜索諸賊穴十二戶, 斬賊三十五級, 擒五名, 奪牛馬頭畜, 焚其儲粟。 十二日, 右軍過婆猪江, 搜索兀剌山城及阿閒地面, 賊皆逃遁, 只斬一級, 焚其廬舍及菽粟, 卽還涉婆猪江。 十三日黎明, 右軍及都節制使兵, 俱到吾彌府, 圍其賊穴, 賊已預知皆遁, 遂焚其空舍二十四戶及所蓄菽粟。 都節制使兵卽還師, 右軍屯兵所土里, 待左軍。 左軍斬賊十級, 虜男女九名, 自紅拖里來會。 是日晡時, 賊乘右軍未成陣, 突入交戰, 不克而退。 十四日朝, 賊又直指左軍, 大呼犯陣, 我軍放火砲, 賊退去, 左右軍皆還師。 左軍先引, 右軍爲殿, 道遇賊五十餘騎突出林間, 我軍擊之, 奪其馬二匹。 十六日, 左右軍及都節制使軍, 皆還越江。 凡殺獲賊六十名, 我軍則黃海道自募人一名中箭死。"
蕆等遣使獻捷, 前後凡五, 其使者皆賜衣有差。 崔井安亦以捷來啓, 賜衣, 仍給典農注簿以下告身。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07면
- 【분류】외교-야(野)
세종 19년 (1437) 9월 22일
국역
평안도 감사가 치보하기를,
"이번 9월 초7일에 좌군 도병마사 상호군 이화와 우군 도병마사 대호군 정덕성(鄭德成)이 산양회(山羊會)에서 압록강을 지나갔고, 도절제사 이천 등은 만포 구자(滿浦口子)의 앞 여울을 지나서, 11일에 좌·우군이 고음한(古音閑) 지방에 들어가서 적의 전장(田庄)을 양쪽으로 공격하니, 적이 모두 도망하므로 좌군은 홍타리(紅拖里)로 향했고, 도절제사의 군대는 오자점(吾自岾)에서 강을 따라 내려와서, 적의 소굴 12호를 수색하고는 적 35명을 목 베이고 5명을 생금(生擒)하였으며, 소와 말들을 빼앗고 그들이 쌓아 둔 서속을 불태웠습니다. 12일에는 우군이 파저강을 지나서 올라 산성과 아한(阿閒) 지방을 수색하였으나, 적이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므로 단지 1명만 목 베이고, 그들의 집과 콩과 서속을 태우고는 즉시 파저강을 도로 건너서, 13일 새벽녘에 우군과 도절제사 군사들이 함께 오미부(吾彌府)에 이르러서 그 적의 소굴을 포위하니, 이미 적이 미리 알고 다 숨어서 드디어 그들의 빈집 24호와 쌓아 둔 콩과 서속들을 불태웠습니다. 도절제사의 군사는 즉시 돌아오고, 우군은 소토리(所土里)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좌군을 기다렸는데, 좌군은 적 10명을 목 베이고 남녀 9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홍타리로부터 와서 모이니, 이날 해질 무렵에 적이 우군이 진을 치지 않은 틈을 타서 돌입(突入)하여 교전(交戰)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습니다. 14일에 아침에 적이 또 곧장 좌군을 가리키면서 크게 호통을 치며 진을 범하기로, 우리 군사가 화포를 쏘니 적이 물러났고, 좌·우군이 모두 군사를 돌려서 좌군이 앞을 서고 우군이 뒤에서 오다가, 길에서 또 적의 50여 기(騎)가 갑자기 숲 사이에서 나왔으나,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그들의 말 2필을 빼앗았습니다. 16일에는 좌·우군과 도절제사 군사가 모두 도로 강을 건너 돌아왔습니다. 모두 적을 죽이고 잡은 것이 60명이옵고, 우리 군사인즉, 황해도에서 자원하고 들어온 1명이 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였다. 천 등이 사인(使人)을 보내어 첩서(捷書)를 바치기를 전후하여 다섯 차례나 하였는데, 그 때마다 사인들에게 모두 의복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고, 최정안(崔井安)도 또한 승전(勝戰)한 것을 와서 아뢰므로, 옷을 내려 주고 인하여 전농 주부(典農注簿) 이하의 고신을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07면
- 【분류】외교-야(野)
원문
○己酉/平安道監司馳報: "今九月初七日, 左軍都兵馬使上護軍李樺、右軍都兵馬使大護軍鄭德成, 自山羊會過鴨綠江; 都節制使李蕆等過滿浦口子前灘。 十一日, 左右軍入古音閑地, 夾攻賊田莊, 賊皆逃遁。 左軍向紅拖里, 都節制使兵, 自吾自岾沿江而下, 搜索諸賊穴十二戶, 斬賊三十五級, 擒五名, 奪牛馬頭畜, 焚其儲粟。 十二日, 右軍過婆猪江, 搜索兀剌山城及阿閒地面, 賊皆逃遁, 只斬一級, 焚其廬舍及菽粟, 卽還涉婆猪江。 十三日黎明, 右軍及都節制使兵, 俱到吾彌府, 圍其賊穴, 賊已預知皆遁, 遂焚其空舍二十四戶及所蓄菽粟。 都節制使兵卽還師, 右軍屯兵所土里, 待左軍。 左軍斬賊十級, 虜男女九名, 自紅拖里來會。 是日晡時, 賊乘右軍未成陣, 突入交戰, 不克而退。 十四日朝, 賊又直指左軍, 大呼犯陣, 我軍放火砲, 賊退去, 左右軍皆還師。 左軍先引, 右軍爲殿, 道遇賊五十餘騎突出林間, 我軍擊之, 奪其馬二匹。 十六日, 左右軍及都節制使軍, 皆還越江。 凡殺獲賊六十名, 我軍則黃海道自募人一名中箭死。"
蕆等遣使獻捷, 前後凡五, 其使者皆賜衣有差。 崔井安亦以捷來啓, 賜衣, 仍給典農注簿以下告身。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4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07면
- 【분류】외교-야(野)
원본
세종 19년 (1437)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