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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4권, 세종 18년 9월 30일 임술 3/3 기사 /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신개가 북쪽 변방에 대한 방략을 논하여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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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7월 일에 의정부 찬성(議政府贊成) 신개(申槪)가 상언하기를,

"신(臣)이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북쪽 변방에 대한 방략(方略)은 적을 방어하고, 적과 화호(和好)를 통하면서 죄목(罪目)을 들어 정벌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변경의 방비를 튼튼하게 하여 적이 감히 엿볼 수 없게 한다면 진실로 좋은 방책(方策)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평안남도의 변경을 지키러 가는 군사는 타고, 짐을 싣는 말이 한 사람 앞에 각기 3, 4필씩이나 되옵는데, 큰 산고개를 넘으면 죽고 쓰러지는 것이 앞뒤에 연달아 있어 이를 짊어지고 가게 되오며, 번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말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10필에 항상 7, 8필이나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이 한 해가 아니오니, 두서너 해 후에는 마병(馬兵)이 계속하게 어렵게 될까 매우 염려됩니다. 변장(邊將) 된 사람은 이러한 폐단을 돌보지 아니하고 엄하게 독려하여 징발하는데도, 오히려 적의 침략을 당함이 근일과 같다면, 방어가 또한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화호(和好)를 통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자녀(子女)와 옥백(玉帛)을 써서 그의 욕심을 채워 주어야만 되겠사오니, 나라에서 이를 당해내겠습니까. 하물며 땅강아지와 개미 같은 미물(微物)과 벌과 전갈 같은 독으로써 제 마음대로 침략을 감행(敢行)하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강화(講和)에 구구히 마음을 쓰겠습니까. 죄목을 들어 정벌하는 일은 다만 한때의 노력(勞力)뿐이오니, 옛날 사람의 이른바, ‘잠깐의 수고로 영구히 편안하다. ’는 것입니다. 진실로 행군(行軍)을 규율 있게 하고, 가까운 공을 탐하지 않으며, 허세(虛勢)를 일삼지 말고서, 기어이 그 추장(酋長)을 사로잡아 군전(軍前)에 와서 항복하게 한 후에야 그만둔다면, 남도(南道)의 폐단을 근절하고 북방의 걱정을 덜며, 화호(和好)를 통하는 계책도 또한 점차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종(操縱)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게 되면, 그 괴수(魁首)의 조회를 받고, 그 자제(子弟)를 볼모로 잡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대저 그들이 침략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비록 모욕을 당하고도 큰 도량으로 그들을 포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휼(恩恤)을 더하면서 정벌을 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이 지난 해의 원한을 마음에 깊이 가지고서 반드시 보복을 행하려는 것일까요, 욕심이 한정이 없어서 우리의 재화(財貨)를 탐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변장(邊將)이 태만하고 용렬한 때문일까요, 사졸(士卒)들이 겁내고 약한 때문일까요. 그들 뜻이 이 몇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소인은 이(利)만 보게 되면 감히 불의(不義)한 일을 하여 뒷날에 해가 있을 것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야적(野賊)들은 마음속에 몇 가지의 지난 일을 생각하고 있으면서 돌이켜 보건대, 아무리 하여도 자기에게는 조금도 해로울 걱정이 없었은즉, 무엇을 꺼려서 침략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적해(賊害)는 이미 이와 같사온데, 우리는 오히려 오욕(汚辱)을 용납하고 피해를 감춰 가면서 그들과 서로 겨루지 않고 객관(客館)에 들여 대접하고, 상을 싸서 주는 것이 전일과 다름이 없었으니, 그들이 진실로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면 마땅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슬피 울면서, 저의 죄를 나물하여 정벌함을 용서하여 달라고 빌 겨를도 없을 것이온데, 도리어 그 독을 더욱 부리오니, 그들이 덕(德)과 의(義)를 보기를 그게 다 무엇이냐 하는 듯이 합니다. 이런 일을 다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비록 참을 수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연변(沿邊) 지방에 있는 백성에게 어쩌하겠으며, 변경을 지키는 장수와 군사들에게 어찌 되겠습니까. 대저 적을 제어하는 방법은, 저들이 해독을 함부로 부리는데 우리가 엄한 위세를 보이지 않으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저들이 귀순하는데 우리가 관대한 은전(恩典)을 보이지 않으면, 저들은 도리어 원심(冤心)을 품고 침략함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반드시 그 형세를 보고 그 변하는 것을 살펴서, 혹은 은전(恩典)을 보이기도 하고, 혹은 위세를 보이기도 하여, 저들로 하여금 우리의 지략(智略) 중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어리둥절하여 일의 실마리를 찾아 알지 못하게 한 후에야 될 것입니다. 지금 야인(野人)들에게 은전(恩典)을 보인 일은 본시부터 행하여 왔지마는, 위엄을 보인 일은 겨우 한 번 행하였사오되, 역시 그 몸둥이와 배와 가슴은 능히 건드려 보지 못하고, 다만 그 피부와 터럭만 상하게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 그들이 뒤를 추격할까 두려워하여 군대들의 짐과 군기(軍器)와 마필(馬匹)을 반수 이상이나 내버리고 이틀 걸을 길을 하루에 걸어 도망해 돌아왔으니, 이는 다만 그들의 원한과 분노를 더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겁내는 것만을 보여서 그들의 업신여기는 마음만 길러 주었을 뿐이니, 어찌 위세를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옛날 사람의 이른바, ‘오면 이를 방어하고, 가거든 이를 쫓아 치지 말라. ’고 한 것은, 군대가 수십만 명에 이르고, 큰 땅을 차지하고 상거(相去)가 멀리 떨어지고 막힌 것을 이름이니, 일찍이 이같이 작은 도적이 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좀도둑질하는 것을 이른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유묘(有苗)가 복종하지 않으매, 순제(舜帝)가 이를 정벌했으며, 험윤(玁狁)이 세력이 성하매,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6월에 군사를 일으켰으며,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군사를 일으키매, 노(魯)나라 백금(伯禽)이 이를 정벌했는데, 고금에 이 일을 칭찬했으니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보건대, 조정의 의논이 죄목을 들어 정벌하는 데 미치지 못한 것은 반드시 군사를 크게 일으키게 될까 이것을 꺼린 때문인가 하옵는데, 다만 이 조그만 도적을 정벌하는 데에 어찌 크게 군사를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식견이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날랜 군사 수천 명만 쓴다면 매우 쉽게 치워버리게 될 것이니 성공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라. ’고 하지마는, 적을 얕잡아보고 경솔히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병가(兵家)에서 경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충분히 계획한 후에라야 군사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만주(李滿住)가 이미 도적질을 하고서 그 죄를 면하려고 뒤를 이어 사람을 보내니, 그 계책이 또한 심히 간사합니다. 그 도적질한 사유를 문죄(問罪)하지 않을 수가 없사오며, 이미 문죄(問罪)를 한다면 그 사신을 머물러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근래에 인구와 말·소를 죽이고 노략한 것이 거의 수백에 이르렀사온데, 만약 또 그 온 사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 회답하는 예(禮)를 후하게 하여 보낸다면, 이는 곧 그들의 쳐들어온 것을 잘하였다고 상을 주는 것이 됩니다. 원컨대, 그 사신을 잡아 머물러 두고, 그 중에서 다만 그 사신 한 사람만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이만주가 전후에 사로잡아 간 인구와 말·소를 전부 돌려보내어 변장(邊將)에게 넘겨 주기를 기다려, 그 후에야 지금 보낸 사람들을 돌아가게 허락할 것이라.’ 하여, 사인(使人)이 왕래하여 되풀이하면서 힐문(詰問)하게 된다면, 쳐들어오려는 계획이 혹시 저지(沮止)될까 하옵니다. 만일에 혹시 다시 사납고 교만한 태도를 부려서 귀순하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전단(戰端)을 여는 것이 되므로, 우리 군사는 더욱 정당하고 용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신을 머물러 두면 그들의 노여움을 갑자기 격발시키게 되니 옳지 않다고 한다면, 또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이만주의 보낸 사람이 6명인데, 그 중 1명은 힘써 구하여 왔으며, 1명은 고하지 않고 몰래 왔다고 하오니, 그 말은 비록 믿지 못할 것이지마는, 그가 서로 통하고자 하는 뜻은 전부터 없지 않습니다. 지금 저들의 사신의 옴이 끊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절대로 사람을 보내지 않았으니, 저들과 같은 비천(卑賤)하고 간교(奸狡)한 것을 비록 마땅히 교호(交好)할 필요는 없지마는, 그러나, 그들의 보낸 사신을 이미 물리치지 아니하고 대접을 후하게 할진댄, 사람을 보내어 답례(答禮)하는 것이 어찌 옳지 못함이 있겠습니까.

신은 원컨대, 모략과 용맹이 있는 몇 사람을 널리 뽑아서 사신을 보낸 데 대한 답례라고 일컬어, 혹은 상사품(賞賜品)을 가지고 그 사신과 함께 보내어 교호(交好)하는 의사를 전달하게 하고, 이 일로 인하여 매우 분잡(紛雜)하게 왕래하면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조회하라는 뜻으로써 달랜다면, 혹은 몸소 와서 조회하기도 하고, 혹은 자식을 보내어 입시(入侍)하기도 할 것이오니, 형세가 당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들의 거처와 형세며, 그들의 많고 적음과 방비의 있고 없는 것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며, 또는 그들 중에 우리에게 귀부(歸附)하고자 하는 자들을 천천히 관찰하여 넌지시 관직을 주고 후하게 대접하는 이익으로써 달랜다면, 그들 중에서 곤궁한 사람이 있으면 형세가 장차 오게 되어, 저들의 모든 정상(情狀)과 모든 계획을 모두 자세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또 동두리부화(童豆里夫化)가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해 왔는데, 그가 이만주의 하고 있는 바를 말하는 것이 비록 정직하지는 못한 점이 있으나, 그러나, 오래 있게 되면 반드시 그 실상을 말할 것입니다. 또 제가 말하기를, ‘곤궁하여 귀화(歸化)하기를 굳이 구하였다. ’고 하였사오니, 어찌 강제로 돌려보낼 필요야 있겠습니까. 신은 두렵건대, 이 사람을 강제로 보낸다면 후에는 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후에 오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어떻게 저들의 소식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저들이 신의만 있다면, 그들의 배반해 온 신하와 도망해 온 관리들은 진실로 마땅히 돌려보내야 될 것이지마는, 그들의 하는 짓으로 본다면 반드시 신의로써 우리에게 보답할 리가 없습니다. 적을 제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만이겠지마는, 만약 적을 제어하고자 한다면 저쪽 땅에서 오는 사람들을 모름지기 온갖 방법으로 오게 하고, 중한 상으로 불러 들여서, 그들을 써서 반간(反間)으로 삼고, 그들을 써서 첩자(諜者)로 삼아, 그곳의 산천의 형세가 험준하고 평탄한 것과 길의 돌고 바른 것과 멀고 가까운 것을 알아서, 번갈아 왕래하면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죄목을 들어 정벌한다고 선언(宣言)하고 저들의 반응을 살펴, 방비함이 있거든 그만두고 행하지 아니하여, 이같이 하기를 서너너덧 번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태만하여져서 방비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후에 틈을 타서 군사를 숨겨 가서 습격한다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만주(李滿住)의 무리가 우리의 울타리가 된 까닭으로, 홀라온(忽剌溫)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데, 만약 이만주를 정벌하여 그들로 하여금 멀리 도망하게 한다면, 홀라온이 옮겨 오게 되므로 변방의 걱정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라. ’고 합니다. 신은 홀라온의 사는 땅은 우리와 서로 거리가 먼지, 가까운지, 평탄하고 험준한지도 알지 못하오며, 또 그들의 거주하는 것과 이사(移徙)하는 상태를 알지 못하오니, 어찌 함부로 의논하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사리와 형세로써 살펴보옵건댄, 홀라온이 진실로 옮겨 와서 살고자 한다면 이만주를 보기를 노예(奴隷)와 같이 여길 것이니, 어찌 이만주의 백명 남짓한 잔약하고 파리한 군졸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또 홀라온은 지금 있는 굴혈(窟穴)에 거주한 지가 몇 해나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사오나, 이웃에 도적이 없고 큰 환난도 없었사온데, 그 옛 땅을 버린다는 것은 아마 그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를 침략하기 위하여 그 편을 이익으로 삼는다면, 지난 해 정월에 이만주에게 인도되어 와서 여연(閭延)을 침략한 일이 있었으나, 소득도 없이 돌아갔으므로, 도리어 이만주가 자기를 속였다고 하여 욕설을 했습니다. 그 후에는 비록 그들이 온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가 이만주의 무리가 거짓으로 핑계하고 우리를 속이는 것이었고, 그 실상은 오지 아니하였은즉, 이것도 또한 우리를 침략함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 한 가지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변경에 쳐들어와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노략하는 것이 여러 번에 이르러 그치지 않는 이만주를 우리의 울타리라고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섬 오랑캐를 보건대, 그 중에 혹은 예의(禮義)의 한 끝을 조금 아는 자가 있사오니, 그들은 예의로써 대접하는 것이 오히려 옳으려니와, 그 부모를 죽이는 것은 짐승도 이를 하지 않고, 홀로 올빼미[梟]와 경짐승[獍]만이 그리 하게 되는데, 야인을 대우하는 것은 올빼미와 경짐승을 예의로써 길들이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옛날에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초(楚)나라 사람과 홍(泓)에서 싸우면서 적군(敵軍)을 험지(險地)에서 누르지 아니하고, 적군이 전열(戰列)을 이루기 전에는 공격하는 북을 치지 아니한다고 하다가 크게 패전하였으므로, 춘추(春秋)에 이를 매우 폄론(貶論)하였으니, 그것은 작은 명예만 꾸미려 하여 큰 덕에는 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국과 전쟁하면서 작은 예절을 지킨다고 하여 패전을 하게 된 것은 성인(聖人)이 오히려 이를 폄론(貶論)하였는데, 하물며 올빼미와 경짐승과 같은 종류를 대우하면서 예의에만 얽매인다면, 이것은 도리어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됩니다. 다만 사람들만이 이를 그르게 여길 뿐 아니라, 하늘도 또한 이를 싫어할 것입니다. 금년은 한재(旱災)가 더욱 심하므로 군사를 움직이는 일은 진실로 의논할 수가 없겠지마는, 그러나, 신은 연사(年事)의 풍년·흉년과 형세의 느즈러진 것과 급한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갑자기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편안하고 고요한 것에만 습관이 되어, 무릇 이웃 도적을 대할 적에는 오직 예의만 차리려 들고 군사를 일으켜 그 죄 있는 자를 정벌하여 그들의 광포한 태도와 완강한 기세를 꺾어서 변방 백성들로 하여금 영구히 편안케 하는 계책은 미처 도모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이에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저 적은 그 추장(酋長)은 평안도 연변(沿邊)의 수령들보다 지혜롭지 못하고, 그 무리들의 수효는 평안도 작은 현(縣)의 사람보다 많지 않으며, 그 사납고 용맹스러움은 평안도 여러 부대(部隊)의 군졸들보다 능히 낫지 못하며, 그 군기(軍器)의 많음과 그것의 굳세고 날카로움은 평안도 한 고을의 저장된 병장기에 미치지 못하지마는, 그러나, 우리가 항상 모욕을 당함이 그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변장(邊將)이 그 적임자(適任者)가 아닌 데 있는 것이니, 진실로 그 적임자만 얻게 된다면, 도성 밖의 조그만 도적의 정벌에는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이를 행할 수 있을 것이며, 한 도(道)의 병력(兵力)으로써 능히 이를 쳐부술 수가 있을 것이오니, 그 지휘(指揮)는 반드시 다 조정에서 내려야 할 것이 아니며, 그 군졸은 다른 도(道)에까지 번거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시기를 타서 기회에 대응할 형세가 되었다면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아니하고서 행하는 것도 또한 옳겠습니다. 옛날에 한(漢)나라 조충국(趙充國)이 4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가서 구군(九郡)에 둔쳐 있은즉, 흉노(匈奴) 10여만 명이 이 소식을 듣고 물러갔으며, 당(唐)나라 이덕유(李德裕)가 나가서 검남(劎南)과 서천(西川)을 지켜서 주변루(籌邊樓)를 세우고 장의성(仗義城) 등을 쌓으니, 두쪽 변방이 점차로 두려워하여 남조(南詔)129) 는 포로 4만 명을 돌려보내겠다고 청하니, 그 일이 지극히 크고 그 공이 심히 컸지마는, 방략(方略)이 모두 조정의 의논에서 나왔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지금 변경의 방비는 법금(法禁)이 엄밀한 까닭으로, 변장(邊將)이 비록 기이한 계책[奇計]을 내어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더라도, 앞뒤를 두려워하고 움추려서 자유스럽지 못하여, 무릇 사변(事變)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조정에 품고(稟告)하게 됩니다. 대저 기회는 잠깐 동안에 변하는데 천 리 밖에서 명령이 돌와 내려오기를 기다리게 되니, 갔다가 돌아오는 기일이 거의 달포가 넘게 되어 일의 기회는 이미 놓치게 되오니, 어찌 기이한 공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모신(謀臣)과 변장(邊將)들에게 밝게 신칙하여 항상 적을 제어하고 치욕을 씻는 것으로써 일을 삼아, 이를 생각하고 이에 생각을 두어, 원수를 갚고자 고생을 참고 견디어 대체(大體)를 먼저하고 고식(姑息)은 뒤로 돌리며, 여러 계책을 써서 모략(謀略)을 넓히고, 시기를 기다릴 때에는 실력을 길러서 시기를 보아 움직이게 하고, 변장과 진장(鎭將)이 만약 기이한 꾀와 좋은 계책이 있어서, 기회를 결정하고 공을 이룰 만한 형세를 이르게 할 수 있거든, 완급(緩急)을 살피고 경중(輕重)을 헤아려 먼저 군사를 조발(調發)하고 나중에 아뢰게 하되, 꼭 승리할 것을 기약하게 하고, 또 그들로 하여금 조그만 신의와 작은 예절에 구애하지 말고, 순전히 바른 도리를 써서 작은 도적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신이 또한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마땅히 군사를 움직인다면 가서 정벌한다는 의사로써 개유하지 않을 수 없으니, 원컨대, 거듭 주장(主將)에게 명하여 출발할 때에 대중(大衆)에게 맹세하기를, ‘야적(野賊)이 완흉(頑凶)하여 침략하여 해독을 부린 것이 서너너덧 번에 이르러, 마침내 변방 백성들로 하여금 자식은 그 아비를 잃게 되고, 아내는 그 남편을 잃게 되었으며, 재물과 축산(畜産)이 이 때문에 텅 비게 되어, 원망하는 소리가 위로 하늘에 들리니, 성상(聖上)께서 죄 없는 백성이 작은 도적의 손아귀에 빠져 있음을 민망히 생각하사, 위로 천자(天子)에게 아뢰어 이미 윤허(允許)를 받으셨으므로, 마침내 신(臣) 아무를 명하여 삼군(三軍)을 통솔하여 거느리고 가서 나쁜 무리를 정벌하게 하셨으니, ‘너희들은 맹세하는 말을 밝게 들으라. 너희들이 명령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살펴 가리심은 하늘 뜻에 있으니, 상벌(賞罰)이 엄하고 명백하여 결단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신 아무는 친히 임금의 교명(敎命)을 받자왔으니, 교지에, ‘적의 괴수를 사로잡아 죽인 사람은 상으로 벼슬 5등을 승진시키고, 자제(子弟)를 죽인 자를 사로잡은 사람은 4등을 승진시키고, 억세고 용감한 적을 사로잡거나 죽인 사람은 3등을 승진시키고, 평인(平人)을 죽인 자를 사로잡았거나 죽인 사람은 수효를 조사하여 차등이 있게 승진시키고, 향리(鄕吏)·역자(驛子)·염간(鹽干)·공천(公賤)·사천(私賤) 중에서 특수한 공로가 있는 사람은 그들의 구실을 면제하고 관직으로 상주게 하며, 적인(賊人)의 가재(家財)를 모두 나누어 주게 할 것이다. 만약 전진(戰陣)에 임하여 적군과 맞설 적에,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고 앉고 일어나는 것이 한 가지라도 군령에 어긋난다면, 마땅히 진영(陣營) 앞에서 이를 죽이고 용서함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은 이를 들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 교지로써 삼군(三軍)에게 선포한다면, 사람마다 그 용기가 백배나 더하여 분투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에 나아갈 것입니다.

신은 성상의 특수하옵신 은혜를 잘못 입게 되었사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분발하여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옵지마는, 그러나 재주가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하여 정사를 건의하여 밝힌 바가 없으며, 다만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고 나라를 위하여 죽기를 맹세할 뿐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일의 기회가 있음을 만나 혹은 어리석은 소견을 내기도 하고, 혹은 이상한 소문도 얻으면 취하고 버림을 가릴 여가도 없이 문득 위에 올려서 허튼소리나마 가려 보실까 엎디어 바라옵나이다. 신은 통분한 마음이 지극하옵기로 말씀이 지리번잡하옴을 깨닫지 못하고 성상의 위엄을 모독하였사오매, 진실로 황공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을 올립니다."

하였다.

천순(天順) 7년 3월 일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신(臣) 신숙주(申叔舟),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신 권남(權擥),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신 최항(崔恒), 신 어효첨(魚孝瞻),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신 이극감(李克堪), 신 양성지(梁誠之) 등은 삼가 전지(傳旨)를 받들어 이에 더 붙임.

  • [註 129] 남조(南詔) : 옛날 중국 운남성(雲南省)에 있던 나라 이름.

원문

○丙辰七月日, 議政府贊成申槪上言:

臣竊惟北鄙方略, 不過備禦、通好、討罪而已。 固我邊備, 賊不敢窺, 固爲善矣, 然平安南道赴防之軍騎載馬, 人各三四匹, 踰大嶺則斃踣相望, 負擔以行, 及番下, 馬之不返者十常七八。 如此者非一年, 深恐數年之後, 馬兵難繼也。 爲邊將者不恤此弊, 嚴督調發, 而尙致寇掠, 有如近日, 則備禦亦甚難矣。

欲以通好則須用子女玉帛, 可以塞其欲也, 國家能之乎? 況以螻蟻之微、蜂蠆之毒, 肆意侵掠, 我尙區區於講和乎! 討罪之擧, 惟一時勞費耳, 古人所謂暫勞而永逸者也。 誠使行師有律, 而不要近功, 不務虛聲, 期於擒其酋長, 肉袒軍前而後已, 則可以斷南道之弊, 可以寬北顧之憂, 而通好之策, 亦可以馴致矣。 操縱在我, 則朝其渠魁, 質其子弟, 何難之有?

夫其爲寇不已者, 謂我雖見侮, 而大度包容, 尙加恩恤, 而不行征討耶? 深挾往年之恨而必行報復耶? 饕餮無厭而利我財貨耶? 抑以我邊將之怠劣耶? 士卒之怯弱耶? 而其意不出於此數者。 凡小人見利, 則敢爲不義之事, 而不計後日之害, 矧此野賊, 心挾數事而顧, 無些小害己之患, 何憚而不爲寇也? 彼之賊害旣如此, 而我尙內汚藏疾, 不與之較, 館待賞賚, 無異前日, 苟有人心者, 宜其悔罪哀鳴, 求免討罪之不暇, 反乃益肆其毒, 其視德義爲何等物也。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雖可忍也, 如吾之沿邊赤子何? 守邊將士何?

大抵制敵之方, 彼爲肆毒, 而我不示之嚴威, 則彼必輕我而侮之不已;彼爲歸順, 而我不示之寬恩, 則彼反懷逆而侵掠尤甚。 故必觀其勢、察其變, 或示恩、或示威, 使彼顚倒迷失於我之智度之中, 而莫知端倪, 然後可也。 今於野人, 示恩則行之有素矣, 示威則僅一行之, 亦不能害其軀幹腹心, 而祗傷其皮膚毛髦矣。 又懼其躡後也, 而輜重器械馬匹, 棄之太半, 倍道奔還, 是非惟增其狠怒也。 反示恇怯, 而長其輕侮之心耳, 何可謂之示威也?

且古人所謂來則禦之, 去則勿追者, 衆至數十萬, 雄據大地, 而相去遼隔者也。 曾謂此等(叢)〔蕞〕 爾小寇, 隔一江水, 鼠竊狗偸者耶? 不然則有苗不服, 而舜征之; 玁狁孔熾, 而周宣六月興師; 淮夷、徐戎幷興, 而伯禽征之, 古今美之, 何也?

臣竊觀朝議不及討罪者, 必憚於大擧也。 惟此幺麽之寇之討, 何必大擧也? 識者曰: "用精勇數千人, 如拾芥耳, 蔑不濟矣。" 然易而輕擧, 兵家之戒也。 當熟籌之, 然後可發也。 今滿住旣行寇賊, 規免其罪, 繼以遣人, 其計亦甚狡矣。 其作賊之由, 不可不問, 旣問之, 則其使不可不留。 近來殺掠人口馬牛, 殆至數百矣, 若又厚其來使, 優其回禮以遣之, 則是賞其入寇也。 願拘其使, 但還其介一人, 云: "待滿住前後所擄人口馬牛, 盡數發還, 交割邊將, 然後今所遣人, 方聽其還。" 使人往還, 反覆致詰, 則入寇之謀, 或可沮喪矣。 如或更肆傑驁, 而不肯歸款, 則是自啓兵端, 而我之師尤直而壯矣。 抑以爲留其使而遽激其怒不可, 則又有可行者焉。

滿住所遣六人, 而一人力救而來, 一人不告潛來, 其言雖未可信, 其欲相通之意, 未嘗無也。 今彼來聘連絡, 而我絶不遣人, 彼之卑微奸狡, 雖不宜交好, 然其來使旣不却, 而容待優厚, 則遣人以答, 有何不可? 臣願廣選有謀略勇悍數人, 稱爲報聘, 或賚賞賜, 同其使以遣, 道達交好之意, 因而往返雜沓, 誘以入朝之意, 則或躬自來朝, 或遣子入侍, 勢所當然。 雖未得此, 猶可以審其居處形止及其衆寡虛實, 又徐觀其欲附我之輩, 密誘以授職, 厚待之利, 則其有窮困者, 勢將來赴, 而彼之情狀, 凡百謀爲, 可以悉矣。

今又童豆里夫化棄妻子來奔, 其言滿住施爲, 雖若有不直, 然久留則必吐其實矣。 又自言窮困, 固求投化, 則何必强遣也? 臣恐强遣此人, 則後無來者矣。 後無來者, 則何由詗彼之聲息也? 彼有信義, 則叛臣逃吏, 同當還也, 觀其所爲, 則不必以信義報之也。 不欲制敵則已, 如欲制敵, 則自彼來者, 須多方以致之, 重賞以招之, 用之爲反間, 用之爲諜人, 因以識其山川形勢夷險、道路迂直遠近, 交互往來, 聲言大擧討罪, 詗彼有備, 已而不行。 如此數四, 則彼必怠而不備, 然後乘間抵隙, 潛師往襲, 可以得志矣。

議者曰: "滿住之類, 爲我藩籬, 故忽剌溫不敢近。 若討滿住, 使之遠遁, 則忽剌溫移來, 邊患尤劇矣。" 臣未知忽剌溫地面相去遠近夷險, 又未知其居止遷徙之狀, 何可妄議? 然以理勢觀之, 忽剌溫誠欲徙居, 則視滿住如奴隷耳, 豈畏滿住百數孱羸之卒乎? 且忽剌溫時居窟穴, 不知其幾年耶! 無隣寇、無大患, 而棄其舊土, 恐不然也。 若以侵我爲利, 則去年正月被滿住引導, 來侵閭延, 無所得而去, 反以滿住爲欺誑而詬之。 厥後縱有言其來者, 皆滿住輩假托紿我耳, 非其實也。 此亦不利寇我之一驗也。 且入寇邊疆, 縱意殺掠, 至于累數而不已者, 謂之藩籬可乎? 今觀島夷, 或有粗知禮義之一端者, 待之以禮義, 猶可也, 殺其父母, 禽獸不爲, 而獨梟獍爲之, 野人, 父老則射殺之, 卽梟獍也。 然則以禮義待野人, 何以異於馴梟獍以禮義哉? 昔宋 襄公及楚人戰于泓, 不扼人於險, 不鼓不成列而致大敗, 《春秋》深貶之, 以其飾小名而昧大德也。 然則與敵國戰而用小禮以致敗, 聖人尙貶之, 況以待梟獍之類而規規於禮義, 則是反失於禮義矣。 不惟人非之, 天亦厭之矣。 今歲旱災太甚, 動衆之擧, 固不可議。 然臣非以不計歲之豐歉、勢之緩急而遽欲行伏, 特以國家狃於安靜, 凡待隣寇, 惟用禮義, 而擧兵討罪, 挫其狂悍, 永康邊民之計, 則不遑及焉, 故敢此言之。

今彼賊, 其酋不智於平安沿邊之守, 其徒不衆於平安小縣之人, 其驍勇不能過平安諸翼之卒, 其兵革之多與其堅利, 不及平安一郡之藏。 然而我之見侮不已, 何也? 在於邊將非其人也。 苟得其人, 則閫外小寇之討, 都節制使得以行之, 一道之力可以破之, 其指揮不必盡出於朝也, 其軍卒不必煩於他道也。 如有乘時應機之勢, 則不俟朝命而行, 亦可也。 昔漢 趙充國將四萬騎, 出屯九郡, 而匈奴十餘萬騎, 聞之引去。 唐 李德裕出鎭劒南、西川, 建籌邊樓, 築仗義等城, 而二邊浸懼, 南詔請還俘掠四萬人, 其事至大, 其功甚偉, 而未聞方略皆出於廟議也。 且今邊防, 法禁嚴密, 故邊將雖欲出奇應變, 而畏縮首尾, 不得自由, 凡遇事變, 必稟於朝。 夫機會, 變於斯須, 而千里之外, 需待回降, 往還之期, 殆踰旬月, 而事機已失矣, 何由得成奇功也?

伏望明勑謀臣, 與邊將常以制敵灑恥爲事, 念玆在玆, 臥薪嘗膽, 先大體而後姑息, 用群策而廣謀略, 遵養時晦, 相時以動, 而邊將鎭將如有奇謀良策可以致決機成功之勢, 則審緩急、酌輕重, 先發後聞, 期以克捷, 而又使之勿拘於小信小禮而純用直道, 以受侮於小寇也。

臣又竊念, 如當動衆, 則不可不喩以往討之意, 願申命主將, 臨發誓衆曰: "野賊頑凶, 侵掠肆毒, 至于數四。 遂使邊民子失其父, 妻失其夫, 資財畜産, 爲之一空, 嗟怨之聲, 上聞于天。 聖上閔念無辜沈沒小賊, 上告天子, 已蒙兪允, 遂命臣某, 督率三軍, 往討醜類, 爾其明聽誓辭。 爾之用命不用命, 簡在天心, 賞罰嚴明, 斷不差也。 臣某親奉上旨, 有曰: ‘擒殺賊魁者, 賞爵陞五等; 擒殺子弟者, 陞四等; 擒殺壯勇者, 陞三等;擒殺平人者, 驗人數差等陞擢; 鄕吏驛子鹽干公私賤口有殊功者, 亦免役賞職, 俱給賊人家財。 如臨陣對敵, 進退坐作, 一乖所令, 則當於軍前, 戮之無赦。 爾其聽之。’" 以之宣令三軍, 則人百其勇, 爭奮竭力而赴鬪矣。

臣謬蒙殊恩, 夙夜思奮, 欲報涓埃, 然才劣識淺, 無所建明, 惟有奉公盡瘁, 誓以死耳。 故遇有事機, 或出愚見, 或得異聞, 不暇取舍, 輒以陳獻, 以備芻蕘, 伏惟聖裁。 臣痛憤之至, 不覺言煩, 冒瀆天威, 誠惶誠恐, 昧死以言。

天順七年三月日, 領春秋館事臣申叔舟、監春秋館事臣權擥、知春秋館事臣崔恒ㆍ臣魚孝瞻、同知春秋館事臣李克堪ㆍ臣梁誠之等謹奉傳旨, 添附于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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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4권, 세종 18년 9월 30일 임술 3/3 기사 /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신개가 북쪽 변방에 대한 방략을 논하여 올리다

국역

병진년 7월 일에 의정부 찬성(議政府贊成) 신개(申槪)가 상언하기를,

"신(臣)이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북쪽 변방에 대한 방략(方略)은 적을 방어하고, 적과 화호(和好)를 통하면서 죄목(罪目)을 들어 정벌하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 변경의 방비를 튼튼하게 하여 적이 감히 엿볼 수 없게 한다면 진실로 좋은 방책(方策)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평안남도의 변경을 지키러 가는 군사는 타고, 짐을 싣는 말이 한 사람 앞에 각기 3, 4필씩이나 되옵는데, 큰 산고개를 넘으면 죽고 쓰러지는 것이 앞뒤에 연달아 있어 이를 짊어지고 가게 되오며, 번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말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10필에 항상 7, 8필이나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이 한 해가 아니오니, 두서너 해 후에는 마병(馬兵)이 계속하게 어렵게 될까 매우 염려됩니다. 변장(邊將) 된 사람은 이러한 폐단을 돌보지 아니하고 엄하게 독려하여 징발하는데도, 오히려 적의 침략을 당함이 근일과 같다면, 방어가 또한 심히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화호(和好)를 통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자녀(子女)와 옥백(玉帛)을 써서 그의 욕심을 채워 주어야만 되겠사오니, 나라에서 이를 당해내겠습니까. 하물며 땅강아지와 개미 같은 미물(微物)과 벌과 전갈 같은 독으로써 제 마음대로 침략을 감행(敢行)하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강화(講和)에 구구히 마음을 쓰겠습니까. 죄목을 들어 정벌하는 일은 다만 한때의 노력(勞力)뿐이오니, 옛날 사람의 이른바, ‘잠깐의 수고로 영구히 편안하다. ’는 것입니다. 진실로 행군(行軍)을 규율 있게 하고, 가까운 공을 탐하지 않으며, 허세(虛勢)를 일삼지 말고서, 기어이 그 추장(酋長)을 사로잡아 군전(軍前)에 와서 항복하게 한 후에야 그만둔다면, 남도(南道)의 폐단을 근절하고 북방의 걱정을 덜며, 화호(和好)를 통하는 계책도 또한 점차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조종(操縱)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게 되면, 그 괴수(魁首)의 조회를 받고, 그 자제(子弟)를 볼모로 잡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대저 그들이 침략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비록 모욕을 당하고도 큰 도량으로 그들을 포용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휼(恩恤)을 더하면서 정벌을 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들이 지난 해의 원한을 마음에 깊이 가지고서 반드시 보복을 행하려는 것일까요, 욕심이 한정이 없어서 우리의 재화(財貨)를 탐내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변장(邊將)이 태만하고 용렬한 때문일까요, 사졸(士卒)들이 겁내고 약한 때문일까요. 그들 뜻이 이 몇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릇 소인은 이(利)만 보게 되면 감히 불의(不義)한 일을 하여 뒷날에 해가 있을 것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 야적(野賊)들은 마음속에 몇 가지의 지난 일을 생각하고 있으면서 돌이켜 보건대, 아무리 하여도 자기에게는 조금도 해로울 걱정이 없었은즉, 무엇을 꺼려서 침략하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적해(賊害)는 이미 이와 같사온데, 우리는 오히려 오욕(汚辱)을 용납하고 피해를 감춰 가면서 그들과 서로 겨루지 않고 객관(客館)에 들여 대접하고, 상을 싸서 주는 것이 전일과 다름이 없었으니, 그들이 진실로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면 마땅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슬피 울면서, 저의 죄를 나물하여 정벌함을 용서하여 달라고 빌 겨를도 없을 것이온데, 도리어 그 독을 더욱 부리오니, 그들이 덕(德)과 의(義)를 보기를 그게 다 무엇이냐 하는 듯이 합니다. 이런 일을 다 참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참지 못할 것이 있겠습니까. 비록 참을 수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연변(沿邊) 지방에 있는 백성에게 어쩌하겠으며, 변경을 지키는 장수와 군사들에게 어찌 되겠습니까. 대저 적을 제어하는 방법은, 저들이 해독을 함부로 부리는데 우리가 엄한 위세를 보이지 않으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며, 저들이 귀순하는데 우리가 관대한 은전(恩典)을 보이지 않으면, 저들은 도리어 원심(冤心)을 품고 침략함이 더욱 심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반드시 그 형세를 보고 그 변하는 것을 살펴서, 혹은 은전(恩典)을 보이기도 하고, 혹은 위세를 보이기도 하여, 저들로 하여금 우리의 지략(智略) 중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어리둥절하여 일의 실마리를 찾아 알지 못하게 한 후에야 될 것입니다. 지금 야인(野人)들에게 은전(恩典)을 보인 일은 본시부터 행하여 왔지마는, 위엄을 보인 일은 겨우 한 번 행하였사오되, 역시 그 몸둥이와 배와 가슴은 능히 건드려 보지 못하고, 다만 그 피부와 터럭만 상하게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 그들이 뒤를 추격할까 두려워하여 군대들의 짐과 군기(軍器)와 마필(馬匹)을 반수 이상이나 내버리고 이틀 걸을 길을 하루에 걸어 도망해 돌아왔으니, 이는 다만 그들의 원한과 분노를 더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겁내는 것만을 보여서 그들의 업신여기는 마음만 길러 주었을 뿐이니, 어찌 위세를 보인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옛날 사람의 이른바, ‘오면 이를 방어하고, 가거든 이를 쫓아 치지 말라. ’고 한 것은, 군대가 수십만 명에 이르고, 큰 땅을 차지하고 상거(相去)가 멀리 떨어지고 막힌 것을 이름이니, 일찍이 이같이 작은 도적이 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좀도둑질하는 것을 이른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유묘(有苗)가 복종하지 않으매, 순제(舜帝)가 이를 정벌했으며, 험윤(玁狁)이 세력이 성하매, 주(周)나라 선왕(宣王)이 6월에 군사를 일으켰으며,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군사를 일으키매, 노(魯)나라 백금(伯禽)이 이를 정벌했는데, 고금에 이 일을 칭찬했으니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신은 그윽이 보건대, 조정의 의논이 죄목을 들어 정벌하는 데 미치지 못한 것은 반드시 군사를 크게 일으키게 될까 이것을 꺼린 때문인가 하옵는데, 다만 이 조그만 도적을 정벌하는 데에 어찌 크게 군사를 일으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식견이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날랜 군사 수천 명만 쓴다면 매우 쉽게 치워버리게 될 것이니 성공하지 않을 리가 없을 것이라. ’고 하지마는, 적을 얕잡아보고 경솔히 군사를 일으키는 일은 병가(兵家)에서 경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충분히 계획한 후에라야 군사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만주(李滿住)가 이미 도적질을 하고서 그 죄를 면하려고 뒤를 이어 사람을 보내니, 그 계책이 또한 심히 간사합니다. 그 도적질한 사유를 문죄(問罪)하지 않을 수가 없사오며, 이미 문죄(問罪)를 한다면 그 사신을 머물러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근래에 인구와 말·소를 죽이고 노략한 것이 거의 수백에 이르렀사온데, 만약 또 그 온 사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 회답하는 예(禮)를 후하게 하여 보낸다면, 이는 곧 그들의 쳐들어온 것을 잘하였다고 상을 주는 것이 됩니다. 원컨대, 그 사신을 잡아 머물러 두고, 그 중에서 다만 그 사신 한 사람만 돌려보내면서 말하기를, ‘이만주가 전후에 사로잡아 간 인구와 말·소를 전부 돌려보내어 변장(邊將)에게 넘겨 주기를 기다려, 그 후에야 지금 보낸 사람들을 돌아가게 허락할 것이라.’ 하여, 사인(使人)이 왕래하여 되풀이하면서 힐문(詰問)하게 된다면, 쳐들어오려는 계획이 혹시 저지(沮止)될까 하옵니다. 만일에 혹시 다시 사납고 교만한 태도를 부려서 귀순하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 전단(戰端)을 여는 것이 되므로, 우리 군사는 더욱 정당하고 용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신을 머물러 두면 그들의 노여움을 갑자기 격발시키게 되니 옳지 않다고 한다면, 또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이만주의 보낸 사람이 6명인데, 그 중 1명은 힘써 구하여 왔으며, 1명은 고하지 않고 몰래 왔다고 하오니, 그 말은 비록 믿지 못할 것이지마는, 그가 서로 통하고자 하는 뜻은 전부터 없지 않습니다. 지금 저들의 사신의 옴이 끊어지지 않는데, 우리는 절대로 사람을 보내지 않았으니, 저들과 같은 비천(卑賤)하고 간교(奸狡)한 것을 비록 마땅히 교호(交好)할 필요는 없지마는, 그러나, 그들의 보낸 사신을 이미 물리치지 아니하고 대접을 후하게 할진댄, 사람을 보내어 답례(答禮)하는 것이 어찌 옳지 못함이 있겠습니까.

신은 원컨대, 모략과 용맹이 있는 몇 사람을 널리 뽑아서 사신을 보낸 데 대한 답례라고 일컬어, 혹은 상사품(賞賜品)을 가지고 그 사신과 함께 보내어 교호(交好)하는 의사를 전달하게 하고, 이 일로 인하여 매우 분잡(紛雜)하게 왕래하면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조회하라는 뜻으로써 달랜다면, 혹은 몸소 와서 조회하기도 하고, 혹은 자식을 보내어 입시(入侍)하기도 할 것이오니, 형세가 당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들의 거처와 형세며, 그들의 많고 적음과 방비의 있고 없는 것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며, 또는 그들 중에 우리에게 귀부(歸附)하고자 하는 자들을 천천히 관찰하여 넌지시 관직을 주고 후하게 대접하는 이익으로써 달랜다면, 그들 중에서 곤궁한 사람이 있으면 형세가 장차 오게 되어, 저들의 모든 정상(情狀)과 모든 계획을 모두 자세히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또 동두리부화(童豆里夫化)가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해 왔는데, 그가 이만주의 하고 있는 바를 말하는 것이 비록 정직하지는 못한 점이 있으나, 그러나, 오래 있게 되면 반드시 그 실상을 말할 것입니다. 또 제가 말하기를, ‘곤궁하여 귀화(歸化)하기를 굳이 구하였다. ’고 하였사오니, 어찌 강제로 돌려보낼 필요야 있겠습니까. 신은 두렵건대, 이 사람을 강제로 보낸다면 후에는 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후에 오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어떻게 저들의 소식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저들이 신의만 있다면, 그들의 배반해 온 신하와 도망해 온 관리들은 진실로 마땅히 돌려보내야 될 것이지마는, 그들의 하는 짓으로 본다면 반드시 신의로써 우리에게 보답할 리가 없습니다. 적을 제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만이겠지마는, 만약 적을 제어하고자 한다면 저쪽 땅에서 오는 사람들을 모름지기 온갖 방법으로 오게 하고, 중한 상으로 불러 들여서, 그들을 써서 반간(反間)으로 삼고, 그들을 써서 첩자(諜者)로 삼아, 그곳의 산천의 형세가 험준하고 평탄한 것과 길의 돌고 바른 것과 멀고 가까운 것을 알아서, 번갈아 왕래하면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죄목을 들어 정벌한다고 선언(宣言)하고 저들의 반응을 살펴, 방비함이 있거든 그만두고 행하지 아니하여, 이같이 하기를 서너너덧 번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태만하여져서 방비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후에 틈을 타서 군사를 숨겨 가서 습격한다면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만주(李滿住)의 무리가 우리의 울타리가 된 까닭으로, 홀라온(忽剌溫)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데, 만약 이만주를 정벌하여 그들로 하여금 멀리 도망하게 한다면, 홀라온이 옮겨 오게 되므로 변방의 걱정이 더욱 심하게 될 것이라. ’고 합니다. 신은 홀라온의 사는 땅은 우리와 서로 거리가 먼지, 가까운지, 평탄하고 험준한지도 알지 못하오며, 또 그들의 거주하는 것과 이사(移徙)하는 상태를 알지 못하오니, 어찌 함부로 의논하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사리와 형세로써 살펴보옵건댄, 홀라온이 진실로 옮겨 와서 살고자 한다면 이만주를 보기를 노예(奴隷)와 같이 여길 것이니, 어찌 이만주의 백명 남짓한 잔약하고 파리한 군졸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또 홀라온은 지금 있는 굴혈(窟穴)에 거주한 지가 몇 해나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사오나, 이웃에 도적이 없고 큰 환난도 없었사온데, 그 옛 땅을 버린다는 것은 아마 그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를 침략하기 위하여 그 편을 이익으로 삼는다면, 지난 해 정월에 이만주에게 인도되어 와서 여연(閭延)을 침략한 일이 있었으나, 소득도 없이 돌아갔으므로, 도리어 이만주가 자기를 속였다고 하여 욕설을 했습니다. 그 후에는 비록 그들이 온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것은 모두가 이만주의 무리가 거짓으로 핑계하고 우리를 속이는 것이었고, 그 실상은 오지 아니하였은즉, 이것도 또한 우리를 침략함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 한 가지 증거입니다. 그리고 또, 변경에 쳐들어와서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노략하는 것이 여러 번에 이르러 그치지 않는 이만주를 우리의 울타리라고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 섬 오랑캐를 보건대, 그 중에 혹은 예의(禮義)의 한 끝을 조금 아는 자가 있사오니, 그들은 예의로써 대접하는 것이 오히려 옳으려니와, 그 부모를 죽이는 것은 짐승도 이를 하지 않고, 홀로 올빼미[梟]와 경짐승[獍]만이 그리 하게 되는데, 야인을 대우하는 것은 올빼미와 경짐승을 예의로써 길들이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옛날에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초(楚)나라 사람과 홍(泓)에서 싸우면서 적군(敵軍)을 험지(險地)에서 누르지 아니하고, 적군이 전열(戰列)을 이루기 전에는 공격하는 북을 치지 아니한다고 하다가 크게 패전하였으므로, 춘추(春秋)에 이를 매우 폄론(貶論)하였으니, 그것은 작은 명예만 꾸미려 하여 큰 덕에는 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국과 전쟁하면서 작은 예절을 지킨다고 하여 패전을 하게 된 것은 성인(聖人)이 오히려 이를 폄론(貶論)하였는데, 하물며 올빼미와 경짐승과 같은 종류를 대우하면서 예의에만 얽매인다면, 이것은 도리어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됩니다. 다만 사람들만이 이를 그르게 여길 뿐 아니라, 하늘도 또한 이를 싫어할 것입니다. 금년은 한재(旱災)가 더욱 심하므로 군사를 움직이는 일은 진실로 의논할 수가 없겠지마는, 그러나, 신은 연사(年事)의 풍년·흉년과 형세의 느즈러진 것과 급한 것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갑자기 굴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편안하고 고요한 것에만 습관이 되어, 무릇 이웃 도적을 대할 적에는 오직 예의만 차리려 들고 군사를 일으켜 그 죄 있는 자를 정벌하여 그들의 광포한 태도와 완강한 기세를 꺾어서 변방 백성들로 하여금 영구히 편안케 하는 계책은 미처 도모하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이에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저 적은 그 추장(酋長)은 평안도 연변(沿邊)의 수령들보다 지혜롭지 못하고, 그 무리들의 수효는 평안도 작은 현(縣)의 사람보다 많지 않으며, 그 사납고 용맹스러움은 평안도 여러 부대(部隊)의 군졸들보다 능히 낫지 못하며, 그 군기(軍器)의 많음과 그것의 굳세고 날카로움은 평안도 한 고을의 저장된 병장기에 미치지 못하지마는, 그러나, 우리가 항상 모욕을 당함이 그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변장(邊將)이 그 적임자(適任者)가 아닌 데 있는 것이니, 진실로 그 적임자만 얻게 된다면, 도성 밖의 조그만 도적의 정벌에는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이를 행할 수 있을 것이며, 한 도(道)의 병력(兵力)으로써 능히 이를 쳐부술 수가 있을 것이오니, 그 지휘(指揮)는 반드시 다 조정에서 내려야 할 것이 아니며, 그 군졸은 다른 도(道)에까지 번거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시기를 타서 기회에 대응할 형세가 되었다면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아니하고서 행하는 것도 또한 옳겠습니다. 옛날에 한(漢)나라 조충국(趙充國)이 4만의 기병을 거느리고 나가서 구군(九郡)에 둔쳐 있은즉, 흉노(匈奴) 10여만 명이 이 소식을 듣고 물러갔으며, 당(唐)나라 이덕유(李德裕)가 나가서 검남(劎南)과 서천(西川)을 지켜서 주변루(籌邊樓)를 세우고 장의성(仗義城) 등을 쌓으니, 두쪽 변방이 점차로 두려워하여 남조(南詔)129) 는 포로 4만 명을 돌려보내겠다고 청하니, 그 일이 지극히 크고 그 공이 심히 컸지마는, 방략(方略)이 모두 조정의 의논에서 나왔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지금 변경의 방비는 법금(法禁)이 엄밀한 까닭으로, 변장(邊將)이 비록 기이한 계책[奇計]을 내어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더라도, 앞뒤를 두려워하고 움추려서 자유스럽지 못하여, 무릇 사변(事變)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조정에 품고(稟告)하게 됩니다. 대저 기회는 잠깐 동안에 변하는데 천 리 밖에서 명령이 돌와 내려오기를 기다리게 되니, 갔다가 돌아오는 기일이 거의 달포가 넘게 되어 일의 기회는 이미 놓치게 되오니, 어찌 기이한 공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모신(謀臣)과 변장(邊將)들에게 밝게 신칙하여 항상 적을 제어하고 치욕을 씻는 것으로써 일을 삼아, 이를 생각하고 이에 생각을 두어, 원수를 갚고자 고생을 참고 견디어 대체(大體)를 먼저하고 고식(姑息)은 뒤로 돌리며, 여러 계책을 써서 모략(謀略)을 넓히고, 시기를 기다릴 때에는 실력을 길러서 시기를 보아 움직이게 하고, 변장과 진장(鎭將)이 만약 기이한 꾀와 좋은 계책이 있어서, 기회를 결정하고 공을 이룰 만한 형세를 이르게 할 수 있거든, 완급(緩急)을 살피고 경중(輕重)을 헤아려 먼저 군사를 조발(調發)하고 나중에 아뢰게 하되, 꼭 승리할 것을 기약하게 하고, 또 그들로 하여금 조그만 신의와 작은 예절에 구애하지 말고, 순전히 바른 도리를 써서 작은 도적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신이 또한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마땅히 군사를 움직인다면 가서 정벌한다는 의사로써 개유하지 않을 수 없으니, 원컨대, 거듭 주장(主將)에게 명하여 출발할 때에 대중(大衆)에게 맹세하기를, ‘야적(野賊)이 완흉(頑凶)하여 침략하여 해독을 부린 것이 서너너덧 번에 이르러, 마침내 변방 백성들로 하여금 자식은 그 아비를 잃게 되고, 아내는 그 남편을 잃게 되었으며, 재물과 축산(畜産)이 이 때문에 텅 비게 되어, 원망하는 소리가 위로 하늘에 들리니, 성상(聖上)께서 죄 없는 백성이 작은 도적의 손아귀에 빠져 있음을 민망히 생각하사, 위로 천자(天子)에게 아뢰어 이미 윤허(允許)를 받으셨으므로, 마침내 신(臣) 아무를 명하여 삼군(三軍)을 통솔하여 거느리고 가서 나쁜 무리를 정벌하게 하셨으니, ‘너희들은 맹세하는 말을 밝게 들으라. 너희들이 명령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살펴 가리심은 하늘 뜻에 있으니, 상벌(賞罰)이 엄하고 명백하여 결단코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고, 신 아무는 친히 임금의 교명(敎命)을 받자왔으니, 교지에, ‘적의 괴수를 사로잡아 죽인 사람은 상으로 벼슬 5등을 승진시키고, 자제(子弟)를 죽인 자를 사로잡은 사람은 4등을 승진시키고, 억세고 용감한 적을 사로잡거나 죽인 사람은 3등을 승진시키고, 평인(平人)을 죽인 자를 사로잡았거나 죽인 사람은 수효를 조사하여 차등이 있게 승진시키고, 향리(鄕吏)·역자(驛子)·염간(鹽干)·공천(公賤)·사천(私賤) 중에서 특수한 공로가 있는 사람은 그들의 구실을 면제하고 관직으로 상주게 하며, 적인(賊人)의 가재(家財)를 모두 나누어 주게 할 것이다. 만약 전진(戰陣)에 임하여 적군과 맞설 적에,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고 앉고 일어나는 것이 한 가지라도 군령에 어긋난다면, 마땅히 진영(陣營) 앞에서 이를 죽이고 용서함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은 이를 들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 교지로써 삼군(三軍)에게 선포한다면, 사람마다 그 용기가 백배나 더하여 분투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움에 나아갈 것입니다.

신은 성상의 특수하옵신 은혜를 잘못 입게 되었사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분발하여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옵지마는, 그러나 재주가 용렬하고 식견이 천박하여 정사를 건의하여 밝힌 바가 없으며, 다만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고 나라를 위하여 죽기를 맹세할 뿐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일의 기회가 있음을 만나 혹은 어리석은 소견을 내기도 하고, 혹은 이상한 소문도 얻으면 취하고 버림을 가릴 여가도 없이 문득 위에 올려서 허튼소리나마 가려 보실까 엎디어 바라옵나이다. 신은 통분한 마음이 지극하옵기로 말씀이 지리번잡하옴을 깨닫지 못하고 성상의 위엄을 모독하였사오매, 진실로 황공하여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을 올립니다."

하였다.

천순(天順) 7년 3월 일 영춘추관사(領春秋館事) 신(臣) 신숙주(申叔舟),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 신 권남(權擥),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신 최항(崔恒), 신 어효첨(魚孝瞻),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신 이극감(李克堪), 신 양성지(梁誠之) 등은 삼가 전지(傳旨)를 받들어 이에 더 붙임.

  • [註 129] 남조(南詔) : 옛날 중국 운남성(雲南省)에 있던 나라 이름.

원문

○丙辰七月日, 議政府贊成申槪上言:

臣竊惟北鄙方略, 不過備禦、通好、討罪而已。 固我邊備, 賊不敢窺, 固爲善矣, 然平安南道赴防之軍騎載馬, 人各三四匹, 踰大嶺則斃踣相望, 負擔以行, 及番下, 馬之不返者十常七八。 如此者非一年, 深恐數年之後, 馬兵難繼也。 爲邊將者不恤此弊, 嚴督調發, 而尙致寇掠, 有如近日, 則備禦亦甚難矣。

欲以通好則須用子女玉帛, 可以塞其欲也, 國家能之乎? 況以螻蟻之微、蜂蠆之毒, 肆意侵掠, 我尙區區於講和乎! 討罪之擧, 惟一時勞費耳, 古人所謂暫勞而永逸者也。 誠使行師有律, 而不要近功, 不務虛聲, 期於擒其酋長, 肉袒軍前而後已, 則可以斷南道之弊, 可以寬北顧之憂, 而通好之策, 亦可以馴致矣。 操縱在我, 則朝其渠魁, 質其子弟, 何難之有?

夫其爲寇不已者, 謂我雖見侮, 而大度包容, 尙加恩恤, 而不行征討耶? 深挾往年之恨而必行報復耶? 饕餮無厭而利我財貨耶? 抑以我邊將之怠劣耶? 士卒之怯弱耶? 而其意不出於此數者。 凡小人見利, 則敢爲不義之事, 而不計後日之害, 矧此野賊, 心挾數事而顧, 無些小害己之患, 何憚而不爲寇也? 彼之賊害旣如此, 而我尙內汚藏疾, 不與之較, 館待賞賚, 無異前日, 苟有人心者, 宜其悔罪哀鳴, 求免討罪之不暇, 反乃益肆其毒, 其視德義爲何等物也。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雖可忍也, 如吾之沿邊赤子何? 守邊將士何?

大抵制敵之方, 彼爲肆毒, 而我不示之嚴威, 則彼必輕我而侮之不已;彼爲歸順, 而我不示之寬恩, 則彼反懷逆而侵掠尤甚。 故必觀其勢、察其變, 或示恩、或示威, 使彼顚倒迷失於我之智度之中, 而莫知端倪, 然後可也。 今於野人, 示恩則行之有素矣, 示威則僅一行之, 亦不能害其軀幹腹心, 而祗傷其皮膚毛髦矣。 又懼其躡後也, 而輜重器械馬匹, 棄之太半, 倍道奔還, 是非惟增其狠怒也。 反示恇怯, 而長其輕侮之心耳, 何可謂之示威也?

且古人所謂來則禦之, 去則勿追者, 衆至數十萬, 雄據大地, 而相去遼隔者也。 曾謂此等(叢)〔蕞〕 爾小寇, 隔一江水, 鼠竊狗偸者耶? 不然則有苗不服, 而舜征之; 玁狁孔熾, 而周宣六月興師; 淮夷、徐戎幷興, 而伯禽征之, 古今美之, 何也?

臣竊觀朝議不及討罪者, 必憚於大擧也。 惟此幺麽之寇之討, 何必大擧也? 識者曰: "用精勇數千人, 如拾芥耳, 蔑不濟矣。" 然易而輕擧, 兵家之戒也。 當熟籌之, 然後可發也。 今滿住旣行寇賊, 規免其罪, 繼以遣人, 其計亦甚狡矣。 其作賊之由, 不可不問, 旣問之, 則其使不可不留。 近來殺掠人口馬牛, 殆至數百矣, 若又厚其來使, 優其回禮以遣之, 則是賞其入寇也。 願拘其使, 但還其介一人, 云: "待滿住前後所擄人口馬牛, 盡數發還, 交割邊將, 然後今所遣人, 方聽其還。" 使人往還, 反覆致詰, 則入寇之謀, 或可沮喪矣。 如或更肆傑驁, 而不肯歸款, 則是自啓兵端, 而我之師尤直而壯矣。 抑以爲留其使而遽激其怒不可, 則又有可行者焉。

滿住所遣六人, 而一人力救而來, 一人不告潛來, 其言雖未可信, 其欲相通之意, 未嘗無也。 今彼來聘連絡, 而我絶不遣人, 彼之卑微奸狡, 雖不宜交好, 然其來使旣不却, 而容待優厚, 則遣人以答, 有何不可? 臣願廣選有謀略勇悍數人, 稱爲報聘, 或賚賞賜, 同其使以遣, 道達交好之意, 因而往返雜沓, 誘以入朝之意, 則或躬自來朝, 或遣子入侍, 勢所當然。 雖未得此, 猶可以審其居處形止及其衆寡虛實, 又徐觀其欲附我之輩, 密誘以授職, 厚待之利, 則其有窮困者, 勢將來赴, 而彼之情狀, 凡百謀爲, 可以悉矣。

今又童豆里夫化棄妻子來奔, 其言滿住施爲, 雖若有不直, 然久留則必吐其實矣。 又自言窮困, 固求投化, 則何必强遣也? 臣恐强遣此人, 則後無來者矣。 後無來者, 則何由詗彼之聲息也? 彼有信義, 則叛臣逃吏, 同當還也, 觀其所爲, 則不必以信義報之也。 不欲制敵則已, 如欲制敵, 則自彼來者, 須多方以致之, 重賞以招之, 用之爲反間, 用之爲諜人, 因以識其山川形勢夷險、道路迂直遠近, 交互往來, 聲言大擧討罪, 詗彼有備, 已而不行。 如此數四, 則彼必怠而不備, 然後乘間抵隙, 潛師往襲, 可以得志矣。

議者曰: "滿住之類, 爲我藩籬, 故忽剌溫不敢近。 若討滿住, 使之遠遁, 則忽剌溫移來, 邊患尤劇矣。" 臣未知忽剌溫地面相去遠近夷險, 又未知其居止遷徙之狀, 何可妄議? 然以理勢觀之, 忽剌溫誠欲徙居, 則視滿住如奴隷耳, 豈畏滿住百數孱羸之卒乎? 且忽剌溫時居窟穴, 不知其幾年耶! 無隣寇、無大患, 而棄其舊土, 恐不然也。 若以侵我爲利, 則去年正月被滿住引導, 來侵閭延, 無所得而去, 反以滿住爲欺誑而詬之。 厥後縱有言其來者, 皆滿住輩假托紿我耳, 非其實也。 此亦不利寇我之一驗也。 且入寇邊疆, 縱意殺掠, 至于累數而不已者, 謂之藩籬可乎? 今觀島夷, 或有粗知禮義之一端者, 待之以禮義, 猶可也, 殺其父母, 禽獸不爲, 而獨梟獍爲之, 野人, 父老則射殺之, 卽梟獍也。 然則以禮義待野人, 何以異於馴梟獍以禮義哉? 昔宋 襄公及楚人戰于泓, 不扼人於險, 不鼓不成列而致大敗, 《春秋》深貶之, 以其飾小名而昧大德也。 然則與敵國戰而用小禮以致敗, 聖人尙貶之, 況以待梟獍之類而規規於禮義, 則是反失於禮義矣。 不惟人非之, 天亦厭之矣。 今歲旱災太甚, 動衆之擧, 固不可議。 然臣非以不計歲之豐歉、勢之緩急而遽欲行伏, 特以國家狃於安靜, 凡待隣寇, 惟用禮義, 而擧兵討罪, 挫其狂悍, 永康邊民之計, 則不遑及焉, 故敢此言之。

今彼賊, 其酋不智於平安沿邊之守, 其徒不衆於平安小縣之人, 其驍勇不能過平安諸翼之卒, 其兵革之多與其堅利, 不及平安一郡之藏。 然而我之見侮不已, 何也? 在於邊將非其人也。 苟得其人, 則閫外小寇之討, 都節制使得以行之, 一道之力可以破之, 其指揮不必盡出於朝也, 其軍卒不必煩於他道也。 如有乘時應機之勢, 則不俟朝命而行, 亦可也。 昔漢 趙充國將四萬騎, 出屯九郡, 而匈奴十餘萬騎, 聞之引去。 唐 李德裕出鎭劒南、西川, 建籌邊樓, 築仗義等城, 而二邊浸懼, 南詔請還俘掠四萬人, 其事至大, 其功甚偉, 而未聞方略皆出於廟議也。 且今邊防, 法禁嚴密, 故邊將雖欲出奇應變, 而畏縮首尾, 不得自由, 凡遇事變, 必稟於朝。 夫機會, 變於斯須, 而千里之外, 需待回降, 往還之期, 殆踰旬月, 而事機已失矣, 何由得成奇功也?

伏望明勑謀臣, 與邊將常以制敵灑恥爲事, 念玆在玆, 臥薪嘗膽, 先大體而後姑息, 用群策而廣謀略, 遵養時晦, 相時以動, 而邊將鎭將如有奇謀良策可以致決機成功之勢, 則審緩急、酌輕重, 先發後聞, 期以克捷, 而又使之勿拘於小信小禮而純用直道, 以受侮於小寇也。

臣又竊念, 如當動衆, 則不可不喩以往討之意, 願申命主將, 臨發誓衆曰: "野賊頑凶, 侵掠肆毒, 至于數四。 遂使邊民子失其父, 妻失其夫, 資財畜産, 爲之一空, 嗟怨之聲, 上聞于天。 聖上閔念無辜沈沒小賊, 上告天子, 已蒙兪允, 遂命臣某, 督率三軍, 往討醜類, 爾其明聽誓辭。 爾之用命不用命, 簡在天心, 賞罰嚴明, 斷不差也。 臣某親奉上旨, 有曰: ‘擒殺賊魁者, 賞爵陞五等; 擒殺子弟者, 陞四等; 擒殺壯勇者, 陞三等;擒殺平人者, 驗人數差等陞擢; 鄕吏驛子鹽干公私賤口有殊功者, 亦免役賞職, 俱給賊人家財。 如臨陣對敵, 進退坐作, 一乖所令, 則當於軍前, 戮之無赦。 爾其聽之。’" 以之宣令三軍, 則人百其勇, 爭奮竭力而赴鬪矣。

臣謬蒙殊恩, 夙夜思奮, 欲報涓埃, 然才劣識淺, 無所建明, 惟有奉公盡瘁, 誓以死耳。 故遇有事機, 或出愚見, 或得異聞, 不暇取舍, 輒以陳獻, 以備芻蕘, 伏惟聖裁。 臣痛憤之至, 不覺言煩, 冒瀆天威, 誠惶誠恐, 昧死以言。

天順七年三月日, 領春秋館事臣申叔舟、監春秋館事臣權擥、知春秋館事臣崔恒ㆍ臣魚孝瞻、同知春秋館事臣李克堪ㆍ臣梁誠之等謹奉傳旨, 添附于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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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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