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72권, 세종 18년 4월 12일 무신 2/2 기사 /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의정부와 육조의 관계를 정비하도록 교서를 내리다
국역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당(唐)·우(虞) 시대에는 백규(百揆)029) 가 구관(九官)과 십이목(十二牧)을 통리(統理)하였으며, 성주(成周) 때에는 총재(冢宰)030) 가 육경(六卿)과 육십속(六十屬)을 통리하였으며, 총재는 실로 삼공(三公)031) 이 겸직해서 혹은 한나라의 진평(陳平)과 같이 전곡(錢穀)의 수에는 관계하지 아니하여 대신(大臣)의 체통은 얻었으나, 실로 대신의 직책에 흠절이 되는 줄을 몰라서 한나라 대신의 권리를 잃어버림이 진평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한나라 이후의 역대의 치란(治亂)이 모두 대신을 잘 만나고 못 만난 데에 있었다. 우리 태조께서 개국하시던 처음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설치하여 일국의 정치를 도맡게 했으며, 뒤에 의정부가 되어서도 그 임무는 당초와 같았는데, 지난 갑오년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대신은 작은 일까지 친히 간섭할 필요가 없고, 군사에 관계되는 나라의 중대한 일만을 의정부에서 회의하여 아뢰게 하고, 그 외의 일은 육조(六曹)로 하여금, 맡은 자가 직접 아뢰어서 시행하게 하소서.’ 하였으므로, 이로부터 일의 경중과 대소가 없이 모두 육조로 돌아가고, 정부에서는 관계하지 않게 되어, 정부에서 참예하여 아뢰는 것은 오직 사형 죄수들의 논결(論決)뿐이었다. 그러므로, 옛날 대신에게 위임하던 일과 어긋남이 있고, 갑오년에 입법(立法)하던 본의(本意)도 이렇지는 아니하였다. 하물며, 조종께서 이미 제정하여 놓은 법령을 다만 수시로 손익할 뿐이니, 지금 태조께서 제정하여 놓으신 법에 의하여 육조에서는 각각 맡은 직무를 먼저 정부에 품의(稟議)하고, 의정부에서는 가부를 의논하여 아뢴 뒤에 분부를 받아서 도로 육조로 돌려보내서 시행하게 하고, 오직 이조와 병조에서의 관리 제수나, 병조에서 군사를 쓰는 것과, 형조에서 사형수 이외의 형결은 해당 조(曹)로 하여금 직접 아뢰어서 시행하게 하고 즉시 정부에 보고하여, 만일에 합당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정부에서는 이에 따라 반대하고 다시 계문해서 시행하게 하라. 이렇게 되면 거의 옛날 재상에게 전임(專任)하는 본의에 합당할 것이니, 예조에서는 중외에 밝게 알리라."
하고, 그리고 의정부에 전교하기를,
"옛날 의정부에서 정사에 서명할 때에, 다만 좌우 의정(左右議政) 만이 도맡아 다스리게 되고 영의정은 참예하지 않으므로, 옛날의 삼공(三公)에게 전임(專任)하는 본의에 틀리니, 이제부터 영의정 이하가 함께 가부를 논의해서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1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원문
○敎曰:
唐、虞之際, 百揆統九官十二牧; 成、周之時, 冢宰統六卿六十屬, 而冢宰實三公兼之。 或以爲: "漢 陳平不對錢穀之數, 爲得大臣之體。" 然不知實虧大臣之職, 而漢相之失權, 自平始矣。 自漢以後, 歷代之治亂, 皆由任相之得失。 我太祖開國之初, 設都評議〈使〉司, 以摠一國之政, 後改爲議政府, 其任如初。 歲在甲午, 禮曹啓: "以大臣不宜親小事, 軍國重事, 議政府會議以聞, 其餘令六曹各以所職, 直啓施行。" 自是以後, 事無輕重大小, 皆歸於六曹, 而不關於政府, 政府所與聞, 唯論決死囚而已, 有違古者任相之意。 甲午立法之本意, 亦不至於如此也。 況此皆祖宗之成憲, 但隨時損益而已! 今依太祖成憲, 六曹各以所職, 皆先稟於議政府, 議政府商度可否, 然後啓聞取旨, 還下六曹施行, 唯吏兵曹除授、兵曹用軍、刑曹死囚外刑決, 仍令本曹直啓施行, 隨卽報于政府。 如有未當, 政府從而審駁, 更啓施行。 如此則庶合古者專任宰相之意。 惟爾禮曹, 曉諭中外。 仍敎議政府曰: "昔議政府署事之時, 但左右議政摠治, 而領議政不與焉, 有違古者專任三公之意。 自今領議政以下, 同議可否施行。"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1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세종 18년 (1436) 4월 12일
국역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당(唐)·우(虞) 시대에는 백규(百揆)029) 가 구관(九官)과 십이목(十二牧)을 통리(統理)하였으며, 성주(成周) 때에는 총재(冢宰)030) 가 육경(六卿)과 육십속(六十屬)을 통리하였으며, 총재는 실로 삼공(三公)031) 이 겸직해서 혹은 한나라의 진평(陳平)과 같이 전곡(錢穀)의 수에는 관계하지 아니하여 대신(大臣)의 체통은 얻었으나, 실로 대신의 직책에 흠절이 되는 줄을 몰라서 한나라 대신의 권리를 잃어버림이 진평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한나라 이후의 역대의 치란(治亂)이 모두 대신을 잘 만나고 못 만난 데에 있었다. 우리 태조께서 개국하시던 처음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설치하여 일국의 정치를 도맡게 했으며, 뒤에 의정부가 되어서도 그 임무는 당초와 같았는데, 지난 갑오년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대신은 작은 일까지 친히 간섭할 필요가 없고, 군사에 관계되는 나라의 중대한 일만을 의정부에서 회의하여 아뢰게 하고, 그 외의 일은 육조(六曹)로 하여금, 맡은 자가 직접 아뢰어서 시행하게 하소서.’ 하였으므로, 이로부터 일의 경중과 대소가 없이 모두 육조로 돌아가고, 정부에서는 관계하지 않게 되어, 정부에서 참예하여 아뢰는 것은 오직 사형 죄수들의 논결(論決)뿐이었다. 그러므로, 옛날 대신에게 위임하던 일과 어긋남이 있고, 갑오년에 입법(立法)하던 본의(本意)도 이렇지는 아니하였다. 하물며, 조종께서 이미 제정하여 놓은 법령을 다만 수시로 손익할 뿐이니, 지금 태조께서 제정하여 놓으신 법에 의하여 육조에서는 각각 맡은 직무를 먼저 정부에 품의(稟議)하고, 의정부에서는 가부를 의논하여 아뢴 뒤에 분부를 받아서 도로 육조로 돌려보내서 시행하게 하고, 오직 이조와 병조에서의 관리 제수나, 병조에서 군사를 쓰는 것과, 형조에서 사형수 이외의 형결은 해당 조(曹)로 하여금 직접 아뢰어서 시행하게 하고 즉시 정부에 보고하여, 만일에 합당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정부에서는 이에 따라 반대하고 다시 계문해서 시행하게 하라. 이렇게 되면 거의 옛날 재상에게 전임(專任)하는 본의에 합당할 것이니, 예조에서는 중외에 밝게 알리라."
하고, 그리고 의정부에 전교하기를,
"옛날 의정부에서 정사에 서명할 때에, 다만 좌우 의정(左右議政) 만이 도맡아 다스리게 되고 영의정은 참예하지 않으므로, 옛날의 삼공(三公)에게 전임(專任)하는 본의에 틀리니, 이제부터 영의정 이하가 함께 가부를 논의해서 시행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1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원문
○敎曰:
唐、虞之際, 百揆統九官十二牧; 成、周之時, 冢宰統六卿六十屬, 而冢宰實三公兼之。 或以爲: "漢 陳平不對錢穀之數, 爲得大臣之體。" 然不知實虧大臣之職, 而漢相之失權, 自平始矣。 自漢以後, 歷代之治亂, 皆由任相之得失。 我太祖開國之初, 設都評議〈使〉司, 以摠一國之政, 後改爲議政府, 其任如初。 歲在甲午, 禮曹啓: "以大臣不宜親小事, 軍國重事, 議政府會議以聞, 其餘令六曹各以所職, 直啓施行。" 自是以後, 事無輕重大小, 皆歸於六曹, 而不關於政府, 政府所與聞, 唯論決死囚而已, 有違古者任相之意。 甲午立法之本意, 亦不至於如此也。 況此皆祖宗之成憲, 但隨時損益而已! 今依太祖成憲, 六曹各以所職, 皆先稟於議政府, 議政府商度可否, 然後啓聞取旨, 還下六曹施行, 唯吏兵曹除授、兵曹用軍、刑曹死囚外刑決, 仍令本曹直啓施行, 隨卽報于政府。 如有未當, 政府從而審駁, 更啓施行。 如此則庶合古者專任宰相之意。 惟爾禮曹, 曉諭中外。 仍敎議政府曰: "昔議政府署事之時, 但左右議政摠治, 而領議政不與焉, 有違古者專任三公之意。 自今領議政以下, 同議可否施行。"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1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원본
세종 18년 (1436) 4월 12일