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77권, 세종 19년 6월 9일 정묘 2/2 기사 /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행동을 삼갈 것을 명하다
국역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애당초 정탐[體探]하고자 한 뜻이, 국가에서 만일 토벌할 일이 있게 되면 적의 소굴의 형세와 도로의 험하고 순한 것을 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년 봄과 금년 가을에 두 차례나 사람을 보내어 적의 소굴을 알게 하였으나, 한 사람도 적의 소굴을 적실히 알고 돌아온 자가 없더니, 금년 5월에 강계의 이숙림(李肅林) 등이 저들의 땅에 깊이 들어가서 적 몇 명을 죽였고, 또 창성(昌城)의 김장(金將) 등이 파저강(婆猪江)을 건너 들어갔으니, 비록 적의 소굴을 보았겠으나, 저들과 서로 만나서 접전하게 되면 저들이 반드시 알고 준비가 없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만약에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기를 전과 같이 자주 한다면 반드시 적의 술책에 빠질 것이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니 심히 염려스럽다. 적이 만약에 가까운 곳에 몰래 와서 여러 날 머무르면서, 한편으로는 배를 준비하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허실을 엿보게 되면, 우리는 흐리멍덩하게 모르고 있다가 적기(賊騎)가 책에 이른 뒤에 기계를 갑자기 준비하려고 하면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니, 마땅히 5, 60리(里)안에 척후(斥候)를 보내어 항상 정탐하게 하여, 만일 적이 오는 일이 있거든 급히 돌아와서 변을 고하면 우리의 방비하는 일이 거의 만족할 것이다. 만일 일찍 이런 계책이 있었다면 근일에 조명간에서 있었던 신귀(申貴) 등의 공도 또한 응당 여기에 그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런즉, 적변을 정탐하는 일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로써 여러 대신과 논의하니 의논이 분분하여, 나도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것인가. 경이 다시 마음을 다해 계획하여 만일 좋은 계책을 얻거든 자세히 갖추어 계달하라. 대저 본국 변경의 백성들은 저 도적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비록 도적이 침입할 때를 당하여 성안으로 들어오기를 독촉하여도, 오히려 다 들어오지 아니하고 마을에 흩어져 있다가 죽이고 사로잡힘을 당하니, 변경 사람이 만약 이숙림(李肅林) 등이 깊이 들어가서 도적을 죽여서 상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강을 건너 정탐할 즈음에 다투어 공을 받으려고 도적을 피하지 아니하여, 뜻밖에 변을 이루게 하는 자가 장차 혹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뒤로는 교명(敎命)을 거듭 엄하게 하여, 척후하는 자로 하여금 지름길[徑路]로 다니지 말고 항상 산이나 들로 다니면서 적변을 바라보고 삼가, 그 변을 만나는 근심을 피하게 하라. 근래에 감사 박안신(朴安臣)이 헌의(獻議)하기를, ‘저쪽에서는 높은 산과 험한 재[嶺]가 강을 따라 벌여 있어서, 도적이 침입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이 산에 올라 날을 지나면서 바라보고, 우리의 허실을 안 뒤에 강을 건너와서 도둑질하니, 여름철 초목이 울밀할 때를 당하여 2, 3명에게 하루 음식을 싸 가지고 밤을 타서 강을 건너, 통하여 바라볼 만한 곳에 올라 종일 엿보고 밤에 돌아오게 하되, 만일 변이 있을 적에는, 병기를 갖추고 기다린다면 화를 면할 뿐 아니라 도적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니, 이제부터는 구자(口子) 건너편 가장 가까운 곳에, 하루 건너 밤을 타서 갔다가 돌아오면서 살펴보고 변을 대비하라. ’고 하니, 이 논의가 사리에 합당하나, 변경 일을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경은 아울러 결정하여 아뢰라."
하였다.
원문
○傳旨平安道都節制使:
其初體探之意, 以國家如有征討之擧, 則賊穴形勢、道路險夷, 不可不知, 故去年春、今年秋, 兩度遣人, 俾知賊穴, 然無一人的知賊穴而來者。 今年五月, 江界 李肅林等深入彼土, 殺賊數人, 又昌城 金將等越入婆猪, 雖見賊穴, 然與彼人相逢接戰, 彼必知之, 不無預備。 今若遣人, 體探如前頻數, 則必陷於賊術, 此非細故, 甚可慮也。 賊若潛來近地, 累日留連, 一以備船隻, 一以伺我虛實, 而我則懜然不知, 及賊騎到柵, 然後遽備器械, 罔知所措, 宜遣斥候於五六十里之內, 常令體探, 如有賊來, 急還告變, 則我之備禦, 庶有裕矣。 如早有此策, 近日趙明干 申貴等之功, 亦當不止於此矣。 然則賊變探候, 不可不慮, 是用議諸大臣, 議論紛紜, 予亦未得其要, 將何術以處之? 卿更盡心布置, 如得善策, 備細啓達。 大抵本國邊民不畏彼賊, 雖當賊人突入之時, 督令入城, 猶不盡入, 散在閭里, 以致殺虜。 沿邊之人, 若聞李肅林等深入殺賊蒙賞, 則越江探候之際, 爭欲邀功, 不避彼賊, 以致意外之變者, 將或有之。 今後申嚴敎命, 令斥候者不由徑路, 常由山野, 眺望賊變, 謹避其患。 近者監司朴安臣獻議: "彼邊高山峻嶺, 帶江連排, 賊欲入寇, 必登此山, 經日窺望, 知我虛實, 然後渡江來寇。 當夏月鬱密之時, 使二三人裹一日食, 乘夜船渡, 藏船滅跡, 登通望之處, 終日窺望, 至夜乃還, 如其有變, 備兵以待, 則非惟免禍, 賊亦可擒。 自今口子越邊至近之地, 越一日乘夜往還, 窺望待變。" 此議合于事宜, 然邊事難以遙度, 卿竝商確以啓。
세종 19년 (1437) 6월 9일
국역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애당초 정탐[體探]하고자 한 뜻이, 국가에서 만일 토벌할 일이 있게 되면 적의 소굴의 형세와 도로의 험하고 순한 것을 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년 봄과 금년 가을에 두 차례나 사람을 보내어 적의 소굴을 알게 하였으나, 한 사람도 적의 소굴을 적실히 알고 돌아온 자가 없더니, 금년 5월에 강계의 이숙림(李肅林) 등이 저들의 땅에 깊이 들어가서 적 몇 명을 죽였고, 또 창성(昌城)의 김장(金將) 등이 파저강(婆猪江)을 건너 들어갔으니, 비록 적의 소굴을 보았겠으나, 저들과 서로 만나서 접전하게 되면 저들이 반드시 알고 준비가 없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만약에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기를 전과 같이 자주 한다면 반드시 적의 술책에 빠질 것이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니 심히 염려스럽다. 적이 만약에 가까운 곳에 몰래 와서 여러 날 머무르면서, 한편으로는 배를 준비하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허실을 엿보게 되면, 우리는 흐리멍덩하게 모르고 있다가 적기(賊騎)가 책에 이른 뒤에 기계를 갑자기 준비하려고 하면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니, 마땅히 5, 60리(里)안에 척후(斥候)를 보내어 항상 정탐하게 하여, 만일 적이 오는 일이 있거든 급히 돌아와서 변을 고하면 우리의 방비하는 일이 거의 만족할 것이다. 만일 일찍 이런 계책이 있었다면 근일에 조명간에서 있었던 신귀(申貴) 등의 공도 또한 응당 여기에 그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런즉, 적변을 정탐하는 일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로써 여러 대신과 논의하니 의논이 분분하여, 나도 그 요령을 얻지 못하였으니 장차 어떤 방법으로 처리할 것인가. 경이 다시 마음을 다해 계획하여 만일 좋은 계책을 얻거든 자세히 갖추어 계달하라. 대저 본국 변경의 백성들은 저 도적들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비록 도적이 침입할 때를 당하여 성안으로 들어오기를 독촉하여도, 오히려 다 들어오지 아니하고 마을에 흩어져 있다가 죽이고 사로잡힘을 당하니, 변경 사람이 만약 이숙림(李肅林) 등이 깊이 들어가서 도적을 죽여서 상을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강을 건너 정탐할 즈음에 다투어 공을 받으려고 도적을 피하지 아니하여, 뜻밖에 변을 이루게 하는 자가 장차 혹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뒤로는 교명(敎命)을 거듭 엄하게 하여, 척후하는 자로 하여금 지름길[徑路]로 다니지 말고 항상 산이나 들로 다니면서 적변을 바라보고 삼가, 그 변을 만나는 근심을 피하게 하라. 근래에 감사 박안신(朴安臣)이 헌의(獻議)하기를, ‘저쪽에서는 높은 산과 험한 재[嶺]가 강을 따라 벌여 있어서, 도적이 침입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이 산에 올라 날을 지나면서 바라보고, 우리의 허실을 안 뒤에 강을 건너와서 도둑질하니, 여름철 초목이 울밀할 때를 당하여 2, 3명에게 하루 음식을 싸 가지고 밤을 타서 강을 건너, 통하여 바라볼 만한 곳에 올라 종일 엿보고 밤에 돌아오게 하되, 만일 변이 있을 적에는, 병기를 갖추고 기다린다면 화를 면할 뿐 아니라 도적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니, 이제부터는 구자(口子) 건너편 가장 가까운 곳에, 하루 건너 밤을 타서 갔다가 돌아오면서 살펴보고 변을 대비하라. ’고 하니, 이 논의가 사리에 합당하나, 변경 일을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경은 아울러 결정하여 아뢰라."
하였다.
원문
○傳旨平安道都節制使:
其初體探之意, 以國家如有征討之擧, 則賊穴形勢、道路險夷, 不可不知, 故去年春、今年秋, 兩度遣人, 俾知賊穴, 然無一人的知賊穴而來者。 今年五月, 江界 李肅林等深入彼土, 殺賊數人, 又昌城 金將等越入婆猪, 雖見賊穴, 然與彼人相逢接戰, 彼必知之, 不無預備。 今若遣人, 體探如前頻數, 則必陷於賊術, 此非細故, 甚可慮也。 賊若潛來近地, 累日留連, 一以備船隻, 一以伺我虛實, 而我則懜然不知, 及賊騎到柵, 然後遽備器械, 罔知所措, 宜遣斥候於五六十里之內, 常令體探, 如有賊來, 急還告變, 則我之備禦, 庶有裕矣。 如早有此策, 近日趙明干 申貴等之功, 亦當不止於此矣。 然則賊變探候, 不可不慮, 是用議諸大臣, 議論紛紜, 予亦未得其要, 將何術以處之? 卿更盡心布置, 如得善策, 備細啓達。 大抵本國邊民不畏彼賊, 雖當賊人突入之時, 督令入城, 猶不盡入, 散在閭里, 以致殺虜。 沿邊之人, 若聞李肅林等深入殺賊蒙賞, 則越江探候之際, 爭欲邀功, 不避彼賊, 以致意外之變者, 將或有之。 今後申嚴敎命, 令斥候者不由徑路, 常由山野, 眺望賊變, 謹避其患。 近者監司朴安臣獻議: "彼邊高山峻嶺, 帶江連排, 賊欲入寇, 必登此山, 經日窺望, 知我虛實, 然後渡江來寇。 當夏月鬱密之時, 使二三人裹一日食, 乘夜船渡, 藏船滅跡, 登通望之處, 終日窺望, 至夜乃還, 如其有變, 備兵以待, 則非惟免禍, 賊亦可擒。 自今口子越邊至近之地, 越一日乘夜往還, 窺望待變。" 此議合于事宜, 然邊事難以遙度, 卿竝商確以啓。
원본
세종 19년 (1437) 6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